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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이 눈물로 범벅이 되었지만, 맘처럼 멈춰주질 않는다. 놀란 가슴은 쉽사리 진정되지않아 손이고, 발이고, 심지어 얼굴 근육도 제 맘대로 떨리고 있었다. 꽉 잡은 윤성의 옷자락을 놓칠세라 손가락이 하얗게 변할지경이다.
"진정하고 정신차려. 여기서 나가야 해."
"으......으흡.......흑흑흑."
대답을 하려했지만 누르고 있던 흐느낌이 먼저 튀어나온다. 시연은 그저 고개를 끄덕거리는 것 밖에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다. 시야를 가린 눈물을 서둘러 닦아내며 고개를 끄덕이는 시연은 바로 옆 정신을 잃고 쓰러져있는 현민을 불안하게 곁눈질하며 윤성에게 찰싹 달라붙었다. 금방이라도 눈을 뜨고 달려들것만 같아 무섭기만 하다. 방금 전까지 싫다는 시연의 손목을 잡아 끌고 나가려던 현민은 악을 쓰며 버티는 그녀의 뺨을 후리쳤다. 무섭게 돌변한 현민은 놀라 비명을 지르는 바닥에 쓰려진 시연의 머리채를 휘어잡고 입술에 강제로 키스하려 했다.
"아~악!!"
"아빠는 시끄러운 거 싫어해. 그리고 여자가 우는 것도 싫어해."
"현....현민아....."
"내가 잘해줄거야. 예쁜 옷도 사줄거고, 보석도.......아! 내가 너 줄려구 목걸이 사 놨는데, 너한테 잘 어울릴거야."
"아...아파....."
"금방 괜찮아 질거야. 엄마도 그러거든."
"나는.......니 엄마가 아니야."
"알아, 엄마는 아빠꺼니깐. 그러니깐 넌 내가 보살펴줄거야. 아빠가 그래도 된다고 했거든."
"미......미쳤어. 너 제정신 아니야. 이건 범법행위야."
"괜찮아. 아빠가 다 해결해 줄거야. 아빠는 뭐든 다........윽!!!"
"!!!!!!!!!!!!!"
털썩 현민의 몸이 시연을 덮쳐왔다. 놀란 시연의 입에서 비명이 튀어나왔지만 급하게 그녀의 입을 틀어막는 손이 있었고, 시연은 윤성과 눈이 마주쳤다. 정신을 잃어 축 늘어진 현민을 밀쳐내고 시연을 일으키며 조용히 하라는듯 입술에 손을 갖다대던 윤성은 덥썩 자신의 목을 끌어안는 시연을 보며 놀랐다.
"아저씨!!!"
두 눈 가득 눈물을 글썽이면서도 자신의 입을 틀어막고 있는 시연을 보며 윤성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몰아쉬었다. 끄덕끄덕 고개를 끄덕이며 행여나 놓칠세라 자신의 옷자락을 잡는 그녀를 보며 그래도 늦지않아 다행이다 싶다.
"거봐, 너도 내가 반갑지?"
"으.......으흑!"
"알았어. 진정하고 우선 여길 나가자."
놀란 시연을 다독여주고 싶었지만 그럴 여유가 없던 윤성은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서려다 멈칫했다. 자신의 옷자락을 꽉 잡고 있는 시연때문이었다. 많이 놀랐다는건 알겠지만 죽어라 옷자락을 잡고 놓지않는 시연때문에 행동하기가 불편했다.
"이것 좀 놓지. 내가 좋은 건 알겠는데 너무 불편해서........."
"아저......"
"쉿!!"
"현민인 어디 갔어! 왜 안보이는 거야!!"
"그게........그 학생이랑 같이 있어요."
"그래?! 맘에 들어하지?"
"근데, 그 학생 안 돌아가면 가족들이....."
"가족 없다고 했잖아! 내가 다 알아봤다고. 혼자 사는 얘라 뒷탈 없을테니깐 귀찮게 쓸데없는 소리 지껄이지마!!"
바깥쪽에서부터 들려오는 목소리에 윤성은 긴장하며 몸을 낮추었다. 혼자라면 얼마든지 대처 할 수 있는 상황이지만 놀란 토끼 한 마리를 데리고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기에 우선 몸을 숨겨야 했다. 들어왔던 창문으로 다시 나갈 수도 있었지만 자신의 방 창턱도 겨우 넘던 시연을 생각한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주위에 딱히 몸을 숨길만한 곳이 눈에 띄지 않았던 윤성은 우선 정신을 잃고 쓰러져있는 현민을 소파로 옮겼다. 그리고 시연을 데리고 문이 열리는 벽면에 바싹 몸을 붙이고 닫혀있는 문고리를 바라보며 긴장의 끈을 놓지않았다. 점점 가까이 다가오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긴장하고 있던 시연은 윤성의 손 끝에서 번쩍이는 칼을 보았다. 어느틈엔가 날이 선 단도를 손에 들고 있는 윤성을 보며 시연은 또 다시 긴장했다. 이번은 지난번 빈 집에서처럼 그저 몇대 때리는 걸로 끝나지 않을 거라는 불길한 생각이 든다.
'말려야 돼. 말려야 되는데....."
윤성을 말려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분명히 사람을 죽여선 안된다고 말을 하고 싶었지만 입이 떨어지질 않았다. 조금전 현민의 포악한 행동으로 겁에 질려있던 시연은 섣불리 그를 말릴 수도, 잡을 수도 없었다. 여길 벗어나지 못하고 현민이나 그의 아버지에게 잡힌다면 어떻게 될지 생각을 하는 것조차 끔찍했었다. 윤성이 다시 사람을 죽이는 걸 보고 있을 수만은 없다는 생각에 여기까지 온 것인데, 그런데 그를 말릴수가 없다. 솔직한 마음으로 어떻게 되든 상관없이 한시라도 빨리 이곳을 벗어나고만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때였다. 덜컥 문이 열리며 김 기만이 현민의 어머니와 함께 모습을 들어냈다.
"현민아! 아빠 왔어. 현민........"
현민이 소파에 앉아 있는 걸 본 김 기만은 아들에게로 다가갔다. 한쪽으로 고개를 떨군채 앉아 있는 아들을 본 김 기만은 순간 뭔가 잘못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축 쳐져있는 아들의 팔을 본 그가 홱 몸을 돌렸다. 그 순간 번개처럼 몸을 날린 윤성이 그의 목을 향해 칼을 휘둘렸다.
"으악!!"
"꺄아악!!!"
남편 김 기만의 눈치를 살피며 그의 비위를 건드리지 않기위해 조심조심 종종걸음으로 뒤따라 들어오던 그의 아내는 이상한 낌새를 느꼈다. 조금 전까지 분명 이 방엔 현민과 시연이 함께 있었다. 헌데 소파에 앉아있는 아들의 모습만 눈에 띌뿐 시연의 모습이 보이질 않는다. 무심코 고개를 돌리던 그녀는 열린 문 뒤로 서 있는 시연을 보았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남편을 향해 달려드는 검은 옷의 사내를 보고는 비명을 내질렀다.
윤성의 칼은 단번에 김 기만의 목을 베지 못했다. 오랜 세월을 길거리에서 보낸 김 기만은 그리 호락호락한 놈이 아니었다. 본능적으로 날아드는 칼날을 피해 몸을 틀었고, 그 덕에 칼끝이 목을 스치고 지나갔다. 갑작스런 공격에 놀라 몸을 피한 김 기만이 자신의 목을 감싸쥐었다. 예리한 칼날이 스친 목덜미에선 울컥 검 붉은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왠 놈이야!!!"
"김 기만!"
"너.......뭐하는 놈이야! 밖에 누구 없어!!!"
계단에 기대어 서 있던 사내가 습관적으로 담배를 꺼내 물었다. 하지만 옆에 선 사내가 담배를 든 손을 잡고선 고개를 흔들어 보인다. 깜박했다는 듯 다시 담배를 집어 넣은 사내는 이내 옷 매무새를 가다듬는다.
두 사내의 공통점은 입이 무겁다는 것, 그 점이 김 기만의 신임을 얻는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는 것 또한 잘 알고 있다. 덕분에 이렇게 김 기만의 자택까지 출입 할 수 있는 몇 안되는 사람 중 한명이 된 것이다. 당분간 자택에 머물며 여자아이 하나를 감시하라는 김 기만의 말에 따라 집으로 온 두 사람은 그렇게 아래층에서 대기하던 중 윗층에서 다급하게 들려오는 김 기만의 고함소리를 들었다.
"또 시작이네. 사장님은 다 좋은데 성격이 너무 급하신거 같아."
"누가 아니래. 빨리 가봐. 더 성질 부리기 전에."
여자의 비명소리와 김 기만이 고함을 질렀다. 밖에서 누군가 뛰어오는 소리가 나자 윤성은 고개를 돌렸다. 벌컥 문이 열리며 김 기만의 수하놈들인듯한 사내 둘이 뛰어들어왔다. 하지만 아무런 준비도 없이 방심한채 뛰어들어온 사내 둘은 윤성의 적수가 되질 못했다. 놈들의 움직임을 읽고 있던 윤성은 그대로 몸을 날려 먼저 뛰어들어온 놈을 향해 닉킥을 날렸다. 헉 소리와 함께 명치를 가격당한 사내가 뒤로 나가떨어져선 제대로 숨도 쉬지못하고 켁켁거리고 있었다. 뒤를 따라오던 사내 역시 뜻밖이 상황에 아무런 대처를 하지 못한채 윤성에게 목덜미를 잡혔다. 사내의 목덜미를 낚아챈 윤성은 있는 힘껏 문을 향해 밀쳐버렸고, 중심을 잃은 사내는 요란한 소리를 내며 문짝과 함께 나딩굴었다. 우지끈 문짝이 부서지며 함께 나딩군 사내는 그자리에서 정신을 잃은듯 축 늘어져버렸고, 집안 일을 도와주던 이들이 시끄러운 소리에 모여들었지만 생각지도 못한 싸움에 비명을 질러대며 뿔뿔이 흩어져버렸다. 눈 깜짝할 사이에 눈 앞에서 벌어진 상황에 김 기만은 당황했다.
"뭐하는 놈이야. 내가 누군줄 알고........"
"누구라니? 설마 내가 이름도 모르는 놈을 죽이려고 20년을 기다렸다고 생각하는 거야?"
"20년? 20년이라니, 무슨 소릴 하는거야!!"
"하긴 그 동안 니 놈이 한짓이 있는데 목숨을 노리는 놈이 한둘일까? 그래도 거대건설 그늘에서 먹고 살았다면 그 일을 잊고 있지는 않았을텐데."
"거대건설......서.......설마....."
"이제야 기억이 좀 나나보네. 보아하니 내가 누군지도 아는 것 같은데?"
"니 놈은.......설마......."
"설마는 항상 사람을 잡는 법이지. 함께 했던 동료들의 소식은 듣고 있었겠지? 특히 엄 기태와는 각별한 우정을 나누고 계시던데 말이지."
"여길 어떻게 찾아냈지?"
"애를 좀 먹었지. 꽁꽁 잘도 숨어계셔서 말야."
"이놈!!! 그때 에미년과 함께 저승으로 보냈어야했는데........"
김 기만은 20년전이라는 말을 듣자 곧바로 윤성이 누군지 기억해냈다. 그리고 아직 피가 흐르고 있는 자신의 목덜미를 감싸쥐고는 무서운 눈으로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20년 전, 김 기만은 엄 기태의 제안으로 한 여자를 죽이는 일에 가담을 했었다. 엄 기태나 김 기만이나 그런 일쯤은 아무런 죄책감 없이 손쉽게 하곤하던 시절이었다. 그들에게 중요한건 그저 두둑한 돈다발이 들어온다는 사실뿐이었다. 더구나 뒷 감당까지 해준다니 무서울게 없었다.
하지만, 사건이 있은지 얼마되자 않아 죽인 여자의 아들이 거대건설의 장남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되면서부터 심한 불안감을 느꼈었다. 어린 아이에 불과하다고, 별거 아니라며 무시하는 엄 기태와는 달리 김 기만은 불안했다. 거대 건설의 장남이 된 아이는 언젠가는 거대 건설을 물려받게 될 것이고, 만일에 하나라도 이 일을 기억해낸다면 그냥 넘어가진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사건이 있은 후, 경찰에 체포되기는 했었지만, 피해자의 시체가 발견되지 않았기에 처벌을 면할 수 있었다. 이후 김 기만은 거대 건설 큰 아들을 주목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아들이 커가는 모습을 보며 철저히 자신을 숨기기 시작했었다. 다가올 후환이 두려웠기에 세상에서 자신을 숨기며 살기 시작했었다. 엄 기태는 물론 자신을 아는 모든 이들에게조차 주위를 내주지 않았었다. 대변인으로 세운 몇 놈만이 허락 될 뿐 누구도 자신이 살고 있는 곳을 알지못하게 꽁꽁 숨어살았었다. 헌데 어이없게 너무도 허무하게 놈이 자신의 집까지 찾아들었다.
"그러게, 일처리는 끝까지 깨끗하게 하는거야."
"니 놈 아버지가 청탁한 일이야. 우린 그냥 돈을 받고 일을 한 것 뿐이야."
"알아. 니 놈과 조 만수, 그리고 나머지 한 놈!"
"나머지 한놈이라니, 이 태성 사장이 우리 네사람 말고 또 사람을 보냈다는 거야?"
"너무 늙어서 기억이 쇄진한 모양이군."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만 날 그렇게 호락호락하게 보지마. 곧 경찰이 도착할테니깐."
네 놈이라고 했다. 김 기만 역시 마지막 한놈의 존재를 모르고 있었다. 자신이 착각을 한 것일까? 윤성은 순간 자신이 잘못 알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때 스님이 너무 놀라운 상황에 직면해서, 감당하기에 너무나 큰 일이었기에 어쩌면 잘못 기억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
김 기만은 순간 윤성의 눈빛이 흔들리며 방심하고 있다는 걸 알아 채곤 몸을 날렸다. 잠깐이긴 하지만 방심하는 윤성에게서 빈틈이 본 그는 순간을 놓치지 않고 몸을 날려 윤성의 손에 든 칼을 쳐내고 주먹을 날렸다. 김 기만의 주먹이 윤성의 얼굴에 정통으로 꽂혔다. 비록 나이가 들었다고는 하지만 평생을 깡패로 살아왔던 김 기만의 주먹은 결코 녹녹치 않았다. 순간의 방심으로 얼굴을 맞은 윤성은 중심을 잃고 휘청거렸다. 하지만 그 정도에 쓰러질 그가 아니었다. 이내 달려드는 김 기만을 피한 윤성은 카펫트에 떨어진 자신의 단도를 집어들며, 급소를 맞고 켁켁거리고 있던 김 기만의 수하놈이 일어서는 모습을 보았다. 주먹을 날리는 김 기만의 손목을 낚아챈 윤성은 재빠른 몸놀림으로 김 기만의 팔을 뒤로 꺽으며 목을 감싸쥐었다.
"사.......사장님!!!"
"켁켁!!! 이.......이놈....."
"니 놈에게 배운게 하나 있지. 일의 마무리는 깨끗이해야 한다는 거!"
"윽!!!!"
"사.......사장님!!!"
윤성은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김 기만을 겨누고 있던 단도로 그의 목을 베어버렸다. 순간 김 기만의 목에선 검붉은 피가 분수처럼 뻗어나왔고, 외마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채 몸을 떨던 김 기만은 그대로 축 늘어져버렸다. 눈 앞에서 벌어진 끔찍한 상황에 사내의 눈은 왕방울만하게 커졌고, 어쩔줄을 몰라하며 김 기만의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끝까지 김 기만의 이름을 부르지 못했다. 당황해 어쩔줄 몰라하던 사내가 정신을 차리기도 전, 그를 향해 뛰어든 윤성이 사내의 목을 비틀어 버렸던 것이다.
"아~악!!!"
작고 땅딸한 김 기만의 처는 눈 앞에서 펼쳐진 상황에 비명도 지르지 못한채 윤성과 눈이 마주치자 무릎을 꿇고는 살려달라는듯 손을 흔들어대고 있었다. 여자를 죽일 이유가 없었던 윤성은 잠시 가쁜 숨을 고르다 뒤쪽에서 들리는 비명 소리에 홱하니 몸을 돌렸다. 언제 깨어난 것인지 김 기만의 아들 현민이 윤성과 김 기만의 싸움에 넋을 놓고 있던 시연의 머리채를 휩어잡았던 것이다. 그의 손엔 테이블에 놓여있던 테이블용 송곳이 들려있었다.
"너........너 누구야? 누군데 아버지를....."
"시연일 놔줘."
"시연이? 저 놈......그때 그 놈이지? 니가 저 놈을 여기까지 부른거야?"
"현...현민아......"
"시연인 상관없는 일이야. 놔줘."
"아니, 너야말로 아무 상관없는 놈이야. 왜 남의 집에 와서 난리를 쳐? 이 여자 내꺼야. 아빠가 그래도 된다고 했어."
"미친 놈!!!"
"아빠!! 아빠!!! 아빠가 왜 저기서 자고 있지? 누구 없어!!!! 누가 아빠 좀 깨워봐!!!"
여전히 시연의 머리채를 움켜쥐고 천천히 다가오는 현민을 보며 윤성은 뒷걸음질 쳤다. 자칫 잘못하다간 놈이 가진 송곳이 시연의 목을 뚫어버릴것만 같아 긴장을 늦출수가 없다. 아직 김 기만이 죽었다는 걸 인식하지 못하는듯 현민은 천천히 그의 아버지가 쓰러져 있는 곳으로 다가가고 있었다.
"에~잇!!!"
"윽!!!"
둔탁한 소리와 함께 순간 현민의 손이 느슨해진 걸 느낀 시연은 있는 힘껏 그의 발등을 밟아버렸다. 비명과 함께 시연을 놓친 현민이 반사적으로 허리를 구부렸다. 윤성은 현민의 손에서 시연이 빠져나오는 순간을 놓치지않았다. 윤성은 들고 있던 단검을 현민을 향해 던졌다.
"컥!!!"
"꺄~아악!!!"
외마디 비명소리와 함께 단검은 정확히 현민의 목에 꽂혔고, 자신에게 일어난 일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겠다는듯 두 눈을 부릅뜬 현민이 시연의 옷자락을 움켜잡았다. 시연의 끔찍한 비명소리가 집안 가득 메아리 쳤다.
요란한 싸이렌 소리와 함께 경찰차들이 경광등을 번쩍거리며 속속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늦은 밤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조용한 동네에 울리는 싸이렌 소리로 인해 구경꾼들은 하나,둘 모여들고 있었다. 구경꾼을 헤집고 구급차가 집안으로 들어가는 걸 보고 있던 윤성은 조용히 차를 출발시켰다. 옆 자리에 죽은듯 숨을 죽이고 있는 시연은 의자 깊숙이 몸을 묻었다.
"왜그래?"
"뭘요?"
"왜 그렇게 숨냐구? 여기 누가 본다구."
"아~ 그게.......숨은 게 아니라 그냥 피곤해서........"
윤성은 어줍잖은 시연의 변명에 피식 웃음이 난다. 그래도 농담 할 여유까지 생긴 걸 보면 그나마 안정이 된듯 보여 다행이다 싶다. 그렇게 윤성의 차는 싸이렌 소리를 뒤로 하고 조용히 동네를 빠져 나가고 있었다.
"괜찮은 거야?"
"저야 뭐........아저씨는 괜찮아요? 아까 다친거 같던데."
"왜 걱정 돼?"
"아니라면 거짓말이겠죠."
운전하고 있는 윤성의 옆모습을 힐끔거린다. 땀으로 얼룩진 머리카락과 생채기난 입술 끝에 말라붙어있는 핏자국을 보며 미안한 마음이 든다. 괜한 일을 저질러서 민폐만 끼친 것 같다. 그냥 모른척 하고 있었다면 어쩌면 이번일 일어나지 않을수도 있었을텐데......
"옆모습도 예술이지?
"네?"
"넋을 잃고 바라볼 만큼 매력적이지?"
"우와~ 완전 자뻑이네. 어디가서 그런 말 함부로 하지 말아요. 맞아 죽어요."
"후후후훗!!!"
기분좋은 웃음을 흘리는 윤성을 보며 시연은 괜시리 얼굴이 붉어진다. 분명 방금전 사람이 죽었다. 그것을 두 눈으로 목격했는데, 왜 겁이 나지않는 건지, 오히려 윤성이 다칠까봐 전전긍긍하는 자신의 모습이 낯설기만 하다.
'이게 아닌데, 이러면 안되는데, 법에서 해야 할 일인데.......'
운전대를 잡은 윤성은 힐끔 시연을 쳐다보았다. 시무룩하니 고개를 떨구는 그녀의 왼쪽 뺨이 발갛게 부어있었다. 아까 현민에게 맞은 자국이다. 시내로 들어선 윤성은 가까운 커피 전문점에 들러 커피 두 잔과 얼음을 조금 얻어왔다. 윤성은 손수건에 얻어온 얼음을 감싸 시연의 왼쪽 뺨을 지긋이 눌러주었다. 잔뜩 긴장해서인지 아픈것도 몰랐었던 시연은 차가운 얼음이 뺨에 닿는 순간 얼얼하게 전해지는 통증에 절로 미간을 찌푸렸다. 윤성은 뜨거운 커피를 그녀의 손에 건네주었다.
"고마워요."
"내일 아침에도 그런 소리가 나올지 궁금하군. 밤새 얼음 찜질 좀 하면 생각만큼 많이 붓지는 않을거야."
"처음이예요."
"뭐가?"
"뺨 맞은거, 처음이예요.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주인공들이 뺨을 맞아도 멀쩡하던데, 난 머리가 울리고, 진짜 아프더라구요."
"그러게 누가 겁도 없이 혼자서 그런 곳에 가래?"
"그 아줌마.......20년동안이나 맞고 살았대요."
"........"
"어떻게 그 세월을 견뎠을까? 만약 아저씨가 와주지 않았더라면 나도 그렇게 됐을지 몰라요. 그 사람들, 내 뒷조사도 했대요. 내가 사라져도 찾아봐 줄 가족 하나 없다는거 알고 있었어요."
뜨거운 커피를 두손으로 꼭 감사쥐고 있는 시연의 손이 가느다랗게 떨리고 있었다. 한없이 아래로만 떨구고 있던 그녀의 시선이 윤성을 향했을때 촉촉하게 맺혀지는 눈물에 마음이 아프다. 하지만 이내 그는 가슴이 답답해지는걸 느꼈다. 그녀의 시선이 자신이 아닌 또 다른 누군가를 보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 사람들, 뒷조사 실력이 형편 없었군."
"?"
"펄펄 뛰며 널 찾아내라고 윤호 자식 멱살을 잡고 목을 조르고 있는 친구가 있다는 걸 몰랐나 보네."
"아! 희진이......"
"윤호 자식 평생 살면서 멱살을, 그것도 여자한테 멱살을 잡혀보긴 첨이었을거야. 그렇게 당황하는거 첨 봤거든. 그렇게 멱살을 잡히고 당황해하면서도 널 찾기 위해 나에게 전화를 했어. 그 자식 전화 목소리......삑사리였어."
"작은 아저씨....."
"그리고, 말도 안되게 그 목소리에 심장이 멈춰버린.......나도 있었어."
"!!!!"
놀란듯 눈이 똥그래진 시연을 보며 윤성은 어색하게 시선을 돌린다. 다인이 시연을 찾아갔었단 말을 들었을때부터 가슴속에 괜한 울화가 가득 차 있었다. 그런데 그 울화가 가라앉기도 전에 그녀가 사라졌다는 소릴 들은 윤성은 스스로를 제어하지 못한채 정신없이 이곳으로 달려왔어야 했다. 윤성은 억누르지 못하고 뱉어버린 자신의 속내가 당황스럽기만 하다.
"그러게 겁도 없이 왜 이런데 혼자서 와!"
"그냥 놔두면 아저씨가 저 사람 또 죽일테니깐.......그 사람 아저씨한테 잘못했다고 빌라고 말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너랑 상관 없는 일이잖아. 그래서 첨부터 여길 가라는 내 부탁도 무시했었잖아. 근데 왜!!!!"
"더 이상!!! 더 이상 아저씨가 살인하는거 보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서....."
"그래서 그 놈들이 살았어?"
"아뇨....하지만 아저씨는 살았잖아요."
시연은 윤성의 시선이 고스란히 느껴져왔다. 화를 내고 있긴 했지만 어쩔수 없다는 듯 고개를 내저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윤성의 커다란 손이 머리카락을 쓰다듬고는 부어있는 그녀의 뺨을 감싸고 있었다. 뜻밖의 그의 손길이 당황스럽긴 했지만 시연은 밀어내지 않았다.
'여기까지 달려오면서 혹시나 널 찾지 못할까, 혹시 너무 늦어버린게 아닐까 얼마나 노심초사 걱정되고 애가 탔는지 넌 모를거다. 넌,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어. 법에 어긋나는 일이고, 법의 잣대로 본다면 종신형, 아니 사형을 면치못할 일이야.'
"저기....아저씨."
'나....이 윤성이라는 인간은 원래 존재해서는 안되는 거였어. 세상에 나와서는 안되는 존재야.
부모도, 형제도, 그리고 사랑도.....내겐 존재하지 않는 것들이야. 이 윤성이라는 이름으로는. 그런데.......
흔들린다.'
처음 윤호의 전화를 받았을때 머리속이 하얗게 퇴색되어가는 걸 느꼈었다. 그녀를 찾아 이곳까지 달려오면서 그의 머리속으로 맴도는 건 오직 하나, 시연을 찾아야한다는 것!! 그리고 시연을 찾았을때 그가 깨달은 것은 그녀를 찾았다는 안도감이 아니라 푹풍처럼 스며드는 그녀의 모습이었다. 그녀는 놀람과 두려움에 품속을 파고들었지만, 윤성은 심장을 파고들어오는 그녀를 느껴야만 했다.
'다인이가 널 찾아갔었다는 말 들었을때도 어이없게 화가 났었어. 이 윤성이라는 이름으로는 아무것도 해줄.수 없으면서도 지금 나, 나에게서 아버지의 모습을 찾는 널 보면서 또 화가 난다. 니가 날, 아버지가 아닌 남자로 봐 줬으면 좋겠어. 하지만 지금 내가 너에게 해줄수 있는 거라곤 아무것도 없어.'
"아저씨......"
"어이없다는거 알아. 그런데...그런데 말이지....."
첫댓글 다음이요~~다음~~~ 드디어..둘의 마음 확인하는건가요?
2초동안님! 아마도 그렇지 않을까요?ㅋㅋㅋ
죽어마땅한 놈들이 죽어서 속이 쉬원하긴 한데~윤성이가 걱정이네요~ ㅠ
시연이랑 윤성이 드뎌 둘이 맘을 확인하는건가요??
읽는내내 맘이 조마조마 하면서 읽엇네요~ㅎ 넘 재밋어요~작가님!!^*^
미루님! 명절이 다가오네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