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화과
4583101 류현정
내 인생의 영화 퐁네프의 연인들
the lovers on the bridge, les amants du pont_neuf 1991
영화 퐁네프의 연인들은 말 그대로 '내 인생의 영화' 이다. 고등학교때 나는 하릴없는 시간을 죽이기 위해 하교길에 항상 비디오 서너편을 빌려서 돌아가곤 했다. 그 시점에 많은 영화들이 내안에 들어왔고 대부분은 그냥 흘러 나가는 일도 허다 했지만, 유일하게 퐁네프의 연인들만은 그럴수가 없었다. 그렇게 처음 퐁네프를 접했고 그 영화가 가진 어떤 힘에 이끌려 이제는 내 인생의 영화에까지 기록하게 되었다.
영화의 줄거리는 대충 이러하다. 화가였으나 점점 시력을 잃어가면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거리에서 걸인처럼 살아가는 미셸은 파리 세느강의 퐁네프 다리에서 곡예사 알렉스를 만나게 된다. 함께 지내며 미셸의 사정을 알게 된 알렉스는 그녀에게 사랑을 느끼지만, 미셸은 화가 시절 자신이 사랑했던 줄리앙을 잊지 못해 알렉스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날, 자신의 눈을 고칠 수 있는 약이 개발되었다는 소식에 미셸은 집으로 돌아가려 하고, 그녀에게 집착하던 알렉스는 미셸을 막기 위해 그녀의 가족들이 붙인 포스터에 불을 붙이다 잡혀 감옥에 갇히고 만다. 그리고 3년 후의 크리스마스, 우연히 미셸과 알렉스는 퐁네프 다리에서 재회하게 된다.
이 영화가 내게 단순한 멜로영화로만 다가오지 않았던 것에는 그들이 있었던 배경의 힘이 크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천차만별의 사랑 중에, 그들은 남들은 보지 않는 가장 밑바닥, 버려진 공간 , 철거더미 속에서 사랑을 피워냈다. 이런부분이 내 호기심을 상당히 자극 시켰다고 생각된다. 그들을 거리까지 내몰고간 절망을, 나는 가져 본 적이 없다. 하지만 아무리 절망적이다고 해서 누구나 다 거리에 나가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그들이 다른 영화, 아이다호의 마이크처럼 자유분방함이나 거리에 대한 애착을 가진 사람들은 아니다. 다만, 그들은 퐁네프 다리에 선택없이 흘러 들어 온 것이지만 좋은 방향으로 그곳에 너무나 잘 어울려 보인다는 것이다. 나는 '하필이면 그 곳'에 있는 알렉스와 미셸의 모습에 반하게 된것같다.
또한 나는 이 영화가 말하는 방식을 참 좋아한다. 이 영화는 굉장히 불분명한 구석이 많은 것 같다. 미셸의 시력에 점점 한계가 왔을 때 그녀는 알렉스에게 자신의 그림속에 마지막 이미지가 되어 달라고 말한다. 미셸이 결국에는 알렉스를 받아들인다는 얘기다. 그런식으로 대화의 부재 속에서 언제 사랑이 시작되었으며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지 등등을 직접 찾아 내야만 한다. 그런 명료한 전개가 없어 어수선 한 방식이 마음에 들었다.
이 영화는 이미지적으로도 볼거리가 많다. 세느강의 잔잔한 물결을 배경으로 알렉스의 곡예장면, 한불수교를 맞이해서 파리에서 벌어진 불꽃놀이 장면, 미셸이 입은 노란색 옷까지.. 그것들은 화려하지만 우울한 곡조를 띄고 다가온다.
그들에게서 맡을 수 있는 원시의 향기, 원초적인 사랑에의 갈망 같은 건 이미 틀에 박혀 일상에 털푸덕 안주해버린 나같은 사람은 감히 흉내낼 수 없는 것이다. 그들처럼, 사랑에 인생의 무게를 전부 실을 수도 없고, 그들만큼 절망을 온몸으로 느끼며 나락에 떨어져 볼 수도 없겠지만, 나는 사랑을 생각하면 어쩔 수 없이 강렬했던 그들을 떠올리게 된다.
내 인생의 감독 레오까락스
carax, leos 1960, 11, 22~
나는 영화를 볼 때 먼저 감독을 보고 고르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접하게 되는 영화의 수나 그 장르가 참 한정 되어 있다는 생각을 하지만, 일단은 감독의 성향이나 스타일에 어느 정도 동감을 해야 관심이 가니 이건 앞으로도 어쩔 수 없는 일로 남을 것 같다.
레오 까락스는 위에 내 인생의 영화에서 다룬 퐁네프의 연인들을 만든 프랑스 출신 감독으로 다른 작품, <소년 소녀를 만나다> <나쁜피> <폴라액스> 로으로 유명하다. 내가 태어 난 해, 흑백영화 '소년소녀를 만나다' 를 발표해 세상을 놀라게 하였고 그 후 그만의 독특한 색깔로 세계 곳곳에 소수 , 레오까락스 영화 광팬을 낳는다.
퐁네프를 이어서 접한 그의 영화들은 아, 그의 영화가 맞구나 싶을 정도로 색깔이 분명했다. 레오까락스 팬들이 특히 한국에 많다는 소식을 들은적이 있는데, 무엇이 한국인의 구미를 당겼는지는 잘 모르겠다. 프랑스 정서와 한국의 정서에는 상당한 갭이 있어 받아 들여지기 어려울 것이라 생각했는데 의외의 반응에 기쁘기도 했다.
레오까락스 영화는 그의 연애관 등등..그 자신과 상당히 맞닿아 있다고 느껴지는 부분이 상당히 있었다. 그는 작품에 자신을 연결시키고 싶어하는 경향이 있는 듯 하다. 한 예를 들면, 레오까락스라는 이름은 자신의 이름 '알렉스'와 '오스카'의 철자를 혼합하여 지은 것인데 '폴라엑스' 를 제한 그의 영화에 나오는 남자 주인공은 모두 '알렉스' 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
그의 영화 중 퐁네프는 어마어마한 제작비로 만들어 진 영화로 유명하다. 그는 영화속에 퐁네프의 이미지를 그대로 끌어 오기를 원했고 엄청난 제작비를 들여 다리와, 다리의 배경까지 재현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그 액수에 비해 영화가 너무 초라하다는 소리가 빈번하고, 그 외 다른 요소들도 개입하면서 이 영화가 졸작이라는 평을 받는다. 하지만 나는 그의 고집이 퍽이나 마음에 들었다. 자신이 만들고 싶은 영화를 위해서 포기 하지 않고 무언가를 시행해냈다는 사실이 대단하고 존경스럽게 느껴진다. 그의 영화도 좋지만 그것을 떠나 그가 보여준 열정에 갈채를 보내면서 나도 그를 닮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내 인생의 배우 드니라방
Denis Lavant 1961, 6, 17~
다른 이름의 데니스 라방은 <소년 소녀를 만나다 >를 통해 레오까락스와 인연을 맺으면서 <나쁜피> <퐁네프의 연인들> 까지 단짝 파트너로 영화에 임해 왔다. 특히 그는 연극무대에서도 명성이 높은데 몰리에르 및 안톤 체홉의 작품에서 열연하면서 명실공히 파리 최고의 연기자로 인정 받고 있다.
레오까락스가 영화를 찍기 위해 알렉스 역의 남자 주인공을 찾기위해 오디션을 열었을 때 그는 썩 마음에 드는 사람을 찾지 못했다고 한다. 후에 오디션을 보러 온 사람 중 하도 특이하게 생겨서 기억에 남아 있는 사람을 택하게 되었는데 그가 바로 드니라방 이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이제는 레오까락스 영화 하면 드니라방을 먼더 떠올리게 된다. 아니, 알렉스를 먼저 떠올리게 된다.
그는 레오까락스 영화 3편 모두 알렉스라는 이름의 주연으로 등장한다. 우락부락한 두상에 두꺼비 같이 찢어진 입술을 하고 담배를 떨어질 듯 물고 있는 한 소년. 그래, 그는 소년의 이미지를 하고 있다. 이런 표현이 적당한진 모르겠지만 그는 야생의 원시림 같다. 그의 연애관에는 거짓말이 없다. 병적인 집착, 질투, 그는 행동으로 그대로 보여준다. 엘렉스는 가진것이 없어 가지고 싶어 하는 사람이다. 그것은 유독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한 여자의 마음같은 더 없이 얻기 힘든 쓸쓸한 것들이다.
드니라방은 알렉스와 너무 닮아 있다. 그의 길거리에서 펼치는 싸구려 재주들을 보고 있으면 그런 생각이 확실히 든다. 이제는 나이를 먹어서 알렉스에 적합한 소년 연기를 할 수는 없지만 그가 젊은 시절에 남긴 영화들을 보고 있노라면 그의 몸짓이나 어눌한 말투를 따라하며 또한번 알렉스를 꿈꾸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