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장 연화리 '해물포장촌' 골목
쉼이 있는 하루

가을이 절정이다.
여름내 더위와 생업에 지친 서민들에게 가을은 참으로 너그러운 계절이다.
풍요롭고 충만한 나날이다.
오곡백과의 햇것들이 사람들 마음을 비로소 다숩게 하는 시간들이다.
'열심히 일 한 당신, 떠나라-' 했던가?
여름내 힘들었던 사람들에게 가을은, 잠깐 쉬면서 재충전의 시간을 즐기는 계절이다.
가을햇살은 다사롭고 가을바람은 싱그럽고 상쾌하다.
모든 것이 여유로운 요즘이다.
하루쯤 아무 생각 없이 쉬고 싶은 날이면 가족들과 기장으로 나들이를 한다.
낚싯대 몇 대 챙기고 송정을 지나 대변 방면의 해안도로로 간다.
바닷바람이 더 없이 청량하다.
향그러운 갯내음이 훅 끼친다.
갯바위마다 가족단위의 나들이객들이 낚싯대 드리우고 하루를 보내고 있다.
모두들 편안한 모습이다.
곧이어 연화리. 횟집도 많고 사람도 많다.
죽도 맞은 편 갯바위 쪽으로 일단의 해물포장집들이 눈에 들어온다.
10여 집은 족히 됨직 하다.
포장집 앞으로 고무대야를 쭉~ 일렬로 줄을 세워놓았다.
대야마다 갖가지 싱싱한 해물들이 풍성하다.
가을이라 그런지 해물을 고르는 사람이나 장만해 주는 사람이나 모두들 여유롭다.
그리고 활달하다.
"할매요, 개불 한 마리 더 넣어 주이소."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예, 그라입시더."
선선히 개불 두어 마리 더 넣어 장만한다.
참 보기 좋은 풍경이다.
포장촌 옆 새로 매립한 매립지에 돗자리로 자리를 마련한다.
아이들이 강아지 풀어놓은 듯 온 매립지를 다 헤집고 다닌다.
낚싯대를 편다.
낚시꾼들이 제법들 앉아있다.
대변 방파제 쪽으로 던질낚시를 한다.
낚시 시울을 팽팽하게 긴장시키자마자 곧이어 '투둑' 입질이 온다.
힘껏 챔질한다.
'투둑,투둑' 고기의 저항이 제법 거세다.
손맛이 좋다.
첫 수에 때늦은 상사리(참돔 작은 놈)가 올라온다.
두어 시간 만에 도다리(참가자미), 꼬시래기(망둥이), 보리멸, 배도라치 등 열댓 마리의 횟감을 마련했다.
곧바로 해물포장촌의 단골 할머니에게 장만을 부탁한다.
해물모듬 만 원짜리 한 소쿠리(이 곳은 접시 대신 대소쿠리에 담아준다)와 전복죽 2인분을 함께 시킨다.
곧이어 회 소쿠리 하나에 해물 소쿠리 하나 총 두 소쿠리의 해산물이 나온다.
제법 그럴듯하다.
해물모듬에는 개불, 해삼, 소라, 멍게 등이 함께 뒤섞여 있다.
그야말로 해물종합세트다. 돗자리에 앉아 가족끼리 술잔을 기울인다.
각각의 해물을 입에 넣는다.
꼬들꼬들, 쫄깃쫄깃, 오독오독, 살~살….
해물마다 씹는 맛이 각기 달라 즐겁다.
직접 잡은 생선회도 아주 별미다.
일반 횟집에서는 먹기 힘든 것들을 갓 장만했으니 맛이 없을 수가 없다.
이 또한 하루의 여유를 가지는 사람들만이 누리는 특권이다.
술이 한 순배 돌았을 즈음, 단골 할머니가 찌그러진 양은냄비에 쑨 전복죽을 가져오신다.
푸르스름한 빛깔이 군침을 돌게 한다.
한 술씩 떠먹는다.
고소하면서도 깊게 감치는 맛이 아주 일품이다.
과연 연화리표 전복죽이다.
그래서 이 곳에 오면 전복죽을 꼭 맛봐야 하는 것이다.
부산에서도 몇 손가락 안에 드는 최고의 풍미이기 때문이다.
연이어 풍성하게 열리던 가을 축제도 이제 끝물이다. 축제의 계절도 막바지에 이른 것이다.
또다시 새로운 날을 준비하고 있는 요즘.
내실 있고 활기찬 내일을 위하여 이제 '쉼이 있는 하루'를 보내시길 바란다.
하루의 휴식이 한 계절의 성패를 좌우하기 때문이다.
최원준·시인 cowejoo@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