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포의 새벽 편지1891
신심명099
동봉
제3칙
제6장 일여一如
제1절
눈이만약 드리우지 아니한다면
모든꿈이 자연스레 없어지듯이
마음만약 다르거나 하지않으면
일만가지 온갖법이 한결같으리
안약불수眼若不睡
제몽자제諸夢自除
심약불이心若不異
만법일여萬法一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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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너희들 말이다. 그 말 아느냐?'
강사 스님의 느닷없는 질문에
사미과 치문반에 입학한
학인들 입장에서는
답을 할 수가 없었겠지만
그저 지시대명사로 '그 말'이니
강사 스님 입만 쳐다볼 수밖에
물끄러미 앉은 학인들에게
강사 스님이 말을 이었다
'아! 내가 아직 말하지 않았군'
1975년 음력으로 10월 보름
동안거 결제를 계기로 하여
선원禪院에서는 참선 수행이
강원講院에서는 반에 따라
새로운 수업이 시작되었다
강원은 치문반이 있었고
그 위로 사집반이 있었으며
사집반 위로 사교반이 있었다
사교 위로 대교반이 있어야 하나
사교와 대교를 한 해에 집어넣었다
석 달 동안의 동안거 시작이다
강사 스님이 분필로 칠판을 찍으며
칼칼한 음성으로 말씀하셨다
'방말防末은 재본在本이라
지말을 막는 것은 근본에 있다
혹시 들어본 적이 있느냐?'
젊은 나이에 나는 생각했다
참으로 좋은 말씀이다
세상에 방말은 재본이라니
최고의 경영학이구나 싶었다
개강 첫날 첫 대면에서
귓속을 파고들어 온 첫 말씀이
어쩌면 그리도 오래 남는지
생각만 해도 실로 신기한 일이다
햇수로 4년 동안 공부하고
해인사 승가대학을 졸업한 뒤
나는 어떤 일을 겪을 때마다
언제나처럼 후회를 달고 다녔다
왜 진작에 그런 생각을 못했을까
'방말을 재본'인데 하고 말이다
끄트머리를 막으려는가
묘책은 반드시 근본에 있다
원인을 없애면 결과는 사라진다
꿈은 잠 때문에 생긴 것이다
잠자지 않으면 꿈은 없다
꿈이 좋거나 나빠서가 아니라
유위법으로 분류하였을 때
마음 닦修고 몸을 닦行는
그러한 수행자 입장에서라면
꿈은 그리 기댈만한 것이 못 된다
잠자며 꾸는 꿈은 흉몽만이 아니라
더러 길몽도 따라오게 마련이다
한 때 꿈해몽을 바탕으로 하여
'채패'라는 게임이 유행했다
앞으로 넉 달 뒤면 돌아가신 지
꼭 30주기를 맞는 아버지께서는
아마 1960년대 중반부터
그 후반에 이르기까지
채패에 깊이 빠져 계셨다
말이 게임이지 실상은 놀음이다
07
내 기억으로 당시 채패도採覇圖는
그냥 평범한 사람 모습이었는데
아버지는 '관운장'이라 하셨다
사람의 몸 전신 36개 부위에
관음, 점괴, 판계 등 이름을 썼는데
한의원에 붙어 있는 신체도와
다를 게 없었던 듯싶다
가령 불보살님을 꿈꾸었을 때
'관음'에 판돈을 걸고 당첨이 되면
50배 당첨금을 타는 것이었다
36개 말목 중에 '관음'을 제외한
나머지는 당첨금이 30배다
로또보다 적은 편인데
로또와 다른 점이 있다면
채패는 돈이 개인으로 들어가고
로또는 일부가 사회로 환원됨이다
아버지는 매일 아침 식구들에게
어떤 꿈을 꾸었는지 묻고
그 꿈을 해몽가에게 의뢰하여
채패에 집어넣곤 하셨다
어려운 살림이 그예 거덜이 났다
누가 나서 강제로 말린 것도 아닌데
어느 날 아버지는 채패를 끊으셨다
매일 어둡기만 하시던 모습이
채패를 끊으며 밝아지셨다
꿈은 이래저래 좋은 게 아니다
내가 해몽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이
열댓 살을 전후한 바로 그 때다
나는 좀 끈질길 편이다
과제를 하나 선택하게 되면
끝장을 보아야 그치는 성격이다
채패를 계기로 나는 그야말로
자칭 해몽의 대가가 되었다
누가 와서 무엇을 물어도
앉은자리서 꿈을 풀어주곤 했다
잘 맞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꿈이 아무리 나빠도 꿈은 꿈이듯
아무리 좋아도 꿈은 꿈이다
절에 들어와 불교를 공부하면서
해몽의 시초가 불교였음을
아시타 선인에게서 알게 되었다
꿈과 해몽에 관해서 살펴볼까
제1장 로또 복권과 꿈
제2장 꿈속의 숫자 찾기
제3장 연금식과 기타 복권에 관한 꿈
제4장 내 꿈속을 찾아온 사람
제5장 꿈길을 찾아온 12지 동물들
제6장 12지 밖의 동물이 나타나다
제7장 배설물과 분비물에 관하여
제8장 인간의 몸, 부분적인 것
제9장 집과 기타 건물에 관하여
제10장 사람의 행동을 살펴보기
제11장 인간의 행동과 감정
제12장 신령에 대하여
제13장 돈과 증서에 대해
제14장 물과 바다에 대하여
제15장 색채와 시간
제16장 하늘과 천체 그리고 기상
제17장 서적, 글자, 도장, 숫자에 대해
제18장 운동, 연애! 오락에 관하여
제19장 산, 고향, 도시, 지도에 관해
제20장 불이나 빛과 열
제21장 승용구나 전신, 전화, 우편
제22장 전쟁과 무기, 그리고 깃발
제23장 침구와 사무용품에 대하여
제24장 의복, 장식품, 소지품
제25장 질병과 의술 그리고 약
제26장 음식, 재료, 과일 등이 있다
이는 로하스 출판 꿈해몽 대백과
목차에서 총 26장을 가져왔다
세부 항목은 1,300여 가지를 넘는다
아이러니irony하게도
해몽의 시초가 불교지만
불교는 꿈과 거리가 먼 편이다
나는 불교를 접하며 해몽을 접었다
한 때 방편으로 좀 더 익혀둘 걸
하며 아쉬워하기도 했으나
지금은 잘했다는 생각이다
불교는 어떤 것도 버리지 않으나
어떤 것도 쌓아두지 않는다
불교를 바라보는 시각은
교리가 매우 과학적이란 것이다
늘 지나고 난 뒤에 후회하는 게
나의 버릇이 되어버렸다
처음부터 잘하지 왜 그랬을까
애초에 마음을 비웠더라면
나중에 엉뚱한 길로 빠진 뒤에
후회하지 않았을 게 아닌가
인생을 미리 살아볼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가끔 생각한다
출가하여 사미과에 들어간 첫날
강사 스님 말씀이 여전히 생각난다
그런데 강사 스님이 누구냐고?
성철 대종사가 호랑이 새끼라 했던
희랑대 조실 보광 큰스님이다
내게는 수행자로서의 참 삶을
곧게 이끌어주신 거룩한 스승이다
큰스님의 카랑카랑한 사자후가
아직도 여운으로 들려온다
'방말防末은 재본在本이다
부질없는 꿈을 버리려한다면
애초 눈꺼풀을 드리우지 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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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1
성철 스님은 그를 '가야산 호랑이 새끼'라 불렀다 - 중앙일보
https://www.google.co.kr/amp/s/mnews.joins.com/amparticle/22557510
참고자료2
Daum 블로그
http://m.blog.daum.net/_blog/_m/articleView.do?blogid=0D1jo&articleno=17939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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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찍고 꾸민이/우리절 비구 동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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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9/2020
곤지암 우리절 선창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