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렌디피티(Serendipity) 2 / 장은경
23년 동안 대학 강사를 했다. 그 자리는 앉아 있을수록 앉은 것도 서 있는 것도 아닌 어정쩡한 자세가 되었다.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니다. 가르치는 게 내 일이라 여겼다. 하지만 남들은 쉽게 말을 보탰다. “아직도?”, “그 나이면 포기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강사는 직업이 아니지.” 듣기 싫다고 한 소리 하면, 먼저 무례하게 굴어놓고 도리어 내가 예민하다고 했다. ‘웬 참견?’ 하고 말았다.
그런 내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박근혜 정부의 강사법 시행 예고 뉴스였다. 대학가는 강사 수를 줄이고 전임을 채용하는 방향으로 갔다. 다음 학기 강의 걱정으로 나 역시 출렁거렸다. 안 그래도 줄어들고 있는 터였다. 몇 년을 다니던 어떤 학교는 학과가 없어졌다. 다른 대학에는 엄마 병간호로 다음 학기 수업이 어렵다고 전했다. 한 번 거절하면 다시 기회가 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언제든 대체될 수 있는 자리니까. 그러다 보니 한 군데만 남았다.
임용에 도전했지만 번번이 떨어졌다. 시간이 갈수록 기회는 오지 않았다. 다른 대학도 사정이 비슷했다. 더 이상 서류를 내지 않았다. 신임 교수들이 들어오면서 점차 낯선 과목이 주어졌다. ‘그래, 방학 동안 열심히 준비하면 되지’ 하며 받아들였지만, 학기가 거듭 될 수록 ‘내 전공이 뭐지?’ 하는 의문이 들었다. 답을 할 수 없었다.
어느 해 가을, 1년에 한 번 있는 여섯 시간짜리 연강이 있는 날이었다. 다른 해보다 일찍 출발했다. 여유 있게 이른 점심을 먹겠다는 계산이었다. 내 맘과는 달리 내비게이션은 먹통이고 지도는 두고 오는 바람에, 광주 제2순환 도로를 세 번이나 돌았다. 톨게이트 표지판이 보일 때마다 운전대를 꽉 쥔 손은 굳고 상체는 곧은 일자 자세가 됐다. 행정실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어딘지도 모르는 빈 주유소에 섰다. 학교에서 연락이 왔다. 사정을 말했더니 늦게 출발해 놓고 핑계대는 사람 취급을 했다. 지나가는 차를 겨우 붙잡고 길을 물었다. 도착하자마자 강의동 입구에 대충 주차하고 혹시 몰라 차 키를 놔 둔 채 뛰어 올라갔다. 15분쯤 늦었다. 조교는 말 한마디 없이 출석부를 건넸다. 강의실에 들어서며 큰소리로 사과하고 양해를 구했다. 반응이 없었다. 수업을 시작하려는데 학생 한 명이 낮은 목소리로 그런 때는 택시를 불러 따라 오면 된다고 했다. 어찌어찌 간신히 끝냈다. 정문을 나서는 데 소나기가 왔다. 와이퍼 3단으로도 앞이 보이지 않았다. 천둥, 번개까지. 세상이 거짓말하는 것 같았다. 한밤중이 돼서야 집에 왔다. 지각한 나를 용서하기 힘들었다. 이 후에도 요청이 왔지만 갈 수 없었다.
이유 없이 살이 빠졌다.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팠다. 계단을 오르면 심장이 터질 듯 뛰었고 손과 다리가 떨렸다. 머릿속과 몸이 제멋대로였다. 3년 단위 계약으로 바뀌고 채용 신청서를 쓰는데 며칠째 모니터만 바라봤다. 계속해야 할 명분보다 그만두고 싶은 이유가 더 많았다. 그런데도 내가 무엇을 어쩌고 싶은지 알 수가 없었다. 결국 자기소개서에 편지를 썼다. 코로나로 온라인 강의를 하면서 수업 외에는 말할 일이 별로 없었다. 평소 원색 옷을 즐겨 입었는데 대면 강의를 시작할 무렵에는 무채색으로 바뀌었다. 종강하고 바로 제주도를 갔다. 올레길을 걷는 4일 내내 수없이 내게 물었다. 어떻게 하고 싶은지. 기말시험 감독을 끝내고 교내를 차로 구석구석 아주 천천히 돌았다. 그뒤로 단 한 번도 가지 않았다. 어느 날 통장에 학교 이름으로 900여만 원이 들어왔다. 3년 계약 퇴직금이지만 내겐 23년의 시간이었다.
학교를 떠나니 할 줄 아는 것이라고는 없는 사람이었다. 뭐든지 할 수 있을 거라고 장담했는데 현실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길을 잃었으니 찾으면 된다고 스스로 다독였다. 점점 어떤 것에도 집중할 수가 없었다. 뭐라도 해야 했다. 온 집안을 뒤집어 가며 청소했다. 서재 정리하는 데 며칠이 걸렸다. 책장을 넘기고 있자니 하나둘 떠올랐다. 처음 강의를 하던 날, 고개 한 번 제대로 못 들고 혼자 원고만 읽었다. 3학점짜리 연강을 한 시간 만에 끝냈다. 서로 표정 관리가 안 됐다. 한번은 학교에서 밤새워 학위 논문을 쓰는데 갑자기 불이 나갔다. 창밖을 보니 온 세상이 하얬다. 폭설주의보가 내려 학교에 갇힌 것보다 눈앞에서 날아간 파일에 놀라, 빛 한 점 없는 창문에 기대 한국전력공사에 전화해서 살려달라고 사정했다. 전기가 들어 올 때까지 추운 줄도 몰랐다. 학회 마감일이 코앞인데 한 문장 완성하면 한 시간이 훌쩍 지나서 스스로 채근했던 일도 또렷하다. 그런 기억들이 묻어 있는 책만 한쪽에 쌓였다. 남겨둔 만큼만 보고 싶었다. 앞으로도 돌아갈 일은 없으며, 현재의 나만 직시하겠다는 생각에 누구에게도 전공과 전직을 말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그리고 집에만 있었다.
그러다 문득 떠난 여행, 서울숲 영풍문고에서의 강렬한 경험은 어쩌면 순수한 열정이 아직 내게 남아 있다고 머리보다 몸이 먼저 일깨워 준 신호가 아니었을까? 돌아보면 논문 때문에 밤을 새우던 시기나 글쓰기 연습을 하는 요즘이나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나는 예전부터 무언가에 깊이 빠져들 수 있는 사람이었다. 첫 번째 과제 할 때는 새벽녘 책상 앞에 앉으면 어느새 해 질 무렵이 되곤 했다. 배도 고프지 않았다. 그리고 오랜만에 깊은 잠을 잤다.
글을 쓰다 보면 생각도 걱정도 없이 오로지 나만 있다. 진짜 내 의자가 어디 있는지 아직 모르지만, 지금은 여기가 편하니 자꾸 앉고 싶다. 다른 자리에 마음이 가면 거기로 가도 된다. 어디든 나 자신만 잃지 않으면 된다.
첫댓글 선생님을 잘 알 수 있는 깊이 있는 글이네요. 잘 읽었습니다.
23년이라는 세월의 무게와 글쓰기 의자를 찾아내신 과정이 고스란히 전해져 가슴이 뭉클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