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7일(수) 시편 33:1-22 찬송 534장
1. 너희 의인들아 여호와를 즐거워하라 찬송은 정직한 자들이 마땅히 할 바로다
2. 수금으로 여호와께 감사하고 열 줄 비파로 찬송할지어다
3. 새 노래로 그를 노래하며 즐거운 소리로 아름답게 연주할지어다
4. 여호와의 말씀은 정직하며 그가 행하시는 일은 다 진실하시도다
5. 그는 공의와 정의를 사랑하심이여 세상에는 여호와의 인자하심이 충만하도다
6. 여호와의 말씀으로 하늘이 지음이 되었으며 그 만상을 그의 입 기운으로 이루었도다
7. 그가 바닷물을 모아 무더기 같이 쌓으시며 깊은 물을 곳간에 두시도다
8. 온 땅은 여호와를 두려워하며 세상의 모든 거민들은 그를 경외할지어다
9. 그가 말씀하시매 이루어졌으며 명령하시매 견고히 섰도다
10. 여호와께서 나라들의 계획을 폐하시며 민족들의 사상을 무효하게 하시도다
11. 여호와의 계획은 영원히 서고 그의 생각은 대대에 이르리로다
12.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은 나라 곧 하나님의 기업으로 선택된 백성은 복이 있도다
13.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굽어보사 모든 인생을 살피심이여
14. 곧 그가 거하시는 곳에서 세상의 모든 거민들을 굽어 살피시는도다
15. 그는 그들 모두의 마음을 지으시며 그들이 하는 일을 굽어살피시는 이로다
16. 많은 군대로 구원 얻은 왕이 없으며 용사가 힘이 세어도 스스로 구원하지 못하는도다
17. 구원하는 데에 군마는 헛되며 군대가 많다 하여도 능히 구하지 못하는도다
18. 여호와는 그를 경외하는 자 곧 그의 인자하심을 바라는 자를 살피사
19. 그들의 영혼을 사망에서 건지시며 그들이 굶주릴 때에 그들을 살리시는도다
20. 우리 영혼이 여호와를 바람이여 그는 우리의 도움과 방패시로다
21. 우리 마음이 그를 즐거워함이여 우리가 그의 성호를 의지하였기 때문이로다
22. 여호와여 우리가 주께 바라는 대로 주의 인자하심을 우리에게 베푸소서
(개역 개정)
-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의 즐거운 찬양 -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선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수금과 비파, 새 노래로서 온 땅이 진동할 정도로 열광적으로
여호와를 찬양하라고 권면하는 환희에 찬 분위기를 띠고 있는 본시는
공중 예배시에 사용한 감사 예배시이다.
비록 저자가 누구인지는 분명치 않으나 그 내용으로 보아 본시는
국가적인 승리를 얻은 것을 감사해 지은 노래임은 분명하다.
때문에 혹자는 본시를 다윗이 아람 및 암몬과의 전쟁
(삼하10장, 12:26-31)에서 승리한 후에 지은 시이거나,
주전 701년경 앗수르 왕 산헤립의 남유다 침입 때(왕하18:13-19:37)
히스기야가 하나님의 기적적인 역사로 구원받은 것을
감사하며 쓴 시일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이러한 본시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뉘는데 이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전반부 1-3절은 찬양을 드리는 역동적 양상을 강조하며
백성들을 향하여 찬양을 촉구하는 저자의 권면이다.
다음 중반부 4-19절은 하나님께서 찬양을 받으시기에
합당한 분이신 이유를 다음 네 가지로 열거함으로써
결국 그러한 면모를 가지신 하나님을 기리는 부분이다.
① 정직, 진실, 정의, 인자를 갖추신 여호와의 성품(4,5절)
② 온 우주에 가득한 창조주로서의 여호와의 권능과 주권(6-11절)
③ 모든 것을 살피시사 아시는 여호와의 감찰하심과 전지성(12-15절)
④ 여호와로 말미암는 구원과 그 완전성(16-19절)
이상은 곧 절대 초월자로서 자존하시는 여호와의 존재를 전제한 후에
천지 만물의 주권자요, 전능자요,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는 구원자이신
하나님의 성품과 사역을 분명히 증거해 준다.
그리고 후반부 20-22절은 시인이 하나님은
당신을 의지하는 자를 돕고 구원하시는 자임을 확신하는 가운데
그분의 은혜를 간구하는 기도로 시를 맺는 결구이다.
이 세상 가운데서 살고 있는 인생들에게 있어서
가장 복되고 즐거운 일은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세상 역사를
주관·섭리하시는 창조자 하나님을 자신의 주(Lord)로 모시고 섬기는 일이다.
왜냐하면 사실 그분 앞에서는 이 세상에서 권력을 가진 자들,
막강한 군사력을 갖춘 열방들의 도모와 사상이
아무런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10, 16, 17절)
또 절대 초월자로서 세상과 역사에 대한 절대 주권을 가지신 여호와는
정의와 공의를 행하시는 분이시기에 그를 경외하는 자외에는
그 어느 누구도 그분의 인자하심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때문에 시인은 ‘의인들’(1절), ‘정직한 자’(1절),
‘여호와로 자기 하나님을 삼은 나라’(12절),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18절)로
하여금 찬양을 촉구하며 동시에 세계 모든 거민이 그를 경외하며(8절)
동일한 기쁨에 동참하도록 촉구하는 것이다.
실로 여호와를 경외함으로써 그분의 인자(헤세드)를 체험한 자들은
그것이 얼마나 복된 일인지 깨달아 알 것이다.
또 그런 사람들은 당위성 때문이 아니라
그 기쁨에 못이겨 저절로 여호와를 찬양하게 된다.
우리의 찬양이 진정 이같은 깊은 깨달음에서
저절로 우러나온 것인지 돌아볼 일이다.
20절) 「우리 영혼이 여호와를 바람이여 그는 우리의 도움과 방패시로다」
시인은 ‘우리의 영혼이 여호와를 바란다’라고 말였다.
이는 달리 말하면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산다는 말이다.
혹은 하나님이 소원을 이루어주시기를 소망한다는 말이다.
우리의 신앙 생활에 있어서 소망은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소망이 없는 신앙 생활이란 있을 수가 없다.
신앙(信{때)이란 말에는 이미 믿음은 물론 소망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성경은 우리에게 반드시 있어야 할 신앙의 3대 요소로
믿음과 사랑과 함께 소망을 들고 있다.(고전13:13)
우리들은 신앙 생활하면서 많은 소망을 가질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소망은 성도에 따라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우리들이 가져야 할 궁극적인 소망은 영원한 천국 구원의 소망이다.
우리들이 신앙 생활하는 궁극적인 목적도 사실은
이 천국 구원의 소망을 이루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천국 구원의 소망이 없고
오직 현세적인 소망만 있다면 이는 잘못된 신앙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하여튼 중요한 것은 우리들에게는 소망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그러한 소망을 이루기 위해 우리가 가져야 할 자세이다.
소망은 말 그대로 무엇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것이다.
이러한 소망은 우리가 이루는 것이 아니다.
소망은 오직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진다.
시인이 우리의 영혼이 여호와를 바란다고 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면 소망을 이루기 위해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할까?
바로 인내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소망은 하나님이 이루시는 것이다.
여기에 절대적으로 펼요한 것이 무엇인가? 믿음이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고(히11:6)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않고는 소망을 이룰 수 없다.
하나님은 당신을 기쁘시게 하는 자를 위하여 일하시고
그의 소원을 만족하게 하여 주신다.
그런데 믿음이란 달리 말하면 인내라고도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믿음은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기를
기다리는 것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경은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하신 것을 받기 위함이라’(히10:36)고 말씀하고 있다.
소망을 이루기 위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기다리는 인내의 법을 배워야 한다.
성경은 이에 대하여 ‘사람이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고
잠잠히 기다림이 좋도다’라고 표현하고 있다.(애3:26)
인내하지 못하는 사람은 소망을 이룰 수 없다.
부실 공사의 가장 큰 원인은 조급함 때문이다.
공사 기간을 하루라도 줄여서 공사비를 아끼려고 하는
조급한 마음 때문에 사고가 난다.
시멘트가 다 굳을 때까지 기다릴 줄도 모르고,
자갈을 넣어야 할 곳에 자갈을 넣지 못하고,
철근을 넣어야 할 곳에 오히려 건축 쓰레기를 넣어 대충대충 덮어버린다.
결국 그 결과는 건물 붕괴로 인한 대형 사고를 내게 마련이다.
성수대교 붕괴 사고가 그랬고,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가 그랬다.
조급함으로 이룰 수 있는 것은 결국 부실과 비극밖에 없다.
그러나 시멘트가 굳을 때까지 참고 기다리게 되면
건물은 아주 튼튼하고 견고하게 된다.
수십 년 수백 년이 지나도 결코 요동하지 않고 굳건히 버틸 수 있게 된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소망을 이루기 위해 오랫동안 참고 기다리게 되면
결코 흔들리지 않는 귀한 소망을 받게 된다.
시인은 ‘내가 여호와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귀를 기울이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도다’ 라고 말씀한다.(시40:1)
하나님은 템포가 아주 느리시며 느긋하신 분이시다.
모세를 출애굽의 도구로 사용하시기 위해 80세가 될 때까지
광야에서 양치기를 시키신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우리 생각에는 아직 젊고 힘이 넘칠 때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면 더 열정적으로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되지만,
하나님 보시기에는 그렇지 않다.
하나님은 느긋하게 그리고 아주 천천히 성도를 성장시키고 단련해 나가신다.
예수님도 겨우 3년간의 공생애 사역을 위해 30년이나 기다리셨다.
이처럼 우리는 소망과 희망을 이루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움직이실 때까지 참고 기다려야 한다.
참고 기다린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과 계획에 나를 복종시킨다는 것을 의미한다.
선지자 이사야는 이와 관련해 말하기를
’이제 야곱 집에 대하여 얼굴을 가리시는 여호와를
나는 기다리며 그를 바라보리라‘고 하였다.(사8:17)
하나님은 걸어가시는데, 나는 뛰어가겠다고 앞서 가는 것은 교만이다.
하나님의 지혜보다 나의 지혜가 더 뛰어나고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건방진 처사이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옛 속담처럼 느긋하게 여유를 가지고 소망을 바라야 한다.
성경은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롬5:4)고 말씀한다.
인내의 법을 배워 하나님의 때가 이를 때까지
기다리는 자만이 소망을 이루게 된다.
「그 날에 말하기를 이는 우리의 하나님이시라 우리가 그를 기다렸으니
그가 우리를 구원하시리로다 이는 여호와시라 우리가 그를 기다렸으니
우리는 그의 구원을 기뻐하며 즐거워하리라 할 것이며」 (사2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