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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9.14.주일오전 예배설교
설교본문/ 마가복음 9:33~37(신약69쪽)
설교제목/ <뭇 사람을 섬기는 사람이 크다>
서론/
오늘 주일오전 예배말씀은 <뭇 사람을 섬기는 사람이 크다>는 제목으로 전하고자 합니다. 다같이 설교제목을 두번 읽겠습니다. 다같이 설교제목을 두번 읽겠습니다. <뭇 사람을 섬기는 사람이 크다>*2회.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말씀은 누가 크냐에 대한 제자들의 논쟁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입니다. 제자들을 비롯하여 사람들은 누가 더 크고 높은 자리에 있느냐에 관심이 많고, 최고로 높은 자리에 올라가려고 애를 많이 쓰면서 살아갑니다.
세상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고, 하나님을 믿는 우리들도 거반 비슷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같습니다. 나라의 서열은 분명하게 정해져 있는데, 1위는 대통령이고, 2위는 국회의장이고, 3위는 대법원장이고, 4위는 헌법재판소장이고, 5위는 국무총리이고, 6위는 국회부의장이고, 7위는 대법관이고, 8위는 헌법재판관이고, 9위는 국무위원이고, 10위는 광역자치단체장, 장관급기관장, 서울시장, 교육감 등 포함입니다.
여러분,
하나님 나라와 교회에는 서열이 있을까요? 답은 없습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이 주님이시고, 성도들은 종들이자 친구들이자 가족들입니다. 목사님도, 장로님도, 권사님도, 안수집사님도, 집사님도, 성도님도, 서열이 없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종이고, 머슴이고, 성도님들을 섬기고 교회를 관리하는 일꾼입니다.
오늘 우리는 어떤 사람이 진정으로 큰 사람이고, 어떻게 살아갈 때 큰 사람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지를 배우면 좋겠습니다.
본론/
1.누가 더 크냐고 논쟁하는 제자들
첫번째로 살펴볼 점은 누가 더 크냐고 논쟁하는 제자들의 모습입니다.
33절을 보면, 예수님이 가버나움 지역에 이르러 어느 집에 계실 때에 제자들에게 갑자기 질문을 하나를 하였습니다. 무슨 질문이죠? <너희가 길에서 서로 토론한 것이 무엇이냐>. 너희들이 오는 길에 열심히 토론을 한 것같은데, 무엇을 토론하였느냐고 물어보신 것입니다.
이때 제자들은 대답을 못하고 잠잠하였는데, 아무래도 자신들이 토론한 내용이 부끄러웠던 모양입니다. 그들은 예수님과 함께 가버나움으로 오는 길에서 서로 누가 크냐고 쟁론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길을 오면서, 서로 토론하는 주제는 서로 누가 크냐는 뜨거운 논쟁이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단순히 어떤 일에 대한 토론이 아니라 서로의 주장을 세게 하는 논쟁이나 쟁론을 한 것입니다.
논쟁은 자신의 의견을 굽히지 않고 강하게 주장하는 것이고, 쟁론은 서로가 더 많은 기득권을 가지려고, 담판을 지으려고 말다툼을 벌이는 것을 뜻하는데, 제자들은 서로가 자신이 더 크다고 뜨거운 논쟁을 벌였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제자들이 왜 누가 더 크냐는 논쟁을 벌인 것일까요? 누가 더 크냐는 논쟁은 누가 더 높은 자리에 있고, 누가 더 힘이 센 자리에 있고, 서열이 더 높으냐는 논쟁입니다. 제자들만 이런 마음을 가지는 것일까요? 열두 제자들이 누가 더 크냐고, 논쟁을 하게 된 것은 열두 제자 공동체 안에서 서열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음으로 일어난 문제였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열두 제자를 선택할 때 나이나 출신성분이나 지역이나 학벌이나 경제적인 상황을 고려해서 한 것이 아니었고, 철야 기도하시고 하나님과 자신의 원하시는 뜻대로 뽑으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어떤 일을 하실 때 세명의 제자들만 데리고 가신 적이 몇번 있으셨습니다.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 세 제자들만 데리시고 변화산에 가셔서 놀랍게 변형된 모습을 보여주셨고, 또 죽은 나사로를 살려주실 때에도 베드로-야고보- 요한, 세 제자들만 따로 데리고 가셔서 나사로를 살려주는 모습을 보게 해주셨습니다.
당연히 열두 제자들 사이에는 누가 더 크냐는 생각을 가질 수 있는 정황이 드러나는 것처럼 보였을 것입니다. 베드로가 제일 크고, 그 다음은 야고보이고, 그 다음은 요한인 것같은데, 그 다음 네번째는 누구이고, 그 다음은 누구냐? 서로 누가 크냐는 토론과 논쟁은 뜨거운 감자였던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다면 제자들은 누가 더 크냐에 관심이 많았을까요? 제자들이 누가 더 크냐에 관심을 많이 갖은 것은 아마도 예수님이 능력도 많으시고,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형되셔서 이스라엘 나라가 새롭게 독립이 되고 회복이 되면, 높은 자리에 앉아서 권세를 누리며 출세해보려는 속셈도 있었을 것입니다.
마태복음 20장을 보면,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는 예수님께 나와서 두 아들을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해달라고 요청하기까지 한 것을 보면, 제자들이 얼마나 누가 크냐에 관심이 많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
세상에서도 누가 친이냐, 친윤이냐, 최측근이냐, 누가 두번 째이고, 세번째이냐는 논쟁은 보이지 않는 뜨거운 논쟁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가 더 크냐, 교회가 크든 작든 누가 크냐?는 생각은 항상 어디에나 있는 것같습니다. 사람이 사는 곳이라면, 누가 크냐?
세상 사회는 보직이나 직책에 따라서 서열이 분명하지만, 교회나 성도공동체안에는 미묘한 생각을 가지고 서로 눈치를 보거나, 누구의 의견을 물어보야 한다고 말하기도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
여기서 우리는 제자들이 토론하며 쟁론하는 것이 큰 잘못이고 죄라고 생각하기보다도, 사람이 사는 사회이기에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다는 이해가 필요하고, 예수님의 가르침을 듣고 행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도시에 큰 교회 예바당을 가보면, 장로석이 있고, 수석장로석이 따로 정해져 있는데, 수석장로가 더 크냐는 것을 표시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저는 개인적인 의견으로 어찌보면 오해를 살 수 있는 부분이어서 바람직한 좌석 표시는 아니라고 보여집니다.
사람들의 본성은 어디에서나, 세상사회나 교회안에서나 누가 더 크냐는 생각을 가질 수밖에 없는데,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서 살아가는 성도들은 더 크고, 더 높아지려고 하는 곳에서 어떻게 처신하며 살아야하는지를 잘 배워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더 큰 사람이 되어서 더 높임을 받고 존경을 받으려는 세상적인 목표보다도, 진짜 큰 사람이 되어서 뭇 사람을 더 많이 섬김으로 뭇 사람으로부터 존경받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세상의 방식으로 살지 않고 하나님 나라 방식으로 이 세상을 살아갈 때 평안과 안식과 행복을 맛보며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아멘
2.뭇 사람의 끝이 되어 뭇 사람을 섬기라
두번째로 살펴볼 점은 뭇 사람의 끝이 되어 뭇 사람을 섬기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35절을 보면, 우리 예수님은 제자들이 누가 더 크냐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 것을 아시고, 제자들을 불러 놓고 중요한 가르침을 해주셨습니다. 다같이 35절을 읽어보겠습니다. 누구든지 부터,<누구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뭇 사람의 끝이 되며 뭇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하시고>.
이 말씀은 누가 더 크냐는 제자들의 논쟁에 답이 되는 말씀이고,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 나라 시민으로, 살아가는 성도들이 살아가는 삶의 중요한 핵심 원리가 되는 가르침입니다. 잘 배우시면 좋겠습니다.
먼저 누구든지라는 말은 베드로가 두번째이고, 야고보가 세번째이고, 요한이 네번째이고, 제일 마지막이라고 하는 제자든지, 그리고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모든 성도들이든지, 심지어 믿지 않는 사람에게 해당되는 삶의 원리인 것을 강조해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첫째가 되고자 하면 뭇 사람의 끝이 되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첫째가 되고자 하고, 더 크고 높아지고 인정받고 존경을 받고자 한다면, 뭇 사람의 끝이 되라는 것입니다. 뭇 사람의 끝이 되라는 것은 자신이 아는 사람이든지 모르는 사람이든지, 자기보다 잘나고 높은 사람이든지, 자기보다 낮은 사람이든지, 모든 사람의 끝이 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뭇 사람의 끝이 되라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모든 사람의 끝에 서고 끝에 다니라는 뜻은 아니겠쬬? 뭇 사람의 끝이 되라는 것은 모든 사람에게 겸손하라는 의미입니다. 모든 사람이 나보다 작고 낮은 사람이 아니라, 나 앞에 있는 사람이요, 적어도 나와 동등한 사람이라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뭇 사람의 끝이 되는 것이 쉽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무엇으로보나 나보다 못한 사람이 있고, 많이 못한 사람이 있을 수 있고, 내가 부엇으로보나, 적어도 저 사람보다 낫고 크다고 할 수 있는 점이 분명히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첫째가 되고자 하면, 꼭 첫째가 되고 싶지 않아도 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한다면, 뭇 사람의 끝이 되는 겸손함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뭇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고 가르쳐주셨습니다. 뭇 사람의 끝이 되어, 뭇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는 것은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연결되어 있는 가르침입니다. 뭇 사람의 끝이 되어야, 뭇 사람을 섬길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뭇 사람의 끝이 되지 않고서 뭇 사람을 섬길 수가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러면 예수님은 뭇 사람의 끝이 되어 뭇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라고 하실까요? 뭇 사람의 끝이 되어 뭇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라고 하신 것은 첫째가 되고, 큰 자가 되는 것만을 가르쳐주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뭇 사람의 끝이 되어 뭇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라고 하신 것은 예수님을 가장 배우게 되고,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 참된 삶이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배우고,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서 예수님의 마음과 삶을 배우지 않으면,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허상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빌립보서 2장 5절에서,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라고 말씀해주었습니다. 바울의 목표는 예수님을 본받아 예수님처럼 사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전11장 1절에서,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고 말씀해주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가장 잘 살고 아름답고 멋지게 사는 삶은 예수님을 본받는 사람으로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본받아 살 때 가장 행복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뭇 사람의 끝이 되어 뭇 사람을 섬기며, 사는 것이 예수님을 본받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
3.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할 줄 알라
마지막 세번째로 살펴볼 점은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할 줄 알라고 가르쳐주신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36절과 37절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특별한 퍼포먼스(특별한 행동)을 제자들에게 보여주시면서, 뭇 사람의 끝이 되어 뭇 사람을 섬기는 구체적인 삶의 모습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어린 아이 하나를 데려다가 제자들 가운데 세우시고, 안으시며 제자들에게 아주 차분하게 진지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죠? 다같이 37절을 읽어보겠습니다.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면 나를 영접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함이니라>.
예수님께서 뭇 사람의 끝이 되어 뭇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라고 하시면서, 어린 아이 하나를 데려다가 제자들이 다 보도록 하시고,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하나를 영접하면 자기를 영접하는 것이요, 자기를 영접하고 자신을 보내신 하나님을 영접하는 것이라고 하신 것은 뭇 사람을 영접하고, 뭇 사람을 섬기는 자세를 가르쳐주신 것입니다.
왜 예수님이 어린 아이 하나를 제자들 가운데 세우셨을까요? 어린 아이 하나는 뭇 사람의 끝에 있는 사람일 것입니다. 어린 아이는 어른들에 의해서 무시 당하는 대상입니다.
어린 아이들이 어른들에 의해서 무시 당하는 것은 그들의 존재나 가치를 무시한 것이 아니라, 아직 어리고 알지 못하고 미숙하고 여러가지 면에서 부족하기 때문에 어른들은 어린 아이를 무시하고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사람의 숫자를 셀 때 어린 아이는 숫자에 넣지 않았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어린 아이를 비유로 해서 크게 두 가지 가르침을 주셨는데, 하나는 천국이 어린 아이와 같은 자의 것이라고 하실 때이고, 다른 하나는 어린 아이를 영접하는 자가 자기를 영접하는 것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함이 자신을 영접함이라고 말씀하신 것은 자신을 영접하는 사람의 마음은 무시 당하고, 어리고 부족한 사람이라도 겸손히 영접할 줄아야 한다는 뜻이고, 뭇 사람의 끝이 되어 뭇 사람을 섬기는 사람은 어린 아이처럼 많이 부족하고 무시 할 수밖에 없는 모습일지라도 영접하고 섬길 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할 줄 아는 사람이 진정으로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이요, 이런 겸손으로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이 하나님을 영접한 사람이라고 가르쳐주신 것입니다.
여러분
뭇 사람을 섬기는 것이 쉬울까요? 어려울까요?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고 섬기는 것이 쉬울까요? 어려울까요?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간혹 어린이날 행사나 어린이 행사에서 어른들의 모습이 인상깊이 비춰질 때가 있는데, 어떤 분은 어린이 키에 맞춰서 자신을 낮춰서 말하며 안아주기도 하고, 어떤 분은 그냥 씩 웃고 허리를 숙여서 손을 잡아주기도 합니다.
여러분
뭇 사람의 끝이 되어서 뭇 사람을 섬기는 사람, 아직 어리고 미숙하고 부족한 어린아이와 같은 사람도 영접하고 섬기는 사람이 진짜 큰 사람이요, 훌륭한 사람이요, 존경받을만한 어른이요, 하나님과 예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입니다.
우리 금일소망교회 성도님들은 뭇 사람을 항상 섬길 줄 아는 사람이 되어 예수님을 겸손히 영접하고, 하나님을 영접한 사람으로 살아가면 좋겠습니다. 아멘.
결론/
오늘 오전에 우리는 <뭇 사람을 섬기는 사람이 크다>는 주제로 들었습니다.
우리는 서로 누가 더 크냐는 세상적인 관심에 마음을 빼앗겨서는 안됩니다. 누가 더 크고 몇 등으로 크고 작고 하는 관심은 성도들의 관심과 거리가 먼 것입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은 어디에서도 서열을 정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교회와 성도들은 세상에서 처럼 누가 더 크냐에 관심을 갖으려고 합니다. 목사님이 클까? 장로님이 클까? 권사님이 클까? 안수집사님이 클까?
예수님은 그렇게 크고자 하고 첫째가 되고자 한다면, 차라리 뭇 사람의 끝이 되어 뭇 사람을 섬기는 사람이 되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우리는 내가 아는 사람이든 알지 못하는 사람이든,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든 간에, 심지어 어린 아이처럼 무시당고 부족한 점이 많은 사람일지라도 영접하고 섬길 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오늘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우리들에게 가르쳐주신 말씀의 핵심입니다. 우리는 섬김을 받고 높임을 받는 자리에 있는 사람이 큰 사람이 아니라 도리어 낮은 자리에서 뭇 사람을 섬기는 사람이 진짜 큰 사람이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만일 어린 아이와 같이 부족하고 힘도 없고 오히려 도와주어야 할 사람이 우리 교회에 왔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는 예수님을 영접하듯이 영접하고 최선을 다하여 섬기며 도와주어야 합니다.
어떤 교회에 하나님이 천사를 거지 모양으로 보내서 교회 입구에서 구걸을 하게 하셨는데, 거의 모든 성도들은 귀찮은듯이 힐끗쳐다보고 지나가는데, 그 교회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이 교회에 들어가면서, 자신의 주머니에 있는 얼마되지 않은 돈을 말없이 건네주었다고 합니다.
거지 모양을 한 천사는 이 사실을 하나님께 보고하였는데, 하나님이 심히 기뻐하시면서 그 교회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과 그 가정에 큰 복을 주셨다고 합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뭇 사람을 섬기다보면, 하나님께서는 다 아시고 반드시 백배 천배 만배로 갚아주실 것입니다. 우리 금일소망교회 성도님들은 뭇 사람을 항상 섬김으로 하나님께 큰 복을 받을 수 있길 바랍니다. 아멘.
<공동기도> 다같이 따라서 공동기도를 하겠습니다.
1)하나님 아버지, 뭇 사람의 끝이 되어 뭇 사람을 섬길 줄 아는 성도가 되게 하여 주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