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가 주장하는 진리-제법무아(諸法無我)-삼대진리. 사대진리
▶두 번째, 제법무아(諸法無我)를 말씀하셨습니다.
제법무아인(諸法無我印). 제2법인라고 그래요.
제법무아라는 말이 무슨 말이냐?
모든 것, 정신적인 것이든 물질적인 것이든 모든 것을 따지고 다 분석해서
해부해보면 현상세계 안의 물질과 정신은 고정불변한 실체가 없더라 그거예요.
왜? 인연으로 이루어졌어요.
인연이 다하면 흩어져버리기 때문에 실체가 없어요.
그래서 공(空)이라고 그래요.
‘일체법무자성공(一切法無自性空)’그래요. 아무것도 없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 중생은 있다고 보잖아요. 있다고 봐요.
있다고 보고 집착을 한다고요.
제법무아로 봐야 되는데, ‘모든 것은 인연으로 모여서 흩어지면 없다.’
이렇게 봐야 되요. 어떤 사물을 대하더라도 그 사물이 조만간 공(空)이
되는 것은 필연적인 것이어요. 없어져버리는 것은 필연적이어요.
그래서 어떤 사물을 보더라도 공(空)으로 보면서 봐야 되는 거예요.
공으로 보면서 사물을 봐야 되는 거예요. 이것을 중도(中道)라고 그래요.
그러니까 세상사는 무상하고 또 아무것도 없어요. 사실 아무것도 없어요.
아무것도 없으니까 제발 욕심과 탐진을 놔버려야 해요. 집착을 놔버려라.
우리 수행승들이나 현지사 신도 분들은 그렇게 살아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업을 지으니까요.
그러면 ‘나는 지금 사업을 하는데 욕심을 놔버리라고 하면 어떻게 됩니까?’
하고 물어볼 수 있어요. 그때는‘이 짧은 인생, 내 목숨 다할 때까지
공덕을 지어야 되겠다.’이렇게 생각해야 해요.
그런 원력으로 욕심이 있는 것은 좋은 거예요.
‘열심히 벌어서 내 미래와 또 나와 인연 있는 모든 사람들의 장래,
더 나아가서 많은 사람들의 앞날을 위해서 내가 써야 되겠다.
돈을 시주할만한 가치가 있는 곳은 아무리 따져도 정법회상 뿐이다.
정법회상에다가 시주하는 것이다.’고 생각해서,
‘나는 정법회상에 시주하기 위해서 돈을 벌랍니다.
욕심스럽게 사업을 하렵니다.’아! 이건 좋은 거예요.
또 이 몸뚱이가 사실 내 것이 아니라고 말하지만,
이 몸뚱이를 대단히 아끼고 하루에 한 번씩 목욕하고
약을 먹고 밥도 영양가 있는 것만 집어 먹거든요.
‘왜 그래요?’하면‘아! 이것은 거짓 몸뚱이인 줄 압니다.
알지만 이 몸뚱이가 있어야 내가 수행을 해요.
요놈이 있어야 내가 정법 수행을 해요.
그래서 이 몸뚱이가 필요합니다.’좋아요. 그것은 좋은 거예요.
여러분 그렇게 알아야 됩니다.
자, 모든 것은 무상하고, 사실은 나(我)라고 할 만한 실체가 없습니다.
변하지 않는 알맹이가 없단 말이에요.
그리고 인생은 고(苦)다, 고해(苦海)다 그거예요. 고통으로 봐요.
왜 그러느냐? 무상한데도 무상하지 않게 보고, 아무것도 없는 것이지만
있는 것으로 보고 착각을 한단 말이에요.
그렇게 사니까 결과는 고통이어요. 근심 걱정이어요.
결과가 불안 공포 슬픔만 나오잖아요.
그래서 이 모든 집착 욕심 탐진을 전부 내려놔버려라 그거예요.
내려놔버려라. 무소유로 살아라.
무소유로 살 때 내가 1억을 벌었단 말이에요.
이것을 남한테 베풀고 이웃을 위해서 보시할 줄 압니다.
무소유가 될 때 그러는 거예요. 그 열반적정이 그것이어요.
그래서 제행무상(諸行無常) 제법무아(諸法無我) 일체개고(一切皆苦)가
현상세계의 3대 속성이라고 합니다.
이것을 조금 어려운 말로 하면 존재의 3대 속성이라고 해요.
열반적정은 본체계의 속성입니다.
모든 전도(顚倒)된 생각들, 욕심 집착 등을 탁 놔버리고
적정상태로 들어가는 거예요.
고요한 상태로 깊이 들어갈수록 기쁨이 있습니다. 법열(法悅)이 있어요.
그런데 우리 현지사에서 덧붙이고 싶은 것은 적정상태로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기쁨은 배가(倍加)해요.
그래서 보살이 되고 붓다가 되면 그대로 환희세계에서 사는 거예요.
환희세계에서 살아요. 영원히 죽지 않고 멸도하지 않고 사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 불교가 다른 종교나 사상과 다른 크나큰 3대 진리가
삼법인(三法印)이어요. 4대 진리가 사법인인 거예요.
여러분 그렇게 알고 살아야 됩니다.
출처:2014년 자재 만현 큰스님 법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