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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향감별사(失鄕感別詞)
경북영천(慶北永川) 자양(紫陽) 땅에 대택기지(大澤基地) 확정되니
감고부금(瞰古俯今) 어린정서 실향감회(失鄕感懷) 절로나네
천지개벽(天地開闢) 몇만년에 금수(錦繡)일폭 이 향장(鄕庄)은
산세기이(山勢奇而) 수려하고 수활유이(水活流而) 화창하다
서운상응(瑞雲常凝) 취수(翠峀)하고 양광항조(陽光恒照) 평포(平浦)로다
우순화이(雨順和而) 풍조(風調)하고 지비옥이(地肥沃而) 연풍(年豐)이라
천간만학(千澗萬壑) 그윽한데 조제어약(鳥啼魚躍) 자연미취(自然美趣)
무릉도원(武陵桃源) 아니련만 인간복지(人間福地) 여기로다
지운(地運)따라 순박인심(淳朴人心) 미풍량속(美風良俗) 그립구나
산명수명(山名水名) 고적유물(古蹟遺物) 대략기록 남겨볼까
흘립만고(屹立萬古) 운주산(雲住山)은 자양산(紫陽山)의 조종(祖宗)이요
엄연묵연(嚴然黙然) 정중함은 은군자(隱君子)의 태도이요
쟁영산복(崢嶸山腹) 안국사(安國寺)에 미문종성(微聞鐘聲) 처량(凄凉)하다
보현산(普賢山) 준엄(峻嚴)함은 백절불굴(百折不屈) 기상(氣像)이요
거동사(巨洞寺) 천년고적(千年古蹟) 옛신라의 유물(遺物)이라
효용(驍勇)한 기룡산(騎龍山)은 호협웅장(豪俠雄壯) 기벽(氣癖)이요
이 중봉(中峰) 묘각사(妙覺寺)는 고인수교(古人手巧) 묘각(妙覺)일세
봉용미자(丰容美姿) 오미산(烏尾山)은 물외고사(物外高士) 자품(恣稟)인듯
필대산(筆大山) 쌓은붓과 명화필(名畵筆)의 근원이요
탕건봉(宕巾峰) 기절(奇絶)함은 예측과한(豫測科翰) 범상(凡常)하다
부인암하(婦人岩下) 병풍봉(屛風峰)은 이 자양(紫陽)의 보병(寶屛)일세
자생화초(自生花草) 수(繡)가 되고 창공비학(蒼空飛鶴) 화(畵)이로다
노적산(露積山) 쌓은 양곡(糧穀) 풍유여량(豊裕餘粮) 노적(露積)이요
성현군자(聖賢君子) 영정피란(影幀避亂) 성혈암(聖穴岩)의 공적이라
시루봉(峰) 익힌 음식 위선접빈(爲先接賓) 수물(需物)인가
단면여벽(斷面如壁) 백암산(栢岩山)은 우리 삼촌(三寸) 경대(鏡臺)인듯
일지장맥(一枝長脈) 진경산(進慶山)은 세세오가(世世吾家) 진경(進慶)이요
장류불식(長流不息) 자호천(紫湖川)은 굽이굽이 선경(仙境)일세
깊고 맑은 용궁담(龍宮潭)은 수궁녀(水宮女)의 놀이턴가
소금강하(小金剛下) 삿갓연(淵)은 소인(騷人)의 시제(詩題)되고
호계탄(虎溪灘) 내린물은 묵객(墨客)의 연수(硯水)인가
가마소 맑은 청담(淸潭) 탁영세이(濯纓洗耳) 장소로다
기산영수(箕山潁水) 좋다하나 이 이상 더할손가
산자수명(山紫水明) 이 승지(勝地)에 절세위인(絶世偉人) 없을손가
선무선조(宣務先祖) 입향(入鄕)하사 지금 노항(魯巷) 여기로다
형양공(滎陽公)의 십사세손(十四世孫) 사성공(司成公)의 손자시라
탁월(卓越)하신 포부로써 미현조운(未顯早殞) 원한(寃恨)일세
그 아드님 노촌공(魯村公)은 퇴문고풍(退門高風) 체를 받아
불구영귀(不求榮貴) 돈세양진(豚世養眞) 도의마롱(道義磨礱) 하시면서
선현숭덕(先賢崇德) 모앙(慕仰)하고 후진장학(後進獎學) 배려하사
명산공(明山公)과 합력(合力)으로 자양서당(紫陽書堂) 이룩하니
기지독담(基地獨擔) 하신 분은 공지외숙(公之外叔) 이공(李公)이요
십수여간(十數餘間) 이 당사(堂舍)는 명종육년(明宗六年) 흘공(訖工)한 후
임고서원(臨皐書院) 창건모의(創建謀議) 노공소암(盧公小菴) 金公明山
오선조(吾先祖) 노촌공(魯村公)이 삼선생(三先生)의 물심양력(物心兩力)
부래산(浮來山)에 건립(建立)하니 명종팔년(明宗八年) 준공(竣工)일세
동서협(東西夾) 명성경의(明誠敬義) 강당(講堂)은 흥문(興文)이라
모선애후(慕先愛後) 하신 성력(誠力) 육영인(育英人)의 표방(標榜)일세
낙선애사(樂善愛士) 은연후륜(隱然厚倫) 금계옹(錦溪翁)의 칭송(稱頌)이요
창석여헌(蒼石旅軒) 고문과종(叩門過從) 아시작주(哦詩酌酒) 즐기신곳
창상(滄桑)이 누변(累變)되니 구허황량(舊墟荒凉) 새롭구나
공지사(公之嗣) 호수공(湖叟公)과 공지손(公之孫) 사곤계(四昆季)가
이 기지(基地)에 낳으셨어 열충저세(烈忠著世) 경사(慶事)로다
풍후(豊厚)하신 호수공은 의용재덕(儀容才德) 탁월하사
조년사마(早年司馬) 하신 후에 은거정양(隱居靜養) 하시다가
용사란(龍蛇亂) 들으시고 오십팔세(五十八歲) 융로(隆老)로서
자질노복(子姪奴僕) 데리시고 향중인사(鄕中人士) 합세하여
백발성성(白髮星星) 장(壯)한 창의(倡義) 영경복성(永慶復城) 전첩(戰捷)하니
위국일념(爲國一念) 단충(丹忠)이요 생민구제(生民救濟) 천사(天使)로다
궁리도학(窮理道學) 하신 어른 장략(將略)인들 오죽하리
양공환귀(讓功還歸) 인구(仁邱)에서 구로상맹(鷗鷺相盟) 강호정사(江湖精舍)
세구연심(歲久年深) 오래건만 비음수택(庇蔭手澤) 흐리난듯
壯하신 위학공훈(偉學功勳) 오리대감(梧里大監) 일천(逸薦)으로
황산찰방(黃山察訪) 제수(除授)받고 기후조칙(其後詔勅) 다시 내려
병조판서(兵曹判書) 증직(贈職)이요 시호(諡號)하사 강의(剛義)로다
청사(靑史)에 빛이 되고 향방(鄕邦)의 자랑이라
명종팔년(明宗八年) 창건서원(創建書院) 임진란(壬辰亂)에 회신(灰燼)되니
선부로(先父老)의 적공사업(積功事業) 고증무처(考證無處) 되고보니
감개(感慨)하신 호수공과 이공대암(李公臺嵒) 정공도사(鄭公都事)
세어른 심력(心力)으로 도일동(道一洞)에 신기(新基)잡아
재건(再建)된 임고서원(臨皐書院) 첨망감회(瞻望感懷) 새롭구나
추억(追憶) 깊은 노항구기(魯巷舊基) 아직 보수(保守) 유관하다
맏아드님 참판공(參判公)은 견부함적(見父陷賊) 월성전(月城戰)에
궤위구출(潰圍救出) 하신 분투(奮鬪) 신피창검(身被槍劍) 수십처에
혈진명진(血盡命盡) 일편단심 위국사친(爲國事親) 장엄전사(莊嚴戰死)
충효의골(忠孝義骨) 찾지 못해 시총(詩塚)으로 성분(成墳)하니
장지하천(葬地夏泉) 여기건만 그 원한(冤恨)이 무궁(無窮)하다
공지차자(公之次子) 처사공(處士公)은 조요은덕(早夭隱德) 감창(感愴)이요
공지삼자(公之三子) 만호공(萬戶公)은 부자등제(父子登第) 광채(光彩) 이요
만호공(萬戶公)의 쌓은 업적(業績) 창의록(倡義錄)에 확연(確然)하고
양계공(暘溪公)의 하신 사환(仕宦) 진주목사(晋州牧使) 제수치적(除授治績)
국가(國家)로서 간성(干城)이요 오가당대(吾家當代) 중추(中樞)로다
공지계자(公之季子) 호군공(護軍公)은 부형창의(父兄倡義) 출전(出戰) 후에
난중생애(亂中生涯) 막연한데 노모(老母) 가족 공양코자
십삼세(十三歲) 유년(幼年)으로 백리부미(百里負米) 하신 효우(孝友)
품부려력(稟賦膂力) 장(壯)하시나 빙리설순(氷鯉雪筍) 무색(無色)하다
이십삼세(二十三歲) 괴등무과(魁登武科) 선조(宣祖)께서 총애벽기(寵愛壁記)
변보절충(邊保折衝) 역임(歷任) 후에 내금위장(內禁衛將) 특제(特除)받아
유형난공(有亨難功) 일등포훈(一等褒勳) 자귀부현(子貴父顯) 가경(家慶)이요
곤외대임(閫外大任) 유능인재(有能人材) 항시탁용(恒時擢用) 어의(御意)오나
광해정란(光海政亂) 시작되어 간신용사(姦臣用事) 참혹하니
우국경발(憂國竟發) 배저(背疽)로서 사십이세(四十二歲) 서거(逝去)하니
시이세변(時移世變) 당한 국운(國運) 현철인(賢哲人)도 무용(無用)일세
공지장자(公之長子) 명계공(明溪公)은 조달문학(早達文學) 특출재예(特出才藝)
연재이십(年纔二十) 친상(親喪)으로 포옥미전(抱玉未展) 가운(家運)이요
편모유제(偏母幼弟) 봉솔역경(奉率逆境) 상화집(常華集)에 역력하다
공지차자(公之次子) 요산공(樂山公)은 백부입후(伯父立後) 승종(承宗)이라
해남현감(海南縣監) 역임하사 청백리송(淸白吏頌) 장(壯)하신 덕(德)
자손진진(子孫振振) 한량없고 연계화발(蓮桂花發) 승승(繩繩)하다
역수오가(歷數吾家) 살펴보니 세세종덕(世世種德) 여음(餘蔭)으로
운잉번윤(雲仍繁潤) 창달하여 문무과환(文武科宦) 입삼(卄三)이요
삼십삼(三十三)의 생진(生進)이라 문장명필 계승하여
시서잠경(詩書箴警) 여러 문집 후생교훈(後生敎訓) 과재(課材)이요
두결(蠹缺)된 저 유묵(遺墨)은 우리집의 가보(家寶)일세
혁혁진진(赫赫陳陳) 우리 가성(家聲) 자작일촌(自作一村) 여기저기
찬란한 정헌당재(亭軒堂齋) 왕고유적(往古遺蹟) 빛이 되고
수택(手澤) 어린 저 문호(門戶)는 후손 위한 포치(舖置)로다
세세선영(世世先塋) 하절판국(夏節板局) 태백산(太白山) 천리내룡(千里來龍 )
보현산(普賢山) 중봉 높아 외목재 힘을 주어
용출만장(聳出萬丈) 솟은 주봉(主峰) 양강산맥(陽剛山脈) 기룡(騎龍)일세
웅호기세(熊虎氣勢) 굉장하나 향남당처(向南當處) 온화하고
청룡백호(靑龍白虎) 기절옹위(奇絶擁衛) 만고명산 여기로다
세칭 차산(此山) 좌장혈(左掌穴)에 수차위(首次位) 해좌(亥坐)로다
무지하단(拇指下端) 수위산소(首位山所) 선무랑의 유택(幽宅)이요
사친성효(事親誠孝) 감천(感天)되어 신승설학(神僧雪學) 점지로다
무지중단(拇指中端) 드린 차위(次位) 노촌공의 유택이요
무지최상(拇指最上) 제일위(第一位)는 강의공의 묘소로다
삼대위(三代位) 뒤로 올라 고비위(考妣位) 쌍분일세
백암호군(柏巖護軍) 형제분 묘 제이제삼(第二第三) 좌우이요
약손약증(若孫若曾) 여러 산소 우변층층(右邊層層) 하단이라
백암공의 충혼의백(忠魂義魄) 차세(此世)에 미진효우(未盡孝友)
지하천추(地下千秋) 배오담락(陪晤湛樂) 유배양계(有陪陽界) 하시는지
그 곡구(谷口) 들어서면 창송노목(蒼松老木) 울밀(鬱密)한데
신도비각(神道碑閣) 익연(翼然)하니 호수선조 추상(追想)이요
전자(篆字)로 새긴 비석 조상국(趙相國)의 유문(遺文)이요
문채필법(文彩筆法) 찬란함은 오가백세(吾家百世) 기념일세
장엄한 저 재사는 영세추모(永世追慕) 불망지(不忘地)라
일편황원(一片荒原) 하천곡(夏泉谷)에 골육상취(骨肉相聚) 새롭구나
수십좌(數十座) 저 비상석 한좌한좌 성혈(誠血)이요
치전수호(置田守護) 세세사업 보본일념(報本一念) 현로(顯勞)로다
선부로(先父老)의 위선심력(爲先心力) 몽매(夢寐)인들 잊을손가
동근화수(同根花樹) 이 향장(鄕庄)은 오천정(烏川鄭)의 세전(世氈)일세
호조호숙(呼祖呼叔) 호형호제(呼兄呼弟) 백대지친(百代至親) 흐뭇하고
사상애하(事上愛下) 우리 가풍(家風) 세세형제 이아닌가
깊고깊은 이 친의(親懿)는 불변천추(不變千秋) 가법(家法)일세
천지일월(天地日月) 회색(晦塞)한들 이 가법(家法) 변할손가
호계변(虎溪邊) 들어서니 인구월연(仁邱月淵) 넓은 촌양(村樣)
명랑하고 웅장하다 우뚝한 강호정사(江湖精舍)
춘풍추우(春風秋雨) 몇 백년에 호탕강호(浩蕩江湖) 제압(制壓)인듯
오로내방(梧老來訪) 교유지(交遊地)요 창옹만시(蒼翁輓詩) 감창(感愴)일세
왕사창망(往事滄茫) 오래건만 고서유묵(古書遺墨) 역력하다
오조풍류(吾祖風流) 즐긴자리 계산물물(溪山物物) 새롭구나
월송인재(月松忍齋) 부자진사(父子進士) 유집문채(遺集文彩) 찬란하고
풍마퇴패(風磨頹敗) 용강정(龍崗亭)은 중건익연(重建翼然) 모앙(慕仰)일세
사의당(四宜堂) 의형의제(宜兄宜弟) 형우제공(兄友弟恭) 가훈(家訓)이요
추모원모(追慕遠慕) 청아재사(淸雅齋舍) 유가본색(儒家本色) 전형(典型)되고
조상향모(祖上向慕) 정성이요 후생(後生) 위한 학당(學堂)이라
수의헌(守宜軒) 높은 성려(誠慮) 세세수의(世世守宜) 경잠(警箴)이요
소미정(笑迷亭) 확은정(確隱亭)은 사은보답(師恩報答) 성력(誠力)일세
노암해난(露岩海難) 양공박학(兩公博學) 저 유집(遺集)에 엄연하다
화려한 귀미(龜尾) 마을 삼휴공(三休公)의 분산지(分産地)라
삼백여년 세전 종택(宗宅) 세변창상(世變滄桑) 허다하나
의란피해(依亂被害) 당함없고 소소중수(小小重修) 있을망정
이건중건(移建重建) 없었으니 세세음덕(世世蔭德) 감상된다
동생 위한 이집축조 명계공(明溪公)의 이력이요
해남공(海南公)의 소요재사(逍遙齋舍) 요산정(樂山亭)은 간곳없고
방초(芳草)만 푸르오니 추상당시(追想當時) 감상(感傷)일세
과남송정(過南松亭) 울창노목(鬱蒼老木) 요산공(樂山公)의 수식(手植)이라
삼형제분 지극우애 자손도리 잊을손가
강마도학(講磨道學) 삼휴정사(三休亭舍) 음풍농월(吟風弄月) 낙을 삼아
탐구진리(探究眞理) 하신 유촉(遺囑) 잉복여운(剩馥餘韻) 새로웁고
인의예신(仁義禮信) 壯한 휘함(諱啣) 불망시예(不忘詩禮) 명(銘)이로다
오체기거(五棣起居) 오회당(五懷堂)은 숙덕무행(淑德茂行) 전당(典堂)이요
공회형제(孔懷兄弟) 종로형락(終老亨樂) 판탕숙세(板蕩叔世) 귀감일세
축와운서(縮窩雲西) 숙질진사(叔姪進士) 숭고문체 흠앙(欽仰)되고
일폭유묵(一幅遺墨) 여금(如金)이요 후인배출 심력(心力)일세
운와공(雲窩公)의 희세학문(稀世學文) 금수문묵(錦繡文墨) 오가전통(吾家傳統)
승선계후(承先繼後) 중한 노력 저 유집(遺集)에 석연(釋然)하다
운암공(雲庵公) 조년생원(早年生員) 유고미간(遺稿未刊) 창감(愴感)되고
운담정산(雲潭靖山) 온아학행(溫雅學行) 부자진사(父子進士) 경사로다
우발연화(又發蓮花) 연련재(蓮蓮齋)는 금상첨화(錦上添花) 생색(生色)이요
경운재(耕雲齋) 의란회신(依亂灰燼) 원운(原韻)생생 감회이요
성산재(聖山齋) 송국당(松菊堂)은 유곡중귀(幽谷中龜) 華이로다
융융화기(融融和氣) 저 신천(新川)에 고각익연(高閣翼然) 저 정각(亭閣)은
취성당공(醉醒堂公) 유촉지(遺躅地)라 진사(進士)하신 그 후부터
운림화월(雲林花月) 은세독락(隱世獨樂) 산수취성(山水醉醒) 당액(堂額)일세
보현산하(普賢山下) 충효재(忠孝齋)는 동엄부자(東厂父子) 장한 충절(忠節)
유림추모(儒林追慕) 사업일세 동엄공(東广公) 하신 사환(仕宦)
의금부(義禁府)에 도사(都事)이고 완전사(翫戰使)와 토포사(討捕使)요
시찰사(視察使)와 삼남순무(三南巡撫) 시종신(侍從臣) 역임일세
국사일비(國事日非) 왜적(倭賊) 침입 수창의거(首倡義擧) 항쟁(抗爭)타가
아드님 단오공(丹吾公)은 입암진(立岩陣)에 전사하고
혈전고투 연여후(年餘後)에 공내(公乃)마침 피집(被執)되어
항복하라 만단권유(萬端勸誘) 경내불굴(竟乃不屈) 피해(被害)될때
홀연청천(忽然靑天) 폭우양풍(瀑雨揚風) 동뢰(冬雷)가 났다하니
기사위국(期死爲國) 부자대절(父子大節) 신명(神明)도 감동인가
아마도 이 산하(山河)는 오가완물(吾家翫物) 분명하다
산수가려(山水佳麗) 이 자양(紫陽)은 주부자지(朱夫子之) 자양(紫陽)인가
위인석사(偉人碩士) 태다(殆多)하고 고적유물(古蹟遺物) 가관(可觀)이나
일조수국(一朝水國) 된다하니 이 무슨 액회(厄會)이며
조물옹(造物翁)의 시기(猜忌)런가 아홀청천(俄忽靑天) 벽력(霹靂)인듯
국가위한 사업이라 소수희생 예상되나
오백여년(五百餘年) 쌓은 유물(遺物) 포말(泡沫) 같이 사라진다
가통(可痛)할사 저 분묘(墳墓)는 물을 피해 이장되나
정성어린 저 비상석(碑床石) 이 모두 폐물(廢物)이요
동서사방 흩인 자손 자주 성묘(省墓) 어찌할고
천태만상(千態萬象) 험한 금세(今世) 위선향념(爲先向念) 희박한데
골몰생애(汨沒生涯) 급급하며 금벌(禁伐)수호 누가하며
전소벌초(奠掃伐草) 어이할고 황량한 저 공산(空山)에
일호(一毫)알음 계신다면 읍읍엄견(挹挹嚴譴) 못 면할일
미사전(未死前) 한(恨)이 되고 천추(千秋)에 죄(罪)이로다
청와고각(靑瓦高閣) 저 선정(先亭)을 어느 곳에 이건(移建)할고
택지이건(擇地移建) 한다해도 자손흩인 그 재사(齋舍)를
누가진정 보호할고 생각사록 막연하고
갈수록 비창(悲愴)하다 마을마다 웅장문호(雄壯門戶)
오육대(五六代) 옛날 주택 여기저기 허다하고
십여대(十餘代) 지킨 세전(世傳) 드문드문 섞였으니
수백동(數百棟) 이 가옥을 어느 곳에 이사할고
천사만려(千思萬慮) 소용없고 속수무책 어찌할고
여광여취(如狂如醉) 들뜬 마음 경물촉목(景物觸目) 유감(有感)일세
추억깊은 과거사가 저저히 새롭구나
연화삼월(煙花三月) 좋은 풍경(風景) 오색채복(五色彩服) 흩날리며
누나오빠 부르면서 휴수동산(携手東山) 화전(花煎)놀이
이화도화(李花桃花) 만발한데 호접(蝴蝶)쌍쌍 춤을 추고
산간유곡 저새노래 곡곡청류(曲曲淸流) 주악(奏樂)일세
노소일석(老少一席) 희학담소(戱謔談笑) 선구낙지(仙區樂地) 여기로다
염천오월(炎天五月) 삼촌풍치(三村風致) 녹음방초(綠陰芳草) 우거진데
춘화여향(春花餘香) 풍기는곳 추천(鞦韆)놀이 좋을시고
십리청강(十里淸江) 저 어옹(漁翁)은 일일한구(日日閒鷗) 상반(相伴)이요
명사석침(明沙石枕) 누었으니 산중미취(山中味趣) 제일일세
아해야 술부어라 병촉야유(秉燭夜遊) 어떠하리
천고마비(天高馬肥) 가을 경색(景色) 황파만경(黃波萬傾) 도도한데
불한불열(不寒不熱) 좋은시절 세서흥락(洗耡興樂) 행사런가
황국단풍(黃菊丹楓) 울긋불긋 갱첨화장(更添化粧) 더욱곱다
호월동산(皓月東山) 밝은밤에 청등괘벽(靑燈掛壁) 저 정각(亭閣)에
백발부로(白髮父老) 항시교훈(恒時敎訓) 추상무지(追想無地) 새롭구나
만지상설(滿地霜雪) 엄한삼동(嚴寒三冬) 농공관조(農功官租) 마친 일민(逸民)
단안천척(斷岸千尺) 이 심곡(深谷)에 수락석출(水落石出) 경(景)이 되고
산고월소(山高月小) 깊은밤에 송풍죽음(松風竹音) 우렁찬데
당내지친(堂內至親) 모여앉아 노변정담(爐邊情談) 밀밀(密密)하고
기박호치(碁博呼雉) 즐긴오락 이 모두 몽상(夢想)일세
반천년 오랜 향장(鄕庄) 세거세장(世居世葬) 이 지역을
싫은 이별 왠일인고 이모두 운명인가
이별이야 이별이야 우리 고향(故鄕) 집단이별
일가친척 원격이별(遠隔離別) 형제사촌 분산이별(分散離別)
지향(指向)없는 방랑이별(放浪離別) 노부모의 한탄이별(恨歎離別)
어린자식 눈물이별 남부여대(男負女戴) 한숨이별
재회난기(再會難期) 노인이별 인인촌장(人人寸腸) 끊는 이별
종고이별(從古離別) 많다하나 이 이별에 비할손가
광활전장(廣闊田庄) 촌토(寸土)마다 세세주한(世世珠汗) 젖어있고
산하천석(山河泉石) 곳곳마다 대대시혼(代代詩魂) 담겨있네
어느 호풍(好風) 다시불어 그옛 관경(觀景) 찾아볼고
층층대 노소따님 이 향산(鄕山) 못이 되면
생활따라 서울 대구 친가형제(親家兄弟) 거기살며
친정(親庭) 곳 어디냐고 누가만일 묻는다면
대구라 하오리까 서울이라 하오리까
어눌(語訥)하고 창연(愴然)하다 미가전(未嫁前) 어린딸네
어디커서 출가해도 귀미댁(龜尾宅) 택호(宅號)하여
그린 고토(故土) 기억하자 영롱(玲瓏)한 이 산하(山河)를
그립고 못잊히어 임이라 불러볼까
춘화추월(春花秋月) 고은 의범(儀範) 뉘를 위해 단장(丹粧)하며
산호금박(珊瑚金箔) 좋은 패물(佩物) 뉘를 위해 꾸미시며
때따라 명랑채복(明朗彩服) 뉘를 위해 환의(換衣)할고
영채녹용(靈蔡鹿茸) 불로초(不老草)를 뉘를 위해 간직하며
강담(江潭)에 살찐 생선 뉘를 위해 기르시며
조운모경(朝雲暮景) 쾌활청상(快活淸爽) 뉘와 함께 즐기실고
임여읜 이 간장(肝腸)은 굽이굽이 찢어진다
임도응당 일반이며 그 심정 오죽하리
첩첩소회(疊疊所懷) 무궁하나 한별흉장(恨別胸腸) 다못할다
임께 진정 하올 청탁(請託) 일부황원(一抔荒原) 선조체백(先祖體魄)
내세영영 보우하사 영타혼안(靈妥魂安) 바라옵고
임여읜 이 생민(生民)들 각거동서(各居東西) 할지라도
깊은 구정(舊情) 잊지말고 삼재팔액(三災八厄) 제거하여
인인소원(人人所願) 성취되면 관홍성덕(寬洪盛德) 임의 온정(溫情)
천추만대(千秋萬代) 잊을손가 월조남지(越鳥南枝) 집을 짓고
호마북풍(胡馬北風) 운다하니 글쓰는 이 인사(人事)도
후천타일(後天他日) 어느 때는 임의 품에 안기련다
임이여 유념(留念)하사 나의청탁 잊지마오
희필(戱筆)로 그린 것이 실향회포(失鄕懷抱) 되었구나
어린 감상(感想) 산적(山積)이나 무문졸필(無文拙筆) 할수 없고
횡설수설(橫說竪說) 지은 가사(歌詞) 타인 소평(笑評) 짐작되나
피차객리(彼此客裡) 우접(寓接)되면 산(山)설고 물선 타향(他鄕)
길흉사(吉凶事) 닥칠때는 모숙모형(某叔某兄) 생각이요
공산자규(空山子規) 울음소리 향수고독(鄕愁孤獨) 더욱하며
오동추월(梧桐秋月) 깊은밤에 요망향산(遙望鄕山) 묘막(渺漠)한데
전전반측(輾轉反側) 종야불매(終夜不寐) 모산모수(某山某水) 그리울때
행여 차사(此詞) 읽어보아 고향환경 참고되고
사향감회(思鄕感懷) 위안되면 글쓴 본의(本意) 만족일세
이 작별 하온후에 원격천애(遠隔天涯) 막막하며
자주 상면(相面) 쉽지않아 화수돈의(花樹敦宜) 멀어지고
무심세월 흘러흘러 한代두代 늘어지면
우리 후생(後生) 많건마는 고향없는 그 종족(宗族)이
서로 안면(顔面) 모르오며 파계(派系)인들 어찌알고
여대타인(如對他人) 틀림없어 초월인사(楚越人事) 되고보면
누대세전(累代世傳) 우리 가법(家法) 꿈같이 모호하다
이런일 염려하여 문내노소(門內老少) 합의로써
파보속간(派譜續刊) 이룩하니 개개인인(個個人人) 간직하여
우리 가계(家系) 잊지말고 세세형제(世世兄弟) 존속(存續)하고
학시학례(學詩學禮) 익면(益勉)하여 물부가훈(勿負家訓) 계승하자
쇠모성발(衰貌星髮) 무익심사(無益心思) 장우단탄(長吁端嘆) 절로나네
유수구성(流水舊聲) 여전하고 피월원휴(彼月圓虧) 불멸컨만
화류풍설(花柳楓雪) 일구승경(一區勝景) 빙질무처(馮質無處) 이웬일고
흥망에 놀란 두견(杜鵑) 우절제소(尤切啼訴) 처량하고
성쇠(盛衰)에 무관선학(無關仙鶴) 조소우락(嘲笑憂樂) 가증(可憎)일세
부운세사(浮雲世事) 무상하고 상전벽해(桑田碧海) 진담일세
함루투필(含淚投筆) 만단충격(萬端衝擊) 울회난감(鬱懷難堪) 창(窓)을 여니
사린무우(四隣無憂) 환락리(歡樂裡)에 강산풍월(江山風月) 여전하니
기우(杞憂)인지 몽중(夢中)인지 차신차심(此身此心) 의아하다
간행(刊行)에 즈음하여 파필갱파(罷筆更把) 남길 기록(記錄)
첨종(僉宗)에 주밀창안(周密創案) 용락군(容樂君)의 지성으로
강호정(江湖亭) 하천재사(夏泉齋舍) 삼휴정(三休亭) 삼휴종택(三休宗宅)
오회당(五懷堂) 사의당(四宜堂) 문화재(文化財)로 지정되어
하천곡(夏泉谷) 선영산(先塋山)에 차례로 이건(移建)되어
우울한 수만자손 다소위안 감개(感慨)하고
유래깊은 자양서당(紫陽書堂) 문화재 78호로
바들뫼에 이건(移建)되니 지명당액(地名堂額) 배치(背馳)되나
불행중 다행이라 참고될가 기록일세
을묘(乙卯,1975년) 正月 望日 前 紫陽面長 晩愚 鄭泓植 戱詞
선무선조(宣務先祖) : 자양 입향조 휘 次謹
형양공(滎陽公) : 영일정씨시조 고려조 추밀원지주사 휘 襲命
사성공(司成公) : 성균관 사성 휘 從韶
노촌공(魯村公) : 휘 允良의 호
명산공(明山公) : 金應生의 호
이공(李公) : 생육신 경은 이맹전의 증손 椅
노공소암(盧公小菴) : 노수(盧遂)의 호
금계옹(錦溪翁) : 黃俊良의 호
창석(蒼石) : 李埈의 호
여헌(旅軒) : 張顯光의 호
호수공(湖叟公) : 剛義公 世雅의 호
용사란(龍蛇亂) : 임진왜란
영경복성(永慶復城) : 영천․경주성 복성
오리대감(梧里大監) : 영의정 李元翼의 호
이공대암(李公臺嵒) : 李喜白의 호
정공도사(鄭公都事) : 의금부도사 휘 湛의 호
참판공(參判公) : 백암공 宜藩의 호
처사공(處士公) : 휘 汝頌
만호공(萬戶公) : 만호를 지내신 휘 安藩
양계공(暘溪公) : 만호공의 장자로 진주 목사를 지내신 휘 好仁의 호
호군공(護軍公) : 내금위장을 지내신 호군 휘 守藩
명계공(明溪公) : 호군공의 장자 好義의 호
요산공(樂山公) : 호군공의 차자로 백암공의 사자 好禮의 호
조상국(趙相國) : 영의정 趙顯命
월송인재(月松忍齋) : 碩臨, 重稷 부자분의 호, 양대진사
용강정(龍崗亭) : 월송재 인재공 양세정자
사의당(四宜堂) : 휘 重鎬, 重岐, 重範, 重洛 4형제의 우의로 당액(堂額), 백씨(伯氏)의 호
추모당(追慕堂) : 휘 重喬 추모당 정사
원모재(遠慕齋) : 휘 夏潞호 松岩 정사
수의헌(守宜軒) : 휘 寅休 증조부 사형제 사의당의 宜를 世守한다는 의미로 창건
소미정(笑迷亭) : 휘 致五 호 露岩공의 정사
확은정(確隱亭) : 휘 鎭韶 호 海難공의 정사
요산정(樂山亭) : 휘 好禮호 樂山공의 정사
삼휴정사(三休亭舍) : 휘 好信 호 三休공의 정사
인의예신(仁義禮信) : 양계공호인,명계공호인,요산공호례,삼휴공호신,4從班의 휘자
오회당(五懷堂) : 휘 碩玄,碩咸,碩謙,碩升,碩臨 5형제분 孔懷之意 堂額 백씨의 호
축와운서(縮窩雲西) : 휘 一銓의 호 縮窩,휘 夏濬 호 雲西 숙질진사
운와공(雲窩公) : 휘 夏源의 호
운암공(雲庵公) : 휘 夏濩의 호, 진사
운담(雲潭) : 휘 鎭國의 호, 진사
정산(靖山) : 휘 淵穆의 호, 진사
연련재(蓮蓮齋) : 운담,정산 부자분의 정사
경운재(耕雲齋) : 휘 鎭箕의 호
성산재(聖山齋) : 휘 一鉍의 재사
송국당(松菊堂) : 휘 淵亮의 호
취성당(醉醒堂) : 휘 時衎의 정사
충효재(忠孝齋) : 휘 煥直 호 東厂, 휘 鏞基 호 丹吾 부자분의 정사
기박호치(碁博呼雉) : 바둑, 장기, 골패
지명 고적 등의 註
실향감별사의 뜻은 고향을 수몰로 잃고, 이별의 감정을 적은 글이다.
1970년대에 오천정씨 선무랑공파의 후손들이 자양면에 16, 17대에 걸쳐 살던 터전을 영천댐 건설로 수몰이 되어 그 자손들은 산지사방으로 흩어져 살게 되었다. 특히 삼휴공 후손들이 집성촌을 이루어 500여년을 살아오던 터전을 잃게 되어 뜻있는 어른 분들께서 지나온 수 백 년간의 자취를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는 필요성을 공감하고 있던 차에 만우(晩愚)공(휘 홍식(泓植))께서 붓을 잡아 수몰될 고장의 기록들을 실향감별사로 남긴 것이다. 내용을 살펴보면 산 이름, 沼 이름, 고적유물, 선조의 내력, 풍속 등 다양하게 기록되어있다. 그러나 내용이 어려운 漢文의 어휘로 되어있어 이해가 어렵다. 그래서 후세들을 위해 쉽게 풀이하고 산 이름, 소 이름, 고적 들을 기록한 부문만을 옮겨 알기 쉽게 사전적 풀이를 하고, 그 위치와 사진 등을 첨부하였다.
1. 운주산(雲住山)
산이 높아서 항상 구름이 머물고 있는 산이라는 뜻으로 운주산이라 불렀다.
어느 해 가을과 겨울에 눈 덮인 모습.
흘립만고(屹立萬古) 운주산(雲住山)은 자양산(紫陽山)의 조종(祖宗)이요
엄연묵연(嚴然默然) 정중(鄭重)함은 은군자(隱君子)의 태도(態度)이요
<운주산(雲住山)은 오랜 세월 동안 깎아지른 듯이 높이 솟아 자양산의 으뜸 되는 산이요 그 모습이 의젓하고 말없이 정중함은 세상을 피하는 군자와 같은 태도이다.>
*흘립(屹立) : 산이나 바위, 나무 따위가 깎아지른 듯이 높이 솟아 있다.
*은군자(隱君子) : 재능은 있으나 부귀공명을 구하지 않고 세상을 피하여 사는 사람.
*운주산은 우리 고장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정상 뒤편에 매산공의 조부 대호군 鄭時諶의 묘소가 있다.
2. 안국사(安國寺)
운주산 포항 쪽 산기슭에 자리한 안국사의 대웅전과 종각의 모습
2013년에 대웅전이 붕괴되어 복원 되지 않고 있다.
쟁영산복(崢嶸山腹) 안국사(安國寺)에 미문종성(微聞鍾聲) 처량(凄凉)하다.
<높고 가파른 모양의 산의 허리에 자리한 안국사의 은은한 종소리가 처량하다.>
*쟁영산복(崢嶸山腹) : 산이 높고 가파른 산허리.
*안국사(安國寺) : 운주산의 포항 쪽의 산기슭에 자리했으며, 신라시대의 사찰이다. 몇 차례 화재로 소실되었으나 지금은 일부만 중건하였다. 위, 아래 두 곳의 안국사가 있는데 여기서는 옛 사찰의 터가 있는 위쪽의 안국사를 말한다.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국권 회복을 위한 의병부대인 산남의진(山南義陳)의 근거지로 알려져 일제에 의해 불태워지기도 하였다. 옛날에는 우리고장 분들이 불리재’를 넘어 절에 다니기도 하였다.
3. 보현산(普賢山)
보현산 천문대가 보인다.
보현산(普賢山) 준엄(峻嚴)함은 백절불굴(百折不屈) 기상(氣像)이요
<보현산의 준엄한 모습은 백번을 꺾이더라도 절대로 굽히지 않겠다는 드러난 모양이요.>
*준엄(峻嚴) : 조금도 타협함이 없이 매우 엄격하다.
*정상 부근에는 보현산 천문대가 위치해있고, 한말에 산남의진 의병들의 활동 근거지였다.
4. 거동사(巨洞寺)
거동사의 대웅전
거동사(巨洞寺) 천년고적(千年古蹟) 옛 신라(新羅)의 유물(遺物)이라.
<천년고적인 거동사는 옛 신라 때의 유물>
*거동사(巨洞寺) : 신라 때 의상(義湘: 625∼702)이 창건하였다. 창건 이후 자세한 연혁은 전하지 않으나 남아 있는 절터를 보면 매우 큰 사찰이었음을 알 수 있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웅전과 2동의 요사가 있다. 신라 때의 건축 양식을 지닌 건물로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37호로 지정되었다. 문살에 국화무늬가 있는 것이 특이하다. 특히 한말 산남의진의 활동거점이 되어 호국불교의 역할을 하였다.
5. 기룡산(騎龍山)
용화마을을 지나 쳐다 본 기룡산과 정상의 모습
효용(驍勇)한 기룡산(騎龍山)은 호협웅장(豪挾雄壯) 기벽(氣癖)이요
<날래고 용감하게 생긴 기룡산은 호방하고 의협심이 있는 거대하고 성대한 자부심이 강한 성질이요>
*효용(驍勇) : 날래고 용감하다.
*호협(豪挾) : 호방하고 의협심이 있다 *웅장(雄壯) : 규모 따위가 거대하고 성대하다.
*기벽(氣癖) : 자부심이 많아서 남에게 지거나 굽히지 않으려는 성질
*기룡산의 이름은 묘각사 창건의 설화에 따르면, 창건 당시에 동해 용왕이 의상에게 법을 듣기 위하여 말처럼 달려왔다고 해서 절이 들어선 산 이름을 기룡산(騎龍山)이라 했다고 한다.
*기룡산의 줄기가 우리의 성지인 하천묘역으로 벋어 그 정기로 인하여 명당으로 이름 높다.
6. 묘각사(妙覺寺)
저 멀리 기룡산 산허리에 묘각사가 보인다. 천년고찰 묘각사의 모습
이 중봉(中峰) 묘각사(妙覺寺)는 고인수교(古人手巧) 묘각(妙覺)일세
<이 기룡산 중턱에 있는 묘각사는 옛사람들의 손재주가 마치 온갖 번뇌를 끊어 버린 부처의 경지에 이르렀네>
*고인수교(古人手巧) : 옛사람의 손재주 즉 손으로 무엇을 잘 만들어 내거나 다루는 재주.
*묘각(妙覺) : 보살이 수행하는 오십이위(五十二位) 단계 가운데 가장 높은 단계. 온갖 번뇌를 끊어 버린 부처의 경지에 해당한다.
*묘각사는 신라 선덕여왕(재위: 632∼647) 때 의상(義湘: 625∼702)이 창건하였다. 설화에 따르면, 용왕이 달려와서 의상에게 법문을 청하자, 의상이 법성게(法性偈)를 설하였더니 문득 깨닫고 승천하였다. 용왕은 하늘에서 감로(甘露)를 뿌렸는데, 이 비로 당시 극심했던 가뭄을 해소하고 민심을 수습했다고 한다. 이에 의상은 묘한 깨달음을 얻었다고 하여 절 이름을 묘각사라 하였다.
7. 오미산(烏尾山)
왼쪽사진: 왼쪽이 백암산이고, 중앙의 높은 산이 오미산이며. 오른쪽이 嘉桐山이다.
오른쪽 사진: 영천댐의 둑과 연결된 오미산의 모습
봉용미자(丰容美姿) 오미산(烏尾山)은 물외고사(物外高士) 자품(資稟)인 듯
<예쁜 얼굴과 아름다운 모습인 오미산은 현실세계의 바깥세상에 있는 높은 선비의 바탕과 성품인 듯>
*봉용미자(丰容美姿) : 토실토실한 예쁜 얼굴과 아름다운 모양.
*물외고사(物外高士) : 구체적인 현실 세계의 바깥세상에 있는 높은 선비.
*자품(資稟) : 사람의 타고난 바탕과 성품.
*오미산은 자양면의 입구에 자리하여 수문장의 역할을 했고, 산 밑에는 피부병에 좋다는 약수탕이 있어 주민들이 많이 이용했다. 1970년대에 마주보는 가동산(嘉桐山)을 이어 둑을 막아 영천댐이 건설되었다.
8. 필대산(筆大山)
사진의 두 봉우리 중 왼편 산이 필대산이다.
아랫귀미마을 앞을 흘러간 1970년대의 자호천의 모습 (1995년 1월 20일 촬영)
필대봉(筆大山) 쌓은 붓은 명화필(名畵筆)의 근원(根源)이요
<필대산 쌓은 붓은 유명한 그림을 그리는 붓의 근원이요>
*명화필(名畵筆) : 유명한 그림을 그리는 붓.
*필대산은 귀미마을 남쪽에 우뚝 솟은 산으로 그 이름이 붓과 관련 있으므로 사람들에게 무언의 가르침을 주었다. 면학하여 성공하겠다는 희망을 갖게 하여 많은 인재들이 배출되었다.
9. 탕건봉(宕巾峰)
중앙부의 3층봉우리 맨 아래봉과 둘째 봉이 귀미마을 쪽에서 보면 탕건 모양으로 보인다.
탕건봉(宕巾峰) 기절(奇絶)함은 예측과한(豫測科翰) 범상(凡常)하다.
<탕건 같이 생긴 탕건봉의 신기하게 생긴 모습은 과거(科擧)에 등과가 예측되니 범상하다>
*과한(科翰) : 높은 벼슬에 오르는 것.
*백암산 동봉 쪽의 3단의 봉우리 중 아랫 봉과 둘째 봉이 합해져서 귀미마을 쪽에서 보면 탕건 같이 보인다.
한편 청석으로 된 바위산이며 산 사이에 골자기가 있어 ‘청석골’이라고도 했다. 어릴 때 청석골 즉 탕건바위 밑에서 목욕도하고 고기를 잡기도 했다.
10. 병풍봉(屛風峰)
중귀미와 안귀미 사이에 있는 못골 안쪽산으로 운주산 줄기인데 바위가 병풍같이 펼쳐 서 있다.
부인암하(婦人岩下) 병풍봉(屛風峰)은 이 자양(紫陽)의 보병(寶屛)일세
자생화초(自生花草) 수(繡)가 되고 창공비학(蒼空飛鶴) 화(畵)이로다
<부인암 아래 병풍봉은 이 자양의 보물 같은 병풍 일세
병풍봉에 자란 자생화초가 수(繡)가 되고, 창공을 나는 학의 그림이 되도다.>
11. 노적산(露積山)
어느 해 댐의 물이 줄어 인구와 월연 사이의 ‘앞거랑’ 넘어 보이는 노적산은 그리 크지 않으며 오늘날에는 산 밑으로 도로가 나 있다.
노적산(露積山) 쌓은 양곡(糧穀) 풍유여량(豊裕餘粮) 노적(露積)이요
<노적봉 쌓은 양곡은 넉넉하여 식량이 남아서 한데에 수북이 쌓은 노적의 형상이요>
*풍유여량(豊裕餘粮) : 풍유해서 식량이 남아도는 것
*노적(露積) : 곡식 따위를 한데에 수북이 쌓음.
*꼬깔산 아래에 노적을 쌓은 형상인 작은 산이 노적산이다.
12. 성혈암(聖穴岩)
기룡산 기슭에 바위 동굴이 있는데 지금은 절이 들어 서 있다.
성현군자(聖賢君子) 영정피란(影幀避亂) 성혈암(聖穴岩)의 공적(功積)이라
<포은선생을 비롯하여 여러 성현과 군자의 영정을 피란함은 성혈암의 공적이라.>
*성혈암(聖穴岩) : 일명 성현암(聖賢巖), 기룡산 줄기인 성곡리의 고깔산 중턱에 바위 동굴을 성혈암이라고 한다. 그 동굴 속에 임진왜란 당시 포은선생을 비롯하여 영천 향교 오성위(五聖位)의 위패를 피난시켰으며, 또한 왜적이 침입해 왔을 때 호수공의 아드님들이 한때 어머니 손씨부인을 모시고 피란한 곳이기도 하다.
13. 시루봉(峰)
호수 북쪽의 중앙에 솟아있는 봉우리가 시루봉인데 하천(夏泉)서 서쪽으로 보인다.
(또는 자양면 용화동 운곡지(雲谷池) 안쪽 봉우리?)
시루봉(峰) 익힌 음식(飮食) 위선접빈(爲先接賓) 수물(需物)인가
<시루봉에서 익힌 음식은 조상을 위하고 손님을 대접하려고 구한 여러 가지 물품인가>
14. 백암산(栢岩山)
백암산과 백암산에 올라서 본 수몰 직전의 면소재지와 인구, 월연, 원각마을
단면여벽(斷面如壁) 백암산(栢岩山)은 우리 삼촌(三村) 경대(鏡臺)인 듯
<단면이 절벽 같이 생긴 백암산은 우리 귀미, 인구, 월연 세 마을의 경대인 듯>
*단면여벽(斷面如壁) : 물체의 잘라 낸 면이 마치 벽과 같다.
*백암산은 면소재지인 인구, 월연마을의 남쪽에 위치했고, 깎아지른 듯한 절벽 바위산이다. 옛날에는 부엉이가 살고 있었고, 저녁때에는 부엉이 울름소리도 들렸다.
15. 진경산(鎭慶山)
호수의 앞줄 산은 백암산 줄기이고, 뒷줄의 산줄기가 이어진 산이 진경산이다.
그사이에 노항마을이 있었다.
일지장맥(一枝長脈) 진경산(鎭慶山)은 세세오가(世世吾家) 진경(鎭慶)이요
<한줄기 긴 기운과 힘이 이어진 진경산은 대대로 우리 집안의 경사를 지킴이요>
*진경산은 운주산에서 시작하여 서쪽으로 긴 산맥을 이루어 신방, 노항마을을 지나 오미산에서 끝이 난다.
16. 자호천(紫湖川)
충효에서 흘러내린 물이 삿갓바위 연을 지나
‘뒷귀미들’, ‘새들보’를 지나
‘호계탄(중귀미 물나들)’과 ‘아랫귀미 앞과 가마소를 지나
‘탕건바위’와 ‘백암산’ 밑을 지나
오미산 밑을 지나 임고면으로 자호천이 흘렀다.
장류불식(長流不息) 자호천(紫湖川)은 굽이굽이 선경(仙景)일세
<쉬지 않고 길게 흐르는 자호천은 굽이굽이 경치가 신비롭고 그윽하네>
*자호천(紫湖川) : 영천시 보현산(普賢山)과 포항시 죽장면의 상옥리에서 발원하여 충효리에서 합쳐지고, 자양면의 영천호를 거처 선원천과 덕천천을 합한 후 금호강(116㎞)에 유입하는 하천이다. 이글에 나오는 산수풍경은 모두가 자호천 기슭에 있다.
17. 용궁담(龍宮潭)
사진 중앙부의 호수 쪽으로 벋은 지형의 아랫 쪽에 창말마을 앞에 용궁담이 있었다.
깊고 맑은 용궁담(龍宮潭)은 수궁녀(水宮女)의 놀이턴가
<깊고 맑은 용궁담은 수중궁궐 궁녀들의 놀이턴가>
*수궁녀(水宮女) : 물속 용궁에서 왕과 왕비를 가까이 모시는 여인.
*성곡리의 창말마을에서 노항으로 건너가는 자호천에 깊은 소가 있었는데 그곳을 용궁담(소)이라고 불렀다.
18. 삿갓 연(淵) (사갓바위)
멀리 보이는 소금강(굴뱅이) 아래의 도로 밑에는 삿갓모양의 큰 바위가 솟아 있었으나 도로공사로 그 속에 묻혀 버렸다. (다리는 귀미가는 다리)
소금강하(小金剛下) 삿갓 연(淵)은 소인(騷人)의 시제(詩題)되고
<소금강 아래 삿갓 소는 시인과 문사들의 시의 제목이 되고 >
*소인(騷人) : 시인과 문사(文士)를 통틀어 이르는 말. 중국 초나라의 굴원이 지은 이소부(離騷賦)에서 나온 말이다.
*소금강을 일명 굴뱅이라고도 했다. 바위산 절벽의 경치가 좋아 소금강이라 불렀는데, 일제 때 도로를 내기 위해 아래쪽의 바위들을 파괴하였기에 옛 모습이 줄어들었다. 그 후에도 물속에서 사갓 모양의 큰 바위덩어리가 높이 솟아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고, 그 주위에 깊고 넓은 큰 소가 형성되어 소금강의 경치와 어울려 절경이었다. 1970년대 댐건설로 도로를 확장 하면서 현재의 도로 밑으로 모두 묻혀버렸다. 물이 깊어 이무기가 나온다고 하였으며 메기, 뱀장어, 꺽지 등 다양한 물고기들이 있어 천렵하던 곳이다.
19. 호계탄(虎溪灘)
호계탄 자리에 댐으로 수몰되어 토사가 여울에 쌓여있어 실감이 나지 않는다.
호계탄(虎溪灘) 내린 물은 묵객(墨客)의 현수(硯水)인가
<호계탄 흘어 내린 물은 글씨를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의 벼룻물인가>
*탄(灘) : 강이나 바다의 바닥이 얕거나 폭이 좁아 물살이 세게 흐르는 곳.
*묵객(墨客) : 글씨를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사람.
*현수(硯水) : 벼룻물.
*옛날에는 ‘중귀미 물나들’이라고 불렀다. 여울물의 물길이 경사가 심하여 귀미 쪽으로 힘차고 사납게 흘러서 호계탄이라고도 불었다.
20. 가마소(沼)
정병욱(鄭炳旭)님 머리위쪽의 산 밑에 가마소가 있었고, 정연선(鄭淵宣)님 머리위쪽은 아랫귀미의 터전이 있었다. (왼쪽부터 정연선, 정갑용, 정병욱)
사진 중앙의 산이 탕건봉이고 그 왼쪽의 산을 지나 그 근처에 가마소가 있었다.
가마소 맑은 청담(淸潭) 탁영세이(濯纓洗耳) 장소(場所)로다
기산영수(箕山潁水) 좋다하나 이 이상(以上) 더 할 손가
<가마소 맑은 못은 갓끈과 귀를 씻은 장소로다. 허유가 귀를 씻은 기산의 영수가 좋다하나 이 이상 더 할 손가>
*탁영세이(濯纓洗耳) : 갓끈을 씻고 귀를 씻음.
*기산영수(箕山潁水)의 고사 : 은둔하는 고결한 뜻을 이르는 말. 허유(許由)가 요임금이 자기에게 천하를 물려주겠다고 하는 말을 듣고 기산(箕山)에 숨었다가 요임금이 다시 불러 九州長을 삼으려고 하자 더러운 소리를 들었다고 하면서 영수(潁水) 강가에서 귀를 씻었다는 데서 유래한다.
*가마소는 아랫귀미 마을과 탕건봉 사이의 산 밑에 있으며 모양이 가마 솥 같이 생겼다 하여 가마소라 이름 부쳐진 소(沼)이다.
※ 자료제공 : 정돈식(010-8586-81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