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덕사修德寺(3) - 대웅전 수덕사 대웅전은 안동봉정사 극락전과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1376년) 조사당(1377년) 강릉 객사문과 함께 고려시대를 대표하며 현존하는 건축물로 건축사연구는 물론 미술사 연구에도 매우 귀중한 자료로서 평가받는다. 수덕사 대웅전은 일제강점기 1937년에도 한번의 수리공사가 있었다. 대웅전 전각건물이 퇴락하여 일본인들에 위해 해체수리작업에 들어간 것이다. 이 과정에서 도리를 받치는 장여(長舌)와 화반(花盤)의 밑둥에서 발견된 '지대 원년 무신 4월 17일에 기둥을 세웠다(至大元年戊申四月十七日立柱)'는 묵서명을 통해 수덕사 대웅전은 1308년(고려 충렬왕 34)에 건립되었고 조선시대에는 1528년(중종 23)과 1688년(숙종 14), 1751년(영조 27), 1803년(순조 3)에 각각 몇번의 보수공사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대웅전은 정면3칸 측면 4칸으로 구성되었는데, 정면과 측면의 비는 1: 1.315이다. 대웅전은 석축의 기단위에 세워졌다. 계단은 장대석으로 좌우측에 놓았으며 기단의 맨위층의 갑석 한단은 앞으로 조금 나오게 해서 하부 여섯 단의 기단과 구분하였다.
대웅전의 초석은 자연석 주초(柱礎)를 사용하였다. 대웅전 정면열 평주(平柱)와 우주(隅柱)의 초석들은 기둥이 올려지는 자리에 주좌를 둥근 형태로 돋음하여 놓았다. 주좌는 주초윗면에 기둥을 받치는 부분을 약간 높게 자리새긴 자리를 일러 주좌라고 한다. 고려시대 초석의 형태는 정교한 가공을 하지 않고 자연 그대로의 모양을 취하여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남아있는 목조건축물을 통해 알 수 있다. 수덕사 대웅전 전각의 초석에서 눈여겨보아야 할 곳이 한군데 더 있다. 바로 양측면 중앙의 사각기둥을 받치고 있는 초석의 크기와 이형(異形)이 그것이다.
기둥은 강한 배흘림을 두었으며 기둥의배열은 내부 전,후에 고주를 2개씩 세워 전후 퇴칸형식을 이루었고 외진기둥 위에는 주심포계 양식에서 주로 볼 수 있듯이 평방없이 창방만 돌리고 같은 높이에서 헛첨차를 만들어 퇴량 뺄목인 2제공과 행공첨차를 받도록 하였으며 이것은 헛보머리와 단장여를 받아 외목도리를 받치고 있다.
공포, 두공에 있어서 주두와 소로의 굽은 내반된 곡으로 되어 있으나 완전한 곡선이 아닌 둔각의 형을 이루고 있으며 굽받침을 가지고 있다.
헛첨차와 초제공의 내부는 파련문의 초각을 가진 양봉(樑奉)으로 되었으며 퇴량 위에는 화려한 파련문 장식의 화반의 초방(草枋)을 받치고 있고 주심도리에서 종량 밑까지는 전후3조씩의 우미량을 두었으며 종량위에는 파련장식의 화반과 포대공을 짜 상중도리와 종도리에 연결되는 곡률이 큰 솟을합장과 함께 종도리를 받치고 있어 전후 퇴칸 9량집구조를 이루고 있다.
대웅전의 창호는 정면3칸에 각 칸마다 세짝의 빗살문을, 측면 양쪽 모두 홀출입문을 달아두었다. 배면에도 각 칸마다 두짝의 널문을 달아두었던 흔적이 있으나, 지금은 배면중앙칸에만 이분합의 판문을 달았고 양 옆칸은 회벽으로 마감해 막혀있고 문틀만 남아있는 상태다. 공포는 처마를 길게 내밀게 하기 위한 역학적 장치의 하나로 지붕의 무게를 기둥으로 적절하게 전달해주는 지지대 역할을 하며 또한 중첩되는 부재들의 의장적인 효과를 가장 잘 나타내는 부분이 된다. 수덕사 대웅전의 공포는 기둥위에만 짜여져있는 주심포 형식이다. 대웅전 전각의 내부는 반자(천장)를 꾸미지 않고 서까래가 드러나는 연등천장으로 법당의 개방적 공간감을 살리고 있다. 법당안 2열로 2개의 고주(高住:평주(平柱)보다 키가 큰 기둥. 흔히 안통에서 있어 내진주(內陣柱)라 부른다)를 세웠으며 이 2개의 고주위로 대들보가 얹어졌다. 대들보에는 금룡도가 그려져 있으니 동측 법당안으로 빛이 들어오는 이른 시간에는 감상할 수 있다
평면도
기단 평면도
정면도
측면도(서쪽)
측면도(동쪽)
배면도
종단면도1
종단면도2
횡단면도1
횡단면도2
앙시도
공포 상세도1
공포 상세도2
주두 상세도
소로 상세도 (위의 도면 이미지는 한국의 고건축 제4호에서 발췌)
정면 3칸 측면 4칸의 맞배지붕.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103호로 지정된 삼층석탑. 신라 문무왕 5년에 건립하고 원효대사가 중수하였다고 전해지나 통일신라시대 양식을 한 고려초기의 석탑이다
계단은 장대석으로 좌우측에 놓았다. 기단의 맨위층의 갑석 한단은 앞으로 조금 나오게 해서 하부 여섯 단의 기단과 구분하였다
기둥머리에 헛첨차가 1출목첨차를 받치고 있다. 첨차 끝이 연화두식형(蓮花頭飾形/쌍S자)으로 되어 있어 초기 주심포계의 양식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9량집..................
고주 위의 가구결구 모습.
배흘림 기둥.
서쪽 출입문 옆의 기둥과 주초석.
문선 보수 흔적
문선이 오래되었습니다.
동쪽측면.
배면.
박공에 부착된 지네철과 방환.
내부의 화려한 부재의 꾸밈과 연등천장.(이미지 : 국립문화재연구소)
솟을대공과 파련대공.(이미지 : 국립문화재연구소) |
출처: 나무과자 원문보기 글쓴이: 순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