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수회 102차 산행일인 3월 21일 수요일은 절기로 춘분이다.
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춘분을 전후한 7일은 피안(彼岸)의 길일이다.
우리 조상들은 1년을 4분해 춘하추동으로 나누었는데, 삼사오월은 통상 봄이다.
겨울이 물러가서 봄이 오는건지, 봄이 와서 겨울이 물러서는지는 모르겠으나, 계절의 경계구역에서는 왕왕 다툼이 많다.
이 날은 봄이자 겨울이다.
집합장소인 5호선 아차산역 B1의 2번출구 앞은 실내인데도 전동차가 밀고 들어온 찬 바깥공기 탓에 한기가 가득하다.
배낭에서 여벌의 옷을 꺼내 껴입고, 목머플러 감고 밖으로 나선다.
지하철역을 나와 시장통을 올라가다 위 뒷모습의 두 사람은 마트에 들러 막걸리 2통을 확보한다.
아무리 산에서 음주를 금한다 해도 마실 사람은 숨겨서라도 마실 것이다.
하물며 여기는 국립공원도 아니니 그냥 갈 순 없다.
또, 오늘 시산제를 지낼 계획이었으나, 일기 불순하고 참가인원도 적어 자연스럽게 흐지부지된다.
이 날은 7명이 산행에 참가했다.
주니어임에도 허리가 아파 불참한 회원도 있고, 이런저런 사정으로 시니어들은 대거 불참이다.
대신, 수퍼시니어 하회장님이 사전 통보없이 나오셨다.
조금 늦게 인호씨가 올라온다고 연락이 와 잠시 기다리는 동안 영화사(永華寺)를 둘러본다.
법당안엔 보살님들로 가득하고 스님의 염불소리가 낭낭하다.
촛불을 켜고 속세의 집착을 태우려는 것일까.
우리 기상예보도 정확하다.
기온은 체감기준으로 영하였고, 바람 불고, 눈발이 흩날렸다.
작은 접이 우산을 넣어 왔지만, 그래도 그 걸 쓸 일은 없었다.
아차산 길은 완만하다. 능선을 따라 느릿느릿 걷기 좋은 길이다.
옛날엔 삼국이 충돌했던 곳이라는데, 한강 남북단을 훤히 내려다 볼 수 있어 물자수송을 체크할 수 있었겠고, 사방이 트여 있어 검단산 예봉산 남한산이 보이니 경계를 서기도 좋을 성 싶고, 나루를 끼고 있으니 요충지라 할 만하다.
둘레길 여러 곳에 보루가 있다.
흩날리며 지는 벚꽃잎 같은 눈이 계속 내린다.
사진찍기 위해 잠시 포즈를 취한 것 외에는 용마산 정상까지 휴식 없이 오른다.
용마산 정상 바로 밑 벤치에 막걸리 한 잔 마실려고 자리를 잡았다.
탁자 위로 눈이 뿌려지지만 바람에 날리거나 녹아 쌓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산 아래쪽보다 기온이 뚝 떨어지고 눈발도 세어지고 바람도 강해졌다. 손이 시리다.
서둘러 펼쳐놓고 막걸리 한잔씩은 마셨지만, 간식은 먹는둥 마는둥 오래 앉아있을 수가 없어 하산을 시작했다.
이 순간만큼은 지난달 검단산 산행 때보다 더 춥다.
3월의 어느 날이라고, 2월의 어느 날보다 반드시 더 따뜻하진 않다.
하산길은 아무래도 올라갈 때보다 수월하다. 그러나, 생각은 많아진다.
오르막을 오를 땐 힘은 들어도 아무 생각없이 발밑만 보고 걸었는데, 퇴행성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여러 병들이 내려갈 때 더 고통을 준다는 사람들이 많다.
앞으로는 적어도 구십에서 백세까지 산다는데 인생 후반 길고 긴 내리막을 걸어야 한다.
그래도, 느긋하게 맘 먹으니 올라올 때 보지 못했던 생강나무 꽃이 보인다.
예민한 계절변화 센서를 지닌 이 나무는 누구보다 빨리 꽃을 피워 봄을 알리는데, 물론 나에겐 이 계절 첫 꽃이다.
곧 이어, 개나리 진달래 벚꽃 철죽 목련이 줄이어 피면 산을 오를 재미도 훨씬 커질 것이다.
아차산역에서 출발해 용마산 정상을 터치하고 광나루역으로 돌아왔다.
오늘은 중간에 브레이크도 없이 쭉 걸었다. 다들 거침이 없다.
눈발 흩날리는 차거운 날씨였지만 비가 아니어서 다행이었고, 미세먼지 걱정 없어서 좋았다.
추운날엔 따끈한 탕이 제일이다.
역 근처 생대구집에서 하회장님이 먹고 마시고 싶은 만큼 스폰해 주셨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차 한잔하려고 다섯명이 남았다.
지나가다 우연히 발견한 뒷골목 아담한 찻집은, 슬슬 싫증이 나가는 유명 프랜차이즈 커피가
아니어서, 시끄럽지 않아서, 가성비도 나쁘지 않아 좋다.
순해 보이는 주인 바리스타가 직접 볶고 갈아 내린다.
기대하지 않았던 맛있는 차 한 잔에, 부담없는 세상 이야기, 사람 이야기...
삼월의 눈 오는 날에 작지만 즐거운 시간이었다.
HJ (49)
다음은, 전임 최대장님에게 이 날 전달 예정이었던 감사패 전문입니다.
집행부에서 의논하여 정중히 전달하겠습니다.
감사패
등산대장 최창권님
한때의 인연으로 다시 만나 함께 들을 걷고 산을 오르던 아름다운 시간들이 새삼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아홉해를 거쳐 한수회가 2018년 1월에 뜻 깊은 100회를 맞았습니다.
이 오랜 기간 동안 등산대장으로 귀하가 보여주신 사랑과 헌신 그리고 따뜻하고 슬기로운
리더쉽에 감사의 마음으로 이 패를 드립니다.
늘 후미에서 회원들을 다독이던 모습과 생생하게 정리한 글들을 귀중한 추억으로 오래 간직
하겠습니다.
사랑합니다!
한수회 회원 일동
첫댓글 어제 산행다녀와서 허리가 뻐근합니다.. 쇼크입니다.
걷는데는 아직 지장없지만 아침에 허리 굽히면 위화감이 있네요. 건강제일입니다.
정말 멋진 하루를 보냈읍니다. 이른봄이라고 얕보고 나섰다가, 눈보라에 혹한에 최감온도 영하4~5°C를 느꼈지만 3월의 겨울 맛을 방안에 있으면 모릅니다.모두 꼭 한수회에 나오세요♡
맛갈스런 산행후기 정말 좋습니다. 눈발이 다소 흣날리는 초봄날씨지만 간만에 즐거운 산행이었습니다 담달은 더 많으신 참석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가끔 선두에서 걸어가신 하회장님과 함께 걸었습니다.
보속이 아주 좋으시고 전혀 흐트러짐이 없었습니다.
부럽습니다.
다소 쌀쌀한 날씨 였으나 전혀 개의치 않으시고 완주하시는 모습을 가슴에 담습니다.
자주 뵙기를 바랍니다. 수고 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