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법증거 효력, 사안따라 오락가락… 대부분 선진국 법원들, 수사기관 불법에는 엄격
2006년 김모씨는 부부싸움 끝에 집을 나갔다가 넉 달 만에 돌아온 아내의 휴대전화에서 내연 관계를 암시하는 문자 메시지를 발견했다. 불륜을 의심한 김씨는 아내가 살던 집에 무단 침입해 침대 시트와 휴지를 가져와 유전자 감식을 맡겼다.
김씨는 그 결과를 근거로 부인과 내연남을 간통죄로 고소했고, 김씨의 아내는 "불법으로 얻은 증거를 인정해서는 안 된다"고 맞섰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김씨가 낸 증거를 "증거로 인정할 수 있다"며 김씨 아내에게 유죄를 선고했다고 27일 밝혔다.
◆개인이 취득한 불법증거 인정 여부는 사안별로 달라
이 사건에서 대법원은 불법행위를 통해 확보한 증거에 대해 "공익 실현을 위해 사생활의 비밀이 다소 침해되더라도 받아들여야 한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1997년 내연남이 몰래 찍은 여성의 나체사진이 간통죄 증거가 될 수 있느냐를 두고 논란이 벌어진 사건에서도 문제의 사진을 증거로 인정해야 한다는 판례를 남겼다. 당시 대법원은 "사생활과 관계된 증거가 모두 금지되는 것은 아니며 진실 발견이라는 공익과 개인의 사생활 보호를 비교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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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비슷한 사건에서 법원은 정반대 결론을 내놓은 적이 있다. 2007년 서울서부지법은 서모씨가 자신의 집 침대에 몰래 보이스펜(녹음기)을 설치해 아내의 신음소리를 녹취한 자료를 근거로 아내를 간통죄로 고소한 사건에 대해 "증거로 인정할 수 없다"며 무죄 판결을 내렸다. "간통죄 처벌이 사생활 비밀 침해의 위험에 노출되는 것보다 급박한 것인지 회의적"이라는 이유였다.
위법하게 수집한 증거를 증거로 인정할 수 있느냐를 놓고 법원이 이처럼 사안별로 다른 판단을 내리는 것은 형사소송법이 법관의 재량을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형사소송법 308조는 '증거의 증명력은 법관의 자유판단에 의한다'고 돼 있다. 개인이 위법하게 수집한 증거라도 그 위법성과 그 증거로 인해 얻게 되는 사법적 이익이나 공익을 따져서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수사기관이 수집한 불법증거는 엄격히 제한
법원은 개인이 얻은 불법증거와 달리 수사기관인 검찰·경찰 등 국가기관이 수집한 불법증거는 증거로 거의 인정하지 않고 있다.
2007년 개정된 형사소송법은 '적법한 절차에 따르지 아니하고 수집한 증거는 증거로 할 수 없다'(308조의2)는 규정을 추가했다. 이는 수사기관을 염두에 두고 추가한 것인데, 이에 따라 개인과 달리 수사기관이 불법으로 수집한 증거는 더욱 엄격하게 증거능력을 제한한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판례가 김태환 전 제주도지사의 선거법 위반 사건이다.
검찰은 2006년 제주특별자치도청사를 압수수색하면서 영장에 기재되지 않은 사무실에서도 압수수색을 했고, 이를 근거로 김 전 지사를 기소했다.
이에 대해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절차에 따르지 않고 수집된 증거는 유죄 인정의 증거로 삼을 수 없다"며 무죄 판결을 내렸다. '독이 든 나무'(불법증거)에서 열린 '과실'도 독이 있다는 이른바 '독수독과(毒樹毒果)' 이론이 지켜져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국가기관이 불법으로 수집한 증거를 완전히 배제해야 하느냐에 대해선 법조계 내부에서도 논란이 남아 있다. 김 전 지사 사건에서도 일부 대법관은 "위법한 정도를 면밀하게 따져서 증거능력 인정 여부를 가려야 한다"는 소수의견을 내놨다.
위법증거 배제원칙은 1914년 미국 연방대법원이 관련 판례를 남긴 이후 미국에선 엄격하게 지켜지고 있지만, 영국·캐나다·독일·일본 등은 이런 원칙을 받아들이면서도 구체적인 적용범위는 제각각이다. 미국에서도 지난해 연방대법원은 경찰관의 불법행위가 부주의에 의한 것이라면 수집한 모든 증거를 배제해서는 안 된다며 예외를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