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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크리스마스
요5:10-18절) 아버지께서 일하시니
사람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희망(希望)”이 있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을 것입니다.
즉 병이 나올 수 있다는 희망, 좋은 대학에 합격할 수 있다는 희망, 지금보다 더 잘살 수 있다는 희망, 사업에 성공할 수 있다는 희망이 있기 때문에 그 어려움을 이기고 더 노력하게 됩니다.
예루살렘의 양문 곁에 있는 베데스다 못가에 있는 행각에는 수많 은 병자가 와서 자리를 깔고 누워있었는데, 이들이 거기에 있었던 것은 거짓된 희망 때문이었습니다.
즉 천사가 내려와서 물을 돌게 만드는데, 그때 가장 먼저 들어가면 무슨 병이든 낫는다는 소문 때문이었습니다. 정말 천사가 능력 있다면, 물에 들어간 사람은 다 병이 낫게 되어야지, 가장 먼저 들어간 사람만 낫는다는 것은 웃기는 이야기입니다.
이것은 엉터리 소문이었고, 요즘 유행하는 가짜 뉴스였습니다. 그래도 희망이 없는 것보다는 엉터리 소문이라도 믿는 것이 남들에게 할 말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믿고, 거기에 누워있었습니다.
그중에 38년이나 된 병자도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나을 희망이 없는 병자들이 있는 곳에 찾아오셔서 희망을 주셨습니다. 그것은 38년이나 병으로 자리에 누워있는 환자에게 말씀 한마디로 병을 낫게 해서 일어서게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에게“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하셨습니다. 그랬더니 그 병자는 벌떡 일어나서 자기 자리를 들고 걸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이 이 병자를 고친 것은 잔잔한 호수에 돌을 던진 것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잔잔한 호수에 돌을 던지면, 파문(波紋)을 일으키면서 계속 물결이 퍼져 나가게 됩니다.
예수님은 베데스다 못가에 있는 환자들에게 파문을 던졌습니다. 즉 누구든지 예수를 믿으면, 새로운 인생을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호수에 파문이 일어나도 강한 역풍(逆風)이 불면 그 파문은 없어지게 됩니다. 그 당시 유대 사회에는 희망을 가지지 못하게 만드는 강한 역풍(逆風)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곧 유대 사회의 종교 경직성(硬直性)이었습니다.
Ⅰ.유대 사회의 강한 역풍
예수님은 이 세상에 새로운 인생을 가지고 오셨습니다. 즉 사람들 이 이 세상에서 성공해서 잘 사는 것을 보면, 새 인생을 사는 것 같은데 실제로는 헌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4장에 나오는 수가 성(城)여인도 헌 인생을 살고 있었습니다. 그 여인이 만났던 남자들은 헌 남자들이었습니다. 남자도 새 남자와 헌 남자 사이에는 얼마나 엄청난 차이가 있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이 여인이 살고 있던 사마리아 사람들 자체도 헌 인생을 살고 있었습니다. 그곳 사람들은 이 여인을 보고는 자기들보다 더 헌 인생을 살고 있다고 손가락질했습니다.
그런데 이 여인은 앞으로 메시야가 오시면, 자기에게 새 인생을 주실 것이고, 메시야는 내 모든 비밀(祕密)을 다 알고 계실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이 여인은 예수님이 자신의 결혼(結婚)비밀(祕密)을 말씀하실 때 처음에는 선지자인 것 같다고 했다가 혹시 메시야가 아니냐? 고 물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예수님은“맞다”고 대답하셨습니다. 이 여인이 예수님을 메시야로 믿는 순간 새 사람으로 변했습니다.
그의 뱃속에는 영생(永生)하도록 솟아나는 생물이 터지면서 사막과 같던 그의 마음은 꽃밭으로 변했습니다.
성경은 이 여인이 그 후에 어떻게 살았는지 언급하지 않고 있습니다. 단지 자기 동네 모든 사람을 전도했다고 되어 있습니다. 아마 정말 과거와는 다른 아름답고, 멋진 인생을 살았을 깃입니다.
왜냐하면 이미 마음이 사막에서 꽃밭으로 변해 버렸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5장에서 그런 사람을 또 만났습니다. 이번 사람은 오랜 병 때문에 사람에 대한 신뢰(信賴)를 다 잃어버리고, 마음이 아주 황폐(荒廢)하게 된 사람이었습니다.
이 사람에게 주위에 누워있는 환자들은 모두 인정머리가 없고, 물이 움직일 때, 자기를 제치고 먼저 물에 들어가려고 하는 경쟁자들로 보였던 것입니다.
이것은 이 사람의 잘못만이 아니었습니다. 몸에 병이 나서 고통이 계속되면, 기쁨이 없어지고, 짜증과 화만 엄청나게 생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집에 환자가 한 명 있으면, 그 집 전체를 얼마나 살얼음판처럼 만드는지 모릅니다.
38년 된 병자는 아마 무서워서 말을 걸어주는 사람조차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38년 된 병자에게 따뜻하게 말을 이렇게 걸어주셨습니다.“병이 꽤 오래되었군요. 병이 나을 희망이 있나요?”
이 사람은 자기도 무슨 소리 하는지 말 모르면서 다른 사람을 향해 불평하는 소리를 막 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이 사람은 38년 동안 병으로 고통 받았기 때문에 마음에든 것이라고는 불만과 불평과, 분노였습니다.
그런데 그때 예수님은 말씀을 던지셨습니다. 예수님은 마치 황무지에 돌을 던지듯이 말씀을 던지셨습니다.“일어나 자리를 들고 가라.”
그때 이 사람은 자기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면서 자리를 들고 집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이 사람은 새 인생을 살게 되었을까? 아니었습니다.
이 사람은 몸만 일어났지, 그에게는 더 복잡하고, 골치 아픈 일들이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5:10절)유대인들이 병 나은 사람에게 이르되 안식일인데 네가 자리를 들고 가는 것이 옳지 아니하니라.”
그에게 일어난 복잡한 문제는 유대 사회의 종교적 경직(硬直性) 때문이었습니다. 무려 38년 동안이나 하반신 마비로 누워있던 사람이 일어나서 걸어가니까 얼마나 놀라운 일이며, 박수를 받을 일이며, 기쁨 일입니까?
그러나 유대 사회는 안식일에는 물건을 가지고 걸어가지 못하게 되었는데, 바로 그날이 안식일(安息日)이었던 것입니다. 이 사람은 당장 유대인들에게 걸렸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이 사람을 붙잡아서 안식일인데, 네가 자리를 들고 가는 것은 법(法)을 어긴 것이라고 협박하면서 붙잡았습니다.
유대인들은 안식일(安息日)을 어기면, 회당(會堂)에서 채찍으로 때리든지 벌금을 매기든지, 아니면 출교(黜敎)를 시키는 경우까지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예수님을 만나서 능력의 말씀을 듣는 바람에 새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죄인 취급을 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어떤 사람이 나에게 일어나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해서 걸어가고 있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랬더니 유대인들은 자리를 들고 가라고 한 사람이 누구냐고 물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예수님을 몰랐기 때문에“모르는 사람”이라고 대답했습니다.
13절)고침을 받은 사람은 그가 누구인지 알지 못하니 이는 거기 사람이 많으므로 예수께서 이미 피하셨음이라”
지금 유대인들에게 중요한 것은 이 사람이 38년을 하반신 마비로 있다가 하나님의 능력으로 병이 나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유대인들에게 중요한 것은 이 사람이 안식일(安息日)에 자리를 들고 갔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이 사람이 유대인들에게 붙들려서 공격을 당하는 것을 보고, 다른 환자들은 “우리가 오늘 병이 낫지 않은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유대인들은 모두 기가 죽어 있었고, 남의 눈치를 보느라 아무것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의 마음에는 자유(自由)가 없었습니다. 그들의 마음에 하나님의 진리(眞理)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Ⅱ.왜 예수님은 안식일에 병을 고치셨는가?
안식일(安息日)이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6일 동안 천지(天地)를 창조(創造)하시고 7일 째 쉬셨기 때문에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쉬라고 주신 날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7일째 쉬셨다는 것은 창조(創造)가 완전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천지(天地)를 창조(創造)하신 것이 미완성(未完成)이었다면, 7일째가 더 바쁘셨을 것입니다.
즉 여기저기 공기가 빠져나가기도 하고, 물이 새기도 하고, 태양이 흔들리기라도 했으면, 하나님은 여기저기 수리하느라 바쁘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7일째 날에 온종일 쉬셨다는 것은 하나님의 창조가 완전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그 후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것은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한 때부터 여기저기에 고장이 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죄(罪)의 독(毒)을 마셨기 때문에 아프지 않을 때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 하나님께서는 유대인들에게 안식일을 지키라고 명하신 것은“너희들은 못 고치니까 손대지 말고 있으라.” 는 뜻이었습니다.
예를 들어서 어떤 사람이 아픈데, 아무것도 모르는 돌팔이가 고친다고 여기저기를 찌르고, 아무 약(藥)이나 먹이면, 그 사람은 더 아프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실 때까지는 인간의 마음은 고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안식(安息)을 지키라고 하셨는데, 완전해서 안식일이 아니라, 건드리지 말라는 안식일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의사가 왔습니다. 이제는 전문가(專門家)가 왔습니다. 그러면 이제 전부 아픈 사람들은 전문가 앞에 데리고 오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안식일(安息日)의 주인(主人)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병원에서는 의사(醫師)가 중요한 것을 다 결정할 것입니다. 담당 의사가 주인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요즘은 환자가 얼마나 똑똑한지, 환자가 모든 것을 다 결정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환자들이 제일 잘 안 낫는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 모든 고통의 해결자로 오셨습니다. 우리가 자신의 행복을 찾고, 자신의 가치(價値)를 찾는 것이 안식일(安息日)을 지키는 것입니다.
안식(主日)은 골프 치라고 있는 날이 아닙니다. 지방은 좀 덜한데 서울에는 사람들이 골프 치기 위해서 1부 예배를 많이 드린다고 합니다. 사실 예배드리고 골프 치는 것만 해도 대단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안식(主日)은 우리의 부족한 것을 치료받는 날입니다. 우리는 창조(創造)가 되는 것이 아니라, 재창조(再創造)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천사같이 만들려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일날 교회에서 회의(會議)하면서 싸우고, 얼굴 붉히는 것은 굉장히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하기로는 이 38년 된 환자는 병이 나았으니까 완전히 새 인생을 살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습니다
14절)그 후에 예수께서 그 사람을 만나 이르시되 보라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
예수님은 그 후에 이 사람을 한 번 더 만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이 남자의 과거도 다 알고 계셨습니다. 즉 그는 아프기 전에 굉장히 방탕하고, 문란하게 살았던 것 같습니다.
그는 병은 나았지만, 예수님이 메시야인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병만 나았지, 속에 들어있는 생각이나, 모든 것은 옛날 그대로였습니다.
예수님은 그가 38년이 지났지만, 옛날 생활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을 잘 아셨습니다. 아마 그의 몸은 성전에 왔지만, 마음속으로는 38년 동안 못했던 것을 다 해보려고 생각하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축복하시는 것은 더 큰 축복으로 초대하시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는 것은 더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라는 초청장(招請狀)입니다.
만약 세상에서 성공했기 때문에 나는 덜 믿어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가장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초청장만 받고, 파티(party)에는 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아직 부족한 것이 많이 있습니다. 이것을 하나님 앞에서 고침을 받는 것이 천국(天國)이요, 안식일(安息日)입니다.
안식(主日)은 노는 날도 아니고, 돈을 더 버는 날도 아니고,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천사같이 완전해지는 날인 것입니다.
Ⅲ.두 갈래의 길
이 38년 된 병자에게는 두 갈래의 길이 생겼습니다. 그 하나는 유대인들에게 돌아가서 안식일에 자리를 들고 가라고 한 사람은 예수라는 것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사람은 유대인들로부터는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대신 예수님과의 관계는 끊어지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이 사람이 예수님이 두 번씩이나 만나 말씀하신 대로 이제는 메시야를 만나서 새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는 안식일을 어겼다고 해서 유대인들에게 채찍을 맞거나, 벌금을 내거나, 출교(黜敎)당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당시 출교(黜敎)를 당하면, 천주교(天主敎)에서 파문(破門)당하는 것처럼, 사람들과 만날 수도 없고, 회당(會堂)에 나갈 수도 없고, 물건도 살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결국 이 사람은 병만 나은 것으로 만족하기로 했습니다.
즉 병은 낫고, 유대 사회에서는 정상적인 생활을 하니까 얼마나 만족스럽습니까?
그래서 이 사람은 유대인들을 찾아가서 안식일을 어기게 한 이는 예수님이라고 신고(申告)를 했습니다.
15절)그 사람이 유대인들에게 가서 자기를 고친 이는 예수라 하니라”
이 사람은 예수님께서 자신의 병을 고쳐주신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기적(利己的)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예수를 믿는 것도, 새로운 인생을 사는 것도 원치 않았습니다.
그는 단지 병이 나았고, 이제 집에 가서 옛날 같이 사는 것으로 만족했습니다. 이 38년 된 병자는 예수님을 신고(申告)했습니다.
예수님은 이 사람에게 더 무서운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고 하셨습니다. 즉 예수님은 이 사람에게 회개하고, 천국 생활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에게는 예수님의 말씀보다는 유대 당국의 말이 더 중요했습니다. 이 사람이 예수님의 말씀을 믿지 않고, 옛날식으로 이기적(利己的)이고, 자기만을 위해서 산다면, 그것은 38년간 병자가 누워있는 기간은 하나님의 심판(審判)이었다는 뜻입니다.
그는 병이 낫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했지만, 그의 인생은 죄(罪)의 인생이었고, 멸망(滅亡)의 인생이었습니다. 즉 언제든지 사탄이 덮칠 수 있는 길이었던 것입니다.
이 사람이 예수님을 신고(申告)하고, 빠져버리니까 이제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붙잡아서 심문(審問)하기 시작했습니다.
16-17절)그러므로 안식일에 이러한 일을 행하신다 하여 유대인들이 예수를 박해하게 된지라.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붙잡아서“당신은 무슨 자격으로 안식일에 사람에게 자리를 가지고 가게 했느냐?”고 심문(審問)했습니다. 그리고“왜 안식일에 의료 행위를 했느냐?”고 따졌습니다.
아마 이 사람들은 예수님의 멱살도 잡고, 험악한 얼굴로 소리도 질러대었을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은 한마디 말씀으로 대답하셨습니다. 그것은“아버지께서 오늘도 일하시니까 나도 일을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늘에서 아버지께서 일하시는 것을 유심히 살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안식일이 제일 바쁘신 날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날에 마음이 아픈 자를 위로하시고, 병도 치료하시고, 복도 주시느라고 눈코 뜰 새 없이 바쁘셨던 것입니다.
주일(主日)은 교회에 오는 날이 아니라, 복(福)받는 날입니다. 즉 우리의 모든 기도가 응답되는 날이고, 우리의 부족한 것이 다 채움 받는 날인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주일(主日)에 무거운 짐을 가지고, 아픈 몸을 가지고, 상한 마음을 가지고 예배에 옵니다. 하나님은 그 사람들을 고치시고, 새 인생을 주시느라고 주일(主日)이 가장 바쁘셨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을 바쁘시게 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18절)유대인들이 이로 말미암아 더욱 예수를 죽이고자 하니 이는 안식일을 범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자기의 친 아버지라 하여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으로 삼으심이러라.”
종교인(宗敎人)들이 남을 죽이려고 하는 것은 참 이상한 일입니다. 종교인(宗敎人)은 남을 살릴 생각을 해야지, 자기와 생각이 다르다고 해서 죽이려는 것은 그 종교(宗敎)가 이미 죽은 종교(宗敎)인 것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은“아버지께서 일하시니”라고 하셨을 때,“메시야가 오셨구나!”라고 믿으면 되는데, 유대인들은 너무 생각하는 것이 많았습니다.
38년 된 병자를 살린 분이 메시야가 아니면, 누가 메시야이겠습니까? 이것을 믿으면, 새 인생을 살게 되는데, 너무나 생각을 많이 하니까 오히려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시험(試驗)에 든 것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병만 낫지 말고, 돈으로 성공하는 것으로 끝나지 말고, 하나님의 진짜 복(福)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메시야(Messiah)는 오셨고, 천국문은 활짝 열렸습니다.
메시야(Messiah)를 믿으시고, 그냥 이 말씀대로 따라가셔서 모두 새 인생을 사시고, 영생(永生)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아-멘
찬송가 122장 *참 반가운 성도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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