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3 출간시집 시소개 (신작 시집) 이강 시인의 시 '기형도 2' 시를 읽는 아침 ・ 2023. 10. 27. 7:30 URL 복사 이웃추가 본문 기타 기능 기형도 2 / 이강 한 무리 친구들의 촉발된 호기심이 슥슥 삭삭 그의 머릿속을 헤적일 적에 도서관 옆 철제 난간 위에 양손으로 턱을 받히고 발아래 비원 풍경을 자욱 누르다 “가을은 참 깊다” “……” “시란 본질적으로 낮은 목소리여서 누군가 버린 아픔을 주워 담는 일이지“ 자분자분 속삭이는 돌올한 그의 언어는 상상력의 굴레에 갇히지 않은 날것으로 비렸다 덧붙인 응결된 말 “존재하지 않는 존재의 씨앗을 틔워, 꿈결 따라 깃을 치는 투명한 죽음의 각주 같은 것“ 그는, 언어라는 형식의 외피를 벗고 행간이 자유로워야 한다고 했다 그래야 비로소 시가 꼴을 갖춘다고 했다 이강, 『기형도』, 한국문연, 2023, 12~13쪽 이 시집을 발견했을 때, 기형도 시인의 시집을 다시금 출간한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시집 제목이 ‘기형도’였으니까요. 그런데 지은이가 있습니다. 지은이가 ‘기형도’가 아니라 ‘이강’입니다. 이강 시인의 시집이라는 의미입니다. 이렇게 되면 궁금해지죠. 왜 시집 제목을 ‘기형도’라고 지었을까. ‘기형도’와 관련된 시가 한 편 있는 것일까. 이 시집에서 「기형도」라는 시가 어떤 의미가 있어서 시집 제목까지 ‘기형도’라고 지었을까. 결과적으로 말씀드리면, 시인은 「기형도」라는 연작시를 이 시집의 중심에 놓았습니다. 이 시집에는 「기형도」 연작시가 35편 있습니다. 제1부를 연작시 「기형도 1」 ~「기형도 35」로 채우고 있습니다. 기형도 시인을 모르시는 분은 없으시겠지만, 다시 설명해 드리면, 시대는 다르지만, 윤동주 · 정지용 시인처럼 이른 생을 마감한 시인입니다. 살아생전에 시인은 시집을 출간하지 못했습니다. 그의 첫 시집은 유고 시집으로 시인 사후에 출간됩니다. 시집의 제목은 『입속의 검은 잎』(문학과지성사)입니다. 기형도저자이강출판한국문연발매2023.10.20. 시인은 경기도 웅진군 송림면 연평리의 피난민 가정에서 태어납니다. 유년 시절인 1965년 현 광명시 소하동으로 이사하고요, 이후 서울시흥초등학교, 신림중학교, 중앙고등학교를 거쳐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 입학합니다. 시를 쓰게 된 것은 연세문학회에 들어간 것이 계기라고 알려져 있는데요, 이강 시인의 시를 읽으면서 기형도 시인의 시 씨앗은 그 이전부터 있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강 시인과의 인연은 중앙고등학교에서 만들어집니다. 시인의 말에 사진 한 장을 배치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나는 지금 서울 중앙고 3학년 3반 졸업사진을 들여다보고 있다 / 맨 뒷줄 왼쪽에서 두 번째가 기형도이다. 맨 앞줄 왼쪽에서 두 번째가 이강이다’라고요. 이강 시인과 기형도 시인은 서울 중앙고 동문이었으며, 같은 반 친구였습니다. 이강 시인과 기형도 시인은 문예반을 들락거리며 시와 현실에 대해 얘기했던 꽤 친밀한 친구였던 것 같습니다. 그만큼 기형도 시인에 대한 기억도 많았을 것입니다. 이 시집에서 제가 주목한 시는 「기형도 2」입니다. 이 시를 읽으면서 떠올렸던 기형도 시인의 시 한 편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시는 「소리의 뼈」입니다. 김교수님이 새로운 학설을 발표했다. 소리에도 뼈가 있다는 것이었다. 모두 그 말을 웃어넘겼다, 몇몇 학자들은 잠시 즐거운 시간을 제공한 김교수의 유머에 감사했다. 학장의 강력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교수님은 일 학기 강의를 개설했다. 호기심 많은 학생들이 장난삼아 신청했다. 한 학기 내내 그는 모든 수업 시간마다 침묵하는 무서운 고집을 보여주었다. 참지 못한 학생들이, 소리의 뼈란 무엇일까 각자 일가견을 피력했다. 이군은 그것이 침묵일 거라고 말했다. 박군은 그것을 숨은 의미라 보았다. 또 누군가는 그것의 개념은 중요하지 않다고 했다. 모든 고정관념에 대한 비판에 접근하기 위하여 채택된 방법론적 비유라는 것이었다. 그의 견해는 너무 난해하여 곧 묵살되었다. 그러나 어쨌든 그 다음 학기부터 우리들의 귀는 모든 소리들을 훨씬 더 잘 듣게 되었다. 기형도, 「소리의 뼈」(『문학과지성사』) 전문 이강 시인의 시에서 기형도 시인의 말을 옮겨 이렇게 적었습니다. ‘존재하지 않는 존재의 씨앗을 틔워 / 꿈결 따라 깃을 치는 투명한 죽음의 각주 같은 것’이라고요. 기형도 시인의 시 「소리의 뼈」가 다소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었는데, 오늘 이강 시인의 시를 읽으니 조금이나마더 이해가 됩니다. ‘소리의 뼈’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지만, 소리의 뼈는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존재의 씨앗을 틔우는 각주 같은 것이라고 이해할 때, 의미상으로 명쾌해지는 것이 있습니다. ‘언어라는 형식의 외피를 벗고 행간이 자유로워야 한다고 했다’라는 말도 의미심장합니다. 이강 시인의 시집 이 말들이 기형도 시인이 한 말인지 아닌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시인에게 직접 확인해 보지도 못했고, 고등학생이 이렇게 깊은 생각을 할 수 있을까라는 의심도 한 몫을 합니다. 다만, 기형도 시인이라면 가능하지 않았겠느냐는 생각은 의심을 지우게 되는 근거가됩니다. 그만큼 기형도 시인의 시는 우리 문단에 중요한 중심축으로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많은 시인이 그의 시를 읽으며 시인되기를 꿈꿨으니까요. 시 쓰는 주영헌 드림 [출처] (신작 시집) 이강 시인의 시 '기형도 2'|작성자 시를 읽는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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