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김민구 국제부 기자 roadrunner@chosun.com
-서울 용산구 독자 전종배씨
A: 1804년 프랑스로부터 독립하면서 '아이티(Haiti)' 이름 되찾아, 프랑스어에서 'H'는 묵음이기 때문에 '아이티'로 발음
'아이티'라는 명칭에는 이 땅을 식민지로 삼았던 서구 열강과 이에 저항한 원주민의 투쟁의 역사가 담겨 있습니다. 1492년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아이티를 발견하기 전 이곳에 살던 타이노 원주민은 자신들의 섬(주로 서쪽)을 '아이티(Ayiti)'라고 불렀습니다. 아이티는 원주민 말로 '산악(山岳)의 땅'이라는 뜻입니다.
콜럼버스는 스페인 국왕의 후원을 받아 아메리카 대륙을 탐험했기 때문에 자신이 발견한 섬을 '스페인의 섬(Hispaniola)'으로 개명했습니다. 현재 이 섬의 이름이 '히스파니올라'인 것은 콜럼버스의 영향입니다. 이후 스페인 정복자들은 이 섬을 12~13세기 스페인의 성직자인 성 도미니크의 이름을 따서 '산토 도밍고'로도 불렀습니다.
1697년 프랑스는 스페인과의 전쟁 끝에 히스파니올라 섬의 서쪽 3분의 1(현재의 아이티)을 스페인으로부터 넘겨받아 '생 도맹그'라는 식민지를 건설했습니다. '산토 도밍고'의 프랑스식 발음입니다. 아이티 동쪽에 있는 도미니카공화국은 계속 스페인의 지배를 받았고, 국명도 산토 도밍고에서 유래됐습니다.
- ▲ 아이티 독립전쟁을 묘사한 19세기 그림
아이티 원주민들이 '아이티'라는 이름을 되찾은 것은 1804년 프랑스로부터 독립하면서부터입니다. 프랑스어로는 'Haiti'라고 표기합니다. 프랑스어에서 'H'는 묵음이기 때문에 '아이티'라고 읽습니다. 아이티 주민들은 불어를 모국어처럼 사용하고 현지 발음도 '아이티'입니다. 우리나라의 외국 지명 표기는 최대한 현지 발음을 존중하는 것이 원칙이기 때문에 '아이티'라고 쓰는 것입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라틴아메리카 최초의 독립 국가인 아이티의 독립운동을 주도한 사람들은 타이노 원주민이 아니었습니다. 타이노 원주민들은 스페인 정복자들이 이 섬에 옮긴 전염병(천연두) 때문에 거의 몰살됐습니다. 현재 아이티에 사는 주민들은 콩고·기니·세네갈 등 서부 아프리카에서 노예로 팔려온 흑인들의 후손입니다. 18세기 후반 대서양에서 거래된 흑인 노예의 3분의 1(매년 1만~4만명)이 아이티로 보내졌고, 아이티 농장에서 일한 흑인 노예의 수는 최대 80만명에 달했습니다. 흑인 노예의 강제노동으로 아이티에서 재배된 담배·커피·설탕·인디고는 유럽에서 고가에 팔렸고, 프랑스인 농장주들은 막대한 부를 축적했습니다.
1789년 프랑스혁명의 영향을 받은 아이티의 흑인 노예들은 자유와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처절한 투쟁을 시작했습니다. 1804년 나폴레옹이 파견한 대규모 원정군을 격파하고 독립을 쟁취한 흑인 노예들은 이 독립국가의 이름을 프랑스어도 아프리카어도 아닌 타이노 원주민 말에서 따왔습니다. 나폴레옹의 대군을 물리친 것은 이 지역의 풍토병인 '황열(yellow fever)'이었습니다. 프랑스군의 사령관을 포함해 2만4000명의 병사가 이 전염병으로 숨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