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동안 살았던 아파트를 계약할 때는 한창 짓고 있는 건물이어서 분양권을 사고파는 때였습니다.
지금으로부터 12년 전, 전용면적 24평 국민주택규모의 아파트에서 거의 20년을 살다 보니 두 아들의 키가 크는데 비례해서 집은 점점 더 낡고 좁게 느껴졌습니다.
2차선 도로를 사이에 둔 바로 옆에 새 아파트 건물이 올라가기 시작함에 따라 새로 짓는 넓은 아파트로 이사 가고 싶다는 생각이 모락모락 피어올랐습니다.
그동안 알뜰살뜰 근검절약하며 박봉의 남편 월급을 이리저리 쪼개어 적금 들어 저축 분이 쌓여있어 옮기기엔 큰 무리가 없었습니다.
"우리도 새로 지은 넓은 아파트에서 한 번 살아 봅시다."
남편에게 노래하다시피 자주 주입시켰습니다.
그전에도 이런 나의 열망을 남편은 '우리 식구에 이 집이 딱 적당하지 더 넓은 건 낭비야.'라며 들은 척도 하지 않았는데 웬일인지 내 뜻을 받아주어 부동산 중개업소를 찾아갔습니다.
그 당시는 부동산 경기가 활황이어서 집을 샀다 하면 값이 오르는 것이 당연한 때라 목표로 삼은 그 아파트는 벌써 투기꾼들에게 넘어가서 2년 후에나 들어갈 수 있는 아파트임에도 프리미엄이 엄청나게 붙어있었습니다.
매물도 한두 개 정도만 내어 놓아서 집을 사려는 구매자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사려면 이만큼의 프리미엄을 내고 사든지 아니면 말고...'식이었습니다.
완전히 배짱으로 나왔습니다.
구매자는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엄청난 프리미엄을 주고 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더 기가 막히는 건 따로 있었습니다.
파는 사람이 양도차액을 세금으로 내야 하는 법을 어기며 탈세 목적으로 다운 계약서를 요구하는 것입니다.
내가 사는 금액보다 턱없이 낮은 가격으로 샀다는 가짜 매매 계약서를 써야만 집을 살 수 있었습니다.
이른바 '다운 계약서'입니다.
이 다운 계약서를 쓰면 우리가 나중에 집을 팔 때는 그만큼 손해를 보는 수밖에 없는데도 수용하지 않으면 집을 살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이 집은 벌써 두 명의 투기꾼 손을 거쳐와 엄청난 프리미엄이 붙어있었습니다.
새집이고 넓고 교통이 편리하다는 장점이 많은 집이지만 2년 후에나 들어가게 되는 집을 엄청난 프리미엄을 주고도 사고 싶었던 내 마음을 지금 생각해도 참 어이가 없습니다.
투기꾼의 탈세 방법은 너무나 교묘해서 완전범죄에 해당한다고 하겠습니다.
진짜 계약서는 쓰지도 않고 다운 계약서만 쓰고 프리미엄만큼의 금액은 우리가 집을 파는 사람에게 빌렸다는 차용증서를 써주고, 우리 이름으로 개설한 통장에 프리미엄 금액의 돈을 넣어 통장과 도장을 주었습니다.
지략의 대명사인 조조가 울고 갈, 참으로 교묘한 방법이었습니다.
그는 몇 번에 걸쳐 그 돈을 다 인출한 후 빈 통장과 도장을 우리에게 돌려주었습니다.
아무리 그 집을 사고 싶더라도 지금 같으면 절대로 이런 불법으로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집을 사지 않았을 텐데, 그땐 무엇에 씌었는지 모든 불법을 감수하면서 매매계약을 했습니다.
그리고 몇 달 후, 부동산 열기를 잡는다며 정부에서 내놓은 조치에 이 아파트 분양권 가격은 곤두박질을 쳐 엄청난 손해를 보게 되었습니다.
수입이라곤 남편 월급에만 의존해 동전 한 닢, 물 한 방울도 아끼며 살아 모은 재산임을 생각하니 피가 마르는 것 같은 나날이 계속되었습니다.
내가 너무 욕심을 부린 걸 깨달았을 때는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습니다.
잘못된 선택의 결과로 밥맛이 없어지고 우울증에 걸릴 지경이 된 나를 본 남편이 걱정이 되었나 봅니다.
"당신이 걱정한다고 상황이 좋아지는 것 아니잖아, 마음 크게 먹어, 건강이 더 소중해."
남편의 말에 기운을 차렸지만, 가슴속에 앙금은 계속 남아서 시시때때로 나를 괴롭혔습니다.
2년 후 2005년 2월, 입주를 하고 살아보니 넓고 환하고 전망은 최고요, 비를 안 맞고도 대형 슈퍼마켓을 비롯해서 병원 은행 약국 푸드코트... 편리한 점이 너무나 많아서 괴롭고 아픈 앙금은 차츰 치유가 되었습니다.
이젠 오래오래 이 집에서 살기를 바랐는데 재산세를 비롯해 종합부동산세까지, 수입이 없는 노인 세대에 가혹하리만치 2중으로 세금을 내라 하니 더 견딜 수가 없어 또 울며 겨자 먹기로 팔게 된 것입니다.
문제는 지금부터입니다.
집을 팔았으니 세무서에 신고를 해야 하는데 다운 계약서뿐이라 우리가 진짜 주고 산 금액을 증명할 방법이 없는 겁니다. 우리가 산 값과 비슷한 값으로 팔았는데도, 다시 말해 양도차액이 전혀 없는데도, 서류상으로는 다운해준 금액만큼이 양도차액이 되는 것입니다.
투기꾼이 내야 했던 양도세를 우리가 대신 물게 된 셈입니다.
지금은 금융실명제로 금융거래가 많이 투명해져서 부동산 매매 거래에도 다운 계약서는 존재하지 않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10 여년 전에는 불법이 관례처럼 판치던 시대였습니다.
분양권을 사고 난후 엄청나게 속앓이를 했지만, 입주 후엔 편리하게 잘 살았던 아파트, 정말 팔기 아까운 아파트였는데, 우리와의 인연이 여기까지라고 더 이상은 과욕이라 생각하고 마음을 내려놓았습니다.
작은 아들 결혼하면 두 내외가 살기엔 넓은 집이었습니다.
적당한 때 잘 팔았다는 생각입니다.
둘째 아들 좋은 짝 만나 결혼하게 되고, 우리 부부 건강이 더 나빠지지 않고 현상 유지만 하게 되면 우리는 한시름 놓고 하늘이 부를 때까지 서로 위하며 살렵니다.
첫댓글 ㅎㅎ 언니 맞아요 식구들 그간 잘 살았고 지금부터 두분 안 아프고 아들들 잘 풀리는게 더 중요하지요 지나간 일은 잊어버리셔요
평생 소원이던 넓은 집에서 10년을 살았으니 더 이상 욕심은 없습니다.
이젠 집을 줄여야할 때고 알맞은 집에 이사와서 마음이 편합니다.
작은집에 살때는 큰집 갖는게 소원이잖아요.
큰집에 살면 아무것도 아닌데...
이제 또 마음에 드는 집으로 가셨으니, 즐겁게 잘 지내시리라 생각 듭니다.
앞으로 제가 밟아야 될 전철을 미리 보는 것 같아 학습이 되네요..~~~
큰 집에 사는 게 소원이었는데, 살아보니것도 아닌 것을...
이제는 집을 줄여야할 때고 물건도 정리해야할 때라 지금도 버려야할 물건을 골라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