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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종, 이 현필의 생애
1997.08.13 김준호 선생
이 세종 선생님 또 이 공이라고 부르신 이 공님 말씀에 그 제자들은 제가 직접 본 사람들입니다. 그 제자들이 일러준 말씀이랄지 혹 듣고 기억한 말씀을 이렇게 말씀 올리겠습니다.
저는 이 공님의 일화를 생각하기에 앞서 마리아의 노래를 불렀습니다. 어쩌면 두 분의 그 모습이 방사(方士)한 말씀이 있습니다. 48절에 주께서 여종의 비천한 신세를 돌보셨습니다. 이제부터는 온 백성이 나를 복되다 하리니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일을 해주신 덕분입니다. 이 말씀을 지금 생각 했습니다. 이 세종 선생님의 일화를 들어보면 십 세 이전에 머슴이 되시고 이십이 넘도록 그 월급 일 년 월급 받아가지고 형님께 다 드리고 그렇게 평생 자기는 일체 사유를 하시지 않은 소년 시절을 우리들이 듣고 있습니다. 주께서 여종의 비천한 신세를 돌보셨습니다. 하시던 성모님의 그 심정이 이 공님도 똑 같았으리라는 그것을 연상 했습니다. 성모님도 우리들 전설로 들어보면 어머니도 90이 넘고 아버지도 100살이 가까울 때 낳으신 애기, 그러나 부모는 애기가 일찍 죽으신 다음에 이 아이는 참 항아리 품듯이 당대의 제사장들 손에 지움을 받아가지고 10세 이전부터 불때주고 밥해주고 빨래하고 베 짜고 그렇게 크셨다는 사연을 알고 있습니다. 그럼 본인이 이 시를 쓸 때 말이 아니고 얼마나 가슴에 사무친 자기 신세를 노래했을까 그 점입니다. 주께서 여종의 비천한 신세를 돌보셨습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온 백성이 나를 복되다 하리니 이것은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나에게 큰일을 해주신 덕분입니다. 그럼 이 말씀을 제가 상기 하는 것은 오늘 김 교수님이 말씀하시기를 우리가 여기모인 직접 이유는 이 공님이라는 분이 한국에 있었다는 것과 그 다음에 이 현필 스승이 계셨다는 그 덕분에 우리가 모이게 된 것은 이것은 확실하다. 그 증언을 생각해 볼 때, 그 분들이 참 성모님이 이천년 후에는 복된 여자이지만 당대는 비천한 계집종인데 오늘날 이 공님이 이렇게 우리들이 존경하는 분이었지만 당대에는 십 세 이전에 남의 집 머슴이고 그렇게 살았던 비천한 남종이 그렇게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는 것은 이건 천작이다. 사람이 어떻게 한 것이 아니고 한국에 그런 사람이 태어났다는 것은 하나님의 자비하심이다.
그럼 성모님이 이렇게 노래하십니다. 주님은, 54절에 주님은 약속하신 자비를 기억하시어 당신의 종 이스라엘을 도우셨습니다. 이스라엘은 야곱이라는 사람입니다. 야곱 야곱과 약속을 했기 때문에 도와주신 것 이고 또 우리 조상들에게 약속 하신대로 이삭도 다 약속을 받은 사람들이고 그 자비를 할아버지이신 아브라함과 또 후손까지 다윗까지 그 후손에게 영원토록 베푸실 것입니다. 이렇게 시를 읊었던 이 여인의 나이는 동양 나이로 17세, 그 나라 풍속 그 나라 따뜻한 나라의 풍속으로는 15세쯤 되는 소녀였다고 그럽니다. 옛날 번역에는 은총을 가득히 받으신 아가씨 기뻐하십시오. 이렇게 번역 했지요. 오늘날에는 성모님이지 그때는 비천한 계집종, 17살 먹었던 어느 집 식모 그런 여자가 오늘날 이렇게 복된 영광을 받았다 는 건 꼭 마치 이 공님도 비슷하다. 그 점입니다. 그러면 왜 그렇게 되었냐 하면, 이건 불쌍히 보시고 성모를 택했다면 우리 이 공님을 불쌍히 보시고 택하신 점입니다. 그 자비를 약속은 아브라함과 했지만 후대, 후대 후손이 이 공님이라는 점입니다. 아브라함 과 그 후손에게 영원토록 베푸신 것입니다. 그러면 근대 20세기에도 이 약속이 지켜지지만 앞으로 천년만년 후까지도 아브라함과 약속하신 그 자비는 이 공님께도 약속을 지켜주셨으니까 오늘도 여기 비천한 사람이 있다면 오늘도 그 약속을 받을 수 있다고 하는 그런 희망이 있습니다. 그런 점으로 그렇게 생각하시면서 이 공님이라는 분의 이야기를 제가 기억나는 대로 말씀 올리겠습니다. 일찍 이 공님이 자기 여관에 하룻밤 자고 간 것이 참 영적 감화를 너무나 크게 받았던 분이 다음에 수제자 같은 분의 이야기이신데요. 그분 이름도 박 복만이라는 분이신데 이 세종 선생의 감화를 받은 분들은 세례나 그건 없지만 믿음직한 제자한테는 빌 공(空)자 공호를 같이 쓰셨습니다. 그러니까 이 공님도 공이시지만 박 공님이라는 분도 제가 뵈었습니다.
해방 막되어가지고, 그럼 박 공님이 감화 받았던 옛날 스승 이 공님의 이야기를 할 때는 아주 몸을 단정히 하시고 참 목이 맺히세요. 그 살아계실 때 아, 내가 그 분을 몰라보고 내가 불효자식이다. 자기에게 참회 하신 것인데 그러니까 이제는 이 세종 선생님도 하늘나라 갈 때가 가까웠고 이제는 그때는 박해시대니까 예수 믿는 사람들은 감옥에 다 보내는 때이기 때문에 화학산 깊은 산속에 이 공님도 숨어서 기도 하실 때 먹을 것도 없고 이 박 공님도 깊은 산속에 신사참배 강조로 숨어계실 때 하루는 찾아가 뵈었습니다. 마치 고사리가 날 때기 때문에 배는 고프고 이 공님 저는 고사리 꺾으러 가겠습니다. 같이 가실까요? 아 그러십시다. 저도 거기 가봤습니다만 무인지경 이지요. 마을이 없는 깊은 산속인데 저도 거기 가봤습니다만 아주 고사리가 많이 나요. 그래서 박 공님 말씀이 배는 고프고 힘껏 자기 욕심대로 고사리를 많이 꺾어 갖고 이 공님이 계신 자리를 오니까 고사리를 꼭 두 개 꺾어놓고 계시더라는 거예요. 이것이 웬 일이요? 왜 고사리를 꺾지 않고 이러고 앉아계십니까? 그러니까 대개 배고픈 사람들의 음성이 처량하지요. 아주 새 소래 같지요. 아주 목에서 가늘게 이야기하시거든? 대개, 이것 보시오. 피가 나요. 나는 못 꺾겠소. 아무리 배고파도 피가 나요. 나는 못 꺾겠소. 그러면 박 공 자기 고백 이지요? 아 이놈은 욕심 많아 가지고 그 많은 고사리를 꺾어갖고 자랑할 량으로 이 공님 왜 고사리를 안 꺾으셨소? 그럴 때 그 피맺힌 그 말씀이 귀에 쟁쟁하다. 그 이 공님의 음성을 직접 들었으니까 감격 다시 말하면 항복한 것 이지요? 아 나는 왜 이렇게 욕심이 많을까? 나는 왜 이렇게 무자비할까? 큰 자비하시고 큰 무양한 인간이었다. 참 욕심이 없었다. 오늘 지금 교수님이 이야기 하셨어요. 이 선생님을 봤을 때 나는 깊이 아는 줄 알았어요. 쳐다보니까 욕심이 없더라. 그 실감이 가요. 아무 인간적으로 흠모할 것이 없어요. 우리가 흉보는 것은 너무 배고프고 영양이 부족해서 이 선생님도요. 대개 말씀하시면 코끝이 빨개져요. 혈이 올라오지요. 백짓장 같습니다. 말씀 안 할 때는, 말씀을 조금 하기 시작하시면 코가 빨개지고 상기하니 피가 올라오시는데 말씀 끝나면 파리해요. 얼굴이 털이 거꾸로 서가지고 아주 보기 싫어요. 참 누가 볼가 무서웠어요. 그러니까 옷도 추리하시고.
그래 인제 가을 이야기입니다. 박 공님 이야기가 이 공님 댁에 서로서로 숨어 있는 곳이 멀어요. 그러니까 이 공님께 안부도 하기 위해서 올라간 가을인데 이 쌔가 거기 참 쌔가 많습니다. 그 화학산에 쌔 밭으로 둘이 올라가서 이 공님 말씀 좀 해 주세요. 두 분이 앉아서 이야기 하는데 이 공님은 말씀을 증언해 주시고, 성경 말씀을 해 주셨지요. 인제 박 공님이 들으셨답니다. 해가 질 무렵에 일어나려고 보니까 박 공님이 앉은 데는 쌔가 한 평 자빠졌다. 그래요. 이야기 들으면서 몸을 많이 움직였기 때문에 그런데 이 공님이 앉으셨던 데를 보니까 쌔가 누런 죽은 쌔지만 하나도 자빠지지 않았어요. 그때 나라는 사람과 이 공님의 그 다시 말하면 모든 품위, 인간됨, 그 심성이 전부 비춰질 때 부끄러웠다고, 그러니까 잊지 못할 옛날이야기지요. 뭐 말씀이 고상하다는 이야기가 아니고 한 시간 말씀하고 일어났는데 죽은 쌔지만 자기는 아무 뜻 없이 갈대밭을 자빠뜨려 놨는데 그 분은 말씀을 다 마친 자리에 쌔가 하나도 안자빠지도록 그렇게 자리 하셨다는 뜻입니다. 그래 죽어가는 갈대도 사랑하셨다는 겁니다. 인제 그런 점이 아 스승 이 공님과 나와 차는 하늘과 땅과 같더라. 그런 이야기를 해 주셨어요. 그런데 그러면 오늘도 지금 교수님이 그 이야기 했어요. 내가 직접 보셨는지 말씀 들었는지 몰라도 이 선생님이 한 일이 있었습니다. 왜 그러냐? 이런 일이 있어요. 제가 이 선생님이 여기서 보이는 서리내가서 소년들 5-6명 데리고 광주 오셨어요. 그러니까 제가 그 아이들 말하자면 반장입니다. 선생이랄까? 그런데 아이들 맡아가지고 한 8명 되었습니다. 엄동설한입니다. 강당이 이보다 훨씬 커요. 일본 군인들이 쓰던 훈련소니까. 큰 교실인데 덜렁 아이들 7-8명하고 저하고 그 방을 쓰고 있었어요. 그때 무엇이 있습니까? 이불 하나 줬어요. 8명이 덮도록 그러니까 혼자 덮어도 안 되지만 8명이 다 덮으려면 한꺼번에 다 들어가요. 이불속으로, 그리고 엄동설한에 불기가 없어요.
저는 하나님이 그런 지혜를 주셨어요. 아이들도 산속에 있다 왔기 때문에 얼마나 이가 많은지, 옷이 근지러워 잘 수가 없어요. 밤에는 그래 생각다 못해서 용서 하십시오. 십 세, 모두 한 열 살 아홉 살 여덟 살 그러니까요, 우리 안 되겠소. 모두 옷을 벗읍시다. 물론 저는 옷을 조금 입었지요. 속옷을 그리고 옷을 다 벗어요. 그리고 맨몸으로 이불속으로 들어가면 십 세 이전은 그렇게 몸이 따숩디다. 37도 이상이 예요. 한 39도나 될까요? 뜨끈뜨끈해요. 전부 발만 향합니다. 빙 둘러누워서 그러면 저는 나이가 그때 23 이니까 제가 옆에 누워서 후끈후끈해요. 그렇게만 산 것이 전부인데 제가 잠이 많은 사람이지요. 어느 날 밤에 이상해서 깨어났어요. 불이 켜져 있어요. 가만히 보니까 이 선생님이 그 어린아이들 옷을 전부 옆에 놔두시고 전부 이를 잡고 계세요. 밤마다 잡으셨던가 봐요. 저는 이렇게 원체 잠이 많아가지고 한번 봤어요. 제가 이불을 들썩하니까 불을 탁 꺼버려요. 흔적 없이 하시느라고 그렇게 하셨습니다. 그런 때는 저도 마음이 뜨겁지요. 부끄럽기도 하고 아 선생님은 밤마다 오셔서 우리 온 이를 잡으셨구나. 그런 어머니의 사랑이지요. 아버지의 사랑이 아니고 뜨거운 어머니의 사랑을 느끼지요. 그래서 제가 잠을 안자고 있으니까 일체 말씀 없는 분인데 공으로 하늘에다 대고 이야기 하세요. 제가 인제 의사가 되고 싶은 욕망이 있어가지고 학교가고 싶은 욕망이 있었거든요. 저를 두고 하신 말씀인 것 같아요. 쥐에게 망아지의 수레를 채워갖고 가라면 갈수 있을까? 혼자 이야기 하세요. 깊은 밤중에, 가슴이 뜨겁지요. 아 나보러 하신 말씀이다. 너 허영 버려라 는 그 뜻인가 보다. 조금 있으니까 그렇다면 큰 망아지에게 쥐가 끌고 갈만한 수레를 만들어주면 격에 맞을까? 그런 말씀이 깊은 밤중에 가사 설교시간의 백 시간보다 더 가슴을 쿵 때려요. 아이쿠, 나 이제 학교 다닐 마음을 포기해야겠다. 내 처지에 무슨 그런 꿈이냐? 그런 거, 그냥 밤중에 이루어지는 것인데요.
그럼 그때 양식은 무엇을 먹었냐? 광주에 그렇게 신자들이 별반 관심이 있는 사람이 없어요. 혹시 한분 두 분, 나중에는 박 장로님이, 그때는 박 집사님이신데 채소장사 하신 분인데 그 분이 조금 관심하시고, 보리 한서 되 또 채소 한 다발 소금 한 홉 그런 금이야 옥이야 큰 재산이지요. 그러면 어머니들이 인제 어머니들은 굶더라도 아이들은 꼭 밥 해주셨습니다. 보리밥 한 홉, 그리고 소금 굵은 소금에다 고춧가루 조금치면 쪼금 색깔이 빨개지지요. 그게 전부입니다. 부식 이라는 것은 그래도 배가 고프니까 그게 적으니까 항상 서러웠지요. 그래도 아이들이니까 보리밥을 해줬지. 어머니들은 풀이 아마 칠 할, 팔 할 될 겁니다. 이제 보리 조금 넣어가지고 죽 쑤시면 꼭 소죽이지요. 인제 그렇게 먹은 식구들 이니까 이 찬송을 부르면 가슴에서 소리가 나오지요. 참 천상에서 부르는 노래 같지요. 노래 소리가요. 세상 지금도 그런 분이 있어요. 그때 찬송을 듣고 나는 감화를 받고 동광원을 좋아한다. 다 돌아가셨습니다. 밖에 계신 장로님들 목사님들 그때 찬송소리 어떻게 그 찬송을 가슴이 이렇게 설레고 감격스럽고 욕심이 다 가라앉아 버렸다고요. 배고플 때 부르는 찬송소리 배고프다. 보담도 사랑이 지극했을 때요. 그 건도 기억을 하면서 다시 생각합니다. 그러면 이 세종 선생님이 여러분들이 거의 아는 이야기 다시 한 번 해 봅시다. 귀로 들은 이야기지요. 가슴에 예수님의 영이 불이 붙으면 전하고 싶으시니까 새벽에 일찍 기도하시고 반드시 부인을 시켜 가지고 점심을 싸게 하셔. 점심 싸시고 그리고 신구약 합부 딱 들고 전도를 나가시는데 일 년 이년 삼년이 아니에요. 여러 해 혼자 전도를 나가시는데 제삼자가 보면 그런 거지가 없어. 옷은 다 떨어졌고 한데 남루한 분이 꼭 성경을 쥐고 그러면 지금 등광리에서 삼거리 약 십리 됩니다. 4키로 그러면 그 4거리 내려오면 지금은 면 소재지이지요.
거기 주막이 있는데 가을에 봄부터 다니지만 그 부근에 있는 십리 이 십리 안에 마을마다 다니셨다고 그래요. 전도하러, 그런데 본인이 그러셨다. 그럽디다. 이 공님이, 나는 내 그때는 짚신 이니까 한 가정에 내 짚신 세 켤레는 떨어졌을 것이요. 그렇게 전도를 열렬히 하셨어요. 지금도 동산 이라고 하는 이 십리 밖에 이 공님이 전도한 교회가 지금도 있습니다. 지금도 그 교회가 있어요. 그 분이 세우신 교회, 그런데 주막에서 술 먹던 청년들이 거지니까 술김에 그랬겠지요. 어디가! 전도갑니다. 못가! 못가 그러면 안 가신 겁니다. 누구든지 가지마! 그러면 딱 서세요. 그 길목도 여러 번 그러신 모양인데 소년들이 가지마! 그러면 안가세요. 가! 그러면 가고, 그래 아이들이 자꾸 돌 던지고 건들어 먹고 그날은 청년들이에요. 술 먹다가 못가! 그러니까 딱 서계신데 그러니 인제 가을이라. 대개 옛날에는 짚으로 지붕을 올리지 않습니까? 그러면 일 년에 한 번씩 눌렀던 새내길 걷어내지요. 그 주막집 짚을 이어 가지고 새내끼가 까맣게 썩은 것이 마당에 많으니까 썩은 새내길을 가지고가서 나무에다 이 공님을 묶어요. 이렇게 술 먹은 청년이 다 썩었지요? 꽉 묶어놓고 거기 서있어. 그래 술 취한 청년은 이 공님을 그래두고 갔던가 봐요. 해가 질 무렵에 어디를 갔다 오다가 보니까 이 공님이 가만히 다 썩은 새내끼로 감아놨는데 그냥 가만히 있어요. 그래 이 젊은 청년이 술도 깨었고 너무 부끄러우니까 아이고 할아버지 내가 잘못했소. 아이 끌르고 가지 왜 이렇게 서 계시오? 청년이 묶어놨는데 내가 어떻게 자유로 갑니까? 당신이 끌러줘야 가지요. 아이 다 썪었습니다. 툭 툭툭 다 떨어져 버리지요. 그 청년이 광주 가서 회개하고 중앙교회 집사 되었어요. 그렇게 선생님 이 공님 괴롭게 하던 청년이, 그 이야기를 다 압니다. 그 마을사람 소문났으니까 여러분 들었을라나 모르겠습니다.
그러면 왜 이 공님이 예수를 믿었냐? 물론 설이 여러 가지 이지만 제가 직접 들은 것은 이 점입니다. 나이가 40이 되도록 자식이 없어요. 물론 늦게 결혼 하셨지만 어떻게 살다보니 부인과 두 사람 사이에 논이 백 마지기 백 석 꾼입니다. 농촌에서 큰 부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시대와 참 어떤 의미에서 그런 복을 주신 것이지요. 자식이 없으니 두 분이 십년을 벌어가지고 양식이 자꾸 남아돌아가는데 농사도 많이 하고 마을 사람들이 흉년이 드니까 다 갖다 먹어요. 약속이 있는지라 일 년 후에는 삼배가 불어납니다. 하나주면 하나반 이지요. 또 둘을 주면 셋이지요. 이것이 막 새끼를 쳐가지고 십 년 만에 거지로 출발하신 두 분이 남의 땅 한 평 얻어가지고 농사했는데 십년 후에는 백 마지기, 그리고 일대에 돈은 다 이분한테 빌려다 썼어요. 그러니까, 문서로부터 집집마다 문서란 말입니다. 빚 얻어간 문서, 그 예수 딱 믿고 다 빌려 쓴 사람들 계약서 갖고 오라고해서 다 돌려줘 버리고 오늘부터는 발 뻗고 주무십시오. 나는 예수를 믿기 때문에 나 예수님이 명령하시오. 다 여러분들 탕감해 주라고 하시니까 합니다. 그게 참말이냐고 아니 그럼 내가 무슨 거짓말 하겠느냐? 그렇게 했다는 이야기가 마을사람 다 알지요. 그러면 이제 예수님 믿으니까 다시는 돈 안 빌리지요. 백석은 년 년이 들어오지요. 백석은 못 들어와도 육십 석은 들어와요. 쌀이, 이 곡수가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을 믿기 때문에 성경대로 하세요. 십일조는 하나님께 바치고 그리고 꼭 두 분이 쓰실 사유를 딱 정해놓으시고 그럼 재산이 많이 남아요. 그래 처음에는 이렇게 계획 하셨답니다. 금년 겨울 월동 하려면 면에는 몇 석, 또 인구가 많은 마을은 몇 가마니 또 마을이 작은 마을은 몇 가마니 그러니까 싹 분배해요. 가을에, 그리고 면장 구장 금년 겨울에 굶어죽은 사람이 생기면 당신 책임이요. 이걸 갖고 있다가 굶는 사람 나눠주시오. 그렇게 하셨답니다. 몇 년 그렇게 해 들어보니 거의 불쌍한 사람 준 흔적이 없어요. 면은 면 구장이면 구장 다 개인이 먹어버렸어요. 아 이래서는 덕이 안 되겠다.
그럼 이것도 내 잘못이다. 생각하시고 내가 친히 제일 가난하게 살아야 되겠다. 그렇게 결심 하셨어. 내가 가지고 주는 것은 잘못이다. 내가 제일 적게 먹고 제일 못 먹고 살아야겠다. 그날부터 쑥하고 콩잎하고 된장하고 절대 쌀 안 잡수십니다. 보리하고 부인은 그게 안 되어요. 이해가 안 되시지요. 부인은 항상 부인은 서러워 하셨지요. 이 많은 재산 두고 왜 그러냐? 왜 이 공님이 그렇게 늘 소화하시니까 자꾸 힘이 떨어지시면 반드시 우리는 고기 안 먹으니까 찰밥 해먹읍시다. 그랬다는 거예요. 그래서 찰밥을 일주일에 한 번씩 꼭 주일날, 많이 해가지고 마을사람 주고 잡수셨다 그래요. 그런데 그 사모님이 그래요. 나 메밀 먹고 싶소. 그런데 그걸 못 해드렸답니다. 그리고 세상을 떠나신 후에는 사모님이 눈물이 메밀묵을 보면 눈물이 나셨다고 그래요. 아 나는 무정하게 했는데 이 죄녀가 어떻게 메밀묵을 먹느냐고, 그 사모님이 직접 하신 말씀인데요.
그 다음에는 사모님이 개가 하시지요. 두 번 개가 하시는데 사모님이 직접 이야기 하세요. 이 공님이 말년에는 다 논은 노회에 바치고 조카들한테 두마지기씩 주고 부인도 두마지기 다 드렸어요. 다 분배해 버리고 전 재산은 노회에 바치고 그리고 본인은 혈혈단신 빈 몸으로 깊은 산속에 은둔하셨습니다. 몇 년 계신지 몰라요. 소문에 사모님 그러십디다. 소문에 이 공님이 나이가 60이 넘으셨으니까 약 60, 너무 못 잡수시니까 너무 말랐더라는 소식을 들었답니다.
개가해 살 때, 그런데 어떻게 마음이 아픈지, 나는 자식을 낳고 싶어서 이렇게 도망 나왔다 하지만 그 분이 무슨 잘못인가? 내가 돌아가리라. 이런 생각이 들더랍니다. 왜 너무 불쌍하니까 굶고 계시고 내가 쑥국을 끓여 드리면 자셨는데 내가 돌아가서 쑥국을 끓여 드려야겠다. 그 자원하는 마음 가슴에서 억지가 아니 예요. 자원하는 마음이 가슴에서 불이 나는 것 같고 돌아오셨다 그래요. 참 기뻐요.
자원한다는 거, 찾아가보니 아무것도 안 잡수시고 계시더라. 그래요. 그래서 본래 있는 집 살림은 여유가 있지요. 쌀을 한말 구해가지고 갖고 가서 해드리면 안 잡수세요. 부인 잡수시지요. 혼자 먹어요. 그런데 밥 위에다 쑥을 얹어 가지고 드리니까 잡수시더라. 그래요. 쑥만 밥 물든 것이지요. 그렇게 해서 한 석 달 육 개월 같이 계셨어요. 그런데 은둔한 막은 그러십디다. 혼자 누울 수 있는 조그만 막이라고, 그런데 보십시오. 그 사모님의 기쁨, 밥은 안 잡수시지만 아, 내가 쑥을 뜯어다가 밥 위에 얹어 주면 잡수실 때 어떻게 기쁜지 참 내가 돌아오길 잘했다. 이것도 못 잡수시고 굶으실 분인데 내가 쑥을 뜯어다 해 드려야지. 그렇게 섬겼다는 이야기시지요.
그럼 이야기는 바꿔야겠어요. 그럼 예수 믿기 전 일을 조금 이야기하고 다시 돌아가지요. 그래 이 두 사람사이에는 근본 소원은 아들을 낳고 싶었던 것은 우리가 다 아는 겁니다. 그런데 보통 사람들이 아들 낳고 싶은 소원 그런 정도가 아니에요. 천 배 만 배 열렬합니다. 논은 백 석 군이야. 육십 마지기 이상 백석에 가까운데 자식이 없는 것이 서럽다는 말씀입니다. 나이는 늙어 가는데 그러니까 공자님도 빌어서 낳았다. 하지 않습니까? 함께 빌면 자식을 얻겠다는 결심을 가지고 지금 가보면 있어요. 산당 거기에 기도실이 있습니다. 산당 깨끗한 산당에 올라가서 목욕재개 하시고 몇 년을 드렸어요. 아들 주시라고 그럼 생활이 넉넉하니까, 단골을 고용해서 둘이 빌은 겁니다. 그럼 단골을 어떻게 지키느냐? 큰상을 일곱 차리고 삼일 거리로 장에 가서 채소를 사와야 해요. 그 채소를 사러 가면 절대 깎지 않는 겁니다. 얼마요? 하면 꼭 주고 사와요. 매일 목욕재개하고 단골과 두 분이 아들 주십사고 하나님께 빌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너무나 무정하셨습니다. 아들을 주시지 않았어요. 그런데 또 너무 열렬해요. 정성이 모자라는 줄 알고 몸을 가루로 만들어 드릴만큼 제사를 지냅니다. 매일 절하고 목욕하고 절하고, 다시 별장을 지으려고 돈이 많으니까 그 산당은 허술하니까 양옥집 비슷하게 유리창 달고 삼층 이층으로 이렇게 지금도 산당이라 그래요. 기도하던 집을 산당, 산당을 재건축하는데요. 사모님이 그러십디다. 남의 땅은 쓰면 안 된다. 자식을 낳으려는 사람이니까 내 땅 그럼 내 땅은 아주 산 밑에 있어요. 남의 땅은 가까운데 그 먼 내 땅에 가서 흙을 져다가 아주 절벽입니다. 그렇게 흙을 이겨가지고 산당을 지었다고 그러세요.
매일 그 쌀밥을 해가지고 배고픈 사람들 주고 그 인산인해여. 잔치 매일 잔치하고 밥해주고 적선하고 그러셨던가 봐요. 그럼 그 자리에서 예배를 볼 때 모두 교인들 이었지요. 옛날에 밥을 먹던 사람들 그렇게 되었는데 이층집 입디다. 흔적을 보니까, 이층집 지었던 흔적이 있던데 제가 보니까 목수가 영산포에서 왔던 가 몰라요. 웃으면서 저 영감이 잘못이다. 그거에요. 내가 보건대는 하나님이 안준 자식을 어떻게 낳느냐 그거에요. 할아버지 잘못이다. 여보, 나는 예수를 믿다가 요새 안 믿으니까 내 책 보시오. 할아버지 제사 그만 지내고 안준 아들을 어떻게 납니까? 이 책 보시오. 그리고 주신 성경이 구약성경이었다. 그래요. 신약이 아니고 그러니까 구약을 얼마나 보셨는데 딱 보고는 그 단골 보내버리고 제기 그 좋은 기물 다 불 질러 버리고 깨끗이 이제는 새로 제사를 지냈다 그래요. 다시 말하면 본인이 띄엄띄엄 국문 보시고 그 보이는 대로 구약 정신에 의해서 제사를 지낸 겁니다. 누가 보니 그것도 민망하니까 이 공님 이 책을 보셔야 합니다. 누가 주었던지 예수 안 믿는 사람이 신약 성서를 가져다 준 다음에 그 책을 본 다음에는 생활이 완전히 달라지세요. 인자 구약 정신에 의해서 하시던 일은 완전히 폐하시고 이제 신약성서를 보기 시작할 때 이야기입니다.
이제는 뜻을 얻으셨는데 그분 직접 살아 계세요. 서울 지금 80격이신데 이 상복 장로님이신데 그때 젊은 20대 총각인데 산당에 가서 계시오? 계시오? 거 누구요? 이 밤중에 왜 날 찾아오시오? 그 2차 전쟁 때에는 비행기가 오니까 일본 사람들이 국법으로 저녁에 불을 못 쓰게 했지요. 성경공부 하기 위해서 밤새도록 방에서 공부를 해야 하니까 검정 카텐을 다 쳤기 때문에 불빛이 안 새요. 지금 낯이 열두시 되었소. 카텐을 열어보시는데 방에 먹으로 붓으로 썼어요. 성경을, 방이 가득해 종이가 그게 성경공부십니다. 오 장로님 꼭 그렇게 공부하셔 지금 30년 매일 쓰세요. 먹은 아니에요. 연필로 또 쓰고 또 쓰고 제가 볼 땐 장난 같지요. 다 아시는 말씀인데 또 쓰고 또 쓰고 그 이 공님이 꼭 그렇게 하셨어요. 그렇게 공부를 하시는데 눈을 감으면 창세기 1장1절부터 묵시록 까지 다 눈에 보인답니다. 썼으니까 먹으로, 먹으로 다 쓰셨기 때문에 모든 말씀이 싹 보여요. 또 이 총명이 하나님이 내린 총명이지요. 얼마나 지혜 있기에 이 머슴이 십년 만에 부자가 됩니까? 지혜가 총명이 아니요. 보통 사람이 아니에요. 그렇게 지혜 총명이 있는 분인데 그렇게 먹을 갈아가지고 쓰시니까 그냥 꿰어 비치지요. 말씀이 가슴에, 다시 말하면 이 통했지요. 이치가 통했지요. 그 다음에 영통하지요. 성령이 통하시지요. 그렇게 스스로 받아가진 장면인데요. 상복 장로님이 그러십디다. 요새 이 공님 어떻게 지내시나 너무 바빠서 못가보고 가을에 올라가니까 계시오? 하니까 누구요? 접니다. 문을 착 여니까 새 보는 소리 훠이 그러지요. 왜 저렇게 소리를 질러 싸요? 지금 나락이 익어가지고 새 봅니다. 그러니까 무릅팍을 탁 치면서 내가 올 때 모를 심던데 그러니까 모 심을 때 산등에 올라가지고 주야로 공부하신 것이 가을까지 하신 것인데 다시 말하면 시간을 모른 거지요. 시간, 전혀 시간을 모르셔. 육 개월이 하루 같아요.
그렇게 성경말씀에 빠져든 것입니다. 참 무념삼매에 들어갔어. 무념삼매. 그럼 성경말씀 뜻을 알았지요. 영이 통하지요. 또 말씀이 전부 이렇게 통해. 당대 이 전라남도 광주에 제일 먼저 지은 예배당이 지금 중앙교회라고 그럽디다. 그 예배당을 누가 지었냐하면 최 흥종 목사님이 지으셨어요. 50이 넘어서 신학 다녀오셔 가지고 늙어서 이제 교회를 세우셨는데 무슨 산속에서 처사가 성경을 잘 본다는 말을 듣고 찾아가셨어. 일주일 동안을 막 변론한 겁니다. 이겨 버리려고 이 노인을, 이 멍청한 사람을 이겨, 멍청한 줄 알았어요. 무식한 줄 알았는데 일주일 말씀을 딱 했는데 나는 신학 졸업하고 목사인데 내가졌다. 역시 당신은 확실히 진리를 깨달았소. 당신이 내 스승이요. 그 후에는 철저히 목사님이 꼭 거기가 부흥을 받았어요. 사사로 찾아가지고 왜 지금 장로님도 그 식이지요. 누가 물어보면 성경 몇 절 보시오. 그러시지요. 성경 몇 절 보시오. 그러는데 이제 목사님이 궁금해서 교회 문제로 숙제를 내 놓으면 몇 장 몇 절 보세요. 몇 장 몇 절 보세요. 한이 끝이 없어. 시간이 가고 매일 연달아 보라는 거예요. 이제는 다 알았습니다. 가렵니다. 그래 인제 목사님이 툭 떨어져 가지고 이 공님이 일러 준대로 말씀보고 돌아오고, 소문이 나 가지고 백 영흠 목사, 그때는 전도사인데 따라가고 또 인제 곽 목사라고 유명한 서기 목사 계시지 않아요? 곽 목사 따라다니고 갈 때마다 이 공님이 무식한 할아버지니까 이겨볼 량으로 변론하다가 결국은 지시고 아 이 공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그렇게 부흥회를 춘추로 하셨답니다. 직접 목사님한테 들었지요. 그래서 이 공님 보십시오. 성경말씀에 예수도 고기 먹었소. 왜 당신은 안 먹습니까? 이렇게, 이렇게 성경말씀 다 읽으시고 당신 왜 교만하시오? 예수님 외에 당신이 의인이요? 고기 잡수시오.
그러니까 최 목사님, 최 목사님이 깨달은 진리는 최 목사님 것으로 하시고 나는 내 것이니까 서로 섞지 맙시다. 그러고 돌려보냈다. 그래요. 왜 그렇게 서로 같자고 하시오? 깨달음이 다른데, 최 목사님이 끝끝내 유혹했어요. 고기 잡수시라고 그건 자비고 눈물이고 피고 그 내 생명인데 그럼 성경말씀으로 그게 이해가 됩니까? 최 목사님 것은 목사님 것으로 하세요. 나는 나대로 살랍니다. 딱 부러지게 아무리 최 목사님이 아무리 바꾸려고 그래도 못 바꾸셨다. 그래요. 그 소위 말하면 절대 자비정신 이지요. 그러니 보십시오. 이 이야기를 조금 더 내려서 하겠습니다. 그럼 이 공님 말씀은 귀로 들었고 제가 직접 이 선생님 만나 뵌 이야기를 한 토막 거기다 붙여야겠어요. 지금 능주읍에 하늘나라 가셨습니다. 여기서 순종하셨어요. 정 한나 어머니가 일찍 젊은 나이에 과부 되시고 교회 집사시고 가난한 과부 그러니까 종지기요. 교회 종을 치던 집사십니다. 그러니까 해방 후에 한나 어머니가 종치던 예배당이 있는데 짚으로 이어놓은 예배당입니다. 그러니까 일제 말년에 짚을 안 이었지요. 예배 못 보게 하니까 큰 기둥이 모두 기둥이 썩어있습디다. 해방 후에 가보니 그러니까 큰 예배당 안 써요. 신자가 얼마 안 되니까 그 사택에서 예배를 보십디다. 한나 어머니 주무시던 사택인데 큰 방인데 거기서 이 선생님 말씀 처음 들었어요. 왜 듣게 되었느냐 하면 아까 제가 알았던 박 공님이 제중병원 이를테면 남자 간호원 이거든요. 거기 계실 때 알아가지고 박 공님 집에 가니까 2월 달 이에요. 3월은 못되고요. 가니까 말씀을 듣고 싶소. 예, 따라가고 싶소. 따라갑시다. 따라가서 보니까 거기 이 선생님이 계시데요. 그 집에가, 그 얼마나 반갑습니까? 선생님을 항상 흠모하고 있으니까, 이 선생님을 3일간 말씀했어요. 청빈낙도입니다. 주장은 가난해야 행복 합니다. 가난해야 평안하다. 돈을 몰라야 사람은 행복한 것이다. 3일을 말씀 듣고 나니까 찾아보면 매 거 말씀 아닙니까? 성경이 주장이 첫째 예수가 가난하시고 가난한 사람이 복이 있고 또 인제 모든 역사 증거 하시기 때문에 돈을 좋아하던 청년 제가 3일 말씀 받으니까요. 완전히 역사관이 거꾸로 되어버리더라고요. 행복관이 완전히 바꿔져 버렸어요. 180도로, 그러니까 욕망이 있던 청년인데 욕망이 3일 동안에 물러갔던가 봐요. 참 묘한 체험을 했어요. 하늘땅이 거꾸로 보여요. 나무가 이렇게 서 있는 게 거꾸로 보여요. 거꾸로 봐야 정상입디다. 그러면 전부 투시가 되 부자는 불행하고 가난한 사람은 아주 행복해요. 그런데 인제 가슴에서는 웃음이 터질라 해요. 막 웃고 싶어요. 찬송가 합시다. 하면 못 불러요. 웃음이 나오려고 하니까, 소리가 나오려고 하니까 입을 딱 다물고 찬송을 못 불렀습니다. 참 신기한 일이 일어납디다.
그런데 욕망이 있을 때는 청년의 가슴에 불이 있지 않아요? 그 번뇌 번뇌가 불이 꺼져가지고 막 가슴이 근지러워요. 막 소화 테레사 성녀는 그랬습디다. 미치겠다고 미치겠다. 참 그때 미치겠어요. 억지로 참지, 그런데 그 지금 생각해 보면 청빈낙도에요. 일체 사물에 집착만 끓어지면 낙은 결국은 도화가 거기에 있더라고요. 그것은 맛을 본 사람은 알겠지요. 그때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이걸 어떻게 말해야 옳으냐? 지금은 38억 입니까? 40억이 다 됐는데 그때는 한 20억 되던가 해방 후에 전 인류가 한 줄로 서고 예수님이 재림 했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니까 죽 예수님을 제일 먼저 만나볼 사람들은 죽 부자, 권위 있는 모두 죽서겠지요? 그러면 제일로 세력 없는 사람이 80에 20은 제일 끝에 서겠지요? 예수님이 딱 나와 가지고 제일 앞에 있는 돈 많은 사람 영광 있는 사람 그 참 권리 있는 사람들이 다 상을 받으려고 기다리고 있는데 이런 생각이 듭디다. 예수님이 뒤로 돌아, 소리를 지르시더니 확 날라가지고 제일 끝, 제일 뒤에 그야말로 불쌍한 사람 아 등을 다독이면서 눈물 씻어 주면서 거기서 이제 천국 입석 내 아들아 내 딸아 가자 집에 가자 그리고 그 불행한 사람들 금이야 옥이야 예수님이 환영하는 환시가 보여요. 아 성경을 그렇게 푸세요. 이 선생님이, 한 3일 들어보면 하늘땅이 바꿔져 버려요. 관이 달라져 버려요. 관이, 부자와 가난이 바꿔져 버려요. 제일 끝자리 이지요. 제일 끝자리가 하나님이 계신 곳이다. 그렇게 말씀 하시는데 그렇게 깨달음이 들어간 사람이 제일 가난한 자리 아프리카에 가서 돌아가시지요. 그럼 실상 예수님이 그분 아니시겠습니까? 제일 끝자리에 오신 분 마구 간에 태어나시고 임종하신 때는 십자가상에서 임종하시고 다시 말하면 참 청빈낙도에요. 가난한자가 행복 있다. 그때 말씀을 조리 있게 들었지요. 성경 말씀을 대시니까 이렇게 의사가 되고 싶은 학교 다니고 싶은 꿈을 깨고 선생님 쳐다보면 알지 않아요? 제 마음이 완전히 무로 돌아온 것 아시고 (끊김)
그럼 막가지를 갖다가 앞에다 대고 있어요. 뭐 시간 가는 줄 몰라요. 일분 삼분 오 분 그럼 나뭇가지 위로 벌레가 올라가요. 그럼 가만히 있다가 딱 놓아주세요. 가다보면 칙순이 내려오지 않습니까? 그럼 딱 앉으세요. 칙순을 이렇게 하지 않아요. 참 금이야 옥이야 조심해서 가만히 해서 얹어놓으시고 열두 모퉁이가면 삼십 분을 갈 데를 몇 시간 못가시더라고요. 처음 봤기 때문에 얼마나 신성합니까? 야 별세게다. 참 그걸 뵈 가지고 몇 달 후에 제가 무전여행하고 화학산에서 여름에 여수 기독청년회 여름 하련회가 있어요. 일 년에 한 번씩 요새 같으면 YMCA 청년회 하련회인데, 무전여행이지요. 걸어가는데 이 선생님께 가다가 버러지 잡아주고 연줄 걷어주고 그걸 흉내 내는 것이지요. 삼일이면 갈 것을 한 열흘 더 갔어요. 그냥 갈라면 양심이 아프지 않아요? 선생님은 꼭 그렇게 했는데 그냥 가면 양심 괴로우니까 하기 싫어도 억지로 하면 지금 생각해 보면 다 죽였어요. 버러지를 해주다가 빨리 갈라고 이렇게 하면 뚝 끊어져 버려요. 버러지가 잡아주려고 하면 그냥 죽어버려요. 버러지가 안 되어요. 자비심이 없으니까, 형식만 버러지 잡아주려고 하면 곧 죽어버려. 해 보십시오. 자비심이 있어야 일분이고 삼분이로 버러지가 공포심이 있으면 안 올라와요. 평안하고 안심이 되어야 올라오니까 가만히 올라오지요. 그래서 가만히 이렇게 줘야하는데 지렁이가 있으면 저는 얼른 휙 집어버리고 저리가면 깨져버렸어요. 피가 나요. 그 선생님은 가만히 지렁이가 안심하고 올라오도록 기다리면 몇 분 걸립니까? 이러고 가만히 있어야 지키는데 지금도 안 되어요. 모방으로는 안 됩디다. 가슴으로 우러나야 그게 되지. 그래 어찌되었든 억지로 했어요. 억지로, 아까 박 공님이 고사리 꺾었던 이야기, 다 말라진 쌔 이야기 똑 같아요. 선생님은 버러지 다 살려주고 칡넝쿨 다 걷어준다고 지금도 그래요. 칡넝쿨 있으면 쭉 뽑아가지고 휙 던지면 툭 떨어져 버려요. 도와준 것이 아니에요. 법만 지킨 거예요. 법만, 모방이라는 거 죄 입디다. 사랑이 없어요. 그러시면 보십시오. 저를 누군지 모르지만 데려다 준분이 오 장로님 이예요. 그런데 오 장로님 집에 안계시고 지금 가보시면 압니다. 소재라는 마을에서 장롱을 짜고 계세요. 해방 막 되었으니까 부잣집에서 장롱을 짜달라 해서 짜고 계셨든가 거기 거하고 계시더만요. 소재라는 마을에 부잣집에, 그러니까 제가 장로님께 맡길 량으로 이렇게 이야기 하세요. ‘나봐 청년 나봐 장로님이 진짜 신자고 나는 말로만 하는 가짜 신자야. 그러니까 오 장로님 믿고 따라가라.’ 거기다 딱 두고 가시더라고요. 제 생각은 그래 안 해요. 말 잘하는 이 선생이 예수 잘 믿지, 오 장로님 지금 말 잘 하시지, 그때는 말 안 해요. 삼년을 살아봐도 아무 말 안 하세요.
그런데 서울 현 동완 선생님이요. 말 안 하시는걸 발견하시고요. 이분이 성자라 하셨어요. 성자, 아주 그 분을 존경했어. 말 안하는 분 오 장로다. 그런데 왜 장로님 지금 말 잘하는지 모르겠어요. 이상하게, 절대 그때 말씀 안 하셨어요. 그런데 오 나라오(吳)자 집 원(院)자 오원 큰 부자 집 별장을 사가지고 오 장로님 별장이라고 오원을 만드셨어. 능곡 별장지대에 삼각지에 우리가 거기 가서 한 일 년 걸인생활 했어요. 지금 나이가 다 60대인데 자매들 한 5-6명 남자들 청년 한 5-6명 그 객지에다가 돈 한 푼 없이 던져 버렸어요. 살으라고 그래 3-4년 얻어먹고 살았지요. 거기서 그게 이 선생님 지도법이고요. 꼭 지금 탁발승 같이요. 일체 후원 안 해줘요. 그렇게 하셨고요.
그러면 아까 이 선생님 이야기신데 그럼 오 장로님에게 저를 딱 맡겨 놓으시고 한 몇 달 만에 오십디다. 한번 와 보셨어요. 그때가 여름인데 그럼 선생님 오시기 전에는 부자 집이니까 목수고 그러니까 밥을 많이 먹어요. 하루 세 때 쌀밥을 먹는데 선생님 오시고 보니까 이제 밥상이 나왔습니다. 수저를 제가 들었어요. 입을 떡 벌리니까 준호 저 앞집에 가서 밥을 얻어 오세요. 그게 처음 교훈이에요. 밥을 먹으려 하는데 준호 앞집에가 밥 얻어오세요. 그런데 그날따라 비가 막 전혀 앞이 안보여요. 어떻게 비가 막 쏟아지던지 그런데 존경하고 평생 사모하던 선생님이 그렇게 이야기 하는데 어쩔 수 없어요. 아무리 부끄러워도 순종했지요. 그리고 비속에 막 달려갔어요. 바로 앞집이니까 비가 오는데 밥 주시오. 하는데 몰라요. 안집에서, 큰 소리를 지르니까 결혼 한지 한 6개월 못된 것 같아요. 아직 붉은 치마에요. 그런 아씨인지 이렇게 겸손하게 뚜껑을 덮은 누런 그릇을 가지고 나옵디다. 너무 황송하고 부끄러워서 감사합니다. 하고 딱 받았습니다. 받았더니 그 젊은 그 부인이 이렇게 말해요. 왜 하나님께 감사안하고 사람한테 감사하시오? 그러시더라고요.
그래 인제 참 겁 김에 갖고 와버렸어요. 그릇 채 그러니까 밥을 얻어온 거 아시고 일어서세요. 밖에 나오셔서 아 기뻐하시고 나오셔서 받아가지고는 처음으로 얻어온 밥은 내가 먹을 수 있다. 내가 먹어야 한다. 둘이 겸상했으니까 딱 제껴 보니까 흰죽이에요. 아주 부잣집인데 그럼 일본시대부터 왜 부자냐? 부자는 규모가 있어요. 그날은 비가 오니까 밥을 안 했어요. 그렇지 않아요? 부자들은 비오는 날은 꼭 죽 쒀먹거든. 그날 죽은 시아버지 밥이었어요. 일찍 아침 먹고 시아버지가 그걸 잡수시도록 점심으로 남겨놨다가 저를 준 것이지요. 밥을 먹으려 하니까 준호 밥 얻어온 소감을 말하래 배는 고프고 그런데 소감 이야기 하라 수저 놓고 소감을 어떻게 말하겠습니까? 밥을 얻으러가서 소리를 지르고 안 줄줄 알았는데 줘서 너무 감사해서 감사합니다. 절을 하니까 왜 하나님께 감사 않고 사람한데 감사 하시오? 그랬습니다. 아 그 말 그 부인의 그 말은 양식 천 가마 만 가마보다 더 귀한 보배다. 그 재산이 무한한 재산이다. 그 말씀 하셨어요. 감격에 밥 얻어온 것을 그렇게 기뻐하시고, 기뻐하시고 내가 먹겠다고 하시고 소감 들어보시고 아 그 말 왜 하나님께 감사 않고 사람한테 감사하시오? 그 말 이 양식 천 가마 만 가마보다 더 귀한 보배다. 그 말이 씨 된다고요. 그 분이 남편은 육이오 동란 거기가 공산당이 되었어요. 일체 전라남도 간부가 거기 집결하고 최후에 일전하고 망한 곳이거든요. 그러니까 전라남도 도지사 군수가 다 죽었지요. 그 마을 구장이었어요. 남편이 국군이 죽여 버렸어요. 부역했다고, 그래 과부가 되었어요. 자식 없습니다. 청춘과부 이리로 출가하시고 걸인이 되셨어요. 그리고 사창굴에가 전도하셨어요. 그러니까 소녀 시절에 광주 양림 교회 신자였어요. 예수 믿었어요. 소녀 시절에 시집가서는 예수 못 믿었지요. 그런데 그 자매가 인제 멀리 들었지만 이 세종 선생 그 일대 사람은 예수 믿으나 안 믿으나 이 세종 선생 제자입니다. 예수 믿으려면 이렇게 되어야 된다 그거에요. 초월해야 한다. 이 모든 세속을 초월해야 한다. 그러니까 이 부인도 다시 말하면 받은 것이지요. 받아가지고 이리로 출가했다가 한 50 못 먹고 돌아가셨어요. 전쟁 통에 돌아가셨거든요. 참 성녀지요. 이 공님이 스스로 깨달았다면, 김연임 씨야. 그 부인도 스스로 깨달은 거야. 뭐 사람한테 배운 것 없어요. 소녀 시절은 예배당에 다녔지요. 시집오기 전에 그런 분이고.
그런데 저는, 너 밥 얻어먹어라. 몇 번 그 교훈 하셨지만 일체 말씀 안하시지요. 그런데 모든 힌트를 준 것이랄지 묵시 밥 얻어오라. 그런걸 보면 제가 도저히 이렇게 신사 나라에서는 못 살겠어요. 인격적으로 종합해보면 제일 하류에 사는 것이 좋겠어요. 그래 택한 것이 양림 다리 방림다리 다리 밑에서 걸인들하고 한 십년 같이 살았거든요. 그런데 말로는 절대 칭찬 안하세요. 한 번도 잘한다는 말 안하셨어요. 밤중에 눈이 오는 깊은 밤중에 와서 제 등허리에 대고 주무세요. 그건 찬성 한다는 뜻이에요. 말로는 절대 안하세요. 고맙다. 그 뜻이야. 비가 많이 온 다음에 그 물이 많이 되면 건너오셔서 꼭 주무세요. 본원에는 식구가 수백 명이니까 아침 기도회를 봐야 하거든. 그때는 네 시가 되어야 사이렌이 울리니까 네 시 전에는 못 가셔. 사이렌이 울리면 팽 가셔. 예배 인도하러. 그러니까 묵시로 다리 밑으로 들어가라는 말 한 번도 안 하셨어. 그런데 제일로 기뻐하시고 그 모습에서 저는 이걸 자랑합니다. 이 구호 운동과 이 관상생활 기도생활 이지요. 그러면 마리아의 생활, 마르다적인 생활이 아니고 동광원은 마르다적인 생활을 해왔습니다. 저는 어떻게 기도했나하면 마리아 적으로 기도했어요. 그러니까 예수님 사모하고 기도하고 살도록 그러니까 탁발이지요. 얻어먹는 건데 보십시오. 와 보면 먹을 것이 없거든.
저도 그때 결핵입니다. 환자 아닙니까? 깔 것이 있습니까? 덮을 것이 있습니까? 적나라한 걸인 생활이 비참합니다. 걸인 생활이 그러면 예배 보러 가시면 거기는 구호기관 이니까 이 창고에는 그때는 쌀이 남아가지고 백석이 칠십 석, 오십 석 그렇게 소문이 났어요. 규모가 짱짱하니까 배급을 줘도 막 먹고 남아요. 산덩이 같아요. 재산이 옷이야 그건 도청에서 전부 압수해 갔습니다. 나중에 그거 안 쓴다고 빼앗아 가버렸어요. 왜 안 쓰냐? 안 쓰는 것도 죄이지요. 그럼 보십시오. 사랑하는 제자이고 아들인데 와서 보면 굶고 있어. 와서 보면 살이 나오고 거지야. 그럼 구호품이 산덩이 같아. 마음에서는 마음으로부터 이 사람 도와줘야 한다. 그 마음이 없어요. 그것은 초월한 스승이 하는 겁니다. 저는 그렇게 못해요. 그냥 마음이 동하고 주고 싶어요. 쌀도 주고 싶고 옷도 주고 싶고 그건 인간적인 생각이지요. 그 초성 영혼을 사랑하는 스승은 달라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래요. 야, 참 위대한 스승이었다. 비가 오고 그럼 아무것도 없지 않아요? 식구가 7-8명 있는데 그럼 염려해서 조금 갖다 줄 수 있지 않아요? 누구한테 보내 줄 수 있을 텐데 일체 몰인정 하셨어요. 철저하셨지요. 그게 청빈낙도에요.
처음에 뵈었을 때 일체 먹을 것 없고 입을 것 없고 일체 궁한 것, 그런데 마음이 평안해. 집착을 버리는 거 애착을 버리는 거 욕심을 버리는 거 그 경지가 얼마나 흠모해. 이 선생님은 그걸 흠모했어요. 그러니까 임종이 막 가까우면 후회하신 거예요. 내 할 일이 따로 있는데 내가 왜 여기서 구호사업하고 있는가? 이건 오다 가다가 인간 도덕이니까 조금 도와주고 빨리 내가 갈 곳으로 가야한다. 그게 지리산입니다. 본인이 계신 지리산이에요. 그러니까 삼일만 산다면 나 업어다 주라고 내 집으로 가야겠다. 본인은 관상생활 원했어요. 그 마르다 적으로 살지요. 지금도 지금 구호하고 있어요. 그분 본심이 아니었어요. 이건 사회 현실이지요. 사회가 그걸 요구하니까 잠깐 도와준 것뿐이에요. 그것이 자기 목적이 아니었어요. 다시 말하면 영성 운동 이지요. 영혼의 성화이지요. 인격 완성이랄까 성인이 되고 싶었지요. 성인, 그러니까 지금 생각해 보면 사랑하는 제자가 그렇게 굶고 있어도 어떻게 마음에서 안 동하냐? 인정이 이것들 배고플 텐데 양식을 줘야지. 그 생각을 안 하는 게 진심이라고요. 초월해 버렸어. 신과 동등 되어 물질을 초월한 스승, 현 다시 말하면 고아원에 예속은 되어있지만 고아원에 관심이 없었어요. 그래서 돌아가시기 전에 이 말씀 했어요. 나 갈 곳이 따로 있다. 내가 왜 여기 머물러 있냐? 몇 사람 뜻이 같은 사람이 있다.
동광원 수도 아니에요? 가사 어머니 몇 분 선생님 몇 분, 그 분들이 일하고 계시니까, 그분 이야기하고 도와주고 이러다보니 시간이 갔다. 그러니까 나 갈 곳은 그때는 공산 나라에요. 중국 소련 갈 곳으로 가야한다. 그러니까 오해마라. 나는 동광원 사람 아니야. 선언 하셨어요. 나는 길손이야. 가다가 몇 사람 뜻이 있어서 머물러 있는 것뿐이고 나는 여기 사람 아니다. 다시 말하면 우주적인 사람이지요. 인류를 가정으로 삼고 살고 싶어 하셨지. 이 동광원에 매이고 싶지 않으셨어요. 참 우주인이겠지요? 우주인, 동광원에 잠깐 일이 있어서 머물고 있었다. 나는 동광원 사람이 아니요. 그게 선언이세요. 그러니까 모든 사람의 종이었지요. 그럼 보십시오. 그럼 끝으로 이 공 이야기 다시 해야겠는데요. 그럼 이 공님이 아들을 원하는 것 이 보통 사람이 원하는 그거 아니에요. 아브라함이 아들을 원해서 이삭을 낳았다. 하지만 아브라함과 동등할 거예요. 그런데 어째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는 이삭을 주셨는데 이 공님 한 테는 안주셨을까? 아들, 하나님의 계획이지요. 이렇게 영원한 아들을 주신거지요. 영원히 죽지 않는 아들, 진리의 아들, 그래서 이 공님이 계시를 받았지요. 하나님의 영을 직접 받았는데 자기가 자기 이름을 지었어요. 자기 속명이 세종인데 내 이름은 공이다. 다시 말하면 계시오, 깨달음이오, 자기 이상입니다. 빌 공(空)자, 공이라는 것은 높임말로 공(公)이 있고 내 공은 빌 공자다. 그 분이 무식해도 다 알아요. 한문으로, 다 아셨어요. 나는 공이다. 지금 철학들 하시니까 아시겠지만 공은 우주의 어머니지요. 공이 우주를 낳았지요. 공이 해 달 별 지구를 낳았지요. 지금도 공이라는 어머니가 품고 있지 않습니까? 우주를,
그럼 지금 상식적으로 무엇입니까? 은하계가 별이 일억 개라 그럽니까? 일억 만개, 그럼 이렇게 큰 은하계가 일억 만개가 있다지요? 얼마나 큰 우주인가? 그 우주를 감싼 공이 되어야겠다. 그 아들을 못 낳은 그 지극한 소원 아들 안주신후에 얻은 것이 공이라 해요. 이 공님의 아들이 공이지요. 우주를 감쌀 수 있는 공이지요. 그 어떻게 말해야 좋아요. 성인이지요. 그분이 무식하시고 한문도 모른다고 하지만 깨달으셨어요. 그럼 이 공님은 갔으면 종교는 초월 되어요. 세계의 종교를 다 품을 수 있어. 세계적이 원수가 없어요. 물과 불이 합하면 풀이 된다고 생명이 되지요? 이 공님이 물과 불을 합하면 우주가 되요. 공이니까, 그 분의 소원은 그것 이었어요. 나는 자식을 못 낳는 것 그건 좋다. 하나님은 내게 자식은 안주고 우주를 품는 마음을 주신 것이다. 게시요, 묵시요, 깨달음이요. 훗날 그 분을 성인이라 그러는데 오늘날 누가 그 분을 성인이라 그랬습니까? 해드려야 되요. 과연 그 분은 성인이셨다. 오늘 오신 그런 분이 추천하는 거예요. 아 그분은 성인이시다. 그분은 욕심이 없었다. 그거에요. 이 욕심이 없다는 거는 아무것도 같지 않았다. 텅텅 비어있다. 그건 우주적인 공이다. 노자 같은 이는 유(有)는 있는 것 아닙니까? 무(無)가 어머니거든. 무가 유를 낳았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런 정도가 아니야. 자기는 공이다. 그거에요. 나는 공이다. 춤을 추시고 기뻐하시고 무소유 하시고 그 살아계신 분들이 그 증거 했어요. 날이 더우니까 그분은 꼭 옷 한 벌이랍디다. 이 공님은, 이제는 전 재산을 나누어줘 버리고 옷 한 벌인데 무명베로 바지저고리, 아무것도 없어. 속옷도 없고 바지저고리 일 년 열 두 달 입으세요. 두벌이 아니에요. 한 벌이에요.
그럼 밤중에 딱 빨아가지고 입으시지. 두 벌이 아니에요. 여름에는 그 옷을 어떻게 입었냐? 마을 아낙네들이 그 때는 조 다린 물, 그 물 버리지 마세요. 찌꺼기 그걸 가져다가 담그시면 우중충 충 하니 잿빛이 난다 그래요. 그 물인데 그 옷을 한 벌을 입고 사시면 여름에는 얼마나 덥겠냐는 거예요. 겨울에는 얼마나 춥고, 옷 한 벌인데 모든 오신 손님들이 겨울에 보니까 이 공님, 여름 같으면 얼마나 더우시오? 예수 믿는 사람이 그런 소리를 하냐고, 나는 하나님께서 이렇게 시원하게 해 주신다고, 전혀 덥지 않다고, 또 겨울에 홑옷인데 아주 춥지 않습니까? 그때 시절에 아이고, 이렇게 추운데 이 공님 어떻게 겉옷을 안 입고 사십니까? 어떻게 속들이 없냐고 나는 예수님을 사랑하니까 몸이 뜨겁다. 아주 덥다고 다시 말하면 계절을 초월해요. 춘하추동을 초월하신 분이지요. 몸 안에서 그런 기운이 났어. 그런다고 합디다. 확실히 능이 있는 분은 기운을 조절해요. 자신은 몰라요. 기후를 초월하시니까, 그러시고 그쯤 사신분이 약을 먹는 것은 부끄럽지요. 약을 먹는다는 것은 하나님을 시험한다고 보십니다. 아버지를 의심하고, 아버지가 나를 얼마나 사랑하시는데 다 필요해서 병도 주신 것인데 내가 어떻게 해서 아버지한테 고발 하냐? 어떻게 아버지를 불평 하냐? ‘아버지, 나 싫소.’ 약을 안자셨지요. 그 분은 그러나 모방하니까 죄입디다. 모두 안 먹었거든요. 억지로 안 먹어요. 이 선생님은 그 분은 절대 약을 못 잡수신 거예요. 죽게 되면 고대로 참고 기도하셔. 그렇게 하셨답니다. 아까 지금 살아계신 장로님이 그 이야기해요. 그 분이 본대로 들은 대로, 한번은 겨울에 올라갔는데 산당으로, 산당은 혼자 있는 집이라는 뜻이에요. 마을에서 멀어요.
그런데 올라 가신지가 석 달이니까 거의 석 달 굶으셨는지 자셨더라도 안 잡수셨고 석 달 불을 안 때시고 성경을 보고 앉아계시다가 사람의 몸은 유한하지 않아요? 원체 영하로 내려가니까 몸이 얼어버린 거예요. 그래 올라가 뵈었더니 몸이 얼어계시더라 그래요. 산당에, 그러니까 아이고 잘 오셨어요. 몸이 딱 얼었으니까 어떱니까? 어서 방으로 들어오라고 내 몸 흔들라고 뻣뻣하니까 딱 얼어붙은 그 고기 같아가지고 뻣뻣하니까 막 흔들었답니다. 청년이니까, 뭐 약 십분 삼십 분 막 흔드니까 피가 돌아 몸이 녹았어요. 그러니까 막 열이 나시는데 풀어가지고 굶었다가 먹으면 얼굴이 빨개지고 얼었다 녹으면 몸에 열이나. 나를 얼음이 있는 연못에 연못이 있어요. 연못이 꽉 얼었어. 연못으로 업고 가십시다. 얼음을 돌로 막 깨고, 물을 찌끄러라. 사람이 죽을 것 같아서 찌끄러 드리지 못했다 합디다. 마음이 괴로워서 나 못 하겠소. 그럼 바가지 나 줘라. 친히 연못에서 물을 퍼가지고 막 몸에 찌끄르세요. 얼마나 몸에 열이 났든지 김이 확 올라오시더라. 그래요. 아 이제 살겠다. 방으로 들어가자. 그리고는 막으로 가자고 다 죽어가던 양반이 털 털 털고 둘이 같이 내려오시더라고 그래서 장로님 모시고 마을로 가자. 내려오셨다고 꼭 거짓말 같더라고 자기가 목격 했으니까 이 말이지, 어찌 그럴 수 있냐는 거예요. 굶으면 어찌합니까? 몸이 얼어붙지. 그대는 상복 장로님 덕분에 살아나신 거지. 그렇게 하시고 원체 안 잡수시고 몸에 병이 들면 아주 많이 아프시더라. 그래요. 그러니까 전신이 전혀 마비되어가지고 말을 안 들으면 다리를 끌고 산속으로 올라가시더라. 그래요. 기도하러 기어이 기도하고 몸이 풀어진 다음에 내려오시지.
그러니까 다시 말하면 일체 약을 안 쓰셨어요. 약을 쓴다는 생각을 못 했지요. 그 전통이 지금도 내려오고 있어요. 그 분 그대로 하신 분이 계세요. 약을 안 쓰시고 또 육식이야. 아까 말씀하셨지요. 고기도 안 잡수셨다고 하니까 종래의 구호사업 때문에 부분적인 개방 하셨지요. 이 선생님이 먹을 사람은 먹으라. 지금도 저하고 있어요. 자매들 먹으라 하면 안 먹는 것이 아니고 못 먹어요. 막 토할라 하니까 천성적으로 생활이 그렇게 되어가지고 집에서 고기를 해도 몇 사람 안 먹어요. 다른 사람 전혀 안 먹어요. 그럼 그건 계율은 아닙니다. 먹지마라. 그건 아니에요. 마음 바탕에서 그래요. 도저히 고기를 못 먹는 사람이 있고 식구가 구분이 둘입니다. 약도 지금도 안 먹는 사람도 있어요. 스스로, 죽으면 죽어도 약 안 먹어요. 먹을 사람은 먹고 그런데 그렇게 지키시던 분이 곡성 김 장로님 돌아가셨습니다. 그분은 절대 죽어도 약을 안 드셔. 그러니까 80 살다 가셨지요. 들어보십시오. 이 공님 같은 분은 천작이야. 토종, 일체 선교사나 기성 목사나 집사님에게 누구 배운 일 없어요. 얻은 것은 목수한테 얻은 성경 그거에요. 그것 가지고 자기가 자습을 한 거예요. 독학으로 말씀을 깨닫고 참으로 통하시고 영으로 통하시고 너무 인격적이세요. 일체 재산을 그렇게 정리 하시고 얼마나 똑 바르십니까? 전 면을 구하시다가 그게 위선인줄 알고 딱 끊어버리고 전부 재산을 노회에 바쳐버리고 그리고 은혜 받은 조카 부인한테는 일 년 먹을 만큼 양식 하라고 두 마지기씩 분배하시고.
사모님 이야기 하고 끝내겠는데요. 사모님은 그런 제자가 없어요. 해방 후에 제가 뵈었습니다. 그런데 등광리에 한번 찾아가 뵈었습니다. 본대로 제가 말씀드리지요. 꼭 이 공님이 보던 성경 신구약 합부입니다. 그걸 보라고 주신 거예요. 그러니까 이 공님이 보던 성경을 받아가지고 보신 성경이고요. 국문은 이 공님이 가르쳤어요. 그렇게 성경 보시고 그야말로 청빈낙도야. 그럼 옷을 한 20년 입었을까요? 뭐 시집갈 때 입은 옷이니까 속옷, 속옷이 다 떨어지고 무릎위에 조금 있어요. 꼭 털 빠진 장 닭, 또 치마를 몇십 년 입었을까? 이 말만 남았습디다. 말, 옛날 삼베 아니면 무명 아닙니까? 무릎 밑으로는 다 떨어져서 없어요. 산에 나무 다니시고 일하러 다니시니까 다 전혀 천이 없어요. 무릎 밑으로는 남자와 비슷해요. 그러신데, 아 들어오세요. 그러니까 지금도 이 상복 장로님 동생 집이 지금도 있습니다. 상복 장로님 동생 집 뒷방에 사셨어요. 그런데, 그 집 이 예수 신자들을 꼭 방을 내주신 방입니다. 불쌍한 사람이 살고나가고 그 방인데, 한 평 못 되어요. 그런 집인데 그럼 댁이어서 그런지 몰라도 대로 죽석을 짰으니까 한 30년 더 깔았지요. 그러니까 대인데 달아져갖고 살이 다 나와 있어. 가에만 조금 남아있어요. 죽석이, 그러면 그 어머니가 덮던 이불은 방석만 해요. 요도 이불도 없고, 베개는 무엇이냐? 돌이 하나 있어요. 땅바닥이 흙이고 그 이야기 하셨어요.
나는 죄녀요. 죄녀가 어떻게 하늘을 봅니까? 잠이 오면 개잠 옆으로 한숨 자고 죄녀가 어떻게 베개를 베냐 그거에요. 돌 베고 한숨 자고 하늘을 보고 어떻게 자냐 이거에요. 그런데 내 낮밥이요. 이왕 왔으니 잡수고 가시오. 일본 시대는 그릇이 없으니까 싸리 떠다 얹지요. 싸리 대를 칡 순으로 엮지요. 고거에요 싸리 대 거기다가 도토리 3분의 1, 보리가 3분의 1, 콩 한 3분의 1, 꺼멉디다. 내가 낮밥 하려고 했는데 먹고 가라고 반찬은 조그마한 검정 뚝배기에다가 된장찌개 수저를 주시는데 아이고 미안해요. 수저가 이것 뿐이여. 수저가 반달 반쯤 닳고 없어요. 그걸 주면서 그냥 가면 섭섭하니까 먹고 가라고 먹어 보려니까 못 먹겠어요. 쓰고 어찌되었든지 그때 참 감격이 됩디다. 먼데서 봤지 실지 비밀은 모르지 않습니까? 실지 생활 어머니 실지 생활이요. 돌베개 베시고 요도 이불도 아닌 것 하나 배에다 대고, 옆으로 누워계신다. 속에 말 다 하신거지요. 그게 상복 장로님 신자가 수십 명 있거든요. 그러니까 ‘어머니, 나무 해왔소.’ ‘지고 가시오.’ ‘이 공님 유언했소.’ 늙어가면서 제자들한테 따뜻하니 밥 얻어먹고 편히 살면 안 된다고 충고하고 가셨는데 나는 이 공님 말씀 지켜야 한다고 당신이 이 나무 안지고 가면 나 이집에 안산다고 기어이 지고 가야해. 절대 나무 한 짐도 갖다 준 거 안 땠어요.
또 제자들이 가을이라도 쌀 한 되 가져오면 절대 거절해요. 내 손으로 농사 할 수 있다고 두 마지기 농사하면 먹고 남아. 이 공님의 부탁이야. 당신 늙어가면서 제자들이 가져오면 받지 말라고, 철칙이야. 절대 안 받았어. 그 정신이 불란서 떼제가 그럽니다. 70명 회원 있어도 절대 누구한테 돈 10원도 안 받아. 자립정신 이지요. 거기 하나님이 같이하지. 얻어먹는 버릇 하면 배만 부르지. 정신이 죽는단 말씀입니다. 보통 쉬운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 보십시오. 아이고, 이 공님 무정한 이 공님, 그 옛날 사실 때 하도 인제 고추를 심을 량으로 밭을 개간해. 고추를 심느라고 내가 바랭이를 캐놨더니 가만히 봐두셨다가 성경보고 있더니 해가질 무렵에 나와서 사모님이 고추를 심기위해서 뽑아 논 바랭이를 다른데 갖다가 개간해가지고 풀 없는데다 다 심어주고 물을 줬다 그럽니다. 이 공님이 그래 울었답니다. 둘이 먹으려 면서 나 혼자 먹을 것도 아니고 내가심은 고추를 물도 안주더니 내가 뽑아버린 풀이 불쌍하다고 물을 주고 있으니 저런 놈의 영감이 아이고 못 살겠다. 그래서 개가해 버렸지요. 개가를 하고 싶어서 간 것도 아니야. 그런데 알고 보니 내가 얼마나 잘못 했는가? 그거지요. 말년에 그 이야기 하세요. 산 속에서 예수 믿다가 은둔하시고 굶어 죽는다는데 그때는 그 분을 못 찾아봐요. 박해가 와요. 예수 믿는 사람을 일본 정부가 미워하는 때니까 누가 가봅니까? 혼자 굶어 죽으신다니까 아까 말씀대로 내가 쑥을 캐드려야겠다. 그 마음이 가슴에서 우러나오니까 찾아갔어요.
찾아갔는데 이 마지막 이야기지요. 엄 목사님이 우리한테 이야기 듣고 썼는데 이야기 하면 마지막 섬기는 장면입니다. 원체 못 잡수시고 몸이 가련하시고 영양부족이고 뼈만 남아서 앉지를 못하세요. 그러니까 부인 아닙니까? 부부일체야. 거기에 무슨 다른 것이 있겠습니까? 석 달을 뒤에서 보듬어 안았다 그래요. 왜 혼자 기동을 못해 갓난 애기가 되어버렸어. 꼭 뒤에서 안고 있어요. 24시간 밥해먹을 때 잠깐 나갔다오고 갔다 들어오고 어느 날 나는 쑥을 안 먹을 랍니다. 가을이 되겠지요. 그럼 무엇 잡수시려고 아 나 먹을 것 많소. 나는 물 먹을 랍니다. 그러시더라는 거예요. 그래 밥을 해갖고 혼자 잡수시는데 냉수만 잡수시더라. 그래요. 약 한달, 하루는 겨울에 들어서지요. 오늘부터는 물도 그만 먹을랍니다. 무얼 잡수실라 그러시오? 나는 오늘부터 공기 먹어야겠소. 일체 물도 안 잡수셔. 그날부터 그래 몸이 애기가 되어 벌려 갖고 전혀 혼자 숨이 안 쉬어져요. 아주 몸에 진했지요. 생명이 숨을 쉴 때마다 뒤에서 보듬고 앉아서 흔든대요. 숨이 들어가고 나오도록 이렇게 24시간 봉사했어요. 사모님이, 성경 말씀 늘 해주시고 내가 죽는 것 아니다. 나는 왔다 간다. 그러니까 당신도 곧 오니까 절대 섭섭하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분명히 알라. 나 먼저 가는데 곧 올 것 아니냐? 절대 섭섭해 하지 말라. 나 죽으면 울지 마라. 그러고 훈원(訓願) 하셨지요. 그런데 그럼 보십시오. 공기 잡수신다 할 때 엄동설한이 되어가지고는 눈이 많이 와서 추우니까 방으로 갖고 가셨어요. 밥을 하루 세 때 잡수시니까 추우니까 문을 딱 닫고 밥을 먹으면 부인 이제 혼자 잡수시오? 아니 밥을 드려도 안 잡수시는 분이 무슨 혼자 먹느냐고 하시오? 아니 나는 공기 먹지 않소? 문 열어 놓으라고, 아 그때 사모님이 깨달았어요. 진짜 공기를 잡수시는 구나. 그래 돌아가실 때까지 엄동설한에 문을 안 닫았다 그래요. 어머니 사랑이에요. 부인의 사랑 이 공님이 공기 잡수시라고 문을 안 닫았어요. 아무리 추워도 본인은 춥지. 그 이야기 하세요. 아 이 공님이 공기 잡수시는데 내가 속도 없이 문을 닫았구나. 깨달았어요. 그렇게 살았다는 이야기를 죽 해주세요. 다른 분들도 들었는가? 몰라도 마지막 물 잡수시다가 공기 잡수시고 생명은 안 먹으면 가지 않습니까? 마지막에 혼자는 기동이 안 되니까 완전히 애기가 되시고 사모님이 일체 애기같이 키우신 거지요. 임종 할 때까지 그렇게 하셨다 그래요.
럼 지금 돌아가실 때 광경, 청춘 부인 30대, 오늘부터는 하나님이 안준 자식을 어떻게 낳습니까? 성경 말씀 보니까 오늘부터는 자식 안 낳기로 합시다. 안 주신 것을 낳으려고 하는 것도 잘못이오. 그러니까 우리 둘이 남매로 삽시다. 그게 선언이에요. 그때가 옛날이야. 몇 십 년 전이고 지금은 노인이 되어가지고 두 분이 남녀가 아니야. 하나야. 한 몸, 말씀이 이루어지지요. 성경 말씀이 욕심을 초월하는 건 일체 두 몸이 한 몸이야. 남녀가 한 몸이라고, 다른 이야기가 모든 역사가 많지만 다 말할 수 없고 개가 할 때 더 사랑하신거야. 그러니까 선생님이 뒷방에서 공부할 때 가만히 내빼버렸거든. 뒷방에 계신 줄 알았지요. 부인이, 밥을 안 해주니까 이렇게 말씀하십디다. 이제 아랫집에서 공부 하실 때 우 아래 방인데 절대 각방 쓰시는데 방 가운데 밥그릇 하나 왔다 갔다 할 만큼 구멍을 뚫어놨어요. 약속이야. 부인혼자 밥 먹을 때는 반드시 밥 한 가지 반찬 한 가지 주시오. 약속 했어요. 사모님 그 이야기 하십디다. 혼자 먹을 수 없고 꼭 밥 두 그릇해서 구멍에다 차려 넣는다. 그럼 아침 차려놓고 점심 그릇 가지고 가면 아침밥 그대로 있어. 그럼 점심 딱 차려놓고 또 밤에 가보면 안자셨어요. 말도 못해요. 서로 방이 다르니까 그럼 하루 이틀 열흘 한 달 쭉 밥 안 잡수셔. 다시 말하면 성경에 취해 있어요. 가기 전에 그랬단 말이에요. 성경에 마음이 쑥 빠져가지고 시간 가는 줄 몰라. 부인의 증거지요. 며칠 밥을 혼자 먹기 부끄러우니까 또 해놓고 또 해놓고, 에라 재미없다. 그래 재혼해 버렸어요. 인제 가서 잘 사는데 걱정되시니까 철따라 옷하고 양식하고 손수 짊어지시고 수십 리 길을 고개를 넘어서 가져다주실 때 얼마나 창피하시겠어요? 인제 가서 잘 사는데 그러니까 다 아시지요. 여기를 왜 찾아와 당신 다시는 찾아오지 말라고 구정물을 갖고 와서 확 뿌려버렸다지 않아요? 절대 찾아오지 말라고, 그러니까 부인 예수 잊어버리지 마시오. 그 부탁하러 왔어요. 그 말하시고 가신 거예요. 아무리 거기서 못 오게 해도 예수 잊어버리지 말고 사시오. 그 말하고 가시고, 그 남편더러 지금은 필요해서 같이 사시지만 당신이 불편할 때는 절대로 다른 데로 보내면 안 돼요. 내 집으로 보내라고 약속 합시다. 갑자기 황소가 죽어버리지 않아요? 그래 남편이 놀래가지고 겁을 집어먹고 쫒아냈어. 부인을, 큰일 났다. 의인의 부인을 내가 손댔다. 얼른 가라. 내 집이 망할라. 그래 돌아오셨어요.
그럼 이 공님이 이 씨 문중 양반인데 가문에서 데모가 나. 저런 이를 어떻게 용납 하냐? 젊잖은 마을에 절대 못 들어와. 문중이 떠들 때 형님을 찾아가서 형님 여자라는 것은 속을 못 챙기면 나이가 70되어도 애기입니다. 용서해야겠습니다. 절대 내 문중은 용서 못 한다. 너 그 사람 용납하지마라. 그래도 제게 책임 있습니다. 그리고 대문 잠궈 놓고 일체 마을에도 못 가게 했어요. 마당에 딱 샘을 파드렸어. 딱 보호하신 거예요. 제가 아는 것은 그렇게 알고 있어요. 그때 나이가 젊었어요. 살 수 없어요. 그때 두 번 내뺀 거예요. 또 그럼 수소문해서 또 찾아가셔서 옷하고 모든 것은 내 책임이고 당신이 뭔 책임이야. 내가 먼저 앞서고 당신 뒷바라지하는데 고생한다. 너무 고생한다. 다시 와야 한다. 예수이름만 잊어버리지 마라. 부탁하시고 그러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