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35:5]
그 때에 소경의 눈이 밝을 것이며 귀머거리의 귀가 열릴 것이며..."
그 때에 - 하나님의 구원 약속이 성취되어질 미래의 그 시간을 강조하기 위해 덧붙여진 것이다. 소경의 눈이... 귀가 열릴 것이며 - 인간의여러 신체 기능 중에서 특히 '눈'과 '귀'는 육체적인 상태와 아울러 영적인 상태를 암시하는 말로 자주 사용된다. 델리취는 여기 언급된 육체적 치유가 영적 치유를 비유할 뿐더러 장차 여호와의 오심으로 인해 실현되어질 전인격적이고도 총체적인 구원의 외적인 측면을 나타낸다고 하였는데, 그의 이러한 지적은 적절하다.
저는 자는...노래 하리니 - 절름발이와 벙어리의 경우에 그 치유의 완전함이 더욱 강조되고 있다. 즉 절름발이는 완전히 치유되어 마치 사슴처럼 뛸 수 있을 정도가 될 것이며, 벙어리는 혀를 움직이는 정도가 아니라 여호와를 찬양하는 노래를 부를 수 있을 정도까지 될 것이다 절름발이의 치유와 관련하여 행 3:8을 참고하라. 이는 광야에서 물이 솟겠고 사막에서 시내가 흐를 것임이라 - 이제 선지자는 구원에 관한 두 번째 표상으로 독자를 이끈다. '
사막에서 시내가 흐른다'는 주제는 본서의 후반부에서 현저하게 나타나는데, 건조한 땅으로 뒤덮인 이스라엘에서 '물'이 생명과 구원의 상징으로 여겨진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사 35:6]
그 때에 저는 자는 사슴 같이 뛸 것이며 벙어리의 혀는 노래하리니 이는 광야에서 물이 솟겠고 사막에서 시내가 흐를 것임이라..."
[사 35:7]
뜨거운 사막이 변하여 못이 될 것이며 메마른 땅이 변하여 원천이 될 것이며 시랑의 눕던곳에 풀과 갈대와 부들이 날 것이며..."
뜨거운 사막이 변하여...원천이 될 것이며 - 사막에서 '물이 솟고-시내가 흐르고-못이 되고-마침내 원천이 되는' 일련의 계속적인 발전을 통해서 여호와로 말미암아 이루어질 구원의 완전성이 강조된다. '뜨거운 사막'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솨라브'는 많은 학자들에 의해 '낮은 대기층에서 불균등한 빛의 굴절 현상으로 인해 발생하는 신기루'와 같은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그렇다면 불볕 내리쬐는 사막에서 목이 갈한 이들을 헛된 환영으로 유도하는 이 가짜 오아시스가 물이 가득 고여 있는 진짜 '못'으로 변화게 될 것이다. 시랑의 눕던 곳에 풀과 갈대의 브들이 날 것이며 - 여호와께서 시온의 송사를 위해 에돔에게 보수하시는 행위를 통해 에돔 궁궐이 '시랑의 굴'이 풀과 갈대와 부들이 자라나는 윤택한 초장으로 변하게 될 것이다.
[사 35:8]
거기 대로가 있어 그 길을 거룩한 길이라 일컫는바 되리니 깨끗지 못한 자는 지나지 못하겠고 오직 구속함을 입은 자들을 위하여 있게 된 것이라 우매한 행인은 그 길을 범치 못할 것이며
거기 대로가 있어 - 8-10절은 하나님께 구속받은 자들이 '시온으로 돌아오는'대로에 대해서 말한다. 본디 길을 찾을 수 있는 '공공도로'(마슬룰)가 놓여진다는 것은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이적적인 일인데, 이 일은 사막이 낙원으로 변함과 동시에 이루어질 것이다. 본문은 '통행 가능과 불가능'이란 측면에서 34:10과 예리한 대조를 이룬다..
그 길을...있게 된 것이라 - '그 길'이 '거룩한 길'인 것은 그것이 여호와의 거룩한 목적을 위해서 사용되어질 뿐 아니라 무엇보다도 그 길을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거룩함을 덧입는 성도들이라는 데 기인한 것이다. 그 길은 '오직 구속함을 입은 자들'을 위해서만 있게 될 것이다. 그럴진데 '깨끗하지 못한 자' 곧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방인들과 또 이스라엘 자녀 중에서 구속받지 못한 자들은 그 길을 지나지 못한다.
우매한 행인은 그 길을 범치 못할 것이며 - 본문은 전혀 다른 두 가지로 해석될 수있다. (1)그 길이 너무도 정확하기 때문에 심지어 '바보'라도 실수함 없이 갈 수 있다. (2)하나님의 진리를 고의적으로 거부하는 사람은 그 길을 결코 가지 못한다. 이 경우, 그 의미는 '깨끗하지 못한 자는 지나지 못한다'는 말과 같게 될 것이다.
[사 35:9]
거기는 사자가 없고 사나운 짐승이 그리로 올라가지 아니하므로 그것을 만나지 못하겠고 오직 구속함을 얻은 자만 그리로 행할것이며..."
[사 35:10]
여호와의 속량함을 얻은 자들이 돌아오되 노래하며 시온에 이르러 그 머리 위에 영영한 희락을 띠고 기쁨과 즐거움을 얻으리니 슬픔과 탄식이 달아나리로다...."
여호와의 속량함을 얻은 자들이 돌아오되... - 여호와의 '속량함을 얻은 자들' (페두예)은 전절의 '구속함을 얻은 자'에 평행하는 말로서 동의어이다. '되사다', '구속하다', '친족의 권리를 행사하다'는 뜻을 가진 '가알' 동사는 법정 용어로서 친족에 대해 가족 구성원으로서의 의무를 이행하는 일과 연관된 말이다.
이 말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의 학정 밑에서 구속하신 행위와 관련하여 자신을 '고엘'로서 소개하신 이래, 깊은 종교적 의미를 획득하게 되었다 '구속하다'는 낱말은 바벨론에서의 귀환이란느 소망스러운 주제를 다루고 있는 본서의 후반부에서 집중적으로 나온다. '속량하다', '몸값을 지불하고 풀어주다'는 뜻을 가진 '파다' 동사 역시 초태생의 구별과 연관된 법정 용어였으나,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해방시키신 하나님의 행위를 묘사하는 말로 전용이되었다
'구속하다'와 '속량하다', 이 두 말은 렘 31:11에서도 같이 나오는데 거기에서도 시온의 주제가 '속량받고 구속함을 얻는 자들'과 결합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시온에 이르러 - 하나님의 성이 있는 시온은 이 대로의 최종 도착지일 뿐 아니라 모든 성도의 삶의 목적이기도 하다. 그곳에만 하나님의 백성이 갈망하는 참된 안식이 있으며 사라지지 않는 기쁨이 있다.
길은 말한다 : "묘사된 '대로'는 '밑에 있는 시온' 즉 교회로 향할 뿐 아니라 '위에 있는 시온' 즉 천국으로도 향한다. 이 길을 걷는 모든 구속된 성도는 그곳에 도달할 것이다. 죽음의 순간에 그들의 영혼은 그 주인인 하나님께로 돌아간다. 그리고 부활의 순간에 그들의 육체는 흙무덤에서 돌아와 마침내 시온에서 하나님 앞에 마주서게 될 것이다.
" 그 머리 위에 영영한 희락을 띠고 - 이는 그 얼굴이 항상 희락이 넘칠 것을 가리키니 , 즉 시온에 이르는 성도의 마음이 이와 같을 것을 일컫는 말이다. 기쁨과 즐거움을 얻으리니 슬픔과 탄식이 달아나리로다 - 현대의 대부분의 학자들은 본문을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 '기쁨과 즐거움이 그들을 따라잡고, 슬픔과 탄식이 달아날 것이다'. 그럴진데 시온의 백성들 , 곧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속량받고 구속한을 입은 성도들의 삶은 얼마나 복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