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은 이른다. 오호라! 국가가 의지하여 방패로 삼는 것은 오직 수군이거늘, 하늘이 재앙을 거두지 않으사 흉악한 칼날이 다시 번뜩여 마침내 삼도의 대군이 한 번 싸움에서 다하고 말았도다.
이순신 파직시킨 게 누군데 되도않는 개소리를 하고 자빠졌다.
이후로 바다 가까운 성읍은 누가 지키겠는가? 이미 한산을 잃었으니 적이 무엇을 꺼리겠는가?
부담주는 것도 아니고 어쩌라는 거냐?
지난번에 경의 직책을 빼앗고 그대로 하여금 죄를 짊어지도록 한 것은 역시 과인의 모책이 미덥지 못함에서 나온 것이었으니, 무슨 말을 하리오... 무슨 말을 하리오... 그대는 충의로운 마음을 굳건히 하여 우리의 나라 건지길 바라는 소망에 부합하라. 고로 이 교지를 내리니 그대는 헤아려 알라."
출처 : 『이충무공전서』「기복수삼도통제사교서」
이제 속히 움직여야겠다.
그 새끼 때문에 내륙으로 상륙한 왜군들이 곳곳마다 있으니...
조심해야겠군...
8월 4일 곡성에서 숙박
8월 5일 옥과에 도착
8월 6일 옥과에서 숙박, 송대립 등이 일본군을 정탐
8월 7일 순천으로 가던 중 패잔병으로부터 말 3필과 약간의 활과 화살을 습득,
곡성 강정에서 숙박
8월 8일 순천에 들어가 달아나려는 수령들을 잡고 방치된 군기를 처리,
순천에서 숙박
8월 9일 낙안을 거쳐 보성 조양창에 도착, 순천 부사 우치적 합류,
김안도의 집에 숙박
8월 11일 식량 습득 및 송희립, 최대성 합류
8월 13일 경상우후 이몽구 합류,
본영의 군기를 가지고 오지 않았으므로 곤장을 침
8월 14일 장계 일곱 통을 송부, 보성에 도착후 열선루에서 숙박
8월 15일 교지가 도착, 보성의 군기를 처리
8월 16일 보성 군수와 군관 등을 보내 피난했던 관리들을 송환,
궁장인 지이와 태귀상 등이 들어왔고 김희방과 김붕만 등도 합류
8월 18일 회령포에서 배설이 끌고 도망쳤던 전선 12척을 입수
그나마 수군의 구색은 갖췄구나.
그런데 병사들 상태가...
신병 : 예?!?!
노병 : 아이고... 허리야... 아이고... 무릎이야...
숙련병 : 칠천량 못봤어?... 우린 이제 끝이야 끝...
이 와중에 헛소문으로 진중 사기를 떨어뜨리는 자도 있군.
군율을 엄정히 세우고, 물품의 보강과 병력 안정화를 위해 진을 옮겨야겠다.
8월 20일
이진포로 진을 옮김
8월 24일
어란진으로 이동, 선상에서 숙박
8월 25일
군중에 거짓소문을 낸 자를 참수하여 기강을 안정시킴
(덧붙여 이 시기의 이순신은 토사곽란으로 고생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때
순신아
???
사실상 배도 없는데 육군이랑 합치는 게 낫지 않겠냐?
배가 있어도 그걸 운용할 수졸도 적잖아?
*하삼도 포기하고 강화도 지키는 게 좋을 수 있다는데?
류성룡이 그러더라고...
*하삼도 : 한반도의 남부 3도인 전라도, 경상도, 충청도
(ㅅㅂ... 저 새끼 일 잘못되면 또 남탓할라고 밑밥까네...)
전하, 글쓴이가 직접 쓰기가 귀찮대서 짤로 대체하겠나이다.
그리고 이 시기 오익창(吳益昌)이라는 선비가 피난민들과 함께 이순신 진영에 합류함
그러다 8월 28일
일본 군선 8척 출몰
아이고ㅠㅠ... 이젠 여기까지 왔나보네... 우린 이제 끝이야ㅠㅠ...
(고작 정탐선에도 저렇게 겁을 먹는다니...)
적선을 분멸할 필요는 없다.
다만 적진으로 깊숙하게 쫓아가지 마라.
겁만 주면 그걸로 충분하다.
정유년(1597) 8월 28일(병술) [양력 10월 8일] 맑다.
묘시(아침 6시)쯤에 적선 여덟 척이 뜻하지도 않았는데 들어왔다. 여러 배들이 두려워 겁을 먹고, 경상수사(배설)는 피하여 물러나려 하였다. 나는 꼼짝하지 않고 적선이 바짝 다가오자 호각을 불고 깃발을 휘드르며 따라 잡도록 명령하니, 적선이 물러갔다. 뒤쫓아 갈두(갈두 : 해남군 송지면 갈두리)까지 갔다가 돌아왔다. 적선이 멀리 도망하기에 더 뒤쫓지 않았다. 뒤따르는 배는 쉰여 척이라고 했다. 저녁에 진을 장도(노루섬)로 옮겼다.
출처 : 『난중일기』
그러고 이때의 사건은 조선 수군에게 희망의 불씨가 되고 있었다.
운 좋게 이겼네... 그래도 장군님이 지휘하시니까 왜놈들이 싸우지도 않고 도망을 가잖아???...
8월 29일
벽파진으로 이동
8월 30일
정탐꾼 파견, 배설 이탈
9월 1일
제주도민 점세가 소 5마리 진상
9월 2일
배설 도주 파악
그리고 9월 7일...
또다시 일본 군선 13척 출몰
저번에도 한번 해봐서 알 것이다.
이번에도 겁만주고 쫓아내면 그만이다.
정유년(1597) 9월 7일(을미) [양력 10월 17일] 맑다. 바람이 비로소 그쳤다.
탐망군관 임중형이 와서 보고하기를 "적선 쉰다섯 척 가운데 열세 척이 이미 어란 앞바다에 도착했습니다. 그 뜻이 우리 수군에 있는 것 같습니다." 라 했다. 그래서 각 배들에게 엄중히 일러 경계하였다. 신시(오후 4시)쯤에 적선 열세 척이 곧장 우리의 배들이 진치고 있는 곳으로 향해 왔다. 우리 배들도 닻을 올려 바다로 나가 맞서서 공격하여 급히 나아가니, 적들이 배를돌려 달아나 버렸다. 뒤쫓아 먼 바다에까지 갔지만, 바람과 조수가 모두 역류로 항해할 수가 없어 복병선이 있을 것을 염려하여 더 쫓아가지 않고 벽파진으로 돌아왔다. 이날 밤에 여러 장수들을 불러모아 약속하며 말하기를 "오늘 밤에는 반드시 아무래도 적의 야습이 있을 것 같아 여러 장수들은 미리 알아서 준비할 것이며, 조금이라도 명령을 어기는 일이 있으면 군법대로 시행할 것이다." 라고 재삼 타일러 분명히 하고서 헤어졌다. 이경(밤 10시)쯤에 적선이 포를 쏘며 기습으로 공격해 왔다. 우리의 여러 배들이 겁을 집어 먹는 것 같아 다시금 엄명을 내리고, 내가 탄 배가 곧장 적선 앞으로 가서 지자포를 쏘니 강산이 진동했다. 그랬더니 적의 무리는 당해 내지 못하고 네 번이나 나왔다 물러났다 하면서 포를 쏘아댔다. 삼경(새벽 1시)이 되니 아주 물러 갔다. 이들은 전에 한산도에서 승리를 얻은 자들이다.
첫댓글 신에게는 5만의 공요군이 남아있습니다.
5만은 너무 많소. 5천쯤 합시다.
잘봤습니다!
감사합니다.^^
명량에 이걸 다뤘으면 했는데 질끔 언급만하고 아예 빠져서 매우 아쉬움
ㄷ
넷플로 나오면 좋겠다..
정말 위대한 장군님..
나중에 임진왜란으로 넷플랙스로 대작한번
나왔으면..
아무리 생각해도 말도 안됨ㄷㄷ
개꿀잼ㅋㅋㅋ
ㄷㄱ
배설 PTSD ㄷㄷㄷ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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