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과 신의 차이는 뭘까? 귀신이란 말 자체가 귀(鬼)와 신(神)이 합쳐져서 만들어진 것이다. 즉 귀신도 신은 신이지만 조금 다른 신이라는
의미이다. 일반적으로 귀신은 한이 서린 영(靈)이나 혼(魂)이 물건이나 동물, 사람에 빙의된 것을 말한다. 반면 신은 불가사의한 능력을 지니고
자연계를 지배하며(자연 그 자체이기도 함), 인류에게 화복(禍福)을 내린다는 신앙의 대상이 되는 초월적인 존재라고 말할 수 있다.
신은 신명이라고도 말하는데, 신명은 귀(鬼)와 여러 가지 면에서 정반대의 위치에 서 있다. 신명(神明)과 귀신(鬼神)의 차이에
대해서는 음양(陰陽)의 이치로 설명하면 가장 이해가 쉬울 것 같다.
음의 기운 선호…음침한
곳·동굴·바위틈·우물·좋아해
신의세계 초우주신·우주신·범신계 구분 "인간과 가까운 신들"
귀신은 음양적 측면에서 음에
속한다. 귀신은 음(陰)에 속하기 때문에 음기(陰氣)를 좋아하고 양기(陽氣)를 기피한다. 즉, 어둡고 탁한 기운을 좋아하고 맑고 깨끗한 기운을
기피한다. 귀신들이 남자보다는 음기가 강한 여자에게 달라붙기 쉬운 것도 모두 음의 기운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음기를 좋아하는 귀신들은 음침한
곳, 어두운 동굴, 바위 틈, 옛날 우물, 오래된 폐가, 산비탈 계곡 등의 장소에 잘 모인다.
귀신은 오래된 물건에 머물러서
지내기도 하는데, 살아 생전에 애착을 가졌던 물건에 머무르는 경우도 많다. 귀신이 인간에게 빙의할 때는 양이 우세하거나, 음양이 조화를 이룰
때는 피해 있다가, 조화가 깨지고 음이 우세할 때 침입하게 된다.
반면 신명은 원만하고, 청정하고, 빛을 좋아한다. 천지간의
발전과 건설에 참여하는 신명은 인간계에 크게 관여하지 않는다는 특징이 있다. 인간의 입장에서야 ‘하늘도 무심하시지’하는 원망도 해보지만, 신명은
어지간해서는 스스로 나서지 않는다. 귀신은 스스로의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나서는 데 비해 신명은 그런 일이 없다. 신명은 예가 아닌 것은 받지
않고, 부정한 것은 싫어한다. 부정한 제사나 청원도 싫어한다. 만약 부정한 제사를 올렸을 때는 오히려 진노하여 징벌을
내린다.
귀신은 사람의 빈틈을 노려 빙의 하려고 힘쓰는 데 비해, 신명은 사람의 사사로운 일에 관여하지 않는다. 다만 사람이 소원을
빌면 그 소원에 따라 응답한다. 사람이 무슨 소망을 신명에게 의뢰하고, 지성으로 그 협력을 구할 때는 감응하여 도와주는 것이다.
저급령 귀신 질투 못 말려
급수로도 구분해볼 수 있겠다. 신령계에도 엄격한 계급이 있다. 귀신들은 저급령으로
구분할 수 있겠고, 신명들은 고급령으로 볼 수 있겠다. 일반적으로 무당들의 몸에 접신 되어 점사를 봐주고, 자신들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영들은
저급령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이들 저급령들은 시기심·질투심이 대단히 강하다. 자기들을 신으로 모시는 사람들에게 이만저만 횡포를 부리지
않는다.
무당들이 신고식처럼 치르는 신병(神病)이라는 것이 있다. 신병은 병원에서도 고치지 못하는 불치병이 대부분이다. 병원에서는
병의 원인조차 알지 못한다. 음식을 먹지 못하거나 불면증으로 고생하다가 꿈이 많아지고 정신착란에 빠진다. 이해할 수 없는 환영에 이끌려 다니다가
땅속에서 방울이나 신상 등의 무구를 발견하는 경우도 있다.
무당으로부터 신병이라는 진단을 받으면 내림굿을 거쳐 무당이 된다. 일단
신을 받아들이면 병이 치유된다. 하지만 무업을 중단하면 병이 재발하기 때문에 신병은 피하기가 무척이나 어렵다. 신병은 몽골(蒙古)·아메리카
인디언의 무당들에게도 있다고 한다. 이런 영들은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인간에게 신병이라는 것으로 선택을 강요하기 때문에 저급령이라고 할
수 있다.
고급령·저급령 구분 가능한가?
그렇다면 고급령과 저급령은 어떻게 구분할 수 있는가? 먼저 고급령은
어떤 차원 속에서 존재하는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고급령과 저급령의 가장 근본적인 차이는 ‘인간의 염(念)을 갖고 있는가, 아닌가’에 있다.
고급령은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우주 자체의 본질이다.
신의 세계는 크게 세 가지로 구분된다. 먼저 초우주신이다.
완전히 자유혼이 되어 버린 상태로 부처세계라고 할 수 있다. 인간세계에 티끌 하나 남기지 않고 궁극적인 자유혼으로 들어가 버린 상태로 우주와
하나가 된 경우를 가리킨다. 무한 의식이며 우주 자체를 이루고 있는 무한 에너지 파장이라고 보면 된다. 아직 인간계에서는 석가모니 외에는 이
차원으로 들어간 존재가 없다고 본다.
두 번째는 우주신이다. 인간은 육체적으로 유한한 생명이며, 유한한 의식체이다. 그 영혼도
유한 에너지 생명체이다. 이에 반해서 무한 대생명인 우주신은 초우주신의 단계로 들어갈 수도 있지만 어떤 연유에서건 우주신으로 머무는 상태로 보면
될 것 같다.
불교에서의 보살계가 여기에 해당된다. 지장보살이나 관세음보살 같은 경우 이미 부처의 경지에 들어섰음에도 불구하고
초우주신의 상태로 들어서지 않고 있다. 나름대로의 원(願)과 법칙의 작용으로 우주신으로 머물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우주의 법칙, 태양계
법칙, 지구의 법칙, 인간의 법칙 등에 따라 우주신으로 남아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추정을 해본다.
지장보살의 경우 지옥에 있는
모든 중생을 제도하기 전까지 결코 성불하지 않겠다는 염을 세우고 초우주신이 되지 않았다고 한다. 지장보살은 말법의 세계를 구원하는 보살로서 모든
장소에 몸을 변화하여 나타내 육도 윤회에서 고통받는 중생을 구하는 일을 하신다.
인간과 가까운 신들
마지막으로
범신계다. 민중들의 고통을 함께 해온 산신(山神), 용신(龍神) 등이 그들이다. 초우주신과 우주신은 인간계에 거의 개입하지 않는 데 비해,
범신계는 인간계에 가장 가깝다고 보면 될 것 같다.
산신은 산 그 자체이다. 대자연은 살아 있는 생명체이고, 영적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산신 할아버지는 산신이 인간인 할아버지의 모습으로 형상화한 것일 뿐, 그 모습이 특별히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다. 즉,
인간의 이해수준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보여줄 뿐이다. 이해를 쉽게 하기 위해 기독교 진리의 정수라고 평가받는 보병궁(寶甁宮) 복음서의 내용을
참고할 만하다.
“우주신(본체신)은 한 분이고, 신(인격신)은 ‘한 분 이상’이어서 모든 것은 신(개체화된 인격신), 모든 것은
하나다.(보병궁 복음서 28: 4)”
‘하나이면서 전부’라는 다소 추상적인 내용이지만, 그 말이 옳다. ‘하나이면서 전부이며,
전부를 품고 있는 하나’라는 철학적 진리는 단군 때부터 전해오는 민족 최고의 경전 <천부경>의 핵심이기도 하다.
어쨌든
우리 선조들은 산에 기대어 살아왔고, 마을의 배후 산중턱이나 산기슭에 당을 마련해 놓고 매년 정초에 날을 잡아 제사를 올리며 풍요와 건강,
행운을 기원해왔다. 바다에 기대 사는 사람들은 용왕제를 올리며, 용신에게 복을 기원해왔다. 용왕은 용신?용왕 할머니?수신이라고도 하며, 예로부터
민간신앙으로 자리잡아왔다.
용신은 불교에 수용되면서 법을 수호하는 천룡팔부(天龍八部)의 하나로 인식되지만, 용신 역시 산신과
마찬가지로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다. 다만 인간이 종교적 관념에 따라 나눌 뿐이다. 이들 산신과 용신은 인간의 기원에 감응하여 그 희망이
이루어지도록 도와준다. 인간계와 가장 가까운 신명계는 범신계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