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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장. 악인이 선행했다.
1편. 작가가 만든 악인
작가는 한동안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자신이 만든 인물이 던진 질문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사람은 한 번의 행동으로 선인이 되는가. 악인이 되는가.
그는 지금까지 인물을 만들 때마다 먼저 성격을 정했다. 선한 사람에게는 선한 마음을 주었고, 악한 사람에게는 악한 마음을 주었다. 그런 다음 그 성격에 맞는 사건을 배치했다.
선한 사람은 어려운 이웃을 도왔고, 악한 사람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다른 사람을 희생시켰다.
이야기는 그렇게 흘러갔다.
작가는 그것이 자연스러운 소설의 구성이라고 생각했다. 인물에게 성격을 부여하고, 그 성격에 따라 행동하게 하는 것. 그것이 창작자의 권리이자 의무라고 믿었다.
그러나 조금 전 자신이 만든 인물의 질문은 그 믿음을 흔들어 놓았다.
작가는 새로운 원고를 열었다.
이번에는 자신이 만든 악인 가운데 한 사람을 불러내기로 했다.
그는 돈을 위해 거짓말을 했고, 자신을 믿어 준 친구를 배신했다. 직장에서는 약한 사람에게 책임을 떠넘겼으며, 자신보다 힘이 없는 사람의 사정을 이용해 이익을 챙겼다.
작가는 그에게 민석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민석은 자신이 잘못을 저질렀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아니, 잘못을 알고 있으면서도 언제나 그럴듯한 이유를 찾아냈다.
친구를 배신한 것은 살아남기 위해서였고, 거짓말을 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상황 때문이었다. 약한 사람을 이용한 것은 세상이 원래 그런 곳이기 때문이라고 믿었다.
그에게 세상은 경쟁하는 곳이었다.
먼저 차지하지 않으면 빼앗기는 곳이었고, 남을 믿으면 손해를 보는 곳이었다.
작가는 민석의 행동을 하나씩 기록했다.
그가 거짓말하는 장면을 썼고, 다른 사람의 눈을 피하는 장면을 썼다. 자신의 잘못이 드러날 것 같으면 상대방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장면도 추가했다.
원고가 쌓일수록 민석은 점점 더 악한 사람이 되어 갔다.
작가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면 누구도 그를 선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겠지.'
그는 마지막 문장을 썼다.
'민석에게는 다른 사람의 고통보다 자신의 이익이 중요했다.'
작가는 펜을 내려놓았다.
그때 화면 속 민석이 고개를 들었다.
마치 누군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사람처럼, 민석은 한동안 정면을 바라보았다.
작가는 마우스를 움직였다.
화면을 닫으려던 순간, 민석의 입이 열렸다.
"작가님."
작가의 손이 멈췄다.
분명히 아무것도 입력하지 않았다. 대화 장면도 만들지 않았다. 그런데 화면 속 인물이 자신을 부르고 있었다.
"왜 나를 그렇게 만들었습니까?"
작가는 잠시 웃었다. 피곤해서 생긴 착각이라고 생각하고 싶었다.
"네가 어떤 사람인지는 내가 정하는 거야."
민석은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저는 처음부터 악인이었던 겁니까?"
작가는 대답하지 않았다.
화면 속 민석이 다시 물었다.
"제가 다른 사람을 도울 기회가 있었다면, 그때도 나쁜 선택을 했을 거라고 어떻게 확신하십니까?"
작가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는 민석에게 나쁜 행동을 할 기회만 주었다. 자신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거짓말하는 상황은 만들었지만, 손해를 감수하면서 다른 사람을 도울 상황은 만들지 않았다.
배신할 기회는 주었지만, 믿음을 지킬 기회는 주지 않았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 놓은 인물을 향해 악인이라고 판결했다.
작가는 천천히 의자에 등을 기댔다.
자신이 만든 인물의 운명을 결정하는 일이 당연하다고 생각해 왔다. 하지만 그 당연함이 갑자기 낯설게 느껴졌다.
그때 민석이 조용히 말했다.
"저는 아직 아무것도 선택하지 못했습니다."
화면이 어두워졌다.
작가는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그리고 다시 화면을 켰다.
이번에는 민석에게 이전과 다른 상황을 주기로 했다.
악인에게도 선행할 기회를 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작가는 새로운 문장을 입력하기 시작했다.
2편. 길 위에 쓰러진 노인
그날 오후, 민석은 약속 장소로 가기 위해 큰길을 걷고 있었다.
하늘은 흐렸고, 도로에는 점심시간을 마치고 돌아가는 사람들과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뒤섞여 있었다.
민석은 휴대전화를 들여다보며 걸었다. 거래처에서 보낸 메시지를 확인하는 중이었다.
그때 앞쪽에서 작은 소란이 일어났다.
"어머, 어르신!"
사람들의 시선이 한곳으로 모였다.
횡단보도에서 몇 걸음 떨어진 인도 위에 노인 한 사람이 쓰러져 있었다. 손에는 장바구니가 들려 있었고, 바닥에는 사과 두 개가 굴러가고 있었다.
사람들이 걸음을 늦췄다.
누군가는 멀리서 바라보기만 했고, 누군가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민석도 멈춰 섰다.
그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약속 시각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중요한 거래였다. 오늘 계약이 성사되면 적지 않은 돈을 벌 수 있었다.
민석은 쓰러진 노인을 바라보았다.
'누군가 신고하겠지.'
그는 다시 걸으려 했다.
한 걸음.
두 걸음.
그런데 이상하게도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노인의 손가락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입술은 말라 있었고, 숨소리는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민석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사람들은 여전히 서 있기만 했다.
그는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손에 들고 있던 휴대전화를 주머니에 넣었다.
"어르신, 제 말 들리세요?"
민석이 노인 곁에 무릎을 꿇었다.
대답이 없었다.
그는 노인을 함부로 일으켜 세우지 않고 주변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여기 쓰러진 분이 계십니다. 119에 신고해 주세요."
"제가 할게요."
한 여성이 휴대전화를 꺼냈다.
민석은 노인의 얼굴을 살폈다. 의식이 있는지 확인하며 구급대의 지시에 따를 준비를 했다. 노인이 추워 보이자 주변 사람에게 담요나 겉옷이 있는지도 물었다.
그는 바닥에 떨어진 사과를 주워 장바구니 옆에 놓았다.
잠시 뒤 노인의 눈꺼풀이 움직였다.
"할아버지, 괜찮으세요? 구급차가 오고 있습니다."
노인이 힘겹게 눈을 떴다.
"집에…… 가야 하는데……."
"걱정하지 마세요. 구급차가 오면 병원에서 확인받으시면 됩니다."
민석의 목소리는 자신도 모르게 낮아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구급차가 도착했다. 구급대원들이 노인의 상태를 살피고 들것을 준비했다.
민석은 자신이 본 상황을 설명했다.
"제가 발견했을 때 이미 쓰러져 계셨습니다. 그 뒤로는 크게 움직이지 않으셨습니다."
구급대원들이 노인을 옮기는 동안 그는 한쪽으로 물러나 길을 비켜 주었다.
모든 일이 끝났을 때 휴대전화가 다시 울렸다.
거래처에서 온 전화였다.
민석은 화면을 바라보다가 전화를 받았다.
"죄송합니다. 갑자기 일이 생겨서 조금 늦을 것 같습니다."
상대방이 불쾌한 목소리로 무언가를 말했다.
민석은 변명하지 않았다.
"네. 제 잘못입니다. 최대한 빨리 가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그는 잠시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조금 전까지 자신에게는 중요한 계약이 있었다. 늦으면 불리해질 수도 있었다. 그런데 노인이 구급차에 실려 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동안에는 그 생각을 거의 하지 못했다.
왜 그랬을까.
민석은 자신에게 물었다.
노인이 자신에게 돈을 줄 것도 아니었다. 자신의 이름을 기억해 줄지도 몰랐다. 누군가에게 칭찬받을 일을 한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그는 떠나지 않았다.
그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그냥…… 지나갈 수가 없었네."
그 장면을 지켜보던 작가는 펜을 내려놓았다.
그는 민석이 노인을 도울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처음부터 그런 장면을 쓸 생각도 없었다.
그런데 민석은 자신이 정해 놓은 성격과는 다른 행동을 했다.
작가는 화면 속 문장을 다시 읽었다.
'민석은 노인을 도왔다.'
그는 잠시 생각하다가 그 문장을 지웠다.
그리고 다른 문장을 입력했다.
'민석은 노인을 지나쳐 갔다.'
문장이 사라졌다.
작가는 눈을 크게 떴다.
다시 입력했다.
'민석은 노인을 도와주지 않았다.'
이번에도 문장이 사라졌다.
작가는 키보드에서 손을 떼었다.
화면에 새로운 문장이 떠올랐다.
'그것도 당신이 정한 것 아닙니까?'
작가는 숨을 멈췄다.
화면 속 민석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눈빛에는 분노도, 원망도 없었다.
오히려 오래 기다렸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작가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너는 악인이야."
민석이 대답했다.
"제가 악인이라는 건압니다. 하지만 제가 선행을 할 수 없다고 누가 정했습니까?"
작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민석은 다시 물었다.
"작가님은 제게 악한 행동을 할 기회만 주셨습니다. 이제 제가 다른 선택을 했다고 해서 그 장면을 지우시겠습니까?"
작가는 화면을 바라보았다.
민석의 질문은 더는 소설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에 관한 문제가 아니었다.
자신이 인물을 어떻게 만들어 왔는지, 그리고 사람을 판단할 때 무엇을 기준으로 삼았는지에 관한 문제였다.
작가는 천천히 의자에서 일어났다.
창밖에는 사람들이 각자가 목적지를 향해 걷고 있었다.
그들 가운데 누가 선한 사람이고 누가 악한 사람인지, 작가는 알 수 없었다.
어쩌면 자신이 만든 인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인지 몰랐다.
3편. 한 번의 행동으로 사람을 판단할 수 있는가?
작가는 다시 책상 앞에 앉았다.
화면 속 민석은 아무 말 없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작가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물었다.
"그렇다면 너는 선한 사람이냐?"
민석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고개를 숙이고 한동안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모르겠습니다."
작가는 뜻밖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노인을 도왔잖아. 좋은 일을 했는데도 모르겠다는 거야?"
"노인을 도운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 행동 하나로 제가 좋은 사람이 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민석은 잠시 말을 멈췄다가 이어 갔다.
"저는 친구를 배신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거짓말을 했고, 제 잘못을 감추려고 남에게 책임을 떠넘기기도 했습니다. 오늘 노인을 도왔다고 해서 그 일들이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작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네가 악인이라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는 뜻이냐?"
"그것도 모르겠습니다."
민석은 작가를 바라보았다.
"제가 잘못한 일은 잘못한 일입니다. 하지만 앞으로 어떤 행동을 할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제가 과거에 나쁜 일을 했다는 이유로 앞으로도 나쁜 일만 해야 한다면, 저는 달라질 기회조차 없는 것 아닙니까?"
작가는 입을 다물었다.
민석의 말에는 변명이 없었다. 자신이 저지른 잘못을 없던 일로 만들려 하지도 않았다.
그는 다만 과거의 행동이 자신의 미래까지 결정하도록 내버려 두고 싶지 않은 것 같았다.
작가는 원고를 펼쳤다.
그곳에는 민석을 설명하는 문장이 적혀 있었다.
'그는 악인이었다.'
작가는 그 문장을 오래 바라보았다.
처음에는 단순한 설명이라고 생각했다. 민석이 어떤 사람인지 독자에게 알려 주기 위한 문장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 문장이 하나의 판결처럼 보였다.
악인이라고 이름 붙이는 순간, 민석이 앞으로 할 수 있는 모든 행동이 미리 결정되는 것 같았다.
그가 거짓말을 하면 악인의 본성이 드러난 것이 되고, 그가 선행하면 어쩌다 한 번 일어난 예외가 되었다.
어떤 행동을 하더라도 이미 내려진 판결을 벗어날 수 없었다.
작가는 천천히 그 문장을 지웠다.
대신 이렇게 썼다.
'그는 여러 차례 다른 사람을 해쳤다. 그러나 그날, 그는 쓰러진 노인을 지나치지 못했다.'
작가는 문장을 읽어 보았다.
이전 문장과는 달랐다.
사람의 본질을 한 단어로 규정하는 대신, 그가 실제로 한 행동을 기록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민석의 잘못을 감싸는 것도 아니었다.
잘못은 잘못대로 남아 있었다. 선행도 선행대로 남아 있었다.
작가는 생각했다.
선한 사람도 욕심을 낼 수 있다. 자신이 옳다고 믿으면서 다른 사람을 상처 입힐 수도 있다.
반대로 악한 행동을 반복하던 사람도 어느 순간 다른 사람의 고통을 외면하지 못할 수 있다.
사람의 마음은 하나의 이름으로 모두 설명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선과 악은 무엇으로 판단해야 하는가.
작가는 민석에게 물었다.
"네가 오늘 노인을 도운 이유는 무엇이냐?"
민석은 잠시 생각했다.
"처음에는 그냥 지나가려고 했습니다. 약속 시각도 다가오고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왜 돌아섰지?"
"모르겠습니다. 노인이 쓰러져 있는 모습을 보고도 계속 걸으면, 나중에 제가 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할지 떠올랐습니다."
"남들에게 나쁜 사람으로 보이기 싫었던 건가?"
"그랬을 수도 있습니다."
민석은 솔직하게 대답했다.
"누군가가 저를 보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제가 좋은 사람이라는 말을 듣고 싶었을 수도 있고요. 하지만 아무도 저를 칭찬하지 않았습니다. 노인도 제 이름을 묻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저 그 자리에 남아 있었습니다."
작가는 그 말을 듣고도 민석의 마음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었다.
선행에는 여러 이유가 있을 수 있었다.
동정심 때문일 수도 있었고, 의무감 때문일 수도 있었다.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섞여 있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동기가 완벽하게 순수하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그 행동의 의미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노인은 실제로 도움을 받았다.
구급차가 도착할 때까지 곁을 지킨 사람도 실제로 있었다.
작가는 그 사실을 인정했다.
"민석아."
"네."
"네가 악인이라고 생각했던 건 나야. 내가 네 행동을 그렇게 만들었고, 네게 그런 이름을 붙였지."
민석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나는 네가 어떤 사람이 될 수 있는지 충분히 살펴보지 않았어. 네가 무엇을 선택할 수 있는지 묻지도 않았고."
작가는 화면을 바라보았다.
"내가 만든 인물이라고 해서 네 행동의 의미까지 마음대로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
민석이 조용히 말했다.
"작가님은 이야기를 만드셨습니다. 하지만 이야기가 끝나기 전까지 제가 어떤 사람이 될지는 아직 모르는 것 아닙니까?"
작가는 그 말을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이야기가 끝나기 전까지.
그는 그동안 결말을 먼저 정해 놓고 인물들을 그곳으로 끌고 갔다. 어떤 인물은 선한 사람이 되어야 했고, 어떤 인물은 악한 사람으로 남아야 했다.
하지만 사람의 삶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다.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뒤늦게 자신의 행동을 후회할 수도 있었다. 선한 사람이 자신의 욕심을 깨닫지 못한 채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었다.
중요한 것은 한 번의 행동만으로 사람 전체를 판단하지 않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잘못을 용서한다는 명목으로 피해를 외면해서도 안 되었다.
작가는 원고에 마지막 문장을 입력했다.
'사람은 한 번의 행동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가 한 행동에 대한 책임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는 문장을 읽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화면 속 민석이 조금씩 흐려지기 시작했다.
작가는 서둘러 물었다.
"민석아, 어디로 가는 거냐?"
민석은 희미해지는 화면 속에서 대답했다.
"제가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될 수 있는지 알아보러 갑니다."
"내가 정해 주지 않아도?"
민석은 잠시 웃었다.
"적어도 선택할 기회는 주셔야죠."
화면이 꺼졌다.
작가는 빈 화면을 바라보았다.
그는 민석을 선한 사람으로 바꾸지도 않았고, 악인이 아니라고 선언하지도 않았다. 민석이 저지른 잘못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다만 이제 작가는 민석의 다음 행동을 미리 결정하지 않기로 했다.
그는 펜을 들어 새로운 제목을 적었다.
「사람은 언제 악인이 되는가?」
그리고 그 아래에 작은 글씨로 한 문장을 덧붙였다.
'태어날 때부터 악인이었던 사람과, 악인이 되어 가는 사람은 같은가.'
작가는 한동안 그 문장을 바라보았다.
이제 질문은 민석에게만 해당하지 않았다.
그것은 사람을 판단하는 자신에게도, 타인의 잘못을 바라보는 모든 인간에게도 던져진 질문이었다.
작가는 다음 이야기를 시작하려 했다.
그러나 펜을 움직이기 전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만든 인물에게 선택할 기회를 주었다면, 자신을 만든 존재도 자신에게 그런 기회를 주었을까.
그리고 인간이 스스로 선택한다고 믿는 그 순간에도, 누군가 이미 이야기를 써 놓은 것은 아닐까.
작가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방안은 조용했다.
하지만 책상 위의 펜 끝이 아주 미세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