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피렐리 타이어를 장착한 KTM 모터사이클로 다카르 랠리의 우승을 차지한 마크 코마 선수
죽음의 랠리라고 일컬어지는 다카르 랠리. 2010년 1월 17일 한 선수가 결승선인 아르헨티나의 수도인 부에노스 아이레스를 가장 먼저 통과했다. 그의 이름은 마크 코마(Marc Coma). 그의 우승은 KTM의 모터사이클을 타고 17일 동안 9,030km를 경주한 끝에 얻은 결과였다. 그리고 그의 모터사이클에는 피렐리(PIRELLI) 타이어가 함께했다.
피렐리의 시작

피렐리 타이어의 창립자 지오바니 바티스타 피렐리
피렐리는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갖고 있다. 피렐리의 역사는 24살의 청년 지오바니 바티스타 피렐리(Giovanni Battista Pirelli)가 1872년 오픈한 고무제품 관련 회사로부터다. 전보기용 케이블을 만들던 피렐리는 1890년에 이르러 타이어 제조를 시작한다. 1897년 지오바니 바티스타 피렐리는 모터사이클 레이스에 참가하는 몇몇 선수에게 타이어를 제공했는데, 그들은 경기에서 좋은 성적을 거뒀다.

P 룽가(P Lunga, long p)로고
피렐리가 레이스에 공식적으로 데뷔한 것은 1905년 수사 몬체니시오(Susa-moncenisio) 대회였다.그러나 실질적으로 우승을 거둔 경기는 1907년에 진행된 페킹-파리 랠리(Peking-paris rally, 페킹은 중국의 수도 베이징의 과거 명칭)였다. 피렐리의 스펠링 중 ‘P’자를 길게 쓴 ‘P 룽가(P Lunga, 영어로는 Long P)’ 로고도 1907년에 디자인 되었으며, 이 디자인은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이후 피렐리는 자동차와 모터사이클 분야를 막론하고 여러 경기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며 고성능 타이어로서의 명성을 쌓아간다. 그 와중에도 새로운 타이어를 위한 연구와 실험은 계속됐다. 1910년대에는 고무화 섬유인 ‘언우븐 코드(Unwoven cord)’를 개발했다.
1920년대부터 1930년대까지 피렐리는 아일랜드 출신의 스탠리 우드(Stanley Woods)와 함께 맨섬TT(Isle of Man TT)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뒀다. 스탠리 우드는 처음 경기에 참가한 1922년부터 1939년까지 다양한 클래스에서 10번의 우승을 차지했다. 비슷한 시기 피렐리의 ‘모토 코드(Moto Cord)’타이어를 착용한 모터사이클이 ‘월드 스피드 레코드(World Speed Record)’에서 신기록을 갱신해 나갔다. 피렐리 타이어의 안정성이 입증된 것이다.
이러한 기세가 이어지며 피렐리는 이태리 모터사이클 메이커에 타이어를 공급하는 주요 업체로 성장한다. 뿐만 아니라 페라리(Ferrari), 알파 로메오(Alfa Romeo), 마세라티(Maserati)등 이태리의 유명 레이스 팀에도 타이어를 공급한다.

친투라토 래디얼 타이어의 광고
2차 세계 대전 이후에는 공장의 생산 설비에 현대적인 기술을 적용해 효율성을 높였다. 이러한 환경에서 탄생한 ‘친투라토 래디얼(Cinturato radial)’타이어는 높은 내구성과 탁월한 승차감, 우수한 주행성능으로 좋은 평가를 받는다. 피렐리는 친투라토 타이어의 이름을 지금까지 이어가고 있으며, 일반 자동차에 사용할 수 있는 제품뿐 아니라 F1경기에 사용하는 레인-인터미디어트 타이어에도 이 이름을 적용했다.
챔피언과 함께하다

1950년 최초로 실시된 F1 경기에서 피렐리는 알파로메오와 함께 우승의 기쁨을 나눈다.
1950년은 포뮬러 원 월드 챔피언십(Fomula One World Championship, 이하 F1)이 처음 개최된 해이다. 첫 경기의 우승은 이태리의 알파로메오가 거머쥐었다. 피렐리는 팀에게 타이어를 공급한 메이커로서 알파로메오와 함께 F1 첫 경기 우승의 기쁨을 나눴다.

1964년은 피렐리 캘린더가 제작되기 시작한 해다. 사진은 2009년 캘린더의 일부.
1963년 피렐리는 독일의 타이어 회사인 바이트(Veith)를 인수한다. 그리고 이듬해인 1964년 당대 최고의 포토그래퍼가 참여해 예술적인 사진을 선보이는 것으로 유명한 피렐리 캘린더가 제작된다. 피렐리 캘린더는 1967년과 오일쇼크의 영향이 가장 심했던 1975년부터 1983년 까지를 제외하면 매 해 제작되어 피렐리의 VIP들에게 선물로 제공되고 있다.
비슷한 시기에 피렐리는 새로운 모토구찌 V7(Motoguzzi V7)을 위해 MT53이란 타이어를 개발한다. MT53은 모터사이클 타이어 최초로 H 스피드 등급을 받은 것으로, H 등급은 210km/h까지 달릴 수 있는 타이어에 부여된다. 이 타이어는 이후 할리데이비슨 더트 트랙 머신에 적용되어 높은 성적을 거둔다.

피렐리는 1973년 진행된 최초의 WRC 경기에서 피아트와 함께 폴란드 랠리의 우승을 차지했다.
1973년은 FIA가 주관하는 WRC(World Rally Championship)가 시작된 해이다. 피렐리는 이 경기에 참가하는 피아트 아바르트(FIAT ABARTH)팀에게 타이어를 제공했는데, 팀의 드라이버 아힘 바름볼트(Achim Warmbold)는 피아트 124 아바르트 랠리(Fiat 124 ABARTH Rally)로 폴란드 랠리의 우승을 차지한다. 이후 피렐리는 지금까지 랠리의 강자 자리를 이어가고 있으며, 2011년에는 WRC 8연승의 드라이버 세바스티앙 로브(Sébastien Loeb)와 함께 최고의 자리를 차지했다.

피렐리는 1986년 메첼러 타이어를 인수한다.
피렐리는 1986년 독일의 메첼러(Metzeler)타이어를 인수한다. 메첼러는 당시에도 이미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지고 있던 유서 깊은 메이커였다. 비슷한 시기 피렐리는 F1에 다시 참가해 시즌 중 몇 번의 그랑프리에서 우승을 취했다.
1990년대는 자동차와 모터사이클 분야를 막론하고 피렐리의 우승 소식이 쏟아지는 시대였다. 특히 A.M.A. 모토크로스 챔피언십(American Motorcyclist Association Motocross Championship, 이하 MX)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이 외에도 다카르 랠리, 맨섬TT 등 다양한 경기에서 피렐리의 우승 행진이 이어졌다.
2000년에 이르러 피렐리는 고성능 타이어의 자동화 생산을 구축하게 되고 이는 자동차뿐만 아니라 모터사이클 타이어에도 동일하게 적용됐다. 2002년에는 밀라노의 비코카(Bicocca) 파일럿 공장에서 CCM(Continuous Compound Mixing)시스템이 구축된다. CCM은 이후 전 세계 주요 공장에 설치된다.
그들이 바로 챔피언이다

SBK의 공식 타이어 메이커로 선정된 피렐리
2004년 피렐리는 FIM 슈퍼바이크 월드 챔피언십(FIM Superbike world championship, 이하 SBK)의 공식 타이어 메이커로 선정된다. 이는 SBK의 슈퍼스톡 클래스까지 포함된 것이다. 그리고 2011년 피렐리는 레이스 전용 자동차로 진행하는 포뮬러 중 최고의 클래스인 F1의 공식 타이어 메이커로 선정되기에 이른다.

피렐리는 현재 F1 경기의 공식 타이어 공급 메이커다
피렐리의 역사는 레이스와 함께했다. 피렐리는 포장도로와 비포장 도로, 자동차와 모터사이클, 트럭을 막론하고 다양한 경기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뒀다. 레이스를 향한 열정의 결과는 고스란히 라이더에게로 돌아간다. 축적된 노하우가 적용된 피렐리 타이어는 뛰어난 성능과 긴 수명을 발휘한다. 타이어 메이커로서 최고의 자리라고 할 수 있는 F1 공식 메이커의 위치에 오른 피렐리. 앞으로 이들이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해 노력을 멈추지 않을 것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