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출애굽기 4:2,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그가 이르되 지팡이니이다
찬송가 323장(부름받아 나선 이 몸)
오늘 본문 말씀은 시내산 기슭의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모세를 만나주신 하나님께서 모세를 애굽으로 보내시어 이스라엘을 바로의 손에서 구해오라고 보내시는 대목에서 나오는 말씀입니다. 출애굽기 4장의 말씀은 망설이며 거부하는 모세에게 하나님께서 이런 저런 표적도 보여주시면서 그를 사명지인 애굽으로 기어코 떠나보내는 과정을 담고 있습니다. 이 출애굽기 4장 말씀에서는 모세를 사명지로 보내면서 세 가지 점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하나님은 우리가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들어서 주의 일을 위하여 일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애굽으로 가라 하는 하나님의 명령을 듣고 자기가 누구이기에 감히 애굽의 바로에게 가느냐고 반문하면서 망설이는 모세에게 하나님께서 물으신 것은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는 것이었습니다. 모세는 그 동안 40년 동안 광야에서 장인 이드로의 양을 치는 목자로서 일해왔기 때문에 그 손에 항상 지팡이를 잡고 있었습니다. 들판에서 양을 칠 때 그 지팡이는 자기 몸을 지탱하는 수단이기도 하고, 양떼를 노리는 늑대와 들개를 쫓아내는 무기가 되기도 하고, 양들을 인도하며 보호하는 도구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40년 동안 모세는 일할 때면 언제나 그의 손에서 지팡이를 놓아본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모세가 항상 손에 지니고 있던 그 지팡이를 가지고 뱀이 되는 표적도 보이고 손으로 그 뱀을 잡으면 다시 지팡이가 되는 표적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모세에게 약속하시기를
“너는 이 지팡이를 손에 잡고 이것으로 이적을 행할지니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하여 20절에 보면, 애굽으로 돌아가는데 모세는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았더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모세는 자기 백성을 구출하기 위하여 많은 군대를 데리고 애굽으로 함께 간 것도 아닙니다. 오직 전에 광야에서 늘 사용하던 손에 익숙한 그의 지팡이 하나만 손에 쥐고 애굽으로 들어갔던 것입니다. 그 지팡이 하나만 가지고 애굽에서 많은 기적을 하나님께서 베풀었고 광야 40년 기간에 이스라엘을 이끌 때에도 반석에서 물을 내는 등 수많은 이적이 나타났습니다.
이처럼 우리들도 하나님께서 쓰시고자 하실 때 없는 것을 새로 장착해서 주의 일을 위하여 나서게 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있는 모습 그대로, 우리가 손에 쥐고 있던 그대로, 우리가 그 동안 살아왔던 그 모습 그대로 주님의 손에 붙들려서 쓰임받는 것입니다. 그 지팡이처럼 우리도 주님의 손에 붙들려서 쓰임받는 것입니다. 우리가 손에 쥔 것, 곧 우리가 살던 우리의 과거, 우리의 장점, 우리의 재능, 우리의 기질, 우리의 지식, 우리의 모습을 그대로 주님께서 사용하여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용하는 것입니다. 손에 쥔 지팡이 하나만 가지고 애굽으로 가서 모세가 사명을 감당했듯이, 우리도 있는 모습 그대로 주님의 손에 우리 자신을 순종하여 맡겨 드릴 때 하나님께서 그의 손으로 우리를 붙들어 주님의 일에 마음껏 사용하실 것입니다.
둘째로, 하나님은 우리의 부족한 점을 보완해주시어 사명 감당하게 해주십니다.
모세가 자기는 입이 뻣뻣하다고 못간다고 했을 때 하나님은 그의 형 아론을 붙여주셨습니다. 10절에 보면, 모세가 하나님께 이르기를
“오 주여, 나는 본래 말을 잘 못하는 자니이다 주께서 주의 종에게 명령하신 후에도 역시 그러하니 나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니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을 건지고 그들을 약속의 땅 가나안까지 인도해들이려면 당연히 말을 잘해야 함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자기가 말을 잘 못하고 대중 앞에 서면 갑자기 말을 더듬고 머리 속이 하얗게 변하는 자기 기질이 퍼뜩 생각났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통솔하고 설득하고, 애굽 왕 바로의 대적 논리를 잠재우려면 자기의 언어 구사 능력으로는 불가능함을 기억하고서 모세는 하나님께 자기는 애굽에 못 간다고 대답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모세에게 그의 말 잘하는 형 아론을 보좌진으로 쓰면 된다고 대답하셨습니다. 아론을 붙여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모세는 말 잘 못해도 상관없고, 그 약점을 보충해줄 협력자를 하나님께서 붙여주시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완벽해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러 쓰시는 것이 아닙니다. 부족한 점이 있을지라도 우리 마음 중심에 하나님을 모시고 있기에 우리에게 사명을 맡겨주시는 것입니다. 우리 혼자서 그 사명을 감당할 수 없음도 잘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와 함께하시면서 동시에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인간의 협력자도 곁에 붙여주셔서 사명을 능히 감당하게 도우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묵묵히 부르심에 순종하여 자기 자리를 지켜 행합시다. 주님께서 감당할 은사와 능력도 주시고 인간의 협력자도 붙여주시어 그 사명 잘 감당하게 해주실 줄 믿습니다.
셋째로, 하나님께 쓰임받기 위하여 가장 가까이에서부터 온전한 순종을 실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모세가 부르심에 순종하여 자기 장인 댁에 작별 인사를 드리고 자기 아내 십보라와 큰 아들 게르솜과 둘째 아들 엘리에셀을 나귀에 태우고 애굽으로 돌아가는 길이었습니다. 가는 도중에 한 여관에 머물 때인데 하나님께서 모세를 죽이려고 하셨습니다. 24절에 기록되기를
“모세가 길을 가다가 숙소에 있을 때에 여호와께서 그를 만나사 그를 죽이려 하신지라”
고 되어 있습니다. 이 일은 갑작스러운 일이었고 하나님께서 어떻게 모세를 죽이려 들었는지 그 방식도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십보라가 모세가 거의 죽어갈 때에 하나님께서 자기 남편을 죽이려 하는 이유가 바로 그 아들의 할례를 시행하지 않은 것임을 깨닫습니다. 그래서 십보라는 돌칼로 아들의 포피를 베어 남편 발에 갖다 대며 “당신은 참으로 내게 피남편이로다”라고 말하였는데 그 때에 하나님께서 모세를 놓아주었습니다. 원문에 보면 십보라가 할례를 한 아들은 한 아들만 한 것으로 원문은 말해주고 있으니, 아마도 모세와 십보라는 게르솜은 할례를 했지만 둘째 엘리에셀을 낳았을 때에는 십보라의 반대로 할례를 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본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할례를 반드시 낳은 지 8일만에 모든 남자는 행하여야 한다고, 하지 않으면 백성 중에 끊어진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을 하나님 백성으로 구별하여 애굽에서 구원해낼 지도자로서 모세가 자기 가정 내에서 아들 중에 할례를 행하지 않았다면 그것은 백성의 지도자로서 중대한 결격사유가 됨이 분명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처럼 모세가 사명 감당하러 가는 도중에 찾아오셔서 모세에게 죽음의 위협을 가함으로써 먼저 모세와 십보라에게 순종하여 할례를 행하도록 요구하셨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의 사명을 감당하려면 자기 자신과 자기의 가까운 가정에서부터 전적으로 순종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그리할 때에 외부적인 사역의 중대한 사명도 감당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을 먼저 철저히 하나님께 순종하고, 우리 가정 내에서 먼저 전적으로 온전히 순종함으로써 우리는 주님이 맡겨진 대외적인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집니다. 항상 우리 자신을 먼저 돌아보고 나부터 먼저, 내 가정부터 먼저 주님 앞에 철저한 순종, 철저한 헌신을 실천합시다. 그리할 때에 주님께서 우리와 우리의 가정을 온전히 세운 뒤에 우리에게 주어진 귀한 사명을 온전히 감당할 수 있을 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