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情夫) 김위홍이 죽은 지 달포 만에 어전회의를 주재하는 여왕의 안색은 보기에도 민망할 만큼
핼쑥해져 있었다. 여왕은 신하들의 반대를 물리치고 죽은 대각간 김위홍에게 혜성대왕이라는 시호
(諡號)를 내렸다. 그리고는 시중 준홍을 상대등에 제수한 뒤, 두 달 이내에 무술대회를 개최하여 상
위 입상자들을 군관에 봉하도록 하라고 명했다. 모든 군‧현에 방을 붙여 무예가 뛰어난 장정들을 참
여시키되, 신분을 가리지 말고 누구든 참여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라는 것이었다. 상대등 준홍은 즉
각 병부상서와 협의하여 구체적인 계획을 수립했다. 주별 예선을 거친 상위 입상자들만 서라벌로 올
라와 본선을 치르려면 시일이 촉박했다.
사벌주※ 가은현에 사는 견훤도 현청 담벼락에 붙어 있는 방을 보았다. 그에게도 군관이 될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이다. 가은현은 오늘날의 문경군 가은면으로 갈전 2리(아차마을)에는 견훤의 탄생설화
를 비롯한 여러 전설이 전해오고 있으며, 내가 나서 자란 성저리와 윗동네인 성유리 사이에는 견훤
성터가 남아 있다. 사실 진성여왕은 견훤을 가까이 두기 위해 무술대회를 개최하기로 한 것이었다.
공주 시절이던 4년 전, 둘째 오라비 황과 함께 평복 차림을 하고 흥륜사에 탑돌이를 갔을 때였다. 불
한당들이 한 처자를 납치하여 끌고 가려 했다. 그때 견훤이 나타나 불한당들과 싸우다가 어깨에 칼
을 맞았다. 비록 중과부적으로 칼을 맞기는 했지만, 견훤은 맨손으로 두 명의 불한당을 때려눕힌 장
한이었다. 사람들이 모여들자 불한당들은 줄행랑을 놓았다. 공주는 치맛단을 찢어 견훤의 상처를 싸
매주면서 몇 마디 대화를 나누었다.

※ 소설에는 사벌주로 되어 있지만, 신라는 제35대 경덕왕 16년(757)에 전국의 행정구역 명칭을 당
나라式으로 고치면서 사벌주도 상주로 개칭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삼국사기』 「지리지」에도
상주로 표기되어 있다. 상주는 오늘날의 경상북도 일원을 관할하던 행정구역이었다. 진성여왕 재위
당시 신라의 지방조직은 9주(한주‧삭주‧명주‧웅주‧상주‧전주‧무주‧강주‧양주) 1경(금성=경주) 5소경
(중원경‧북원경‧서원경‧남원경‧금관경)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현 경주의 공식명칭도 금성이었지만 사
람들은 마카 다 서라벌로 부르고 있었다. 작가도 이러한 내막을 모를 리 없겠지만, 옛스럽게 표현하
느라 일부러 사벌주로 쓴 게 아닌가 싶다.
견훤의 상처를 싸매는 동안 공주는 왜 군관이 되지 않고 그 훌륭한 솜씨를 놀리느냐고 물어보았다.
견훤은 평민 신분이라 군관이 될 자격이 없다며 장탄식을 했다. 「소설 진성여왕」의 저자는 다음날
부터 만 공주와 견훤이 다시 만나 숲속에서 여러 차례에 걸쳐 교접을 했다며 장장 80여 페이지에 걸
쳐 그 장면을 자세하게 묘사해놓았다. 그러나 공주의 신분으로 처음 만난 농투성이 청년과 그처럼
헤프게 교접을 했다는 설정이 너무 작위적인 듯하여 내용은 생략한다. 『삼국유사』에도 진성여왕
과 견훤의 정사에 관한 기록은 없다. 위홍이 죽은 뒤 여왕은 각중에 그때 보았던 견훤 생각이 나서
신분 제한 없이 모든 청년들이 참여할 수 있는 무술대회를 열도록 한 것으로 되어 있다. 견훤에게 군
관이 될 기회를 준 것이다.

4년 전 견훤이 서라벌에 간 것도 군관 자리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을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일개 군졸
로 만족할 수는 없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병부의 고관에게 엄청난 뇌물을 쓰지 않고는 평민이 군관
에 오를 방법은 없었다. 비록 실망을 안고 귀향하기는 했지만, 견훤은 언젠가 훌륭한 군관이 되어 나
라에 이바지할 기회를 고대하며 농사일 틈틈이 아무도 없는 깊은 산중에 들어가 계속 무예를 연마해
오고 있었다. 견훤은 대장부로 태어나 나라에 이바지해야겠다는 큰 뜻을 품고 어릴 때부터 꾸준히
무예를 익혀오던 중, 열다섯 살 때 어느 노승의 권고로 백화산 백화암을 찾아가 법운 스님으로부터
3년 동안 권법‧검술‧창술‧궁술‧마술 등 정식 무예를 배운 적이 있었다. 하산한 이후에도 견훤은 잠시
도 쉬지 않고 단련을 계속해왔다.
견훤은 사벌주 예선에서 월등한 성적으로 우승을 거둔 뒤, 두둑한 상금까지 받아 허리춤에 꿰차고
서라벌로 올라왔다. 도성에는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무사들로 왁자지껄했다. 참으로 오랜만에 열리
는 전국 무술대회라 도성의 백성들도 덩달아 들뜬 분위기에 휩싸여 있었다. 백성들은 무예가 뛰어난
화랑들의 이름을 들먹이며 누가 우승을 할 것인지 내기를 걸기도 했다. 지방에서 뽑혀온 자가 우승
을 하리라고 내다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견훤은 인파를 따라 병부로 가서 사벌주 도독이 써준
1위 입상증서를 내보이고 출전등록을 했다. 견훤은 거기서 여왕이 무술대회를 주관했고 현장에서
직접 대회를 지켜본다는 얘기를 들었지만, 4년 전에 우연히 만나 자신의 상처를 싸매준 여인이 여왕
이 된 줄은 모르고 있었다.

본선에서는 검술‧창술‧궁술‧마술‧권법 등 무술의 5개 종목을 모두 겨루기로 되어 있었다. 시합장에는
서라벌 사람들뿐만 아니라 전국 각 주에서 올라온 응원객과 구경꾼들까지 운집해 있어 발 디딜 틈조
차 없었다. 지역 예선을 거쳐 올라온 장정은 모두 270여 명이었다. 모두가 자기 고장에서는 한가닥
하는 무사들일 터였다. 여왕이 무슨 뜻으로 이러한 대회를 개최하는지는 모르겠지만, 5위 안에 입상
하는 자는 신분을 가리지 않고 군관에 제수하겠다니 어쩌면 이번 시합이 마지막 출세 기회가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견훤은 새삼 각오를 단단히 하고 차례를 기다렸다. 이윽고 여왕의 도착을 알리는 나
팔소리와 함께 시합이 시작되었다.
견훤은 사흘에 걸친 종목별 시합을 통과하여 최후의 5명에 올랐다. 5명 모두 군관 자리는 이미 확보
한 셈이었다. 그러나 우승자를 가리기 위해 결선은 계속 진행되었다. 견훤은 결국 최후의 승자를 가
리는 결승에 진출했다. 상대는 오른쪽 눈을 검은 안대로 가린 궁예란 자였다. 한주 축산현에서 왔다
는 궁예는 기골이 장대하고 모든 종목에서 무예가 출중했다. 무술대회를 참관하고 있는 고관대작들
은 모두 시들해져 있었다. 명문가 출신 화랑과 고위 군관들이 모조리 탈락하고 근본도 없는 평민 두
놈이 결승에 올랐으니 그럴 만도 했다. 단 한 사람, 진성여왕만은 사흘간의 참관에도 불구하고 피곤
한 기색도 없이 눈빛을 초롱초롱 빛내며 결선을 지켜보고 있었다. 당초 기대했던 대로 견훤이 참가
하여 결승까지 올라왔기 때문이었다.

결승은 말을 타고 양손에 장검과 창을 나눠 든 채 상대방을 제압하는 종목이었다. 다만 상대방이나
말을 상하게 하면 즉각 실격이고, 기술과 힘으로 상대방을 압도하여 항복을 받아내는 자가 우승을
차지하도록 규정이 정해져 있었다. 견훤과 궁예의 결승은 그야말로 용호상박이었다. 지금까지 전적
으로 보면 단연 궁예가 우세했지만 견훤의 실력도 만만찮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견훤의 힘이
달리는 듯 보였다. 궁예의 기력이 워낙 월등하기 때문이었다. 이윽고 궁예의 창을 막던 견훤의 장검
이 부러지자 여왕은 화급하게 징을 치도록 하여 시합을 중지시켰다. 이어 사간은 여왕의 명에 따라
두 사람을 공동우승자로 발표했다.
출처:문중13 남성원님 글
첫댓글 야탑역으로 가는 개천변의 개나리가 꽃망울을 맺고 요 며칠새 개화를 기다리는 군락에서 한참을 살펴보았습니다.
봄이란 생동감을 주는 계절, 우리의 일상도 이러 하였으면 합니다. 좋은 주말 잘보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