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무엇과 같은가
인생이란 무엇인가? 인류 역사에서 무수한 철학자, 사상가, 시인, 성직자 들은 물론이요 꼭 그와같은 지식인이 아니더라도 동서고금을 통해서 이 세상에 살아오고 있는 모든 필부필남들이라면 이 명제에 대해 한 두 번 생각해보지 않은 사람이 없을 듯하다. 그러면서도 또한 아무도 명쾌한 답을 들려주지 못하는 명제 또한 이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여기서는 중국 고대 동진(東晋)이라는 나라의 시인이자, 사상가인 도연명(陶淵明, 365~427)의 잡시(雜詩) 두 편을 감상해보고자 한다. 혹시라도 ‘인생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바늘 끝 같은 빛의 한 줄기라도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담고 있다.
잡시1(雜詩1)
結廬在人境 결려재인경
而無車馬喧 이무거마훤
問君何能爾 문군하능이
心遠地自偏 심원지자편
採菊東籬下 채국동리하
悠然見南山 유연견남산
山氣日夕佳 산기일석가
飛鳥相與還 비조상여환
此間有眞意 차간유진의
欲辯已忘言 욕변이망언
오두막 지어 사람들 속에 살아도
수레와 말이 오가는 시끄러움을 모르네
묻노니 어찌하여 그런고
마음이 세속에서 멀어지니 사는 곳도 절로 외진 곳이 되더라.
동편 울타리 밑 국화를 따다가 허리 펴니
한가로이 남산이 눈에 비쳐 오는구나.
산 모습은 아침저녁으로 좋은데
날짐승은 무리 지어 날아드는구나
이러한 속에 진의가 담겨 있으니
뭐라 해야 할는지 말을 잊었노라
도연명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유명한 작품이다.
1,2구에서 오두막집을 지어놓고 마을 사람들 속에 섞여 살고 있어도 마을 길로 다니는 소달구지, 우마차, 사람들의 소리가 시끄럽거나 불편하게 들리지 않는다고 한다. 도연명은 벼슬이나 도회지 생활을 버리고 자연에 묻혀 지내기를 좋아하는 시인이었다. 시골에서 한가롭고 여유로운 전원생활을 하도 있는 모습이다. 3,4구에서 번잡하고, 인정이 메마른 세속을 벗어나면 절로 그렇게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 있음을 말한다. 5,6구에서 집 울타리에서 시인이 허리 펴고 서 있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아마도 동쪽 울타리 아래 국화를 심어 놓은가 보다. 국화꽃을 따다가 허리 펴고 눈을 뜨니 마을 앞의 아름다운 남산이 지은이를 맞이한다. 시인의 자족하는 한가함이 물씬 풍기는 정경이다.
7, 8구에서 아침, 저녁 언제 보아도 좋은 산 모습과 무리지어 날아다니는 온갖 날짐승들을 대비시켜 자연의 미학을 표현하면서, 마지막 9, 10구에서 이러한 자연 속에서 우리 인생의 참다운 의미가 담겨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을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없다고 노래하고 있다. 그렇다. 한 폭의 그림 같은 자연 속에서 시인이 느끼는 인생의 참 의미를 어떻게 말로 설명할 수 있겠는가. 사실 장황한 설명이나 어설픈 해설이 오히려 현상이나 대상의 진정한 의미를 왜곡하거나 망쳐버리기가 쉽다. 그래서 노자(老子)는 도덕경 첫머리 글에서 ‘도를 도라고 말하면 그것은 본연의 도가 아니고(道可道非常道), 이름을 이름지우면 그것은 참다운 실재의 이름이 아니다(名可名 非常名)’라고 하였던 것이다.
도연명은 전술한바와 같이 62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평생을 거의 산수은거(山水隱居)와 전원생활을 하면서 살았다. 명문가의 후손이었으나 그가 태어났을 때에는 시골의 소지주 정도의 넉넉하지 못한 가정환경이었다. 아마도 집안 사정 때문에 29살에 벼슬길에 나섰으나 사표와 재임명을 여러차례 반복하다가 마침내 41세에 벼슬을 걷어차 버리고 고향 마을로 돌아간다. 41살에 마지막 벼슬인 팽택현(彭澤縣)의 지사(知事)로 근무하다가 몇 달만에 사표를 던지고 만다. 지사는 작은 고을(현)의 현령과 같은 낮은 벼슬자리이다. 기록에는 당시 그의 누이의 죽음을 핑계로 사직서를 제출한 것으로 되어있으나, 실제로는 아래와 같은 고사가 전해저온다.
상급 관청의 관리가 새로 부임하면서 신임 관리가 초도순시를 다니게 되었다. 상급 관청에서는 감독관이 순시를 나갈 때, 지역의 현령이나 지사는 의관속대(衣冠束帶)하고 영접해야 한다는 지시가 내려왔다. 그러자 도연명은 “내가 오두미(五斗米 : 5말의 쌀, 즉 적은 봉급)를 위해 향리의 소인에게 허리를 굽힐 수 없다”고 하면서 그 날로 바로 사직서를 던지고 시골 고향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이 때, 그가 지은 귀거래사(歸去來辭)는 그의 지조와 기개를 드러내는 유명한 작품이다. 자연으로 돌아와 산수은거의 생활과 전원 속에서 농사를 지으며 힘들고 어렵게 살아가는 일반 백성들과 함께 하는 삶을 통해서 지어지는 그의 시들은 대부분 서민들의 감정과 애환을 그린 작품들이다.
아래에는 그의 두 번째 잡시를 감상하기로 한다.
잡시2(雜詩2)
人生無根蔕 인생무근체
飄如陌上塵 표여맥상진
分散逐風轉 분산축풍전
此已非常身 차이비상신
落地爲兄弟 낙지위형제
何必骨肉親 하필골육친
得歡當作樂 득환당작낙
斗酒聚比鄰 두주취비린
盛年不重來 성년부중래
一日再難晨 일일재난신
及時當勉勵 급시당면려
歲月不待人 세월부대인
인생은 뿌리 없이 떠다니는 것
밭두렁의 먼지처럼 표연한 것이네
바람 따라 흐트러져 굴러다니는
인간은 원래 무상한 몸
땅에 태어난 모두가 형제이니
어찌 반드시 골육만이 육친인가
기쁜 일 생기면 마땅히 즐겨야 하니
말술 이웃과 함께 모여 마시라
젊은 시절은 거듭 오지 아니하며
하루에 아침 두 번 맞지 못 한다
때를 놓치지 말고 부지런히 일하라
세월은 사람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인생이란 무엇인가?라는 명제에 대해 사색해보게 하는 명시이다.
인생은 뿌리도 없이 이리저리 떠다니는 밭두렁의 먼지와 같아서 바람 따라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무상한 존재라고 시인은 이야기해준다. 우리 모두 살아가면서 이러한 생각을 한두 번 해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그래서 이 작품은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자아내고 있다. 땅에 태어난 모든 존재는 서로 형제와 같은 것임은 우주적인 생명관을 표방하고 있다. 그래서 시인은 골뮥만이 육친이 아니며 모든 사람이 다 형제이고 모두 귀한 존재라는 박애정신을 보여준다. 어찌 사람뿐이랴. 그의 마음에는 삼라만상 모든 생명체는 모두 존귀함에서 형제와 다름없다는 물아일체(物我一體)사상이 내포되어 있음을 엿볼 수 있다.
7, 8구에서는 기쁜 일에는 이웃과 함께 그 기쁨을 마음껏 즐기고 나누라고 말한다. 이것이 자연의 모습이다. 기쁘면 기뻐하고, 슬픔에는 슬퍼하는 것이 인간의 가장 자연스런 모습이다. 서민적인 인간관과 인간애를 사랑하고 가식과 기교를 모르는 도연명이기에 이런 표현이 가능한 것이다. 그리고 9구에서 12구까지의 표현은 매우 유명하여 이 시를 더욱 애송하게 해주는 시구이다. 또한, 명심보감(明心寶鑑)에도 소개되어 있는 문장들이다. 젊은 시절 거듭오지 않고, 아침도 두 번 오지 않는다는 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자연의 최고 선물인 시간은 멈추지 아니하며, 한 번 지나간 시간은 결코 반복되지 않으니 때를 놓치지 말고 공부하고, 노력해야 한다는 다분히 교훈적인 시구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도연명이 단지 자연이나 산속 깊이 숨어 살면서 세상 일에 무관심하거나 염세적 삶을 좋아하는시인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기인이거나 신선 같은 삶을 살고자 하는 도인의 삶도 더욱 아니다. 그는 자연 속에서 산수은거의 삶을 살지만 사람을 사랑하고, 자연을 사랑면서도 우리에게 주어진 소중한 삶을 의미 있게 살아야 한다는 다분히 유가적인 사상을 지니고 있는 인물이다. 세월은 사람을 기다려주지 않으므로 우리가 세월을 놓치지 말고 잘 살아야 한다고 마지막 구에서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후세 시인, 묵객은 물론 수많은 유학자, 선비들은 도연명을 존경하고 그를 따르고자 하였다.
그는 집 대문 앞에 버드나무 다섯 그루를 심어 길렀다. 그리고 자신을 오류선생(五柳先生)이라고 스스로를 그렇게 불렀다. 비록 그의 시는 56편 정도로 적은 작품이 전해지고 있지만, 후세 당나라 많은 시인들이 그의 시풍을 따를 정도로 영향을 미쳤으며, 중국 역사에서 육조시대에 최고의 시인으로 그를 꼽고 있다.
경제를 위해서든, 출세를 위해서든 벼슬이나 직장 생활을 하지 않을 수 없는 현대인들인 우리들에게 결코 자신의 영혼이나 지조를 팔아가면서 오두미 몇 말에 매달리지 말 것을 당부하는 도연명 시인. 그러면서도 소중한 인생을 헛되이 보내지 않도록 세월을 놓치지 말고 노력하라고 당부하는 시인 도연명이 천칠백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세상 사람들로부터 존경과 관심을 받고 있는 이유를 짐작하고도 남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