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통문 9]버들치 시인의 바오밥나무 사랑
일찍이 공지영 작가의 『지리산 행복학교』에서 ‘버들치시인’으로 등장하여 숱한 화제를 뿌린 박남준. 그는 여전히 ‘모태 솔로’를 훈장처럼 내세우고 있다. 영혼이 자유로운 남자. 언제든 죽을 터이니 통장에 장례비용 300만원만 있으면 안심된다며 소주병을 달고 다니는 그와 2023년 어느 여름밤 남원 귀정사 산사컨서트에서 수인사를 나누었다. 1957년 정유생丁酉生 닭띠. 갑쟁이라고 하니까 불쑥 “하동 한번 내려오소. 술 한잔 합시다”고 말했다. 그런 그를 연초에 다시 책으로 만났다. 시집이 아니고 산문집으로.
『안녕 바오』(박남준 지음, 2024년 6월 도서출판 기역 펴냄, 157쪽)가 그것으로, 그는 언제부터인가 『어린 왕자』에 나오는 바오밥 나무를 친구로 제대로 사귀고 있었다. 세상에, 시인은 참 좋겠다. 감성이 풍부해 어린 나무를 친구로 삼고, 그 친구의 원산지 고향을 보고 싶어 가난한 시인 주제에 멀리 아프리카의 마다가스카를 다녀왔다. 씨앗을 몽땅 얻어와 지리산자락(정확히는 하동 악양산골의 동매東梅마을이다)에서 키우고 있는데, 제법 잘 크고 있다. 작은 비닐하우스 안에서 조금씩 자라나는 새싹을 ‘바오’라는 애칭으로 날마다 말을 걸고 시를 쓴다. 이웃에게 분양도 해준다. 열대 관목이 잘 자랄 수 있을까는 순전히 기우杞憂였다.
바오밥 나무가 어떤 나무인지 기억하시리라. 시인은 어린 왕자 때문에 바오밥 나무가 몹쓸 나무라는 인상이 박혀 있지만 오해라며, 세상에 출간된 '어린 왕자' 책을 회수하고 잘못된 내용들을 고친 후 그 나무에 사과하라고 주장한다. 어느날 마당에 잡초가 자라지 못하도록 깔아놓은 왕마사토를 밟자 ‘사각사각’ ‘사그락사그락’ 소리가 들리면서, 잊고 있었던 사막이라는 단어와 함께 B612에서 날아온 어린 왕자와 불시착한 비행사(쌩떽쥐베리) 생각이 났다. 연상은 이어져 왕자와 친구가 된 사막여우와 선인장, 제라늄꽃 그리고 왕자의 별을 괴롭힌다는 괴물같은 바오밥나무가 떠올랐다. 동화속 상상의 나무로 알고 있었던 나무의 다큐멘터리를 보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군락지인 마다가스카르를 다녀와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던가. 순진하다고 해야 할까, 시인은 참 한가하고 유별난 존재이다.
그리스 로마신전들의 거대한 기둥 같은, 무량수전 배흘림기둥 같은 신비의 나무를 한택식물원 등에서 실제로 보고 실망이 컸다. 아프리카로 달려가 키 발을 딛고 두 팔을 벌려 한껏 그 높이와 둘레를 가늠해보고 싶었다. 만만찮은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내키지 않은 강연을 하며 난생 처음 저축도 했다. <바오밥 나무에 내려오는/별들의 밤하늘을 보러 갈 것이다/나무 아래 누우면/바오밥 나무는/가지가지 다가와/앉거나서 있고 기대거나/개구쟁이처럼 물구나무로 매달려 부르는/별들의 노래를 들려줄 것이다/날마다 나는/이 바오밥 나무에서 저 바오밥 나무까지/걸어가고 걸어올 것이다> 시를 쓴 후 마침내 여행을 단행했다.
현지의 바오밥 나무는 보면 볼수록 이상하게 생겼다. 터무니없이 높고 굵은 나무에 비해서 가지들은 또 터무니없이 짧고 몽땅했다. 그 이유를 금세 알 수 있었다. 가지마저 드넓게 뻗어 그늘을 드리운다면 다른 나무나 식물들이 고루 햇볕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말하자면 나무의 따뜻하고 깊은 배려라는 것을. 시인이 왕자와 바오밥 나무에 집착한 것은 고등학교 시절 『어린 왕자』를 읽은 후 가슴에 새긴 ‘내가 만약 글쓰는 사람이 된다면 이런 동화 한 편은 꼭 써야지. 언젠가 꼭 되돌려줘야 할 감동의 빚이야’라는 다짐 때문이었다. 바오밥 나무를 보자마자 너를 보러 온 이유와 너와 왕자에 대해 쓴 시 <어린 왕자로부터 새드 무비>를 읽어주며 우정을 나누었다. 눈을 감고 첫 입맞춤을 하며, 나무의 깊고 오랜 슬픔과 사랑이 시인의 몸을 물들이는 것을 느꼈다. 비가 적은 곳이어서, 사람들은 나무의 어마어마한 몸통에 구멍을 뚫어 물을 저장하는 창고로도 사용한다고 했다. 시인은 나무의 노래를 들으면서 내내 행복했다.
시인은 마다가스카르에서 돌아와 작은 화분에 바오밥 나무 씨앗을 심고 물을 주고 싹이 트기를 기다리며 설레었다. 페이스북에 싹이 트는 과정을 담아 올리니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싹이 터 자라면서 그들의 우정은 깊어갔다. 바오밥 나무가 떠나온 고향을 그리워하며 외로워할 때마다, 시인은 그곳에서 보았던 바오밥 나무를 닮은, 힘차고 싱그러운 초록빛 아이들을 생각하며 쓴 시를 들려줄 테니 결코 외로워하지 말라고 몇 번이고 약속했다. 그 아이들이 틀림없이 아프리카 마다가스카르의 ‘어린 왕자’라고 말한다. 따라서 박남준 시인의 이 별난 산문집은 동화 속 어린 왕자가 말한 ‘위험하니 조심하라’는 오해를 바로잡기 위해 쓴 일종의 짭짤하면서도 심심한 ‘바오밥 나무 보고서’라 하겠다.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따뜻함이 솟아나오는 좋은 산문집. ‘모태 솔로’ 시인이여, 고맙다. 언제 한번 따뜻한 술잔, 눈빛으로나마 주고받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