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1장 8절에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 되리라”라고 증거하고 있고, 또한 구주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의 본격적인 시작에 있어서도 마태복음 3장 16절에 보면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 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라고 증거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으며, 게다가 오늘 본문에서도 하나님으로 인해 꿈을 해몽한 요셉의 은사에 있어 애굽의 바로가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사람이라고 표현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진정 이 세상에 있어서 우리 인생들이 경험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하늘의 힘과 역사들은 직접적, 현실적, 경험적인 면에 있어서는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님 외에는 있을 수 없는 것이고, 그러한 성령님의 실제적인 힘과 도우심들 가운데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것이고, 세상이 줄 수 없는 온갖 복음의 능력과 하나님 나라의 역사들을 경험할 수 있게 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오늘 본문의 요셉과 같이 사람이 할 수 없는 은사들을 맛볼 수 있는 것이며, 더군다나 극심한 배신과 고난과 상처와 외로움과 억울함들 속에서도 믿음을 잃지 않을 수 있는 것이고, 오히려 더욱 치열하게 죄악들과 싸우면서 정직하고 정결하며 지혜롭고 담대할 수 있게 되는 것이며, 실상 하나님의 백성들에 있어서의 기도의 응답 한 번 뿐 아니라 치유와 이적들, 사함과 나음들, 승리와 역전들, 복과 부흥들 등에 있어서도, 심지어는 태초의 천지창조와 세상 끝 날의 신령한 몸으로의 부활에 있어서까지도 직접적, 실제적인 힘은 시대와 나라들을 넘어 성령님이 아니실 수 없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바로 그러한 성령님께서는 그 위치와 역할에 따라 하나님 아버지의 영이시자 구주 예수님 이름에 약속되신 분이며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모든 뜻과 약속과 말씀들을 다 실행하시고, 특히 그 한 가운데 계신 구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그 목숨값으로 다 이루신 구원의 일들을 시간과 공간들을 초월해서 믿음과 함께 말씀대로 모두 실제가 되게 하시는 분일 뿐 아니라 본질적으로는 그 자체가 말씀의 영이신 것이며, 특히 말씀을 이 세상에 기록될 수 있게 하신 직접적, 현실적인 힘이신 것이고, 게다가 그러한 말씀을 믿고 행하며 증거할 수 있게 하시는 분이고, 더 나아가 말씀대로 누리고 경험하며 성취되어 지게 하시는 분인데..
반드시 그 위치와 역할 상 모든 주권과 통치와 섭리의 하나님 아버지께서 상상도 못할 사랑과 은혜와 능력으로 창세전부터 뜻하시고 계획하시며 약속하시고 예정하시며 준비하시고 진행하시면서 그의 시간에 따라 하나하나 나타내시는 하나님의 힘과 구원의 일들을 하나하나 실제들이 되고 경험들이 되게 하시는 분으로 그 어떠한 경우라도 하나님 아버지와 떨어질 수 없는 분이신 것이고, 게다가 그러한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사랑과 은혜와 긍휼의 하나님이실 뿐 아니라 공의와 형평과 질서의 하나님 또한 아니실 수 없는 분이기에, 또한 그 성령님 자체도 처음부터 구주 예수님의 이름에 약속되신 분이자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 목숨값 구원과 전적으로 함께 역사하시는 분이기에 단 한 시도 예외 없이 온 세상과 전 인류, 모든 시간과 공간보다 더 크신 성자 하나님이신 구주 예수님께서 우리 인생들에 있어 이 세상에서 뿐 아니라 세상 끝 날, 신령한 몸으로의 부활, 영원한 나라, 영원한 생명에 이르기까지 필요한 모든 대속과 대신, 나음과 화평 등을 위한 값과 대가들을 대신 다 치르심과 함께 모두 다 이루신 구원에 직결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며..
그렇기에 사실상 근원적으로는 우리 인생들이 경험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마다 그러한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으로 인한 역사들, 곧 구약과 신약 시대, 오늘날 우리들, 모든 인류 역사들, 심지어는 천지창조와 창세전, 더 나아가 세상 끝 날과 부활, 영원에 이르기까지 그 존재와 개념 상 잠시라도 분리, 별개, 변개이실 수 없는 반면 언제나 함께 이시고 그 역할에 따라 완벽하게 조화되시며 완전히 하나되시어 한 뜻을 이루시는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역사들이 아닐 수 없는 것이고..
무엇보다 그러한 성령님께서야 말로 그 자체부터 말씀의 영이심은 물론이거니와 실상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그 자체가 말씀이시고 오직 말씀으로 하나되시어 말씀과 함께, 말씀대로 모든 것을 실행하시고 다 이루시는 분이기에 성령님의 충만하심들, 더 나아가 근원적으로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기뻐 역사하심들마다 다름 아닌 오늘 본문의 요셉을 위시해서 모든 신실한 믿음의 선배들에 있어서도 그러했던 것처럼 말씀의 신앙이 핵심이자 실제이며 관건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사실 원론적으로 우리 인생들이 구원에 참예하고 이 세상에 살면서 하늘의 힘을 실제로 온전히 누린다는 것은 가장 우선은 오늘 본문의 요셉 같은 구약의 믿음의 선배들과 권속들처럼 하나님 아버지께서 아담과 하와 때부터 오실 메시야를 믿고 구원에 참예할 수 있도록 구주 예수님에 대해 미리 보이시고 안내하시며 연결될 수 있게 하신 다양한 예표와 모형들, 약속과 계시들 등을 통해 정말 말 그대로 오실 메시야를 믿었던지, 또는 오늘날 우리들처럼 오신 메시야를 믿고 있든지 간에 반드시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전부터의 뜻과 약속과 섭리 안에서 오직 한 분 구주 예수님을 믿음으로 값없이 구원에 참예하고 마치 목욕하듯 통째로 하나님의 것이 될 수 있는 것이며, 직접적, 경험적으로는 그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으로 인한 하늘의 힘과 실제로 인해 천국과 부활과 영생의 백성, 곧 본질적으로 말씀의 백성으로 거듭나게 되는 것이 아닐 수 없는 것이고, 사실 그것이 모든 전제이자 근본인 것이며..
뿐만 아니라 실상 우리 주님께서 이 세상에 다시 오시는 세상 끝 날까지, 또는 이 세상에서의 삶이 다 하는 날까지 믿음으로 구원에 참예한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에 있어서도 사단 마귀들이 우는 사자들과 같이 삼킬 자들을 찾는 이 험한 세상에서 연약한 육신의 몸을 입고 사는 동안 그것이 전부일 수는 없는 것으로 처음에 믿음으로 구원에 참예한 사랑과 은혜와 능력의 이치, 원리, 법칙과 마찬가지로 날마다 순간마다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전부터의 뜻과 약속과 섭리 안에서 오직 한 분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를 붙잡으며 기도하고 찬미하면서 그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으로 인한 하늘의 힘과 은혜로 죄악들과 싸우고 혹 범한 죄악들을 최대한 빨리 자복하고 돌이키면서 그 무엇보다 주야로 더욱 말씀을 읽고 들으며 묵상하고 실천하며 증거하는 등과 같은 결단과 몸부림들로 사는 것이 살아 있는 믿음, 진정 삶의 자리와 인류 역사의 현장들에서 하늘의 힘과 역사들이 넘치는 신앙, 직접적으로는 말씀의 영이신 성령님으로 충만하고 근원적으로는 말씀으로 하나되신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기뻐 역사하심으로 인한 하늘의 힘과 역사들의 생생함과 강렬함들이 됨에 있어서 기준이자 통로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바로가 그의 신하들에게 이르되 이와 같이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사람을 우리가 어찌 찾을 수 있으리요 하고
요셉에게 이르되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네게 보이셨으니 너와 같이 명철하고 지혜 있는 자가 없도다"
(창세기41:38~39)
*양범주목사의 '21세기 두란노서원'/2022년 12월 26일(월)1/사진(조연진사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