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 올림픽에 참여하자(고전 9:24-27)
제 33회 파리 올림픽이 막바지를 향하여 달려가고 있습니다. 2024년 7월 26일에 시작해서 8월 11일에 끝납니다. 파리 올림픽은 많은 기록과 이야기를 남기고 내일이면 대단원의 막을 내립니다. 고대 올림픽은 기원전 776년에 그리스의 올림피아에서 처음 열렸습니다. 이 대회는 제우스 신을 기리기 위한 종교적 행사로 시작되었으며, 4년마다 한 번씩 열렸습니다. 고대 올림픽은 서기 393년에 로마 황제 데오도시우스 1세에 의해 폐지되었습니다. 근대 올림픽은 프랑스의 쿠베르탱 남작에 의해 부활되었습니다. 그는 고대 올림픽에서 영감을 받아 1896년 그리스 아테네에서 제1회 근대 올림픽을 개최했습니다. 올림픽의 상징인 오륜기의 하얀 바탕은 평화와 순수함을 의미하며, 다섯 개의 고리가 서로 얽혀 있는 모습은 전 세계 대륙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음을 상징합니다. 이는 인종, 종교, 정치적 이념을 초월한 화합과 평화의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바울은 당시의 운동경기를 보면서 신앙생활을 운동경기에 비유하여 설명했습니다. 그는 신앙의 경주에서 승리하기 위해 필요한 열정, 절제, 훈련, 헌신 등을 강조했습니다. 바울이 고린도전서 9:24-27절에서 사용한 비유는 당시 사람들에게 매우 익숙한 것이었기 때문에, 그의 메시지가 더 효과적으로 전달될 수 있었습니다.
1. 삶의 목적을 분명히 하자 (24절)
"운동장에서 달리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오직 상을 받는 사람은 하나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리라"
사도 바울은 신앙생활을 달리기에 비유하며, 상을 받기 위해 달려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세상의 사람들은 언젠가 썩어 없어질 것을 위하여 달리지만, 그리스도인은 생명의 면류관 얻기 위해서 달립니다. 삶에는 분명한 목적이 있어야 합니다. 목적이 있는 사람은 인생을 항해하는 것이고, 목적이 없는 사람은 인생을 표류하는 것입니다. 오래전 나섬 공동체의 대표인 유해근 목사님에게 "선교란 무었입니까?" 물었습니다. 목사님은 “선교란 나그네를 순례자로 만들어 주는 겁니다”라고 했습니다. 누군가 여러분에게 “당신은 왜 삽니까?”라고 묻는다면 뭐라고 대답하겠습니까? 살아 있으니까 사는 겁니까? 행복하기 위해서 사는 겁니까? 요즘 MZ 세대는 “삶에 꼭 이유가 있어야 하느냐”고 질문을 합니다. 사도 바울은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 10:31)고 했습니다.
영광이란 헬라어로 ‘독사’이고 히브리어로는 ‘카보드’입니다. 영광에는 두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임재, 현존 등을 뜻합니다. 성막이 완성되고 하나님의 영광이 그 안에 가득했다고 했습니다. 다른 하나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은 하나님을 높이고, 그분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의 첫 번째 문답은 인간의 존재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다"는 것은 우리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을 의미합니다. 인간은 스스로 빛을 발할 수 있는 발광체가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빛을 받을 때만이 그 빛을 세상에 반사할 수 있습니다. 마치 달빛이 햇빛을 반사하는 거울의 역할을 하는 것과 같이, 인간은 하나님의 빛을 받을 때만이 빛을 발할 수 있습니다.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사 60:1)라고 했습니다.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깊은 기쁨과 만족을 찾는 것을 의미합니다. 인생의 목적이 행복 자체가 될 수는 없습니다. 행복은 파랑새와 같고 무지개와 같습니다. 아무리 쫓아가도 잡을 수 없습니다. 행복은 생명이신 하나님과 깊은 관계를 맺을 때에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2. 절제와 훈련을 실천하자 (25절-26절)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그들은 썩을 승리자의 면류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그러므로 나는 다름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여"
운동선수들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 절제하고 훈련하듯이, 우리도 신앙 생활에서 절제와 훈련이 필요합니다. 절제는 우리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을 의미하며, 훈련은 말씀과 기도, 예배를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를 깊게 하는 것을 뜻합니다. 이러한 훈련을 통해 우리는 더욱 강한 신앙인이 될 수 있습니다.
올림픽에서 한국이 전무후무한 기록을 가진 분야가 있습니다. 양궁입니다. 1988년 서울 올림픽부터 양국 단체전이 처음 시작되었습니다. 한국 여자 양궁은 그때부터 파리 올림픽까지 무려 40년 동안 10회 연속 한번도 금메달을 빼앗긴 적이 없습니다. 양궁에는 5개의 금메달이 걸려 있는데 이번에는 싹쓸이까지 했습니다. 가장 극적인 장면은 마지막 금메달이 걸린 남자 개인전이었습니다. 정규 경기에서 결정이 되지 않아 마지막 Shoot Off까지 갔습니다. 마지막 한발로 중앙에 가깝게 쏜 사람이 이기는 것입니다. 한국의 김우진 선수와 미국 선수 모두 10점을 쏘았는데, 김우진 선수가 중앙에 4.9MM가 가까워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김우진은 한국의 최고의 5개 금메달의 수상자입니다. 김우진과 관련된 우스개 유머가 있습니다. ‘김우진을 이기려면 11점을 쏘던가 아니면 김우진을 쏘던가’. 외신이 집중을 하며 혹시 대한민국 사람의 DNA에 활을 잘 쏘는 있는가 질문을 했을 때, 김우진 선수는 “공정한 경쟁과 혹독한 훈련에 있었다”고 했습니다.
3. 내 몸을 쳐서 복종시키자 (27절)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라"
바울은 자신이 남에게 복음을 전파한 후에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하여 자신의 몸을 쳐서 복종시킨다고 말합니다. 이는 우리도 우리의 욕망과 유혹을 이기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야 함을 의미합니다. 자신의 육체적 욕망을 다스리고, 영적 훈련을 통해 하나님께 더욱 가까이 나아가야 합니다.
어거스틴(Augustine)은 고백론(Confession)을 썼습니다. 그는 고백록에 요한일서 2장 16절인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에 대한 언급을 했습니다. 어거스틴은 자신의 내면에 잔재하고 꿈틀거리고 있는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이 병이며, 자신은 이 병에 걸린 환자이며, 하나님만이 이 병을 고칠 수 있는 유일한 의사라고 고백했습니다. 죄인은 죄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없습니다. 오직 죄 없으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죄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어거스틴도 젊었을 때 지적인 방황과 영적인 방황을 하였습니다. 그러다 결론은 인간은 어쩔 수 없다는 한계를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종교개혁을 일으켰던 루터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수도사로서 자기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하며 하나님에게 가까워지려고 했는데 하면 할수록 하나님과 멀어지는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하나님의 의가 아닌 자신의 의로서 하나님과 가까워지려고 했던 것입니다. 로마서1:17절의 말씀을 통해 믿음으로 인간은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빌 2:12)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라고 말합니다. ‘구원을받으라’는 것이 아니라, ‘받은 구원을 이루라’는 것입니다. 인간은 된 존재가 아니라 되어가는 존재이고, 인생은 완성형이 아니라 진행형입니다. 우리는 주님께 가는 그 날까지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오늘도 계속하여 영적인 경주를 해야 합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우리 모두는 영적 올림픽에 참가한 자입니다. 삶의 목적을 분명히 하고, 절제와 훈련을 실천하며, 육신의 욕망을 물리치고 하나님께 순종함으로, 우리 모두 최후의 승자가 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