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공이 천하의 패권(覇權)을 쥔 이유!!
진(晉)나라 문공(文公)이 호언(狐偃)에게 물었다. ‘나는 맛있고 살찐 고기를 당상(堂上)의 신하들에게 두루 나눠 주고, 한잔 술과 한 그릇 고기만을 궁안에 남겨 병술이 맑아질 사이가 없으며, 날고기를 말릴 여유도 없이 소를 한 마리 잡으면 도성 안에 두루 나누고, 한해 받아들인 베는 모두 병사들이 옷을 해 입는데 사용했다. 이러면 민중을 충분히 싸우게 할 수 있는가.’라고 했다. 호언이 답하길, ‘부족합니다.’라고 했다.
문공이 말하길, ‘세관이나 시장의 세금을 줄이고, 형벌을 너그럽게 했다. 이러면 민중을 충분히 싸우게 할 수 있는가.’라고 했다. 호언이 답하길, ‘부족합니다.’라고 했다. 문공이 말하길, ‘민중들 가운데 상(喪)을 치르는 이가 있으면 직접 낭중(郎中)을 시켜 일을 돌봐주게 하고, 죄(罪) 있는 이를 용서하며, 가난하고 부족한 이들에게 베풀었다. 이러면 민중을 충분히 싸우게 할 수 있는가.’라고 했다. 호언은, ‘부족합니다.’
‘이는 모두가 생(生)을 지키는 수단입니다. 하지만 싸우게 한다는 것은 상대를 죽이는 일입니다. 민중들이 군주를 따르는 것은 생을 지키기 때문입니다. 군주께서 그렇게 함으로써 역으로 이들을 죽게 하면, 군주를 따르게 하는 수단을 사실상 잃게 되는 것입니다.’라고 했다. 문공이 말하길,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민중을 충분히 싸우게 할 수 있는가.’라고 했다. 호언이 ‘싸우지 않을 수 없도록 하는 것입니다.’라고 답했다.
문공이 말하길, ‘싸우지 않을 수 없게 하려면, 어찌하면 되는가.’라고 했다. 호언이 답하길, ‘신상(信賞)과 필벌(必罰)하면 충분히 싸우게 할 수 있습니다.’라고 했다. 이에 문공이 말하길, ‘형벌(刑罰)의 극한(極限)이 어디까지 이르러야 올바르게 되는 것인가.’라고 했다. 답하길, ‘군주와의 친소관계는 물론 지위가 높고 낮음을 고려치 않고, 누구나 법을 총애하도록 집행하십시오.’라고 했다. 문공이 말하길, ‘좋다.’고 했다.
다음 날, 포륙(圃陸)에서 사냥한다고 명(命)했다. 시각은 정오로 하고, 늦는 이는 군법으로 다스리겠다고 선포했다. 여기에 문공이 총애하는 전힐(顚頡)이란 이가 늦게 도착했다. 관리가 죄줄 것을 청하자, 문공은 눈물을 흘리며 슬퍼했다. 관리가 청하길, ‘일을 집행하게 해주십시오.’라고 했다. 마침내 전힐의 등을 베어 민중들에게 보임으로써 법(法) 집행의 확실함을 밝혔다. 이후로는 민중들이 모두 두려워하며 말했다.
‘군주가 전힐을 그렇게 소중히 했는데, 그럼에도 군주는 법을 집행했다. 하물며 우리들에겐 무엇이 있겠는가.’라고 했다. 문공은 민중을 싸우게 할 수 있다고 보아, 군사를 일으켜 원(原)을 쳐서 이겼다. 그리고 위(衛)를 친 뒤, 동서(東西)로 길을 내 오록(五鹿)의 땅을 빼앗았다. 양(陽)을 공략하고, 괵(虢)을 이겼으며, 조(曹)나라를 정벌했다. 남쪽으로 나아가선 정(鄭)나라의 도성(都城)을 포위해, 마침내 항복을 받아냈다.
포위했던 송(宋)을 풀고, 초(楚)의 군사와 성복(城濮)에서 싸워 대파(大破)시키고 돌아오는 길에 천토(踐土)에서 천자와 제후들을 불러 회맹(會盟)을 가진 후 형옹(衡雍)에서 패자(覇者)의 자리에 올랐다. 한 번의 군사 동원으로 8가지 공적을 세웠다. 이렇게 할 수 있었던 이유는 호언의 꾀에 따르고, 전힐의 등을 빌렸기 때문이다. 한편 뾰루지나 등창의 아픔이란 뼛속까지 찌르지 않고서는 고통(苦痛)을 이겨낼 수 없다.
군주의 나라 다스림도 이와 같다. 고통이 있어야 편안하다. 나라를 위해선 난신(亂臣)을 주벌할 수 있어야 한다. 난신이란 중신(重臣)이다. 중신이란 군주가 총애하는 사람이다. 군주가 총애하는 이는 견백(堅白)과 같은 사이다. 일개 선비 신분으로 군주가 견백처럼 사랑하는 이와 떨어지길 바라는 것은, 마치 왼쪽 넓적다리를 잘라 오른쪽 넓적다리를 대신하는 것만큼 무모하다. 죽음만 당하고, 설득은 행해지지 못한다.
법집행엔 지위고하를 배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