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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자기에 그려진 묵정선생의 문인화세계
정태수(월간 서예문화 주간)
묵정 곽영수선생은 대전의 대표적인 중진문인화가로서 30여 년 동안 지역문인화단을 지키면서
다양한 소재에 문인화를 접목해왔다.
특히 각종 옷감이나 천 종류에 그림을 그려서 문인화를 생활속으로 끌어들이는데 앞장서 왔고,
나무, 도자기 등 소재확장을 위해 선도적으로 걸어왔다.
묵정선생이 이번 전시에서는 도자기와 문인화의 만남을 통해 새로운 작품을 선보인다.
초벌된 각종 그릇 위에 굳센 필력으로 다양한 화목을 그린 뒤 가마에 구워낸 작품은
화선지에 그려졌던 작품보다 우리 앞에 더 새롭고 생생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도자기를 굽는 데는 1,000℃ 이상의 고온이 필요하다. 그러나 고온으로 구워 목적하고 있는 색채나
형태를 얻는 일은 몹시 어려운 작업이다.
왜냐하면 착색유약의 차이, 굽는 온도, 가마 속의 연료가 완전히 연소하고 있는지의 여부에 따라
많은 작품이 본래의 원작과 차이가 나서 실패하는 것도 많기 때문이다.
묵정선생은 청소년기부터 유난히 그림을 좋아해 즐겨 그리곤 했다. 한국화를 공부하다 80년대 초반
화정 김무호선생에게서 문인화의 기본기를 전수받고 나름대로 다양한 재료에 실험을 하기 시작했다.
80~90년대는 사군자 위주로 철저하게 고법을 익혔고 90년대 이후 화목을 넓혀가면서 폭넓게 연찬했다.
그 이후에는 옷감, 광목, 이불, 다포 등 다양한 천 종류에 문인화나 한국화를 그리면서 재료에 대한
실험을 이어갔다. 실용성과 예술성을 겸비한 작품으로 대중들과 함께 호흡하기 위해 새로운 작품구상과
도전에 잠시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 가운데 소나무와 대나무를 특히 좋아하는 작가는 사계절 푸른 기상과
변함없이 절개를 지키는 나무이기에 즐겨 그렸고 또 많이 그렸다고 한다.
이번 작품에서도 소나무와 대나무는 작가의 기상을 대변하듯 다수 선보인다.
작품을 일별해 보면 무엇보다 허실(虛實)의 미학적 구현과 재료의 다양성이 눈에 들어온다.
虛實에 대한 미학적 해석
문인화에서 여백은 그리지 않고 그냥 둔 것이 아니다.
그리지는 않았지만 그냥 둔 허공은 더욱 아니다.
여백은 그린 부분 이상으로 기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숙련된 화가는 여백경영을 잘 해야만 되는 것이다.
이에 대해 대희(戴熙)란 사람은 “그림은 필묵에서 드러나지만 그림의 묘미는 여백에서 묻어난다.”고 말했다.
시를 품평했던 사공도(司空圖)도
“실상(實象) 밖의 참 모양, 실경(實景) 밖의 참 모습[象外之象, 景外之景.
『與極浦書』]을 파악해야 진정한 모습을 알 수 있다고 했다.
즉 허실표현에 대한 이해를 제대로 해야 예술작품의 참 맛을 알게 된다고 강조한 것이다.
특히 문인화가는 허실을 살려 제대로 표현할 수 있고, 그런 작품을 이해할 수 있는 수준에 올라야
시(詩)에서 말하는 ‘운외지치(韻外之致)'요, 음악에서 말하는 ‘득지현외(得之弦外)'의 경지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묵정선생의 작품을 살펴보면, 허실경영에 대한 안목이 높고 표현기법이 세련됨을 느끼게 된다.
그는 작품연구를 함에 있어 누구보다 허와 실의 안배와 적절한 배치에 대해 관심이 많기 때문에
허실경영을 잘 하는 편이다. 도자기 작품 <소나무>와 <대나무>에서 우리는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일필휘지로 자잘한 세부적인 표현 보다 거칠고 힘찬 필획으로 기운생동하게 줄기와 잎을 쳤다.
그 뒤 광대한 여백을 두어 감상자로 하여금 여백이 주는 심원한 의경미(意境美)를 느끼게 한다.
특히 8폭 병풍으로 제작된 <소나무>와 <공작새>는 30년 넘게 수련해 온 작가의 필력과
허실경영의 묘미를 한껏 느끼게 한다. 우리는 이를 통해 작가가 지닌 실(實)을 변모시켜
허(虛)로 만드는 능력[化實爲虛]과 실로써 허를 그려내는 능력[以實寫虛]을 가늠할 수 있다.
묵정선생은 누구보다 현대인의 미감과 정서에 밀착된 재료를 찾는데 앞장서왔고,
시대미감을 살린 표현으로 우리 시대 보통사람들이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작품을 제작하기위해 노력해 왔다.
선생의 미래지향적인 작업과정을 지켜보면서 예도에 행운이 있길 기원드린다.
2012년 8월 여름철에 삼도헌에서
<맑은향기>, 20x40, 도자
병풍 부분
연결병풍
연결병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