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 우리 물류창고에서 만나요(외 1편)
이 은
창고가 보이면 십자 성호를 굿습니다 그것이 창고에 대한 예의이니까요
어제는 S푸드, 훈제된 고깃덩어리들을 포장했어요 그제는 올포유, 당신을 위해 사정없이 옷을 갰어요 하마터면
옷에 깔려 죽는 줄 알았어요 오늘은 아이스크림 공장, 우주선이 희미한 빛을 내며 지나가요 떨어지는 것들은 모
두 속도가 됩니다
속도를 이기지 못하는 얼음이 쏟아져요 얼어붙은 손가락이 비명을 질러요 손가락은 가만히 둔 채 아이스크림이
흘러내려요 빵과 빵 사이 너무 많은 눈보라, 빵또아에 끼어 있는 손가락이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설렘의 구멍에 얼음을 가득 채워요 설렘과 설렘 사이 너무 많은 눈보라, 꼿꼿이 서서 눈보라를 맞고 있는 설렘, 재
빠르게 히말라야산맥의 눈을 퍼담아요 몸속에 가득한 눈보라, 왈칵 쏟아질 것 같은 눈보라, 눈보라에 갇혀서, 뜨거
운 어둠 속에서 오소소 돋아나는 눈보라,
눈보라를 혜치고 깨진 얼음 조각 같은 달이 따라옵니다 버스 안에 몸을 숨기고 얼어붙은 손가락을 문지릅니다 오
늘따라 버스 안은 엄숙합니다
강 건너에 오늘의 일용할 해가 떠올랐습니다
언니, 우리 내일 또 만나요!
한 처음에 아웃소싱이 있었다
아담과 하와가 벌거벗은 몸으로 나무 위의 과일을 따고 있었다
그 나무 아래로 고양이 두 마리 지나다녔다 고양이가 도로로 뛰어들 었고 납작해 졌다 바닥에서 떼어내려 했으나
떨어지지 않았다
빨간 버스를 타고 그곳에 도착했다 계단을 따라 4층으로 올라갔고 인력센터 출근부에 나를 기입했다 체온과 휴대
폰 번호를 기입하고 나의 신체를 기입했다 소지품 검사대를 통과하고 바코드를 찍고 와이파이를 껐다 우리는 완전
히 물류창고에 편입되었다*
나와 닮은 사람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잠깐 밤 산책 나온 사람들로 착각했다 밤고양이들이 떼로 창고로 들어갔다
창고는 창고마다 고양이들로 그득했다 뺨이 움푹 들어간 고양이가 반장이었다 고양이들은 일제히 두 손을 벌리고
나에게 일을 다오! 일을 다오! 다른 고양이들이 달려오기 전에 그들의 손은 재빨랐다 두 발이 공중에 떠 있었다
점 점 점 늘어나고 점 점 점 커지는 창고에서 몸집을 키우기 위해, 고양이들의 대화는 금물이므로 눈짓으로만 소
통해야 한다 하늘만큼 땅만큼 쌓여가는 상자들 사이에서, 당신은 겨드랑이에서 흘러내리는 땀을 몇 번씩 식혔다
다른 고양이들이 밀려오기 전에 다시 뜨거워지는
우리들의 성실한 노동의 의무를 위해 우리는 서로 모른 체하기로, 역시 알바의 배치는 날카로웠다 오늘도 어떤 결
함도 불량도 발생하지 않았다 밤새 꺼지지 않은 창고의 불빛이 우리를 밀어낼 때까지
빨간 버스를 앞질러 바퀴 안으로 고양이 한 마리가 달려들었다 헤드라이트가 도로에 납작하게 들러붙은 고양이 눈
으로 쏟아져 들어갔다 고양이 두 눈이 어둠을 빨아먹고 있었다 다른 고양이들이 밀려오기 전에 아담과 하와같이 우
리는 그곳에 편입되었다
* 외부하청.
이은
강원도 동해 출생. 2006년 《시와시학》 등단.
시집 『불쥐』 『우리 허들링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