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20) 작은 배려
안골은빛수필문학회 정석곤
“대변(大便)을 참으면 약이 되고 소변(小便)을 참으면 병이 된다.”
어릴 때부터 자주 들어온 말이다. 옛날 어른들의 말이 틀린 게 없지만, 대변도 밖으로 나오면 약이 되는 수가 있으나 참으면 변비 등 심할 땐 직장암까지 유발할 수도 있다.
점심을 먹고 쉬었다가 은행에 가려고 집을 나섰다. 한참 걸으니 화장실에 가고 싶다는 신호가 왔다. 난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화장실에 가 큰 볼 일을 본다. 보고 싶지 않아도 억지로 간다. 이제는 습관이 돼 건강생활을 하고 있다. 어쩌다 한 번씩은 그 습관이 깨지기도 한다. 오늘 아침도 큰 볼 일을 봤는데 아침과 점심을 과식해서 그런 것 같다.
집으로 되돌아갈까? 전주공설운동장 앞 야외 화장실이 생각났다. 은행까지 가보려 발걸음을 재촉했으나 급하다는 신호가 빨라졌다. 장맛비는 그치지 않고 주룩주룩 내리고 있었다. 화장실에 들어갔다. 우리나라 공중화장실은 선진국 수준 이상이다. 화장지는 밖에 공동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설치해 놓고 각 칸에도 걸어 두었으려니 싶었다. 두리번거리며 화장지를 찾았다. 없었다. 각 칸마다 두 번이나 열어 보았다. 아예 화장지를 안 걸어두었다. 급하긴 한데 화장지는 없고….
다행히 가운데 칸 양변기 위에 각(角) 티슈(tissue) 화장지가 낱장으로 구겨져 수북이 쌓여 있었다. 앞에 사용한 분이 두고 간 게다. 눈이 번쩍 띄며 절로 ‘감사, 감사, 감사합니다.’ 가 나왔다. 볼 일을 마치고 나니 십 년 묵은 체증이 쑥 내려간 것 같았다. 앞에 분의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내 위기를 해결해 주었다. 사용하고도 남았다. 나보다 더 급한 사람을 생각해서 아껴 썼다. 그 분이 누군지는 모르지만 얼굴 없는 작은 천사가 분명하다. 만약 그 천사가 없었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아찔했다.
그저께 받은 휴대폰 카카오 톡의 ‘따뜻한 실화’가 생각난다. 젊은 컴퓨터 상인이 어느 시골 아주머니의 부탁으로 서울에서 할머니와 6학년 딸이 사는 집에 중고 컴퓨터 한 대 설치를 주문받았다. 열흘 뒤에 쓸 만한 컴퓨터를 설치했다. 딸애는 환호성을 지르며 학원엘 갔다. 작업을 끝내고 나오는데 버스정류소에 딸애가 서 있었다. 학원이 자기 집과 반대 방향이지만 태워다 주기로 했다. 십 분쯤 가다 급히 화장실에 가고 싶어 가게 앞에 차를 세웠다. 조수석 시트를 보니 피가 묻었다. 첫 생리리라 짐작됐다. 당황할 아이가 생각나 청량리역 근처까지 가서 속옷을 사고 아내를 나오라 했다. 아내 말대로 생리대와 아기 물티슈와 치마를 샀다. 아내를 화장실로 들여보냈다. 아이는 그 때까지 울면서 어찌 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아이가 아내와 화장실에서 나왔는데 눈이 퉁퉁 부어있었다. 아내는 엄마 대신 첫 생리를 축하해주며 꽃다발을 안겨주었다. 컴퓨터 값을 22만원 받았는데, 다시 가서 10만원은 되돌려 주고 왔다. 두어 번 읽어도 콧잔등이 시큰하고 마음이 짠했다. 이런 젊은 부부가 있으니 살만한 세상이 아닐까 싶었다.
P 문인이 쓴 수필을 읽었다. 병원에서 남편을 간호할 때였다. 옆 침대에는 아버지에게 간 이식수술을 해드린 아들이 있었다. 의사 선생님이 재우지 말라고 했는데 자꾸 자려고 해 엄마가 아들 뺨을 계속 때렸는데 혈관이 터져 출혈이 되는 줄도 몰랐다. 문인은 청년이 창백한 얼굴로 팔을 축 늘어뜨리고 있어 쇼크 상태임을 직감하고 곧바로 간호사들에게 알렸다. 청년은 바로 수술실로 이송돼 재수술을 받았다. 평소에는 남의 침대를 잘 기웃거리지 않는 성격인데 아찔한 순간이 자기 눈에 띄어 그 청년을 구한 것이라고 했다. 순간적인 배려가 큰일이 날 뻔했던 위기를 구한 게 아닌가?
세상에 홀로 피는 꽃이 없듯이 나 홀로 사는 사람도 없다. 누군가 나를 돕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지금까지 잘 살아 온 것도 수많은 얼굴 없는 천사들의 크고 작은 배려가 쌓인 거라 여기고 감사를 드린다. 청소년 시절부터 일일일선(一日一善)이란 말을 좋아하며 좌우명으로 삼고 싶어 했었다. 이웃을 배려하며 사는 걸 최고의 선으로 삼았다. 그렇지만 내 생활은 앨범 속에 있는 빛바랜 흑백사진 같아 마음이 아프다.
바둑 고수는 바둑알 한 개를 놓을 때 몇 수 앞을 보느라 오랜 시간이 걸린다. 나도 작은 행동 하나라도 이웃을 생각하고 몇 수 앞을 내다보며 결정하고 싶다. 그러면 내 작은 배려가 앞의 세 분처럼 언젠가 누군가에게 위기를 넘기게 했다는 이야길 들을 때도 올 것이다.
(2020. 7.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