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학생 교복 입은 소녀
안심 산 중턱 기와집 소녀 은주
지금은 세파에 찌든 노파로 어디서 살고 있을지 아니면 이 세상에 없을지도 모른다.
노년이 되고 보니 추억을 먹고 산다.
재산은 황금도 부동산도 아니고 기억이라고 하던데 나의 기억 속 아름다운 일들을 적어 본다.
65년도
자유당 정부가 독재로 4.19 혁명에 의하여 학생들 피를 흘린 채로 끝나고 민주 정권이 들어섰으나 박정희 군사 독재가 들어서던 때였다.
열이 아버지는 차동 마을 반장을 오랫동안 해왔다.
전쟁터에서 살아 돌아 온 역전의 용사 열이 아버지는 마을 반장을 잘 해내었다.
새마을 운동의 선구자로서 논두렁 길을 폭 3미터 넓이로 내고 냇가고랑 다리도 4키로가 넘을 안심 산까지 가서 3미터가 넘는 길이와 폭 30 센치의 돌을 열개를 마을 사람들과 함께 목둘레를 해서 가지고 와 돌다리를 만들었다.
열이 아버지 정규는 아들 열이를 보면 힘이 솟았다.
열이를 여수중학교도 보내주었다.
여수중학교는 아무나 못간다.
돈이 많아도 못 보내는 학교가 여수중학교이다.
아 그렇다.
돈이 많아도 여수중학교 못 보낸다 하면 안되겠구나.
열이 친구 상관에 운상이는 아버지가 상관 제일가는 부자였다.
운상이는 여자애처럼 가냘프면서 하얀 피부에 얼굴이 선하게 생겼는데 마을 아이들 10명 동기생 중에 제일 싸움을 못했고 공부도 못했는데 연극은 잘했다.
운상이 집은 마을에서 제일 중심지 안심산 중턱 넓은 터에 앞에는 관기 초등학교와 하관 마을과 넓은 개사리 간척지가 시원하게 보이고 백초 바다도 보였다.
집은 대궐처럼 컸고 상 하채가 있었다.
여선생님들은 운상이 집 아랫 채에 방을 얻어서 살았다.
운상이 아버지가 그냥 여자 선생님이면 살게 해주었다.
여자 선생은 거의가 처녀이거나 젊은 선생님들이 대부분이였다.
운상이 아버지와 어머니는 자기 집에 세 들어 사는 여선생에게 먹을 것도 주고 쌀도 그냥 주었다.
부엌에 땔 나뭇감도 주었다.
그러면서 “선상 님 우리 운상이 좀 잘 예뻐 해주세요,”
라고 말하였다.
운상이 아버지는 대 목수이다.
당시에는 나무로 집을 지었다.
한옥집을 말하는 거다.
한옥집 대목수로서 소라면 일대에서 제일 유명하였다.
하루 일 나가면 쌀을 대두 한말씩 가지고 왔다.
그 돈으로 논을 사서 관기마을 앞 간척지를 사들여 논이 백마지기가 넘었다.
이러한 부자 집 아들 운상이는 공부는 못해도 연극과 연애는 잘했다.
요즘 태어났으면 탈랜트나 배우가 될 애였다.
마음에 든 여자애들에게 먹을 것을 가져다 주면서 미소를 품고 "나랑 사귀자"라고 말했다.
운상이는 여자 아이보다 더 가냘프고 예뻤다.
피부도 눈처럼 하얗다.
먹을 것이 귀한 그 시절에 여자애들은 운상이에게 잘 넘어갔다.
열이 반에서 제일 예쁜 애하고도 사귄다는 소문이 났다.
학예회 때는 운상이 하고 함께 그 예쁜 애하고 꼭두각시 춤도 한복 색동저고리를 입고 추었다.
그 운상 아버지가 여수중학교를 쌀10가마를 소 수레에 가득 실고 가서 쌀집에 팔아 학교 교장에게 안기고 여수중학교에 입학하였던 것이다.
운상이 아버지는 " 교장 선생님 여수중학교가 유명하다고 해서 쌀을 열 가마를 팔아서 가지고 왔소. 이 돈을 기부금으로 받아주시요. 등록금은 따로 낼 것이요."
교장은 : "아- 그러면 안된디요. "
운상이 아버지 "아따 - 그러믄 안되는디가 어디 있다요. 그냥 받아부시요. 또 지가 종종 쌀가마니를 갔다가 줄라요."
교장은 "운상이라고 했어요?"
운상이 아부지 " 맞소, 제 아들이 운상이요. 저기 딜코 왔소. 운상아 들어와뿌러라."
운상이가 자기 아버지가 크게 교장실에서 부르는 소리를 듣고 교장실 문밖에서 서있다가 교장실로 들어온다.
교장: "니가 운상이냐? 생긴 것은 참 잘 생겼는디 어쩌코롬 했간디 공부를 그렇게 못헸다냐?"
운상이 아버지" 아따 교장 선생님 우리 귀한 아들을 그렇게 심하게 말해쁠면 어쩐다요."
교장: "아- 네 네. 그래 운상아 우리 학교에 들어오면 잘하게 될 거야."
이러한 소문이 여수 시내에 쫘악 퍼졌었다.
이러한 비싼 학교에 당당하게 실력으로 열이가 정규반장 아들이 딱 합격을 한 것이다.
이때가 정규 반장에게는 인생 사는 맛이 제일 났다.
매년 매답을 하고 아들은 여수중학교에 딱 붙어버리고 매년 아들 홍식이와 춘식이가 연이어서 태어났고 그 아들들이 태어날 때마다 논 사고 산을 샀다.
정규반장은 “요놈들이 태어나면서 자기 먹을 것은 갖고 왔쁘렀네. 이 논과 산은 요놈들 거다. 남어지는 모두 우리 큰아들 열이거다.”
정규에게는 오로지 큰아들 열이뿐 이였다.
운상이 아버지가 운상이뿐인 것처럼 열이 아버지는 열이뿐이다.
편애는 안 좋은 것이지만 편애를 안 하기도 어렵다.
편애하면 그 아이에게 해롭다.
지독한 이기주의자가 되기 쉽다.
곧 자기밖에 모르게 되는 것이다.
열이와 홍식이와 춘식이는 나이차가 많이 났다.
그 열이가 여수 여자중학교 1학년 은주에게 반한 것이다.
은주는 열이가 보기에는 "대한민국에서 제일 예쁠 것이다."
라고 말하고 다녔다.
그 은주가 세라 복 여중생 교복을 입고 새벽 쌍봉 간이역 기차를 타려고 안심 산 죽림 마을에서 무거운 가방을 들고 내려오고 있었다.
열이도 무선 산 아래 자기 차동 마을에서 무거운 돗대 가방을 들고 내려오면서 덕국재 아래 삼거리에서 은주와 딱 마주쳤다.
열은 "은주야 반갑다. 학교 가냐?"라고 소리쳤다.
은주는 수줍어서 얼굴을 붉히면서 "응 그런다. 너도 학교가냐?"라고 대답을 해주었다.
주변에 함께 학교를 가는 열이 친구들도 많고 은주 친구들도 많아도 그들은 상관을 하지 않았다.
"연애를 하려면 용감해야 한단다."
정규는 열이에게 연애 방법을 전수해주었다.
그러나 사실은 열이 아버지 정규반장은공자 자손으로서 공자 할아버지가 가르쳐준대로 "남녀칠세 부동석이란다."를 문자 그대로 지키려고 하다가 본인은 사랑하는 연인과 손목도 못 잡고 짝사랑만 하다가 놓치고 말았다.
그래서 아들만은 자기처럼 안 만들려고 중학생 아들에게 연애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그러나 사랑은 인간 맘대로 안되는 법이였다.
결국 열이도 자기 아버지 정규 반장처럼 사랑하는 은주와 인연이 없었다.
*(난 네게 반했어) 온북 출판사 *서점이나 인터넷 판매 합니다.에 자세히 나옵니다.
그대신 열이는 시인이 되었다.
일평생을 시를 짓고 노래를 만들고 소설을 쓰면서 살아왔다.
하지만, 그 열이의 시와 노래와 소설을 찾아주는 사람은 없었다.
아래 글은 열이가 지은 시이다.
"세상에서 젤 아름다운 여자는
여중시절 여학생 여름 하복 교복 입은 소녀일 것입니다.
지금은 없어진 건가요?
다시 부활하면 합니다.
나의 추억 속 첫사랑 은주는 1학년 시절 무거운 가방을 들고 어여쁜 여름 하복 교복을 입고
통학 열차를 향하여 걸어가던 모습이 생생합니다.
세월은 흐르고
얼굴에 주름은 져도
사나이 마음속에 찍힌 그 소녀의
어여쁜 자태는 늙지 않더군요...
살다 보면 힘든 세상 길 가다 지칠 때
추억 속으로 돌아가
여학생 하복 입은 첫사랑을
만나봅니다.
지금은 그녀 자신도 자신의 어여쁜 옛모습을 잊어도
그녀를 마음사진에 담은 소년은 그 어여쁜 소녀를 잊지 않고 곱게 간직하고 살아간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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