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미래, 우주비행사인 사이퍼와 그의 아들 키타이는 특수임무를 띠고 다른 행성으로 가고 있다. 그러나 예기치 못한 우주선의 고장으로 두 부자는 낯선 행성에 불시착한다. 설상가상으로 추락 때 큰 충격을 받은 사이퍼는 두 다리까지 못 쓰게 된다. 이제 남은 희망은 어린 아들 키타이가 두 동강 난 우주선의 다른 기체에서 조난신호기를 찾아오는 것뿐이다.
키타이는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 모험을 떠난다. 이 행성엔 각종 맹수와 식인 식물이 가득하다. 그리고 이 때 알게 되는 놀라운 사실. 이들이 불시착한 곳은 다름 아닌 지구였다. 1000년 전 지구는 극심한 환경오염으로 인간이 살 수 없는 곳으로 변하고 만다. 가까스로 살아남은 인류는 지구를 떠나 ‘노바 프라임’이라는 새로운 행성에 삶의 터전을 마련한다. 반면 지구의 모든 생명체는 오염의 주범이었던 인간을 공격하게 진화돼 있었다.
조난신호기를 찾아가는 여정에서 키타이는 매 순간 생과 사의 기로에 놓인다. 그 때마다 공포에 떠는 아들에게 사이퍼가 차분히 말한다. “위험은 현실이야, 하지만 두려움은 선택이지(Danger is real, but fear is choice).” 아버지의 진심어린 조언에 용기를 얻게 된 키타이는 이후에도 몇 번의 죽을 고비를 넘겼지만, 포기하지 않고 성공적으로 자신의 임무를 완성한다.
2013년 개봉한 할리우드 영화 ‘애프터 어스’의 줄거리다. 실제 부자지간인 윌 스미스와 제이든 스미스가 사이퍼와 키타이 역할을 맡아 화제가 됐다. 감독 또한 ‘식스센스’로 유명한 M. 나이트 샤말란이 메가폰을 잡았다. 영화는 극한의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굳은 의지로 희망을 찾아가는 어린 소년의 모습을 통해 큰 감동을 전해주고 있다.
그런데 또 한 가지 기억에 남는 건 영화 속에서 인간이 살 수 없을 만큼 지구가 크게 오염되고, 그런 지구의 모든 생명체는 인간을 죽이게끔 진화됐다는 것이다. 지구의 입장에선 인간이 살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 자정작용의 일환이었다. 즉 인간의 과도한 욕망과 무분별한 개발, 그리고 이로 인한 환경오염은 지구에겐 하나의 큰 질병이었던 셈이다. 영화는 상상 속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뭔가 모를 찝찝함이 계속 남아 있는 건 꼭 비현실적인 이야기만은 아닐 거란 우려 때문이다.
태평양 한 가운데에는 거대한 플라스틱 아일랜드가 있다. 우리가 매일 먹고 마시며 생겨난 쓰레기들이 모여 거대한 섬(Great Pacific Garbage Patch)을 이루게 된 것이다. 전 세계에서 버려진 쓰레기들이 해류와 해풍을 타고 태평양 한 가운데 모여 쌓인 것이다. 현재 면적은 70만㎡로 한반도(22만㎡)의 3.2배에 달한다. 우리가 버리는 쓰레기만큼 매일 넓어지고 있다. 만일 지금과 같은 속도로 플라스틱과 비닐이 계속 쌓인다면 머지않아 우리의 바다는 생물이 살 수 없는 곳이 되고 말 것이다.
세계자연기금(WWF)은 매년 ‘생태환경 초과일(Earth Overshoot Day)’을 선포하는데 이는 1년간 지구가 제공하는 생태자원을 모두 써버린 날짜를 뜻한다. 인간이 지구의 1년 치 생태자원을 모두 써버리기 시작한 건 불과 40년도 안 됐다. 1970년 12월31일이었던 생태환경 초과일은 올해는 8월2일이었고 앞으론 더욱 빠른 속도로 날짜가 앞당겨질 것이다. 언젠가는 이 날짜가 3월, 2월이 되고 급기야는 1월이 될 날도 올 것이다.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에 따르면 석기시대 인간 1명이 쓰는 에너지는 4000칼로리였다. 음식과 주거, 도구 등 하루 동안 사용하는 모든 에너지를 포함해서 말이다. 반면 현대인들은 22만8000칼로리(미국인 1인 기준)를 사용한다. 옛날보다 먹을거리도 풍부해졌거니와 자동차도 몰아야하고 TV·스마트폰도 봐야 하기 때문이다. 에너지의 원천인 지구의 자원을 과거보다 인간 1명이 60배가량 사용하고 있다.
이처럼 지구는 계속 한계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이 시대 최고의 천재 중 한명으로 불리는 스티븐 호킹 박사는 길게는 100년, 짧게는 30년 안에 지구를 떠나야 한다고 주장한다. “기후변화와 환경오염 등으로 지구에 더 이상 살 수 없게 될 것”이라는 이유다. 영화 애프터 어스의 이야기처럼 현대판 노아의 방주를 만들어 다른 행성으로 떠나야할 날이 곧 다가올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인간의 무분별한 개발과 환경오염은 다른 생물 종을 멸종으로 이끌고 있다. 세계자연기금(WWF)과 런던동물학회(ZSL)에 따르면 1970년대 이후 척추동물은 종별로 평균 58%씩 감소했다. 이런 흐름이라면 2020년에는 동물 종이 현재의 3분의 1로 줄어들 것이라고 예측한다. 기후 변화와 환경오염 등이 주된 원인이다. 생물의 다양성은 건강한 생태계를 유지하는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에 결국 인간의 삶에도 나쁜 영향을 미친다. 과거엔 자연의 변화에 의해 멸종이 이뤄졌으나 지금은 인간이 만들어낸 기술과 그로 인한 오염으로 멸종이 앞당겨지고 있다. 인간 스스로 멸종을 자초하고 있다.
45억년 지구 역사에선 지금까진 5번의 대멸종이 있었다. 대략 35억 년 전 최초의 생명체가 지구에 나타난 이후 수많은 종들이 생겨났지만 이들 중 99%는 자취를 감췄다. 특히 4억4500만 년 전 첫 번째 대멸종에선 생물의 절반이, 가장 심각했던 3번째 대멸종(2억5000만 년 전)에선 전체 생명의 95%가 사라졌다. 마지막이었던 6500만 년 전 5번째 대멸종에선 당시 지구의 주인이던 공룡이 지구상에서 없어졌다.
이처럼 대멸종은 주로 자연의 법칙에 따라 일어나기에 멸종 자체를 막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다만 문제는 인간 스스로 멸종을 앞당기고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를 6번째 대멸종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이미 대멸종의 초입에 들어와 있다는 게 이들의 분석이다. 인간이 대멸종을 앞당기고 있다는 의미를 포함해 지질학자들은 현재의 시대를 ‘인류세’라고 부르고 있다.
6번째 대멸종의 가장 큰 신호는 지구온난화다. 화석에너지 사용 등으로 온실가스 배출이 늘면서 지구의 기온이 계속 높아지고 있다. 현재 지구의 온도는 19세기에 비해 약 1도가량 높아진 상태다. 지금보다 기온이 1.6도 더 오르면 지구 생명체의 18%가 멸종하고, 2도 오르면 빙하가 사라진다. 또 3.5도 오르면 해수면 높이가 7m 상승하면서 바다에 잠기는 나라들이 많아진다. 최종적으로 6도 이상 오르면 대멸종이 완성돼 모든 인간은 없어질 거라는 전망이다.
수 천만 년 또는 수 억 년 뒤에 지구의 주인들은 6번째 대멸종이 있었던 인류세의 지질학적 특성을 무엇이라고 판단할까. 지금까지 인간은 지표면 아래 쌓인 퇴적층에서 삼엽충과 암모나이트 등의 화석을 발견해 지질 시대를 구분했다. 아마도 미래 지구의 주인들은 인류세의 대표적 지질적 특성으로 동물의 화석보다는 플라스틱과 알루미늄 캔, 비닐 등을 떠올리지 않을까.
실제 지질학자들의 분석에서 흥미로운 것 중 하나는 인류세의 대표 화석이 닭뼈가 될 것이란 설명이다. 공룡의 뼈가 중생대의 트라이아스기부터 백악기까지를 대표하는 화석인 것처럼 현 시대의 대표 화석은 닭뼈가 될 거란 이야기다. 얀 잘라시비치 영국 레스터대 교수처럼 인류세를 지지하는 지질학자들은 20세기 중후반부터 급격히 늘어난 닭 소비량이 인류세의 개념을 규정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