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 ‘하느님의 종’ 이붕익(이천조, 베드로, 1843~1866) [절두산 성지 순교자 전]
이붕익(혹 이천조)은 황해도 신천의 양반으로, 의안대군(태조의 8자)의 후손이다. 그는 이의송(李義松, 프란치스코)의 2남 1녀 중 둘째 아들로 태어났으며, 붕익은 그의 관명(冠名)이다. 이붕익은 마음이 어질고 순하였으며, 부모에게 효도를 다하였다. 그는 아버지를 따라 배천[白川]으로 이사하였고, 1857년에는 다시 서울로 옮겨 와 차동에 거주하였다.
상경한 지 2년 후인 1859년, 아버지 이의송은 정의배(丁義培, 마르코) 회장에게 천주교를 배워 입교하였고, 1862년에는 베르뇌 주교(Berneux, 張敬一)에게 세례를 받았다. 이에 이붕익도 아버지에게 천주교를 배워 1862년에 형과 함께 베르뇌 주교에게 세례를 받았다. 이후 이붕익은 마음을 다해 신앙을 실천했으며, 아버지를 도와 자신의 집에서 공소를 치르기도 하였다.
그런 가운데 병인박해가 발생했고, 시간이 지나면서 박해는 더욱 격화되었다. 이에 이붕익은 아버지와 서모(庶母) 김 마리아를 모시고 1866년 9월 8일 봉천(현 서울시 관악구 봉천동)에 사는 처남 이영택(李永宅)의 집으로 피신하였다. 그러나 포교들이 그의 삼촌을 잡아 신문하면서 이들의 거처가 알려졌고, 결국 이붕익은 부모와 함께 봉천에서 체포되고 말았다.
우포도청으로 끌려온 이붕익은 매우 심한 형벌을 받았다. 이것은 나이가 어리기 때문에 형벌을 통해 배교시키려는 포장(捕將)의 의도였다. 그러나 이붕익은 비록 정신이 혼미해지기는 했지만, 끝내 ‘천주를 배반할 수 없다’며 신앙을 증거하였고, 그 결과 그의 부모와 함께 1866년 9월 16일 양화진에서 24세의 나이로 군문효수(軍門梟首)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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