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 광주여 우리나라의 십자가여!
/ 김준태
아, 광주여 무등산이여
죽음과 죽음 사이에
피눈물을 흘리는
우리들의 영원한 청춘의 도시여
우리들의 아버지는 어디로 갔나
우리들의 어머니는 어디서 쓰러졌나
우리들의 아들은
어디에서 죽어 어디에 파묻혔나
우리들의 귀여운 딸은
또 어디에서 입을 벌린채 누워 있나
우리들의 혼백은 또 어디에서
찢어져 산산히 조각나버렸나
하느님도 새떼들도
떠나가 버린 광주여
그러나 사람다운 사람들만이
아침저녁으로 살아남아
쓰러지고, 엎어지고, 다시 일어서는
우리들의 피투성이 도시여
죽음으로써 죽음을 물리치고
죽음으로써 삶을 찾으려 했던
아아, 통곡뿐인 남도의
불사조여, 불사조여, 불사조여
해와 달이 곤두박질치고
이 시대의 모든 산맥들이
엉터리로 우뚝 솟아 있을 때
그러나 그 누구도 찢을 수 없고
빼앗을 수 없는
아아, 자유의 깃발이여
살과 뼈로 응어리진 깃발이여
아아, 우리들의 도시
우리들의 노래와 꿈과 사랑이
때로는 파도처럼 밀리고
때로는 무덤을 뒤집어쓸지언정
아아, 광주여 광주여
이 나라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무등산을 넘어
골고다 언덕을 넘어가는
아아, 온 몸에 상처뿐인
죽음뿐인 하느님의 아들이여
정말 우리는 죽어버렸나
더 이상 이 나라를 사랑할 수 없이
더 이상 우리들의 아이들을
사랑할 수 없이 죽어버렸나
정말 우리들은 아주 죽어버렸나.
충장로에서 금남로에서
화정동에서 산수동에서 용봉동에서
지원동에서 양동에서 계림동에서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
아아, 우리들의 피와 살덩이를
삼키고 불어오는 바람이여
속절없는 세월의 흐름이여
아아, 살아남은 사람들은
모두가 죄인처럼 고개를 숙이고 있구나
살아남은 사람들 모두가
넋을 잃고, 밥그릇조차 대하기
어렵구나 무섭구나
무서워서 어쩌지도 못하는구나
(여보 당신을 기다리다가
문밖에 나가 당신을 기다리다가
나는 죽었어요… 그들은
왜 나의 목숨을 빼앗아갔을까요
아니 당신의 전부를 빼앗아갔을까요
셋방살이 신세였지만
얼마나 우린 행복했어요
난 당신에게 잘해주고 싶었어요
아아, 여보!
그런데 나는 아이를 벤 몸으로
이렇게 죽은 거예요 여보!
미안해요, 여보!
나에게서 나의 목숨을 빼앗아가고
나는 또 당신의 전부를
당신의 젊음 당신의 사랑
당신의 아들 당신의
아아, 여보! 내가 결국
당신을 죽인 것인가요?)
아아, 광주여 무등산이여
죽음과 죽음을 뚫고 나가
백의의 옷자락을 펄럭이는
우리들의 영원한 청춘의 도시여
불사조여, 불사조여, 불사조여
이 나라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골고다 언덕을 다시 넘어오는
이 나라의 하느님 아들이여
예수는 한 번 죽고
한 번 부활하여
오늘까지 아니 언제까지 산다던가
그러나 우리들은 몇백 번을 죽고도
몇백 번을 부활할 우리들의 참사랑이여
우리들의 빛이여, 영광이여, 아픔이여
지금 우리들은 더욱 살아나는구나
지금 우리들은 더욱 튼튼하구나
지금 우리들은 더욱
아아, 지금 우리들은
어깨와 어깨 뼈와 뼈 맞대고
이 나라의 무등산을 오르는구나.
아아, 미치도록 푸르른
하늘을 올라
해와 달을 입 맞추는구나
광주여, 무등산이여
아아, 우리들의 영원한깃발이여
꿈이여 십자가여
세월이 흐르면 흐를수록
더욱 젊어져 갈 청춘의 도시여
지금 우리들은 확실히
굳게 뭉쳐 있다 확실히
굳게 손잡고 일어선다
《김준태 시인 프로필》
1948. 7. 10. 전라남도 해남에서 태어나 조선대학교 사범대학(독어독문과)을 졸업하고 1969년 전남매일 신춘문예에"참께를 털면서"로 등단하였다 주요작품으로 밭詩, 달팽이 뿔, 호남선, 쌍둥이 할아버지의 노래, 아아 광주여 우리나라의 십자가여, 김대중 추모시집(님이여, 우리들 모두가 하나되게 하소서) 등 다수가 있다
• 5·18민주화운동 당시 고교 교사였던 시인은 1980년 6월 광주일보 전신인 전남매일에 "아아 광주여 우리나라의 십자가여!"의 일부를 게재했다가 군부에 의해 해직당한 뒤 투옥돼 고초를 겪었다. 교사로 복직한 뒤 교단을 떠나 언론계에 투신, 전남일보와 광주매일에서 문화부장, 경제국장 겸 부국장으로 일했다. 한국작가회 부이사장과 5·18기념재단 10대 이사장도 역임했다.
• 김준태 시인은 소설가 문순태(당시 전남매일 편집부국장)로부터 5·18에 대한 시를 1시간내로 써달라는 부탁을 받고 130줄이 넘는 시를 한 시간도 안돼 썼다고 한다. 다 쓴 시를 들고 자전거를 타고 신문사에 가서 직접 전달했다
당시 신군부의 지휘를 받는 검열관들은 김준태 시인이 쓴 시로 편집한 1면을 빨간펜으로 난도질해 내용이 거의 없는 죽은 문장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당시 신문사에서는 검열 전 원본으로 인쇄해 전국에 배포했다.
"10만 부를 찍어 보자기로 싸서 서울, 부산, 대구, 인천 등 전국으로 뿌렸다. 그때 서울에 와 있었던 하버드대 영문과 교수" 데이비드 맥캔"이 번역해서 AP, UPI, 로이터 심지어 중국 신화통신, 소련의 타스통신까지 다 보내게 되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첫댓글 김준태시인은 해남출신으로 조선대 독문과를 졸업중등교사로재직하였으며 언론사에서 재직한 시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