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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골산 봉서방 원문보기 글쓴이: 권호만barnabak
사막을 가꾸시는 하나님
이사야35:4-7
이미애 씨가 쓴 <사막에 숲이 있다>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은 중국의 ‘바이완샹과 인위쩐’ 부부의 눈물겨운 나무사랑이야기를 담은 책입니다.
중국북부 네이멍구에 마오우쑤 사막이 있는데, 이 사막이 중국과 우리나라 그리고 일본에까지 황사를 일으키는 진원지입니다.
이 마오우쑤 사막은 본래가 울창한 숲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무분별한 벌목과 양 사육, 지구온난화로 점점 사막화 된 지역입니다.
자연히 사람들은 하나 둘 도회지로 떠나고 마을은 황폐하게 됩니다.
이런 황폐화된 사막에 20대 청년 ‘바이완샹’이 홀로 살고 있었고 어느 날 20세의 ‘인위쩐’이 나타납니다.
부부가 된 두 사람은 이곳을 벗어날 수 없다면 개발해보자는 생각으로 사막에 나무를 심기 시작하고 풀씨를 뿌리기 시작합니다.
실패한 나무가 더 많았지만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나무를 심고 가꾸었을 때 사막은 조금씩 바뀌기 시작합니다.
30여년이 지난 지금은 나무심기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져서 푸른 기억을 가진 사막으로 되살아났습니다.
그들이 가꾸어 회복한 땅은 200만평에 이르게 되었고 이 사업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고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습니다.
사막은 아무것도 살 수 없는 버려진 땅입니다.
사막의 삶은 어렵고 힘들고 고통스러운 삶입니다.
사막에 무슨 재미가 있고 기쁨이 있고 소망이 있겠습니까?
사막은 모든 희망을 앗아가고 더 이상 어떤 소망도 갖게 하지 못하게 하는 불모지일 뿐입니다.
사막의 삶은 사는 것이 아니고 죽지 못해 사는 삶입니다.
그런 사막에 나무를 심고 희망을 가졌다는 것은 정말 바보 같은 일 같고 허무맹랑한 일같이 보였습니다.
그런데 이 책은 그런 바보 같은 일에도 포기하지 않고 인내하며 가꾸는 노력을 기울였을 때 옥토가 될 수 있고 울창한 숲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막에서 백합화가 피는 것이 전혀 거짓말이 아니었음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이사야 선지자가 바벨론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전해준 하나님의 메시지입니다.
이 메시지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광야와 메마른 땅이 기뻐하며 사막이 백합화 같이 피어 즐거워하며”(1절)
“무성하게 피어 기쁜 노래로 즐거워하며 레바논의 영광과 갈멜과 사론의 아름다움을 얻을 것이며
그것들이 여호와의 영광 곧 우리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보리로다.”(2절)
선지자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바벨론 포로생활을 광야와 메마른 땅과 사막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바벨론에 노예로 끌려가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머나 먼 이국땅에서 절망하고 탄식하며 고통당하고 있었습니다.
언제 이 포로생활이 끝날지, 다시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는 날이 올는지 알 수 없는 절망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바벨론 포로생활은 분명 황량한 사막이었습니다.
그런 백성들에게 하나님은 선지자를 통하여 희망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사막이 백합화 같이 피어 즐거워할 것이다.’
‘광야와 메마른 땅이 기뻐할 것이다.’
‘레바논의 영광과 갈멜과 사론의 아름다움을 얻을 것이다.’
그러나 백성들은 이런 메시지를 받기가 거북하고 어려웠을 것입니다.
‘어떻게 광야에서, 사막에서 백합화가 피고 그래서 기뻐하고 즐거워할 수 있겠는가?’
‘어떻게 레바논과 갈멜의 그 울창한 술과 같은 아름다움을 얻을 수 있을까?’
‘어떻게 바벨론에서 해방 받아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그러나 하나님은 선지자를 통해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사막이, 황무지가 그렇게 바꾸어질 것이다.’
‘너희 삶이 그런 모습으로 바꾸어질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사막을 백합화 동산으로 바꾸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메마른 땅을 옥토로 바꾸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광야를 울창한 갈멜산으로 바꾸시는 하나님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한 부부의 끈질긴 노력을 통하여 사막이 울창한 숲으로 바꾸어질 수 있다고 한다면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사막을 백합화 동산으로 가꾸시는 것은 아무것도 아닌 줄 믿습니다.
하나님은 사막을 울창한 숲으로 가꾸시고 광야를 푸른 초장으로 가꾸시고 메마른 땅을 옥토로 가꾸실 수 있는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실제로 이스라엘 민족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포로 해방을 통하여 고국으로 돌아가는 기쁨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요한복음 4장에 나오는 사마리아 여인은 남편 다섯이 있었던 여자고 지금 사는 남자도 자기 남편이 아니었습니다.
궁금한 것은 이 여자가 왜 이렇게 여러 번 결혼을 했을까? 하는 점입니다.
이 여자를 상상하고 그린 그림을 보면 대부분 아주 예쁘고 섹시한 여자로 등장합니다.
그렇게 보면 여자가 남자를 다섯 번이나 차 버렸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 나오는 행적을 보면 외모가 아주 형편없는 여인으로 다섯 번이나 차인 여자일 가능성이 큽니다.
신명기 24장 1절은 “수치 되는 일”이 아내에게서 발견되면 모세가 명한 이혼증서를 써주고 내보낼 수 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무엇이 이혼의 기준이 되는 ‘수치 되는 일’인지 판단하는 것이 중요한데요,
샴마이 학파는 오직 아내가 ‘부정한 짓’을 한 경우만을 수치 되는 일이라고 판단했고 그 경우에는 이혼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반면 힐렐 학파는 아내가 음식을 망친다든가, 다른 남자와 얘기한다던가, 면전에서 부모를 욕한다던가,
길거리를 배회한다던가, 다른 더 아름다운 여인을 아내로 맞을 수 있을 때 이혼할 수 있다고 가르쳤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남자에게 매력을 줄 수 있는 아름다운 여인이 아니었습니다.
이 여인은 결혼을 하면 얼마 있지 않아 이혼을 당하는 정말 사막 같은 삶을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 삶이 얼마나 힘들고 외로웠던지 그녀는 뜨거운 태양아래에서 아무도 없는 정오시간을 이용해 물을 길러 나올 정도였습니다.
이런 사막과 같은 삶을 살아가는 여인이 예수님을 만나게 되자 그 심령이 백합화 동산으로 바뀌었고 기쁨과 즐거움이 충만해졌습니다.
담대하게 동네에 들어가 내가 메시아를 만났다고 예수님을 증거 했습니다.
‘여러분, 내가 구세주를 만났습니다. 내가 평생 믿고 의지하며 살아갈 대상을 만났습니다.’
‘저는 지금 너무나 행복합니다. 이제부터는 더 이상 슬퍼하거나 방황하지 않겠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을 찬양하고 기뻐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사막이 백합화 동산으로, 황무지가 장미꽃 동산으로 바꾸어지는 줄 믿습니다.
하나님은 사막과 같은 심령을 아름다운 옥토로 바꾸시는 하나님이신 줄 믿습니다.
사막과 같은 가정, 사막과 같은 사회, 사막과 같은 나라도 백합화 같은 동산으로 바꾸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여러분, 인생의 사막에서 나무를 심으시고 가꾸시는 하나님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인내하시며 포기하지 않으시고 끝까지 나무를 심으시는 하나님을 굳게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회복시키시는 놀라운 역사를 경험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먼저, 회복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5절, 6절에 보면, “그 때에 맹인의 눈이 밝을 것이며 못 듣는 사람의 귀가 열릴 것이며 그 때에 저는 자는 사슴같이 뛸 것이며 말 못하는 자의 혀는 노래하리니” 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맹인으로, 귀머거리로, 저는 자로 사람을 지으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창조는 언제나 선하시고 온전하십니다.
에덴동산과 같이 부족함이 없는 완전한 모습으로 지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죄와 타락으로 불완전하고 불행한 삶을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그 불완전한 삶을 온전하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사역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죄를 없애주시려고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셨습니다.
그 예수님을 믿음으로 의롭다 인정받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셨고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게 하셨습니다.
결국 역사의 종말을 맞게 되면 우리는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가서 온전한 에덴동산의 축복을 누리며 영생의 삶을 살게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고 하나님의 역사는 이렇게 흘러가게 됩니다.
이러한 회복의 역사는 현실의 삶속에서도 일어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부족하게 사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더 온전하게 더 행복하게 더 아름답게 살기를 원하시고 그래서 우리에게 회복시키시는 은혜를 베풀어주십니다.
바벨론의 침략으로 유대 땅은 완전히 초토화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고국 땅을 레바논의 영광과 갈멜과 사론의 아름다운 땅으로 회복시키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방인의 침략과 전쟁으로 황폐해진 고향 땅을 예전처럼 회복시키겠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사막 같은 황폐해 진 인간의 삶을 레바논의 숲처럼, 갈멜의 웅장한 산처럼, 사론의 아름다운 평야처럼
만들겠다는 계획을 갖고 그 계획을 이루어나가십니다.
잃어버린 본래의 땅이 회복되어 본래의 모습을 갖게 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요 목적이요 역사의 결국입니다.
회복시키시는 하나님 앞에 우리는 늘 기도하며 회복의 은혜를 간구해야 합니다.
‘하나님, 저의 심령을, 저희 가정을, 저희 자녀를, 저희 교회를, 우리나라를 회복시켜주십시오.’
절대로 인간의 삶은 다 이런 것이라고 지레 포기하고 광야와 사막과 같은 삶을 살지 마시기 바랍니다.
육신의 연약함이 강건하게 회복되기를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무미건조한 삶이 행복과 감사가 충만하기를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회복시키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요 계획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역사의 주관자가 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10절 말씀에 “여호와의 속량함을 받은 자들이 돌아오되” 했는데 이것은 바벨론의 포로에서 돌아오게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의 포로에서 해방 받아 고국으로 돌아온다는 것은 정말 꿈에도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바벨론은 아직도 강한 국력을 갖고 주변나라를 다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런 말씀을 이루시기 위하여 파사의 고레스에게 권력을 주셨고 포로들을 해방시키려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이런 회복의 은혜는 하나님께서 역사를 주관하시고 인간의 흥망성쇠를 주장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여러분, 전능하신 하나님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는 줄 믿습니다.
뜨거운 사막이 변하여 못이 되게 하십니다.
메마른 땅에 변하여 원천이 되게 하십니다.
승냥이의 눕던 곳에 풀과 갈대와 부들이 나게 하십니다.
맹인의 눈을 밝게 하시고 못 듣는 사람의 귀가 열릴 것이고 저는 자들이 사슴같이 뛰게 하십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또한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전능하다는 것은 귀한 것이지만 그것이 좋은 것과 연관되지 않으면 더 무서운 무기가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전능하시면서도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기에 전능하신 능력은 우리를 회복시키시고 우리를 축복하시는 일에 사용되어집니다.
우리를 더 좋게 하시고 더 온전하게 하시고 더 아름답게 하십니다.
이런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은 사막 같은 현실 앞에서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4절에서 “겁내는 자에게 이르기를 너는 굳세게 하라, 두려워 말라,
너희 하나님이 오사 보수하시며, 보복하여 주실 것이라 그가 오사 너희를 구하시리라” 아멘.
무서운 현실 앞에서 겁먹지 말라, 희망의 끈을 놓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절망을 끌어안고 사막과 같은 삶을 살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오셔서 무너진 삶의 자리를 완전하게 보수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오셔서 적들에게 보복해주시고 구원하여 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오셔서 천군만마의 군대로 악한 영들을 물리치시기 때문입니다.
또한, 약한 손을 강하게 하며, 무릎을 굳게 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3절)
사람이 엄청난 일을 당하고 나면 맥이 빠지고 기운이 없어집니다.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잃게 되면 망연자실하고 아무 생각도 안 나고 공황상태가 됩니다.
손을 내려놓고 그만 바닥에 주저앉게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렇게 감당할 수 없는 현실 앞에서, 두 손을 불끈 쥐고 일어나게 하시겠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오늘 말씀을 통해 성도들에게 좌절금지를 명령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인생의 사막 앞에서 두려워 떠는 우리를 건지려고 하십니다.
그래서 지금도 포기하지 않으시고 사막에 나무를 심으시는 줄로 믿습니다.
인생의 삶이 사막처럼 황량하고 힘들고 고달프십니까?
사막에 나무를 심으시고 가꾸시는 하나님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평안을 빼앗아 가는 그래서 사방이 근심과 염려뿐인 사막에 홀로 있습니까?
걱정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그 사막에 나무를 심어 숲을 만드실 것입니다.
여러분의 인생을 하나님에게 맡기십시오.
우리는 세상역사 속에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속역사 속에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인생을 주관하시고 좋은 길로 이끌어가는 줄 믿습니다.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인생에 나무를 심어
울창한 숲을 만드시고 아름다운 백합화 동산으로 만드실 줄로 믿습니다.
(2024.09.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