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조
빗소리에 사방이 소요하다. 자리에서 일어나기 전에 우선 머리맡의 폰을 열었다. 쭉 훑어보는 눈에 지인이 보낸 모바일 청첩장이 있다. 대략 날자와 장소를 보고 지난번 개혼 때 성심껏 인사를 했으니, 이번엔 편안한 인사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살다보면 애경사는 인생에서 피할 수 없는 대사(大事)이다. 친분관계를 생각해서 갈까 말까를 정하고, 부조금액도 정한다. 결정이 쉽지 않을 때는 처세의 달인이었던 조선시대 황희 정승이 생각나기도 한다.
법학을 공부할 때, 교재 표지에 그리스 신화의 주인공인 정의의 여신 ‘디케(dike)’가 눈을 가리고, 한손에는 저울과 또 다른 손에는 칼을 들고 있다.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다’는 뜻이다. 그러나 그 형상은 곳에 따라 다르다. 칼만 들고 있는 경우가 있고, 저울하나만 들고 있을 때도 있다. 우리나라 대한민국의 대법원에 있는 정의의 여신상은 저울과 법전을 들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이 여신상이 잡고 있는 법전 대신 길이를 재는 자로 바꿔 놓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왜냐하면 세상사 인간관계에서 관계의 척도를 자로재고, 저울로 달며 살아가는 게 일상의 군상이기 때문이다. 가끔 마름질하는 재단사처럼 옷감을 펼쳐놓고, 치수에 맞게 자로 재거나 저울추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리게 되니….
옛말에 ‘안방에서는 시어머니 말이 맞고, 정지에선 며느리 말이 맞다.’고 했다. 가까운 지인 중에, 딸 결혼을 주변에 알림장 하나 없이 대사를 치렀다. 한참 뒤에야 부조를 못한 지인들은 너나할 것 없이 한마디씩 했다. 나도 그 말에 “정말 별난 성품이다.”라고 하며 맞장구를 쳤다. 그런데 막상 여식의 대사를 앞두고 청첩을 하려니 그 심정을 이해하게 되었다. 결례가 아닐까. 폐를 끼치는 건 아닐는지, 단 몇 분에게만 알리고 말까, 그냥 소리 없이 치르고도 싶었다. 지인의 대사에 네 번 받은 청첩장과 부친상에 받은 부고까지 다섯 번을 갔던 것은 별개로 치더라도 대체적으로 무척 조심스러웠다. 청첩을 한다는 것, 부조의 부담을 준다는 것은 옛날에 하던 “국수 한 그릇 먹으러 오세요.” 하는 것과는 달랐다. 더구나 전염병이 돌고 있는 때여서 더했다.
그날 L씨 와는 매수의뢰 한 토지의 현장답사를 하기로 한 날이었다. 약속시간에 맞춰 그의 집 앞에서 기다리는데 L씨는 웬 커다란 검은색 가방을 들고 나왔다. 의아하게 가방을 바라보는 내게 “잠깐 들렸다 갈 곳이 있어요.” 하며 ⁕⁕은행으로 들어가는 그를 보면서 어제 그의 장남 결혼식이 떠올랐다. 이듬해 그는 퇴직 전에 작은 아들을 결혼시켰는데 그때는 참석을 못하였다. 인륜지대사(人倫之大事), 간혹 가야 할 곳을 제때 못간 경우에 당사자를 만나면 늦은 인사라도 해야 마음이 편안해진다. 어떤 모임에서 잘 나오지 않던 회원이 참석을 해서, 반가운 마음에 인사를 했더니 청첩장을 내 밀었다. 자녀의 대사를 앞두고 모임에 참석하고, 또 자신의 집안 큰일이 끝나고 나면 탈회를 하고 거주지를 옮겨 아예 이사를 하는 이도 보았다. 하나를 주고 하나를 받으려는 셈법을 하자는 것은 아니나, 사람의 정을 주고받음에 인색해지기 싫은 마음은 인지상정이 아닐까. 아무튼 대사를 치르면서 삶의 나이테에 한 줄을 더 긋는다.
가까우면서도 먼 나라 일본, 주고받는 것은 일본인들의 전통 사고방식이라고 했다. 은혜를 잊지 않고 반드시 보답한다는 정신은 우리나라의 미풍양속과도 같다. 사람이 관계를 이루며 살아가려는 마음은 나라마다 행위양식은 다르지만, 어느 시대에서나 있었다는 것이 문헌에 기록되어 있다. 우리민족은 일찍부터 두레, 품앗이, 향규 등의 공동체 정신을 실천 하며, 상부상조하는 미풍을 이어 오고 있다. 이런 호혜적 관계망 속에서 부조는 우리의 공생 공락하는 삶에 풍요를 가져 오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