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감시기술의 발달로 노동자 기본권 침해 호소 사례 급증
정의당 강은미, 양대노총, 민변, 진보네트워크 등 입법공청회 개최
CCTV, 위치추적 앱 등 전자감시 시스템 도입이 증가하면서 노동자 개인정보를 과도하게 수집하거나 부당하게 감시하는 결과가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에 노동·법조계 등은 사업장 내 감시설비 도입 노사 사전 협의, 고용노동부 감독 권한 부여 등을 담은 근로기준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강은미 정의당 의원과 양대노총, 민변, 진보네트워크 등은 2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디지털 노동감시 규제와 기본권 보호를 위한 근로기준법 개정’을 위한 입법 공청회를 개최했다.
양동규 민주노총 부위원장은 “비대면 재택노동과 플랫폼 노동, 요양기관 등에서 디지털 장비를 이용한 노동자 감시 통제가 확대되면서 심각한 문제를 낳고 있다”며 “요양노동자의 인권침해 사례 중 대표적인 내용은 어르신의 안전을 위해 설치한 CCTV는 요양보호사를 감시하는 용도로 악용되고 있다. 이처럼 CCTV가 노동자를 감시하는 목적으로 악용되고 있음에도 이를 개선하기 위한 제도는 부재한 상황”이라고 짚었다.
박기영 한국노총 사무1처장도 “보안 및 시설관리 및 안전·보건관리 등 업무상 필요성을 넘어서 노동자를 괴롭히거나 인사상 불이익을 가할 목적으로 CCTV 장비 등이 악용되고 있다”며 “이러한 무분별한 노동자 감시행태는 급기야 인공지능(AI)기술을 이용한 알고리즘 도입으로 노동자의 급여, 복지, 해고 등 중요 노동조건까지 좌우하는 심각한 수준”이라고 우려했다. 박 처장은 “사용자의 업무수행상 필요성과 업무효율성이라는 미명 하에 노동자의 인격권, 행복추구권, 사생활의 권리 등 프라이버시권, 나아가 노동조합의 정당한 노동3권이 침해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발제를 맡은 ‘해우’ 법률사무소 김하나 변호사는 CCTV나 GPS를 이용한 근태관리, 업무용 소프트웨어를 이용해 직원들의 모니터를 실시간 감시하는 등의 사례를 언급하며 “감시기술의 발달로 사업장에서 근로자 기본권 침해를 호소하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고 전했다.
문제는 이러한 피해를 구제할 만한 법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김 변호사에 따르면, ‘전자노동감시’를 경험한 노동자들이 이 문제를 정보인권의 문제가 아닌 노사관계의 문제로 접근해 고용노동부에 문제 해결을 요청하지만 이를 제재할 근거 법이 없어 제도에 따른 문제 해결 자체가 불가한 상황이다.
노동관계 법령 노동감시 규정은 ‘근로자참여 및 협력 증진에 관한 법률’에 따른 ‘사업장 내 근로자 감시 설비의 설치’를 노사협의회 협의사항으로 정한 것이 유일하다. 노사협의회가 존재하지 않는 사업장에는 아예 적용되지 않을 뿐 아니라, 노사 협의를 하지 않아도 아무런 제재 규정이 없다.
노동부가 전자 노동감시에 대한 문제 제기를 받아도 이를 관리·감독할 권한이 없다는 뜻이다.
김 변호사는 개인정보보호법을 통한 문제 해결에도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개인정보보호법은 개인정보처리자(사용자)와 정보주체(노동자)를 법률관계의 대등한 지위로 전제하지만 실제 노사관계는 사용자가 상대적으로 우월적인 관계에 있어 근로자가 제한적인 의사결정을 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근로기준법 등 노동관계 법령은 사업장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근로조건을 변경할 때 집단적 의사결정을 하도록 하고 있으나, 법의 목적과 취지가 상이한 개인정보보호법에서 이러한 방식의 규율을 하기엔 한계가 있다”고 덧붙였다.
김 변호사는 감시설비 설치, 운영과 근로자 개인 정보 처리에 관한 내용을 근로조건으로 보고 근로계약을 맺을 당시 사용자가 관련한 내용을 고지하도록 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또 사용자가 사업장에 감시설비를 설치, 운영하려는 경우 노동자 과반수로 조직된 노조가 있는 경우 그 노조와 서면 합의하는 내용도 규정해야 한다고 짚었다. 그는 “가장 핵심적인 변화는 근로기준법에서 감시 설치 및 개인정보 처리와 관련한 근거 규정을 둠으로써 고용노동부가 개인정보보호법에 의한 개인정보 감독권한도 행사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강은미 정의당 의원은 “사업장에서는 (감시장비를) 노동력을 관리하는 용도나 노동조합 활동을 규제하는 데 악용할 가능성이 높고 실제로 침해 사례가 다수 지적되고 있는 만큼 노동 법률로 보호할 필요성이 있다”며 “감시설비의 설치·운영은 원칙적으로 금지된다는 점을 명시적으로 법률에 담고, 근로자의 안전사고 예방 등 최소한의 범위에서 근로자의 대표와의 합의를 통해 감시설비 설치·운용을 하도록 하는 내용의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