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0. 26
다니엘서 13장~14장
(다니 13,44)
주님께서 수산나의
목소리를 들으셨다.
묵상ㅡ
들으셨단다.
임금도, 판관도, 감독관도 아닌,
만군의 하느님 우리 주님께서 말이다.
그럼 된거다. 살아난 거다.
억울해서 온몸의 기가 다 막혔을 그녀,
자기잘못이라고는 자기처소에서 시녀들
보호아래 목욕을 한것 뿐인데,
어찌 이런일이!
재판관 앞에서 멘붕이 되고도 남을
상황인데, 마음과 시선을 하늘로
들어올려 주님을 찾으며 외쳤던 수산나,
나는 그녀의 이런 용기가 남다르게
다가왔다.
절대절명의 순간, 곧 죽을지도 모를
공포의 순간에, 주님을 찾는다는건,
주님밖에는 자기를 살릴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발빠른 인식,
다니엘이 사자굴에서 주님께 바친
믿음의 기도와 다르지 않다.
살면서 억울한 일을 당할때가
누구에게든 있을 것이다.
수산나처럼 아무 잘못도 없이
억울한 일을 당할 때도 있지만 자기가
원인제공을 했거나 그런 의도가
아니었는데 소통 과정에서 억울한
일을 겪을 때도 있다.
우리는 조금만 억울해도 자존심
상해하면서 팔딱빨딱 뛰고,
죽네 사네 난리가 난다.
어떻게든 사실규명을 해서 결백을
주장하려고 안간힘을 쓰다가 되레
상처를 받고, 하느님마저
멀리하게 된다.
나 역시 억울함에 빠져서 오랫동안
매듭이 묶였던 시간이 있었는데,
그것에서 헤어나올수 있었던 것은,
더 억울한 사람의 사연에 집중
하면서부터다.
누구일까?
독립투사들일까.
민주화투쟁한 이들일까.
내가 아는 사람,
사람의 아들이면서 신의 아들인
예수그리스도, 우리 주님이시다.
아는 사람이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살다가 집떠나 일하며 죽도록
고생만하다가 떠나도 세상 불쌍해서
목놓아 울게 된다.
그런데 우리 예수님,
잘못한거 한개도 없고 오히려 당신
가진것 다 내어주시고, 죽을사람
살리시고 병든자 고치시고
감옥에 있는 자 해방 시켜주시며
바보처럼 사셨는데 가장 비참하고
수치스러운 십자가형에 처해졌다.
그 죽음에 깃든 억울함,
그 감정에 내 마음이
머물렀을때,
"아, 그분은 더 억울하셨는데,
그랬었지, 그렇게 운명하셨지"
남의 탓하던 원망의 매듭을
풀고, 내가 잘못해서 묶은
매듭푸터 풀자는 마음이
생기면서 자유로워졌었다.
수산나가 얼마나 억울했을지,
공감이 되고도 남았다.
또 그녀가 절박한 순간에
하늘을 보면서 기도했던
그 내용이, 참으로
긴박하고 절절하다.
(다니 13,42)
“아, 영원하신 하느님!
당신께서는 감추어진
것을 아시고 무슨 일이든
일어나기 전에 미리 다 아십니다.
그리하여 주님께서는 수산나의 목소리를
들으셨던 것이다.
들으심과 동시에, 다니엘의 내면에 있는
거룩한 영을 깨우시어,
지혜로운 판결을 하게 해주신거다.
주님,
당신의 억울하신 죽음이,
수산나와 같은 이들이
홀로 외롭게 억울해할때
위로와 희망이 되고
매듭에서 풀리는 축복의
통로가 되어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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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피나의 성경통독 묵상글
124.억울했던 수산나, 어찌 되었을까!(다니엘서 13장~14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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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요셉피나님 좋은글
고맙습니다
묵상글 잘 읽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