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후기 <20170312>
* 참석자 (10명)
정혁현 목사, 이신정 전도사, 정한결, 공은주, 안태형, 서선미, 정명수, 박연옥, 정성윤, 이수정
* 예배
- 말씀 : 정혁현 목사 "하느님의 유업을 이을 사람" 갈라디아서 4장 1~7
- 시 기도 : 서선미 “증상을 즐겨라 (이승훈)”
- 대표기도 : 안태형
- 헌금기도 : 이신정 전도사
- 공동식사 : 이수정
* 알림과 나눔
1. 오늘 예배에 참석하신 모든 분에게 하느님의 크신 은총과 사랑이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2. 예배 후 관리부에서 한살림장터를 진행하였습니다. 귀하고 좋은 물건을 아낌없이 가져오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알뜰한 살림꾼들의 열광적인 참여로 전품목 조기 낙찰되었습니다. 수익금(43,500원)은 전액 한살림 재정에 기부하였습니다. (재정부장 안태형은 경매가를 올리려 100원씩 붙여서 외쳐보았습니다.)
3. 다음 주일부터 상반기 성서세미나 시작합니다. 5.18 광주항쟁기념예배를 위한 준비학습으로 <팽목항에서 불어오는 바람 / 현실문화> 함께 공부합니다. 첫 발제는 안태형 교우가 맡습니다.
4. 다음 주일 오후 임원회의가 있습니다.
5. 오늘 공동 식사로 이수정 교우가 원조 인도 그린 카레를 차려주셨습니다. 온 몸을 뜨겁게 달궈주는 인도식 매운맛에 놀라고, 루꼴라와 고수 준비하는 섬세함에 다시 놀랐습니다.
* 다음 주일 예배 담당표
날 짜 | 대 표 기 도 | 헌 금 기 도 | 시 기 도 | 식 사 당 번 | 절기 / 행사 |
3월 5일 | 정 명 수 | 이 신 정 | 정 한 결 | 안 태 형 | |
3월 12일 | 이 샛 별 | 공 은 주 | 이 샛 별 | 이 샛 별 | |
3월 19일 | 안 태 형 | 이 신 정 | 서 선 미 | 이 수 정 | 교인 예배 후기 |
3월 26일 | 공 은 주 | 이 신 정 | 안 태 형 | 박 연 옥 | 임원회의 |
경건한 예배시간
"자~ 경매 시작합니다! 냉이 1000원부터.. 이수정 1000원, 땡! 낙찰!" 욕망에 충실했던 경매사님
"몸에도 좋고 맛도 좋은 청국장! 1000원부터!" "저요!" "땡! 낙찰~" 자리에 앉을 새 없는 전도사님
나무손님이 명품 삽질 솜씨로 블루베리를 심었습니다.
담벼락 밑엔 상추도 심었습니다
대짜는 목사님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다리 재활 중에 있습니다.
* 말씀 나눔
그리스도인은 하느님의 유업을 잇는 사람이다. 유업이란 물려받은 사업을 뜻한다. 어릴 땐 규칙과 법에 복종하여 훈련을 받지만, 자라서 상속자가 되면 아버지의 뜻을 주체적이며 창조적으로 받아들여서 일을 해 나가야 한다. 그것은 스스로 판단하고 모험하고 책임지고 기쁨을 느끼고 축복을 누리는 일이다.
하느님의 사업이란 인간과 세계를 구원하는 일이다. 그 전제는 인간과 세계는 구원받아야 할 상태에 있으며 무언가 결여되었다는 것이다. 인간은 욕망하는 존재라고 할 때 욕망은 결여 때문에 발생한다. 저 여자를 통해서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얻고 완전해진다는 환상 때문에 그 여자에게 빠진다.
동양종교는 욕망을 버리라고 한다. 원만구족, 세계는 충만하고 존재는 완전히 채워져 있는데, 근본에 대해 잘못 알기 때문에 욕망이 생긴다고 한다. 지공무사, 공적 존재가 되어서 사적인 개인을 버리는 것이 목표이다. 만족된 욕망은 더 이상 욕망하지 않기에 욕망은 사라진다. 열반, 니르바나의 상태이다. 그래서 스님이 죽으면 열반에 들었다고 한다. 결국 살아있는 한 인간의 욕망을 완전히 제거할 수 없으므로 비극적이라고 본다. 동양종교에서 인간의 근원적 결여는 불가능성이고, 제거해야 할 것이다. 반면 유대 기독교 전통은 욕망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재활성화 한다.
우울증이란 욕망이 기운을 잃는 것이다. 우울증이 만연하다는 것은 상품소비를 통해 삶의 욕망을 추동하는 자본주의가 한계에 달했음을 뜻한다. 상품을 구입할 때, 처음엔 눈이 번쩍 뜨이지만, 더 좋은 상품이 눈에 들어오게 되고, 그것이 반복되면 결국 욕망의 재활성화가 불가능해진다. 노력을 통해 추구하는 것이 소비적 향락일 뿐이라고 생각하니 인생이 뻔하게 느껴진다. 아이들은 안다. 어른들의 삶은 단순하고, 쓸데없는 데 목숨을 건다는 것을.
욕망은 결여에서 발생하는데, 결여는 타자와의 비교에서 발생한다. 사회적 존재인 인간에게 욕망은 타자의 욕망으로 출발한다. 어릴 때는 부모님이 뭘 원하나 생각하고 청소년기에는 친구들이 뭘 원하나 생각한다. 연예인들이 텔레비전에 나와 비까번쩍한 삶을 보여주고, 사람들은 그런 삶을 욕망하게 된다. 자본주의의 전략이다.
욕망의 재활성화란 타자의 욕망을 주체의 욕망으로 변환시키는 것이다. 즉, 나는 고유하게 무엇을 원하는가 질문해서 자신의 욕망을 구성하는 일이다. 욕망을 버리는 게 아니라, 자신의 고유한 욕망을 갖는 것이다. 그러면 인간은 경쟁하지 않는다. 타자와 비교할 수 없는 존엄한 존재가 된다. 그것이 구원이다. 라캉은 여자는 하나씩 들어간다고 한다. 남자는 타자의 욕망을 욕망하지만, 여자는 자신의 욕망, 즉 주체의 욕망을 가지는 자라는 뜻이다. 여기서 결여는 불가능성이 아닌 가능성이 된다.
[발터벤야민의 테제2 읽기] '피조물들이 메시야의 아들들을 애타게 기다린다’는 바울의 말이 떠오른다. 세계는 그릇된 욕망을 가진 인간 때문에 노예상태이다. 자본주의는 선전 매체로 굴러간다. “다른 사람도 이걸 원하니 너도 원해라” 남들이 원하는 것을 생산하는 방식으로 자연을 개발하므로 자연은 그릇된 욕망의 대상으로 전락한다. 주체의 욕망에서 자연은 상상할 수 없는 잠재력을 가진다.
(발터벤야민 테제2 설명) 나이든 사람은 과거를 그리워하고 장래를 꿈꾸는 아이들은 미래를 부러워한다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은 과거의 행복한 이미지로부터 현재를 오염시킨다. 욕망 대상을 성취하지 못한 채 지나온 과거를 추억하며, “이랬다면 좋았을걸, 이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한다. 아도르노는 발터벤야민을 비판하며 과거의 투쟁은 실패했고, 그들의 시간은 끝나 무덤에 묻혔는데,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역사가 아니라 신학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발터벤야민은 신학이라는 것을 인정한다. 역사는 객관적으로 쓸 수 없으며, 그들의 투쟁이 완전히 끝났다고 하지 못하는 것이 진정한 역사라고 한다. 과거가 우리에게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믿고,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알기 위해 과거 사람의 소리를 듣는 것이 신학이라면 역사는 신학이어야 한다. 과거를 회억(돌이켜 추억함)하면서 과거 사람들이 생생하게 살아서 우리에게 속삭인다는 것을 믿으면서 그들의 원한을 풀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기독교인은 그것을 하느님의 음성이라고 본다.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삶 속에 하느님의 목소리와 구원의 손길로 가득하다. “너를 기다렸다. 너를 통해 세계는 구원될 것이고 우리도 구원될 것이다.” 이것이 기독교적 호명이다. 그 답은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나는 그렇게 살 것이다”이다. 주체적 욕망은 과거의 은밀한 목소리를 들을 줄 안다. 과거의 패배는, 승리자들의 전리품을 패배자들도 원했고, 승리자들이 그것을 독점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안다. “희미한 메시아적 힘”이라는 구절은 ‘하느님은 약한 데서 강해진다’는 성경 구절로 읽어야 한다. 성서의 위대한 사람들은 처음부터 강하지 않았다. “왜 저를...?”하고 말하던 모세는 목가적인 삶을 살고 있었지만 그 삶 이면에 동포를 두고 왔다는 고통을 간직하고 있었다.
우리에게 끊임없이 목소리가 들려온다. 무시할 수 없다. 우리는 듣지 않기 위해 애쓰고 노력하는 것을 중지하기만 하면 된다. 역사적 유물론자는, 과거의 실패하고 억울하게 죽은 자들이 침묵하고 있지 않다는 것, 제거하는 자의 소원대로 제거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아는 자이다. 예수를 비참하게 죽이고 분란의 싹을 잠재웠다고 안심하는 사람들에게, 예수가 죽지 않았고 다시 살아 로마를 이겼다고 고백하는 사람들이 기독교 신앙인이다.우리의 욕망을 채워주는 목소리는 하느님이 아니다. 하느님의 구원 사업은 인간과 세계의 해방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상속자이자 자신들의 구원을 위해 속삭이는 과거 사람들이 기다렸던 사람, 즉 메시야이다. 하느님은 우리를 메시야로, 유업을 잇는 사람으로 부르고 있다.
첫댓글 아예 장바구니 챙겨온 이도사님! ㅋㅋ 이날 장터물품 많이 기증해준 연옥님 감사합니다~
ㅎㅎㅎ 그러게요. 사진 보니 수정씨가 매기고 제가 받고, 주거니 받거니 한 거 같네요.^^ 모두 좋은 물건 내놔 주셔서 감사합니다. 잘 먹고 잘 쓰겠습니다. 이국적인 멋과 맛의 그린 카레도 잘 먹었어요. 은주씨 내놔 준 두유, 주전자, 복합안주도 교회에서 잘 사용할게요. 블루베리 심느라 수고한 나무손님, 연탄 나르고 호스 챙기느라 애쓴 태형씨, 깔끔하게 뒤청소 마무리까지 해준 선미씨 모두의 노고 덕분에 봄이 더 흥겹게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