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약 일주일 전 탐 글래빈에 관한 기사(Good-bye, Atlanta Braves!!)를 쓰면서 글래빈의 상황을 토사구팽에 비유한 적이 있다. 1995년 월드 시리즈 우승을 포함해 애틀란타가 1990년대 최강의 팀으로 군림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글래빈을 애틀란타가 외면했기 때문이다. 결국, 글래빈은 애틀란타를 떠나 지구 라이벌 뉴욕 메츠의 유니폼을 입었고, 내년 시즌 애틀란타를 상대로 공을 뿌리게 됐다.
여기 글래빈과 비슷한 처지에 놓인 또 한 명의 친구가 있다. 바로 뉴욕 양키즈의 마이크 스탠튼. 그는 90년대 후반 뉴욕 양키즈가 양키 제국을 건설하는데 있어 결정적인 공헌을 했고, 지난 7년 동안 매 시즌 60경기 이상을 등판하며 최고의 좌완 셋업맨으로 인정 받아왔다. 특히 포스트 시즌에서 보여준 그의 활약은 그 누구보다 대단했다. 마리아노 리베라라는 거물에 가려 상대적으로 많은 조명을 받지 못했지만 낙차 큰 커브와 안정된 제구력으로 좌타자들을 무너뜨리는 장면은 너무도 강렬했기에 많은 사람들의 기억 한편에 자리잡고 있다.
이런 최고의 일등공신 스탠튼을 뉴욕 양키즈가 냉정하게 내쫓았다. 아무리 이번 오프시즌의 목표를 페이롤 감소에 두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들이 스탠튼에게 제시한 금액은 너무도 터무니없는 액수였다. 2년 계약에 모두 460만 달러. 2002시즌 받았던 250만 달러보다 오히려 더 적은 금액을 스탠튼은 제시받았다. 금액만 문제가 됐다면 스탠튼이 받은 충격은 그리 크지 않았을 것이다. 양키즈는 스탠튼에게 위의 계약기간과 액수를 일방적으로 통보했고, 재계약을 행할 것인지를 15분 이내에 답변 해주기를 원했다. 거기에 15분 이내에 답변이 없을 경우 재계약을 포기하겠다는 협박(?)까지 해댔다. 계약 조건과 협상 과정에서 모두 스탠튼의 마음을 다치게 한 것이다.
스탠튼을 배신(?)한 양키즈는 마크 거드리, 크리스 해먼드와 접촉하다 결국 해먼드와 2년 계약을 체결했다. 크리스 해먼드의 계약 조건은 2년간 5백만 달러. 스탠튼은 해먼드가 제시받은 금액보다 더 적은 액수를 통보 받은 것이다. 물론, 해먼드가 이번 시즌 모두 63경기에 등판해 7승 2패 방어율 0.95의 특급 성적을 기록한 건 사실이다. 그렇지만 그의 2002시즌 연봉이 45만 달러에 불과했고, 이번 시즌이 생애 최고의 시즌이었다는 점. 거기에 스탠튼보다 나이도 한 살 많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스탠튼의 자존심이 구겨지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그렇다고 스탠튼의 활약이 해먼드에 비해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이번 시즌 해먼드보다 16경기가 많은 79경기에 등판한 스탠튼은 7승 1패 방어율 3.00 6세이브 17홀드의 준수한 성적을 기록했다. 또한 생애 최초로 올스타에 선정되는 영예도 안았다. 이런 성적에도 불구하고, 양키즈에 배신을 당한 스탠튼은 현재 커다란 충격에 휩싸여 있다고 한다.
양키즈와의 재계약이 물 건너간 스탠튼은 현재 4-5개 팀으로부터 영입제의를 받고 있다. 그 중 가장 이적 가능성이 높은 곳은 애틀란타 브래이브스다. 마이크 햄튼을 얻었지만 탐 글래빈, 마이크 램린저, 크리스 해먼드 3명의 뛰어난 좌투수를 잃은 상태이기에 스탠튼은 무조건 잡아야 하는 입장이다. 특히 램린저와 해먼드의 이적으로 마땅한 좌완 셋업맨이 없고, 번번이 포스트 시즌에서 무너졌던 애틀란타에게 큰 경기에 강한 스탠튼은 너무도 제격이다. 스탠튼은 포스트 시즌에 모두 53경기나 등판했고, 5승 2패 방어율 2.10을 기록했다. 월드 시리즈에서는 더욱 더 위력적인 구위를 선보였다. 20경기에 등판해 3승 무패 1.55의 믿을 수 없는 성적을 기록 중이다.
스탠튼 역시 애틀란타행이 싫지 만은 않을 것이다. 애틀란타는 언제나 월드 시리즈 챔피언을 노릴 수 있는 전력이고, ML에 들어선 1987년부터 9년여의 선수생활을 한 곳이다. 거기에 애틀란타는 자신이 ML를 데뷔한 팀이기도 하다. 문제는 역시 계약 금액이다. 탐 글래빈, 마이크 램린저, 크리스 해먼드를 모두 내보낸 애틀란타가 스탠튼에게 평균 연봉 300만 달러에 가까운 금액을 제시할지 의문이다.
스탠튼 영입에 뛰어들었던 필라델피아로의 이적은 사실상 힘들어졌다. 탐 글래빈, 짐 토미, 데이빗 벨, 제이미 모이어, 바톨로 콜론, 척 핀리 등 뛰어난 기량을 갖춘 선수들에게 무조건적으로 집적대고 있는 필라델피아는 마이크 스탠튼에게도 관심을 가졌었다. 하지만 그 사이 베테랑 좌완 셋업맨 댄 플리삭과의 계약에 성공했다. 팀의 젊은 투수들에게 많은 도움을 준 플리삭을 영입했기에 스탠튼 영입에는 일단 한 걸음 물러설 것으로 보인다.
확률적으로 높진 않지만 보스턴으로의 이적 가능성도 있다. 앨런 엠브리라는 믿음직한 좌완 셋업맨이 있지만 마무리 투수 유게스 어비나와의 연봉 조정 신청을 포기했고, 클로저로 노리고 있는 로베르토 에르난데스의 영입이 원활하지 않을 경우 스탠튼을 영입해 엠브리와 스탠튼의 플래툰 체제로 갈 가능성도 무시 못하기 때문이다. 거기에 뉴저지에 살고 있는 스탠튼은 가족들과 가까운 곳에서 선수 생활을 하기를 원하고 있고, 양키즈에 배신을 당한 터라 양키즈에 원한을 품고 있는 보스턴이 구미를 당길 수 있다. 스탠튼은 텍사스로 이적하기 전 95, 96시즌 보스턴에서 선수 생활을 보낸 적이 있다.
스탠튼의 종착지가 될 수 있는 또 하나의 팀은 텍사스다. 마이크 스탠튼의 고향은 텍사스이고 텍사스에서 대학을 나왔다. 또한 1996시즌 텍사스에서 뛴 적도 있다. 많은 선수들이 선수 생활의 마지막을 고향팀에서 보내고 싶어하는 예를 볼 때 스탠튼의 텍사스행 또한 전혀 그 가능성이 없진 않다. 불펜의 몰락으로 시즌을 날려버린 텍사스에 스탠튼의 가세는 불펜 강화에 더 없는 대안이 될 것이다. 특히, 팀의 1선발을 맡게 될 박찬호로서는 재도약을 꿈꾸는 2003시즌에 천군만마를 얻게 된다.
단 한 경기에도 선발 등판하지 않고 14시즌 동안 835경기를 뛴 마이크 스탠튼. 최고의 좌완 스페셜리스트로 군림해오며 양키즈 우승에 결정적인 공헌을 했지만 FA인 그에게 양키즈는 대박 계약 대신 배신의 칼을 들었다. 그야말로 토사구팽(兎死狗烹)이다. 이 잔인한 프로의 생리가 양키즈의 정예 요원인 스탠튼을 단 한 순간에 양키즈의 심장을 노리는 스페셜리스트로 바꾼 것이다. 안티 양키가 된 마이크 스탠튼. 이제 그에게는 토사구팽(兎死狗烹)이라는 말보다 와신상담(臥薪嘗膽)이 더 잘 어울리는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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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변화시키는 인터넷①』
(≫≪) 미군 희생 여중생들의 죽음을 애도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