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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수와 백합
 
 
 
카페 게시글
시 해석 및 시 맛있게 읽기 스크랩 조각보/ 정정지
은하수 추천 0 조회 17 16.06.20 07:27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조각보/ 정정지

 

엄마는 밤늦도록

반짇고리에 모아두었던

형형색색의 헝겊조각을 꺼내

한 장의 조각보를

만들고 있다

 

이혼하고 사내애 둘 키우던 남자와

사별하고 남매를 기르던 여자가

둥지를 틀고

아빠와 엄마가 되었다

남자의 아이 여자의 아이

머잖아 태어날 그들의 아이

 

모양도 색깔도 다른 헝겊들

완성된 조각보 펴들고

환하게 웃을 날이

불면의 강 건너

깊은 골짜기에서 눈 뜨고 있다

 

- 시집 방파제(만인사,2013)

...........................................................

 

 잘 챙겨보지 않던 KBS주말드라마 연속 2회분을 재방으로 보았다. 안재욱과 소유진이 주연으로 나오는 '아이가 다섯'은 싱글맘과 싱글대디가 인생의 두 번째 사랑을 만나게 되면서 가족들과 겪는 갈등과 화해, 사랑을 통해 진정한 행복을 찾아가는 좌충우돌 감성코믹 가족드라마다. 오늘 방영하는 이번 주 예고편에서 안재욱과 소유진은 모닥불을 사이에 두고 캠핑의자에 앉아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소유진은 시선을 바닥으로 향한 채 만감이 교차하는 눈빛으로 희미한 미소를 짓고 있고 안재욱은 행복 가득한 표정으로 소유진을 위해 캠핑장에서 음식을 손질하고 있다.


  조각보는 바느질하다가 남은 자투리 천으로 만든 보자기를 일컫는다. 한 조각씩 떨어져 있으면 쓰레기통으로 들어갈 것들을 모아 기우니 살림에 요긴하게 쓰일 뿐 아니라 그 조화의 아름다움으로 인해 예술작품의 경지에까지 이르기도 한다. 서로 다른 것들이 모여 서로 보완하고 꾸며주어 완성된 조각보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조각보 같은 세상이란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만이 아닌 다양한 개성의 사람들로 이루어진 조화로운 세상을 뜻한다. 그리고 서로 다른 조각 하나하나가 모여 다시 거대한 하나가 완성된다는 창조적 대동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시인은 이런 조각보를 통해 재혼가정의 밝고 긍정적인 삶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각자 딸린 자식이 둘씩 있는 남자와 여자가 둥지를 틀고 아빠와 엄마가 되는 일이 결코 수월할 리가 없다. 이혼이 늘어남에 따라 재혼가정도 급증하고 있는 현실에서 과거에 비해 사회적 편견은 많이 엷어졌지만 여전히 현실적 어려움과 장해가 따르는 것은 사실이다. 재혼가정 갈등구조의 핵은 자녀문제이다. 양쪽의 아이들이 차라리 어리다면 별 문제가 없겠으나 감수성이 예민한 시기엔 갈등의 소지가 없지 않다. 계부모에 대한 오랜 전통적 편견이 있어 팥쥐 엄마 콤플렉스장화홍련 콤플렉스를 온전히 벗어나기는 힘들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을 다 키워놓고 재혼을 고려해보겠다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마음은 변함없이 젊은데 몸은 늙어서 매력을 잃어버려 그때는 이미 황혼이다. 오히려 첫 결혼보다 완벽한 배우자를 만나고 싶은 욕구는 더 커진 상태다. 여기서 또 다시 만나는 복병이 상속과 재산 등의 경제적인 문제이다. 황혼재혼은 자식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행복을 위한 것임에도 이 걸림돌 앞에 주저하게 된다. 이래저래 호락호락하지 않은 재혼이지만 최근 모양도 색깔도 다른 헝겊들을 이어 완성된 조각보 펴들고 환하게 웃는 사람들을 드라마가 아닌 현실에서도 어렵지 않게 본다.


  과거엔 남자는 밥 해주고 수발 잘해줄 참한 여자를 찾는 경향이 많았고, 여자는 경제적으로 의지할 남자를 찾는 게 대부분이었지만 지금은 남녀 공히 취미와 여가를 함께 즐기며 여생의 동반자로 지낼 사람을 찾는 경향이 강해졌다. 따라서 요즘의 재혼 희망자들은 상대방의 경제적인 능력보다 정서적인 소통 가능성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 배우자 선택 시 재산외모가 아닌 성격매력을 최우선으로 꼽는다고 한다. 재혼은 비교적 정서적인 성숙상태에서의 결합이므로 인생과 사람에 대한 바른 이해만 있다면, 누구든 얼마든지 조각보를 들고 환하게 웃을 수 있으리라.



권순진


Over And Over / Erin Bo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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