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조판서로서 부체찰사의 직임을 가지고 있는 북저 김류가 전라도 관찰사인 민성징(성휘)에게 보낸 간찰이다. 김광혁의 간찰과 마찬가지로 모두 민성휘가 받은 간찰로 여흥민씨 집에서 나온 것이다.
자기 때문에 전라도 관찰사에 한 차례 더 있게 되어서 미안하다는 것, 절선은 잘 받았다는 것, 자신은 그만두고 싶어도 그만둘 수 없으니 걱정이라는 내용이다.
[全羅巡察使道 令監 記室 上謝狀 (수결) 謹封]
謹承前月兩度/令手札 憑審炎夏/ 令起居神護 瞻慰不已 第以鄙生之故/ 又滯南藩 媿恨誠極/ 惠送節扇 知荷感切 鄙生落傷甚/重 伏枕苦痛 而未能釋負 進退狼/狽 煎憂罔措 餘外縷縷 臥病不/宣 伏惟/令鑑 謹拜謝狀
丁卯五月初六日 瑬 頓
卽接金溝粘報 相可慮念/ 收拾之策 不可少緩 未知/令筭如何
[전라순찰사또 영감 기실에 답장 편지 올립니다. (수결) 근봉]
삼가 전달에 두 차례 영감님의 수찰을 받았습니다. 염천 여름에 영감님 기거에 신의 가호가 있다니 우러러 위로됨이 그치지 않습니다.
다만 저 때문에 또 남번에 머물러 있게 되었으니 부끄럽고 한스러운 것이 정말 지극합니다. 보내주신 절선은 은혜를 입었으니 매우 감사합니다. 저는 낙상한 상처가 매우 중하여 베게 베고 누워 괴로워하고 있는데 벼슬을 그만둘 수도 없어서 진퇴에 낭패를 보고 있으니 끓는 걱정에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나머지 할 말은 실타래처럼 많습니다만, 병으로 누워 있으니 이만 줄이겠습니다. 영감님께서 살펴주시기 바랍니다. 삼가 절하고 답장 편지 올립니다.
정묘년(1627, 인조5) 5월 초6일 류 돈
지금 금구(현령)의 첩보를 받아보니 매우 염려가 됩니다. 수습책을 조금도 늦출 수 없는데 영감님 생각은 어떤지 모르겠습니다.
* 민성징이 을축년에서 정묘년까지 전라감사. 이때 김류는 이조판서 겸 부체찰사의 직임을 가지고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