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더 중요한지 분별하자
호화 여객선이 한 해협에서 조난당해서
사람들은 난파된 배의 잔재를 붙들고
구조선을 기다렸습니다.
이윽고 구조선이 도착했지만
파도가 높아 가까이 갈 수 없자
구조 요원은 밧줄을 던지며 밧줄을 잡고
구조선 가까이 오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몇 사람은 수영해서 잘 오다가
갑자기 허우적거리더니 결국 파도가 덮쳐
바다 깊이 빠지게 됐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들이 몸속에 지닌
금괴의 무게 때문이었습니다.
온갖 보석과 금괴를 차마 버리지 못하고
지니고 나왔던 것입니다.
그들은 재물에 대한 욕심 때문에
생사의 갈림길에서도 무엇이 더 중요한지를
깨닫지 못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요?
죽음 앞에서 황금은 그저 돌덩이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재물은 이성을 마비시키고
눈을 멀게 합니다.
결국 ‘필요’와 ‘욕망’ 사이의 경계를
명확히 구분하는 삶의 순위가
필요합니다.
# 오늘의 명언
불행한 사람의 특징은 그것이 불행한 것인 줄
알면서도 그쪽으로 가는 점에 있다.
우리 앞에는 불행과 행복의 두 갈림길이 언제나 있다.
우리 자신이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하게 되어 있다.
– A. 링컨 –
첫댓글 이 세상에 불행과 행복을 선택하라고 하면 불행을 선택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지금 우리나라 매스컴에 오르내리는 국무위원 후보들을 보면 그들이 무척 불쌍하고 불행에 보입니다. 그러나 현재는 당당한 국회의원들이지요. 평소 불행해질 수도 있겠다는 어렴풋한 생각과 그래도 나는 아니겠지 하는 행운 등을 생각하고 이제까지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는 경험으로 당당히 국회에 입성을 하였으니까요. 그러다가 추가로 욕심을 내다보니 숨어있던 비리가 다 들어난 것이라면 지금의 국회의원들 상당수가 그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보는 것이 상식이지 않을까요. 그 사람들의 비리를 미처 보지 못한 우리들이 그들의 추가 욕심으로 그들의 실체를 보게 되었다면 많은 국회의원들의 비리는 지금까지 적당히 넘어간 것은 문제가 없는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추가 욕심으로 불행하게 된다면 여기서 우리는 불행의 정의를 재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그들은 당연히 단죄해야 하지만 이번 기회에 우리의 눈도 예리한 예지능력을 갖추어서 앞으로는 투표하기 전에 냉정한 판단으로 그런 불행을 야기하는 사람을 골라내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불행은 그들뿐만 아니라 우리들 또한 불행해지니까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