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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대 하년인 내가 나에게
오늘, 현재 생활을 고맙게 생각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만족한다. 내가 살아있고 내 주변이 별 일 없다면 더 더욱 고마워한다. 그리고 내일 또한 별 일 없이 건강하게 잘 가길 바라며 눈을 감는다. 나는 이것이 노 중년의 자기와의 싸움에서 이긴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게 불만이 되면, 하루 하루가 불만스럽다. 오늘 하루를 만족하고 고맙게 생각하면, 그러면, 살아 온 과거가 오늘의 만족한 생활을 위한 준비 과정이 된다. 사실, 이렇게 마음을 다진다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천천히 하나 하나 버려야 한다.
가장 먼저 버릴 것은 자존심이다. 자존심이 아주 유용할 때가 있다. 그러나 이제는 그것을 버림으로써 이해와 포용을 가진다.
혹 권위와 존경 따위를 가지고 있다면, 그것도 버린다.
한번 밖에 살지 못하는 삶, 그런 틀에 갇혀 더 많은 좋은 삶들을 만나고 향유하지 못한다면, 슬픈 일이 될 것이다. 본인은 잘 모르거든. 본인이 그것을 알게 되면 정말 슬픔이 된다.
구태일 것 같지만, 다 아는 것 같지만, 희로애락 등을 겪으면서 살아 온 노 중년들은 삶의 진정한 가치를 찾을 수 있고 느낄 수 있다. 지금쯤 그것을 되새기며 짙은 향수와 함께 뿌듯함과 후회와 자부심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것이 노 중년의 삶을 아름답게 만든다. 믿기 싫을 것이다. 안다.
빨강 파랑 노랑 검정을 가지런하게 잘 놓았다고 아름다움이 아니다.
빨 주 노 초 파 남 보 흑 색들이 어울려서 만들어 낸 노 중년의 삶. 그것을 아름다움이라 하여도 떳떳할 것이다. 굳이 다른 사람에게 말 하지 않아도 좋다. 스스로 진정한 삶을 느끼는 그런 내공을 갖추었을 테니까.
나는 사실, 내가 생각해도 놀랄 만큼 잘 참는다. 인내에서도 최고수급이다. 그리고 화를 거의 내지 않는다. 분개하고 억울해도 분통이 터질 것 같아도 화를 내지 않는다. 화를 모른다. 그러나 화를 참고 인내하는 것에 대한 가치를 꼭 획득한다. 법의 테두리 안에서. 나도 태권도 1단이다. 스나이퍼 교육도 받았다. 내가 사는 나라의 법도 잘 안다. 그래도 인내이다. 그러나 그것도 이제는 잊었다. 그런 일을 만들지 않는다. 최고수의 경지에 올라 있거든.
그리고 필요 없는 것들은 빨리 잊는다. 앞으로의 일들을 기억해도 부족할 판인데 지난 것들을 왜 다 기억하는가? 자존심 버리고 포용하면, 과거의 기억들이 다 소용없다. 덧없다는 의미이다.
그 다음은 마음과 육체의 운동이다. 스스로 영혼을 맑고 편하게 하는 방법을 찾는다. 그것 자체가 영혼의 운동이다. 육체의 운동은 가벼운 것 부터 한다.
일어나면서 누울 때까지. 침대에서 일어날 때가 참 중요하다. 눈을 뜨면 바로 일어나지 않고 눈을 깜빡인다든가, 천천히 다리와 팔을 뻗어 본다든가, 고개를 좌우로 천천히 돌려 본다든가 하여튼 자기 몸에 맞는 것들을 움직여 몸이 준비를 하게 한 후 서서히 내려선다. 시간은 널널하니 천천히 물 한잔 마시고 창문을 열고 심호흡해도 좋고...
나같은 경우는 그 다음에 욕실로 간다. 잘 내보내는 것도 굉장히 중요하다. 하루를 좌우할 수도 있다. 그리고 더운 물에 몸 담궜다 두 가지 운동하고 일어나 온 몸에 비누칠을 한다. 이때 몸 곳 곳을 손바닥으로 문지르며 피부와 몸의 곳 곳을 점검한다.
팔 높이 들고 다른 팔의 손바닥으로 훑으며 오르내리고 배와 손 닿는 등, 허리 숙여 발가락 발목 종아리 허벅지 오지부근 엉덩이 허리 가슴 그리고 목과 그 둘레, 이렇게 매일 아침 저녁으로 한다. 어디가 좀 다를 때는 오늘 그 부분에 관심을 가지고 조심한다. 그렇게 하다 보면 고와져 있는 피부를 계속 잘 유지한다. 노인 냄새라고 하나? 그런 냄새도 나지 않는다. 잘 때도 가볍게 몸을 흔들고 팔 다리를 움직여 잘 준비됐는가 확인하고 자리에 눕는다. 낮 동안은 수시로 틈나면 다리와 팔 목과 허리 등을 움직여 준다. 그리고 주변에 의자 등 들 것이 있으면 두 팔로 바로 서서 들었다 놓는 것 10번 정도 한다. 풋샾도 20개는 한다. 그리고 맨손 체조 옛날에는 국민체조 같은 것을 수시로 한다. 가볍게 뛰기도 하고.
"누가 볼까봐? 자존심을 버렸잖아! 상관없어. 니가 내 몸 도와줄꺼냐? 아니잖아. 그러니 니 피해 않줄테니 보고만 있어라. 오케바리?"
영혼 즉 마음의 운동을 위하여서는, 치매 등을 늦추기 위하여 자꾸 좋은 착한 생각을 한다. 가능하면 추리 쪽으로. 그래서 책 특히 소설책을 읽는다. 자기가 좋아하는 분야도 읽고, 전혀 다른 분야 즉 연애나 성애 소설 같은 것. 야한 소설은 가급적 피하고 적당히 야 하면서 스토리가 있는 것으로. 그래서 읽는데 그 스토리에 빠질 수 있고 자기 스스로를 주인공화 하게 생각하도록 하는 내용이면 더 좋다. 책을 읽는 동안에 책 속의 주인공이 되어 작가를 탓하기도 하고 여 주인공과 함께 독자 스스로의 방법으로 스토리를 진행해 볼 수도 있다. 계속 생각을 하게 만드는 읽음은 치매 등 뇌 속의 복잡한 쓰레기들을 눌러 버리는 역할을 한다. 게다가 짧은 글을 써 보려는 의욕도 생긴다. 진짜! 얼마나 멋진 가!
간단한 새로운 요리를 생각하고 만들어 본다. 처음에는 돈이 좀 들겠지만, 그 다음에는 사용하고 있는 식재료로 새로운 것을 만들 수 있다. 잘 안되지. 당연하다. 포기하면 안되고 연구하고 검토하고 그러면서 새로운 요리를 창조해 낸다. 그것은 정말 먹다 죽어도 좋을 맛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식재료는 많고 다양하다. 누구에겐 가 멕이고 싶어 진다. 이걸 위하여 움직여야 되거든. 이런 걸 먹는 니 좋고 움직이는 나 좋고 라고 한다. 스스로 만든 다양한 생활의 시작이 된다. 일주일에 한번씩... 차근 차근. 먹어주는 사람을 고마워하게 된다. 라면도 끓이는 방법에 따라 굿면이 된다. 수제비도 갓제비로 만들 수 있다. 이것도 새로운 맛을 만들어 내는 모방으로 시작한 창조행위라 생각한다.
가능한 한 많이 웃고 그러기 위하여 모든 것들에 대하여 긍정적인 생각을 하고 그렇게 인정한다. 가령, 하루에 한번 정도는 인터넷에서 유우머 코너를 찾아 웃기는 것들을 보며 실큰 웃는다. 그리고 젊었을 때는 결코 웃을 수 없던 작은 것에도 웃는다. 자꾸 웃다 보면 정말 참을 수 없는 웃음거리가 늘 생긴다. 그러다 보면 만나는 사람, 함께하는 사람들을 웃기게 된다. 사실 이걸 영어로 하자니 보통 이상 집중해서 기억해 놓아야 한다. 그래서 그걸 생각하노라면, 얼굴에 웃음이 늘 있게 되니까. 이건 또한 믿어도 좋다. 누구도 얼굴에 미소가 있으면 그 사람과 같이 있는 것이 좋다. 나는 미소 띈 얼굴의 모든 사람들을 좋아한다. 악이 없거든.
또한 안 좋은 것에 대하여는 특별히 중요하지 않으면 그냥 잊고 페이지를 넘긴다는 생각으로 다음으로 넘어간다. 그렇기 때문에 타인과 관계되는 복잡한 일을 만들지 않는다. 지 스스로의 일에도 바쁘거든.
말은 할 경우, 최소한의 팩트(사실 근거)를 기반으로 하는게 좋다. 하고 난 나중에 쓸데없는 구설에 휩싸이지 않기 위하여. 말은 하되 개인사에 대한 이야기, 정치에 대한 이야기, 종교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인종과 사상에 대한 이야기 등은 피한다. 이건 내가 캐나다에서 사는 방법이다.
그리고 어딘가 에 마음을 쏟을 것을 만들 수 있다면 좋다. 나 같은 경우는 손녀에게 푹 빠져 있다.
"언제든 무조건 우리 크로이는 하라부지에게 최고! 최고! 최고!" 라고 말한다.
그 말도 카톡에 올라 온 사진만 보면, 만나기만 하면 그리고 틈나는 대로 하니 그냥 하라부지 말이다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아랑곳 없다. 그것이 우리(나는 나만의 손녀라 생각하지 않기에) 크로이에게 죽을 때까지 쏟는 하라부지 사랑이니까. 누가 뭐라해도 변함없다.
그 넘 핑게로 나는 매일 아침 이렇게 쓴다.
"귀엽고 이쁘고 사랑스러운 우리 크로이는 최고 ! 에고. 이모티콘이 여기에는 없네. 최고 ! 최고 ! 오늘도 우리 크로이하고 엄마 아빠하고 삼촌 할무이 모두 해브 베리 나이스 목요일 !!!!! 라브 라브 라브"
오늘은 목요일 아침이다. 이제는 돈 버는 것도 몸과 마음이 건강해 지는 것도 먼저 우리 크로이를 위해서라 고 생각하며 실행한다. 그래서 너무 바쁘다. 아니, 너무 바빠서 좋다. 그 넘이 잘 자라는 것을 보는 것이 너무 좋다. 그 넘이 커면서 하라부지는 죽을 때가 더 가까이 오겠지만... 그게 운명인 걸... 어쩌라고?
쉽지는 않겠지만, 돈에서 부터 벗어나야 한다. 생각해 보면 그 동안 얼마나 돈을 필요로 했으며 그것을 위하여 얼마나 많은 피와 땀과 노력을 바쳐왔던가. 그런데 지금은 이렇게 황혼이 느리어진 언덕에 서 있다.
돈에 대하여는 대부분의 노 중년들은 할말이 많을 것이다. 나 역시도 지금 돈을 벌려고 일을 하고 있다. 이유야 어디에 있든, 늘 돈은 필요하다.
그러나 내가 땀 흘리며 돈을 벌어보니 정말 노동의 가치를 알게 되고 돈을 제대로 사용하게 되고, 그 돈을 벌려고 진정으로 애쓰는 내 삶의 모습에 스스로 감동하곤 한다. 작은 돈이지만 열심히 땀을 흘리며 성실하게 일하고 떳떳이 일어나는 자신이 고맙다. 나는 이 일을 운명이 정해준 일이라 생각하며 고마워한다.
다 알고 있듯이 돈의 프레임에서 벗어나 마음을 자유롭게 해야 하는데... 사회생활을 하는 동안 그것이 쉽지 않다. 그럴 때 절망하거나 나쁘게 생각하면 자기 스스로 마지막 삶을 망치게 될 수도 있다. 나는 긍정적인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순응한다.
"그래. 이 운명이 나에게 돈 대신 새로운 뭔가를 주려고 이러는 구나" 라고 생각하며 그것에 대한 생각과 준비를 한다.
이제 그만 쓰려고 하는데, 생각나는 놓쳐서는 안될 것이 있다. 노 중년의 성 문제이다. 노년에도 가슴을 뜨겁게 할 수 있어야 한다. 두근거리며 뛰는 가슴이 있어야 한다. 그건 삶의 활력이 되고 생존 하려는 처절한 이유가 될 수도 있다. 그건 이성에 대한 욕망이다. 불가능 한 바램. 그러나 필요하지만, 가장 심각하게 행동하여야 하는 것이다. 그것에 대한 생각을 할 수 있는 동기부여가 계속되어야 한다. 허툴게 실행을 했다 가는 자칫 살아 온 삶 전부를 몽땅 날려 버릴 수 있다. 개챙피를 당하고 영혼마저 털려 버릴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슴을 덥게 하고 생각을 뜨겁게 하는 일은 이성에 대한 내면의 욕망이고 욕구이다. 결코 밖으로 나타내어 서는 안될... 할 수 있으면 대상을 생각하며 자위를 하여도 좋다. 제대로 된다면 자신감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도덕에 억매이고 교양과 유교적 양심과 권위라는 프레임에 갇혀 있는 자신을 해방시켜야 한다. 노 중년의 속 마음을 누가 비난하고 탓하랴. 지나가며 보게 되는 아름다움을 노 중년이라는 이름으로 외면하고 억눌러야 한다면, 이건 큰 스트레스이다.
그러나 자기의 욕망과 욕구적 마음을 극도로 절제하고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이건 삶의 내공 고수들이니 할 수 있다.
몇 년 전부터 나는 공상과학, 추리 탐정, 법정, 의학, 우주인 소설 등 소설 쓰기에서 다시 연애소설을 썼고 써고 있다. 그러한 연애소설을 썸으로서 그런 문제들을 잘 넘어가고 있다. 앞으로 그런 소설을 더 써 보려 한다.
어쩧든 내 생각과 경험으로는 노 중년들은 꾸준한 생각을 하고 꾸준히 몸을 움직여야 하는 것이 그나마 활력을 유지하는데 필수적이다. 생각 때문에 나 같은 경우는 소설을 쓴다. 쓰는 동안 그 소설 속에서 나는 무엇이든 내가 원하는 것은 다 할 수 있다. 내 생각에 의하여. 생각이 바쁜 이유이다.
몸의 움직임, 위에서도 말했지만 틈나고 할 수만 있다면, 고개를 좌우로 앞 뒤로 그리고 허리를 좌로 우로 앞 뒤로 돌리고 굽히고 한다. 쉐도우 복싱도 하며 가볍게 뛰기도 한다. 아침 저녁으로 탕 속에 더운 물 받아 놓고 들어가 흘러간 옛 노래 들으며 자전거타기 허리 상하 좌우 흔들고 돌리기 등을 한다. 몸의 유연성 유지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
나는 술을 마시지 않는다. 골프도 안 한다. 등산도 안 한다. 장시간 하는 것들은 피해왔다. 그것들은 사실 나에게는 시간 낭비이고 육체적 도움이 되지 않는다 생각한다. 젊었을 때 당구를 500 쳤다. 거기까지 너무 많은 것들을 잃어 버렸다. 단지 하나 얻은 것은 집중력 유지였다. 돌아서면 잊어버리지만, 하나에 대한 집중력은 뛰어났다. 그걸 잘 알기에 지금도 집중력을 활용한다. 잘 배우고 잘 사용하려 애쓴다.
노 중년의 걸음걸이도 중요하다. 지하철을 타러 가며 길을 걸으며 등에서 노 중년들의 걸음걸이를 유심히 보고 스스로의 걸음걸이와 비교해 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팔자 걸음이다. 게다가 팔도 팔자로 휘젓거나 옆구리에 붙인 채 다닌다. 나이 들면 그게 편하다고 한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바른 걸음걸이는 마음이다. 힘들지만, 천천히 그렇게 바로 하려 하다 보면 마음도 다져 질 것이다. 남들 보지 않는 곳에서 혼자 그렇게 팔자로 걷는다 해도 문제이다. 바른 걸음걸이는 마음을 바로 다지게 한다. 젊었을 때 거들먹거리며 걷는다 하는 말을 들을 정도로 팔자 걸음 하면 우선 보기에 좋지 않다. 노 중년이면, "나 노 중년이야" 말하며 다니는 거다. '퍼스트 임프레이션(첫 인상)'이 좋아야 그 다음을 쉽게 만든다.
나같은 경우, 바로 걷는 것은 일찍 깨닫고 습관화 했다. 지금도 바로 잘 걷는다. 갸웃(통풍)이 와서 활동 할 때 몇 일을 제외하고 늘 허리 펴고 바로 걷는다. 당당하게 볼 수 있다. 그래서 우리 손녀 크로이(Chloe)도 지금 바로 걷는다. 며느리도 고쳤다. 아내도 고쳤다. 큰 넘은 기본이 됐고 문제는 작은 넘. 아직도 약간 팔자다 ㅎㅎㅎ. 어쩧든 노 중년의 외모 중 걸음걸이. 생각해 봐도 좋다.
가정의 왠만한 것들은 내가 다 수리하고 고치고 청소한다. 생각과 육체 즉 말초신경의 운동이거든. 심지어는 몇 개 되는 우리 가족들의 시계 밧데리도 내가 스스로 간다. 아마존에서 싸게 수리 기구와 적합한 밧데리를 샀거든. 재밌더라. 이것을 나는 마음과 몸의 운동이라 생각하며 한다. 하나도 귀찮거나 싫지 않다. 가족들도 좋아하고, 아내는 그럴 때 뭐가 좋은 지 "Thank you so much" 말하며 엉덩이 툭 치고 지나간다. "아이고~ 메. 이제는 뜨거운 밤은 웂시유~" 사소한 것 들이지만 노 중년의 한 부분의 삶이라 생각한다. 쓸 것들은 많은데, 나도 다른 일 좀 해야 하니 여기서 마무리하려 한다.
이건 보고서도 아니고 사시 문제의 답 쓰는 것도 아니고 이 나이에 폼 내자고 쓰는 글도 아니고 소설은 더구나 아니고 그렇다고 뭘 얻자고 사기치는 글도 아니다.
60대 하년 중 한 사람의 가는 시간을 스스로는 온 힘을 다해 열심히 살고 있다는, 그런 사람의 삶도 읽어보며 독자의 삶도 재 조명하여 깔보든 고개를 끄덕이든 하면 될 것이다. 그래서 가감없이 소설을 떠나 필자는 생각을 드려 내였다.
그러나 하나 말하고 싶은 것은, 죽는 순간까지 자기와의 싸움에 지지 말라는 것이다. 위에 그것을 위하여 내 나름대로의 삶을 예시같이 적었다. 오늘 현재 자기와의 싸움. 포기하지 말고 내일도 모래도... 중단없이 자기와의 싸움, 정신과 육체의 싸움에서 이겨야 하고 최소한 비기는 싸움을 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 전투의 질이 그리고 승리가 당신의 노 중년 삶을 후회 없는 멋진 가치로 마지막 빛을 발할 것이다. 나는 그렇게 믿고 실천하고 있다. 더구나 코비드-19의 펜데밐 상황에서는 필히 자기 스스로와의 싸움은 필요하며 이겨내어 야 한다. 노 중년의 내공 고수들은 이겨낼 것이며 그 싸움에서 최후의 웃음을 웃는 노 중년이 되어야 한다.
세상을 살아보니 정말 공짜는 없더라. 언제 어떻게 가 있지만, 성취에 대한 지불은 꼭 요구 받게 되고 계속 살자면, 어떻게 든 지불해야 하더라. 우리는 이미 많은 충분한 지불을 하였다. 그 바탕 위에 90이 넘어서도 발하는 당신의 존재의 가치! 얼마나 멋진 가? 다시 한번 그것을 위하여 힘내자. 노 중년이여! 끝.
참고로 글쓴이도 15년 이상 이 지독한 통풍(Gout)과 싸우며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