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크림
ㅡ이지아.
작년 내내 일을 하지 않았어.
일상은 꾸준했지.
나는 새벽까지 음악을 듣거나 담배를 피우거나
찻잔을 버리고 찻잔을 다시 사기를 반복했어.
9월에는 작업이 하나 들어오긴 했지만 그건 철없이 국화꽃차 사업을 시작했던 커플이 나를 잠시 웃게 했기 때문이었어. 그 커플은 마케팅을 계획하고 물건을 판매할 유통 업체를 찾지 못해 전전긍긍했어. 말린꽃들을 잘 보관하고 시장에서 서울로 운반하면서 추억을 쌓은 건, 공항에 대한 비행기표 시간과 통신 장애, 맛있는 면과 말을 타던 들판을 나누었던 것 같아.
찻잔 얘기를 나누고 싶었는데
평범한 소비자처럼 보이는 것 같아.
그냥 전시 얘기를 해버리고 말았어.
나는 자동차 전시를 해.
시즌마다, 미리 내년에 팔 자동차를, 독일 자동차나 미국 차를
그때마다 내가 생각했던 콘셉트는 동양에서 장군이나 왕족 들이 탔던 말과 소와 하인과 마차들에 대한 상상이었어.
어쨌든 내가 국화꽃차 상품을 디자인해주기로 한 이유는 우습겠지만, 찻잔이 그리웠기 때문이었어. 꽤 옛날이었는데 정말 갖고 싶었던 찻잔이 있었어. 그건 토론토 기숙사에서 지낼 때, 아래층에 살던 흑인 여자애의 화장대에 있었어. 옥빛의 도자기 찻잔이었어. 동양적인 스타일이었지. 흑인 여자애는 그 찻잔에 사귀던 남자애들이 준 반지를 모으고 있었어. 하도 남자가 자주 바뀌어서
계단에서 만날 때마다 이름이 뭐냐고 물었지.
벤, 찰리, 헤리, 브라이언...... 흑인 여자애는 가슴이 크고 허리가 잘록했어.
흑인 여자애는 어느 날 일본 애를 데리고 온 거야.
작곡을 하는 아이였는데, 둘이서 우동을 만들고 있더라.
내 방까지 냄새가 진동했지.
여느 때처럼 계단에 내려가다가 만난 흑인 여자애는 그날따라 오버하며 내 얼굴에 뺨을 부비며 반가워했지. 나는 속으로 왜 또 지랄이야, 생각하며 굿, 럭키를 외쳐주었지. 일본 남자애는 덜컥 내 허리를 감더니, 우동을 좋아하냐고 물었어.
나는 정말이지 같이 들어가고 싶지 않았어.
어쩌다가 그 순간 평범한 섹스와 당연한 가구들이 탄력과 환상을 얻었다고나 할까.
둘의 사랑보다는 셋의 어긋남, 세 가지 주장, 한 가지 악다구니, 통속적인 것들은 고귀해졌지.
하지만 한국에 돌아가야 할 걸 생각하니 눈앞이 깜깜했어.
몇 달밖에 남지 않았다고, 어서 돌아오라는 그 목소리가
박쥐처럼 내 귀를 뜯었어.
나는 위로를 모르는 인간이거든. 그런데 말이지.
위로라는 그 천박한 길목에서 나는 무슨 버스를 타고 떠나버려야 하나,
그 핑계들을 생각하고 있었지.
우리는 거실에서 와인을 땄어. 흑인 여자애는 갑자기 내 앞에서 일본 남자애의 옷을 벗기더라. 나는 고개를 돌렸어. 그리고 옷 방으로 들어갔어. 우동 국물이 끓고 있었어. 흑인 여자애는 신음을 냈지. 그 여자애는 명랑하고 흥이 많은 친구였어. 나는 옷 방에서 하얀 원피스 하나를 찾았어. 가슴이 큰 여자애는 한 번도 입지 못했는지 tag가 그대로 붙어 있더라.
또 한국이 떠올랐어. 한국에서 나를 보내버릴 때,
혈압약을 먹던 그 늙은이의 입가에 개구리 거품처럼 계속 품어져 나오던 하얀 침들이. 그 하얀 침들이 나는 소름 끼쳤어.
그리고 밖이 나를 불렀어. 클로이, 클로이
Wanna eat udon together?
나는 예스, 예스, 잠시만
왜 그랬는지 모르지만, 나는 그 흑인 여자애 찻잔에 있던 수십 개의 반지를 모두 가져왔어. 찰랑거리는 소리가 났지. 가방에 모두 넣고 집으로 올라갔어. 그리고 벌벌 떨며 내 손가락에 하나씩 껴보았지. 하나도 맞는 게 없더라. 눈물이 났어. 신경질도 났지.
창밖이 또 나를 불렀지.
클로이, 클로이
나는 일어나 밖을 보았지.
이런 퍽, 이런 퍽 유
달콤하게 어정대며
흑인 여자애와 일본 남자애는 보드를 타고 있더라. 자유롭게. 순간 자유롭다는 건 비아냥거리는 건가 생각했어. 수영장 주변을 뱅글뱅글 돌면서, 묘기를 부렸지. 둘은 음악을 크게 틀었지. 랩이었다가 펑크였다가 재즈였다가 휘파람을 불면서 나에게 내려오라고 손짓했지. 아임 오케이, 댓츠 오케이, 노 땡큐, 난 됐어, 난 됐어. 내가 웃었는지 찡그렸는지 떨었는지 잘 기억이 안 나.
그러다가 흑인 여자애의 까마득한 옛날 애인이
온몸에 문신을 한 그 남미 남자애가 오토바이에서 내려, 갑자기 뛰어와 흑인 여자애를 칼로 찔렀어. 수십 번 쑤셔댔지. 나는 윗층에 있었고 하늘을 보았지. 푹신한 구름 하나를 보았어. 야. 야.
야, 야, 그냥 야, 야, 그래도 한 번만, 야, 나를 한국말로 부르던 야라는 호칭. 제발, 도와줘요. 여기 도와줘요. 아무 비명도 나오지 않았어. 사건이 잊히고, 절정도 없이. 4년이 지난 후 나는 졸업했고, 퍼레이드 시즌을 계획하는 디자이너가 되었어. 전시가 끝나고 쉴 수 없었고, 한국에도 가지 않았어.
♣이지아시집<오트 쿠튀르> 202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