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부산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펜치가 필요한 시점 / 김해인
짜장면과 짬봉 앞에서 고민하는
나를 절단해 줘요
불가마에 단련된 최초의 연장이 되느냐
컨베이어벨트를 타고 나오는 레디메이드 툴이 되느냐
이것도 중요하지만
선택 후의 방향은 어디인지 알 수 없어요
차라리 한 끼 굶을 일을
어느 시궁창에 빠질지 모를 일입니다
오른쪽 손과 왼쪽 손이 친척이라고 생각하나요
나를 꾹 눌러서 이쪽저쪽으로 갈라줘요
이쪽으로 가면 강의 상류 끝에 서 있는 물푸레나무를 만나고 싶죠
저쪽으로 가면 바다의 시작,
흰 치마를 펼쳐서라도 항해하는 게 로망인 걸요
밸런스게임은 사양할게요
이쪽으로 가면 파란 대문이 열려 있고
저쪽으로 가면 녹슨 대문이 부서져 있다거나
이쪽으로 가면 왕이 되고
저쪽으로 가면 거지가 된다는 동화 같은 거 믿으라고요?
차라리 사지선다형으로 바꿔주세요
검은 셔츠와 흰 셔츠 중 뭐가 필요하냐고요
지금은 펜치가 필요한 시점이에요
[심사평] 노동하는 육체 가져와 비유 리듬 증폭시켜
삶을 언어로 건축하면서 자기를 실현하려는 노고가 반갑고 고마웠다. 김해인의 시편은 노동하는 삶을 통하여 자기를 성찰하는 발화가 진지하였다. 경험의 구체성을 담보하는 언어의 명징함이 우리를 사로잡았다. 공구와 더불어 노동하는 육체를 말하면서 진정한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을 노래하였는데, 처음에서 중간을 지나 끝에 이르기까지 시적 긴장을 잃지 않으면서 의미를 증폭하는 비유와 리듬을 잘 형성하였다.
심사위원 구모룡 평론가, 성선경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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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시 감상
펜치가 필요한 시점 / 김해인
짜장면과 짬봉 앞에서 고민하는
나를 절단해 줘요
(화자는 짜장면과 짬뽕을 모두 좋아한다. 그런데 고민을 한다. 이 두개는 나에게 모두 중요한 음식이다.둘 다 먹고 싶다. 강제적으로 양자 택일을 해야 한다는 나의 관념을 없애주세요)
불가마에 단련된 최초의 연장이 되느냐
컨베이어벨트를 타고 나오는 레디메이드 툴이 되느냐
(많은 시련이 있으나 보상이 큰 최초가 되거나 남들이 닦아놓은 길을 따라 편하게 가는 방법을 선택하느냐)
(최초/최고 신화에 매몰되어서는 안됩니다. 가치를 부여하기 나름입니다.)
이것도 중요하지만
선택 후의 방향은 어디인지 알 수 없어요
(선택도 중요하지만 선택 후의 방향은 또 어떻게 진행될 지 알 수 없어요.)
차라리 한 끼 굶을 일을
어느 시궁창에 빠질지 모를 일입니다
(양자 택일하지 않으면 한 끼 굶는 정도의 사소한 부작용 정도 감수하면 되지만 양자택일의 관념으로 생각이 굳어 있다면 시궁창에 빠지는 파국을 가져올 수 있어요)
(한 끼는 짜장면/짬뽕의 이미지를 연쇄하고 있고 시궁창에 빠지는 일은 연장의 이미지를 연쇄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펜치하면 떠오르는 노동의 이미지를 둘다 연쇄하고 있다)
오른쪽 손과 왼쪽 손이 친척이라고 생각하나요
(흔히 반대라고 생각하는 오른쪽 손과 왼쪽 손이 친척이라고 생각하나요?
나를 꾹 눌러서 이쪽저쪽으로 갈라줘요
(인생은 선택을 해야 합니다. 나도 어느 쪽이든 선택을 하도록 해 주세요)
이쪽으로 가면 강의 상류 끝에 서 있는 물푸레나무를 만나고 싶죠
저쪽으로 가면 바다의 시작,
흰 치마를 펼쳐서라도 항해하는 게 로망인 걸요
(그런데 어느 쪽을 선택해도 좋은 결과를 기져올 수 있어요.내가 가치를 부여하기 나름이기 때문이죠)
(강 상류와 강의 끝인 바다를 대조한다. 최초의 연장과 래디메이드 툴의 이미지를 연쇄한다)
밸런스게임은 사양할게요
(양자택일하라는 사회의 관념과 그 선택의 결과가 극과 극이 될 것이라는 관념은 사양할게요)
이쪽으로 가면 파란 대문이 열려 있고
저쪽으로 가면 녹슨 대문이 부서져 있다거나
이쪽으로 가면 왕이 되고
저쪽으로 가면 거지가 된다는 동화 같은 거 믿으라고요?
(어느 한 쪽을 선택하면 극단의 선,
다른 쪽을 선택하면 극단의 나쁨이라는 결과로 이어진다는 사회의 관념을 믿으라고요?)
(동화 같은 이야기는 왕과 거지의 극단적 동화를 인유한 것이다.매우 순진하고 단순한 생각을 비판한다)
차라리 사지선다형으로 바꿔주세요
(이분법의 폐해가 심각해요. 차라리 사분법을 제시해 주세요. 이것도 안 좋기는 마찬가집니다. 인생은 다양한 선택지가 있고 어느 쪽을 선택하든 가치를 부여하기 나름입니다. 선택할 때의 기준도 그렇지만 선택지의 결과도 가치를 부여하기 나름입니다)
검은 셔츠와 흰 셔츠 중 뭐가 필요하냐고요
(흑백논리를 받아 들이라고요?)
(검은 셔츠로 상징되는 노동자와 흰 셔츠로 상징되는 사무실 노동자 중 뭐가 필요하냐고요. 둘 다 필요해요.)
지금은 펜치가 필요한 시점이에요
(지금 이 사회는 흑백논리를 무화시킬 펜치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1. 메시지
이분법을 강요하는 사회 비판
펜치의 기능 중 하나는 절단하는 기능이다. 이 시에서의 절단은 해체, 무화의 의미로 쓰인 것으로 보인다. 이분법을 강요하는 사회 또는 그 사회의 기존 관습에 젖어 있는 나의 잘못된 관념을 없애는 것이다.흔히 대학에 진학 하느냐 하지 않느냐의 이분법에서 한국 사화는 대학진학을 하지 않으면 사회 낙오자가 될 것 처럼 생각한다. 그러나 어디에 가치를 두느냐에 따라 각자 선택하면 될 일이다.대학을 가지 않아도 얼마든지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다.
밸런스게임은 예능에서 시작된 것으로 1과 2의 선택지를 두고 강제택일하게 하는 게임이다.
'밸런스를 붕괴시킨다'는 목적에 초점을 맞춘 게임으로 기상천외한 질문으로 많은 이들을 당황하게 하곤 한다.한편 1 혹은 2를 선택하는데, 이 두 개의 선택지가 고르기 힘들 만큼 균형이 잘 잡혀 있다는 뜻으로 우리말인 '막상막하 선택 대결'로 바꾸면 좋을 것 같다는 견해도 있다. 어느 쪽이든 양자택일이 필수다.
인간은 자유를 선고받은 결과 매 순간 어떤 선택에 직면한다. 대학원 진학을 할지, 직장생활을 할지, 결혼을 할지, 비혼을 할지, 투표를 할지, 복지제도에 찬성할지를 선택해야 한다.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할지, ‘해야 할 일’을 해야 할지 선택해야 한다.
정답이 없기에 선택은 어려운 일이다. 인간에게 주어진 목적이나 기능이 없으니 정답도 없다.
그런데 정말로 우리의 선택에서 정답이 없는가? 사실은 정답이 없는 것이 아니라 모든 선택지가 다 정답이다. 나한테 가장 가치 있는 것이 정답이다. 내가 어떤 것을 선택하면 그것이 나한테는 가장 중요한 가치가 된다. 내가 ‘하고 싶을 일’을 하겠다고 선택하면 나의 욕망이 중요한 가치가 되고, 내가 ‘해야 할 일’을 하겠다고 선택하면 나의 의무가 중요한 가치가 된다. 내가 어떤 것을 선택하는 순간 거기에 가치가 생기므로, 내가 선택한 모든 것이 전부 정답인 것이다.
2. 이미지의 연쇄/점층과 교차
객관적 상관물의 대조, 작은 것에서 큰 것으로 이미지를 확장
ㅇ 펜치의 이미지- 노동자와 관련된 이미지(짜장면/짬뽕, 오른쪽 손/왼손쪽 손, 검은 셔츠, 흰셔츠), 기계공학적 이미지(불가마, 연장, 컨베이어벨트, 꾹 눌러서 이쪽저쪽으로 가르다, 파란 대문, 녹슨 대문
ㅇ 흑백의 이미지 - 짜장민/짬뽕, 한 끼/시궁창, 흰 치마, 검은 셔츠와 흰 셔츠
ㅇ 최초최후, 최고/최악의 이미지 - 최초의 연장/레디메이드 툴, 강 상류/바다, 왕/거지, 파란 대문/녹슨 대문
ㅇ 물과 불의 이미지 - 불가마, 시궁창, 강/바다, 항해,
ㅇ 선택의 이미지 - 절단, 중요, 알 수 없다, 모르다, 가르다, 생각, 사지선다, 필요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