子路曰 衛君待子而爲政 子將奚先 자로가 말하기를, “위나라 군주가 선생님을 기다려 정사(政事)를 하려고 하니, 선생님께서는 장차 무엇을 먼저 하시렵니까?”라고 했다. 衛君 謂出公輒也 是時 魯哀公之十年 孔子自楚反乎衛 위나라 임금은 위출공 첩을 일컫는 말이다. 이 때는 노나라 애공 10년으로, 공자는 초나라에서 위나라로 돌아왔다.
子曰 必也正名乎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반드시 명분을 바로잡아야 할 것이다.”라고 하셨다.
是時 出公 不父其父而禰其祖 名實紊矣 故 孔子以正名爲先 謝氏曰 正名 雖爲衛君而言 然 爲政之道 皆當以此爲先 이 당시에 위출공은 자기 아비를 아비로 여기지 않고서 그 조부를 아비로 제사를 지냈으니, 명분과 실제가 문란한 것이었다. 그래서 공자는 명분을 바로잡는 것을 급선무로 삼은 것이었다. 사씨가 말하길, “명분을 바르게 한다는 것은 비록 위출공 때문에 한 말이지만, 그러나 정치를 하는 도리는 모두 이것으로써 급선무를 삼아야 마땅하다.”고 하였다.
新安陳氏曰 蒯聵乃輒之父也 蒯聵欲入君衛而輒拒之 是不父其父 父廟曰禰 輒繼靈公 是禰其祖 신안진씨가 말하길, “괴외는 곧 첩의 아비다. 괴외가 입국하여 위나라에서 임금 노릇을 하고자 하였지만, 첩이 이를 거부하였다. 이는 그 아비를 아비로 대우하지 않은 것이다. 아버지의 묘당을 녜라고 말하는데, 첩은 위령공을 이었으니, 이것은 바로 자기 할아비를 아비로 삼아 제사를 지내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吳氏曰 凡事皆有名 不可不正 亦不特衛輒父子爲然 오씨가 말하길, “모든 일은 전부 명분이 있으니, 바르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또한 단지 위나라 첩의 부자만 그렇게 하는 것도 아니다.”라고 하였다.
齊氏曰 祖非禰也而禰之 父非讐也而讐之 無父之人非君也而君之 名之不正 孰大於是 제씨가 말하길, “할아버지는 아비의 제사를 지내는 것이 아님에도 아비로써 제사를 지냈고, 아비는 원수가 아님에도 원수처럼 대하였으며, 아비를 무시하는 사람은 임금이 아님에도 임금으로 대하였으니, 명분이 바르지 않은 것 중에 어떤 것이 이보다 더 크겠는가?”라고 하였다.
子路曰 有是哉 子之迂也 奚其正 자로가 말하기를, “이런 말씀을 하시다니, 선생님은 사정에 어두우십니다. 어찌 그것(명분)을 바로잡는다고 하십니까?”라고 했다. 迂 謂遠於事情 言非今日之急務也 迂는 실제 사정으로부터 너무 먼 것을 일컫는 말이다. 이는 오늘날에 급하게 해야 할 일이 아니라고 말한 것이다.
厚齋馮氏曰 禮莫大於分 分莫大於命 夫子正名之論 蓋不與輒也 時輒已立十二年矣 子路之所謂迂者 蓋爲輒也 후재풍씨가 말하길, “예 중에서 분수보다 큰 것이 없고, 분수 중에서 명분보다 큰 것이 없다. 명분을 바르게 한다는 공자의 논리는 아마도 위공 첩과 상관이 없었을 것이다. 당시는 위공 첩이 즉위한 지 이미 12년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로가 우활하다고 말한 것은 아마도 위출공 첩 때문이었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子曰 野哉 由也 君子於其所不知 蓋闕如也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비속하구나, 중유(자로)여. 군자는 자신이 알지 못하는 것에는 제쳐놓고 말하지 않는 것이다.
野 謂鄙俗 責其不能闕疑而率爾妄對也 野란 비루하고 저속하다는 말이다. 자로가 의심스러운 부분을 빼놓지 못하고 경솔하게(率爾) 함부로 대답한 것을 나무란 것이다. 名不正 則言不順 言不順 則事不成 명분이 바르지 못하면 말이 이치에 맞지 않고, 말이 이치에 맞지 않으면 일이 이루어지지 않고,
楊氏曰 名不當其實 則言不順 言不順 則無以考實而事不成 양씨가 말하길, “명분이 그 실질에 합당하지 않으면 말이 순조롭지 못하고, 말이 순조롭지 않으면 그 실질을 살펴볼 수 없어서 일이 이루어지지 못한다.”고 하였다.
新安陳氏曰 集註於正名名不正 凡三以實字言 前云名實紊 此云名不當其實 又云無以考其實 蓋名當其實 則名正 名實紊 則名不正 名者實之賓 實者名之主也 實者於名最緊切 신안진씨가 말하길, “집주는 正名과 名不正에 대하여 모두 3번 實자를 가지고 말하였는데, 앞에서는 名實紊을 말했고, 여기에서는 名不當其實을 말했으며, 다시 無以考其實을 말하였다. 대개 명분이 그 실제에 합당하면 명분이 바르고, 명분과 실제가 문란하면 명분이 바르지 않은 것이다. 명분이라는 것은 실질의 손님이고, 실질이라는 것은 명분의 주인이다. 실질이라는 것은 명분에 있어서 제일 긴요하고 절실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問言與事 似不相干涉 朱子曰 如一人被火急取水來救 始得 却敎他取火來 此便是言不順 如何得事成 누군가 묻기를, “말과 일은 마치 서로 간섭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라고 하였다. 주자가 말하길, “예컨대 한 사람에게 불이 붙었을 경우, 급히 물을 떠 와서 구해 주어야만 비로소 옳은 것인데, 도리어 다른 사람에게 불을 가져오라고 시킨다면, 이것은 바로 말이 순조롭지 않은 것이니, 어떻게 하여 일이 이루어 질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輒以兵拒父 以父爲賊 是多少不順 其何以爲國 何以臨民 첩은 군사로써 아비를 거부함으로써 아비를 도적으로 삼았으니, 이는 얼마나 순조롭지 못한 것인가? 그가 무엇으로 나라를 다스리고, 무엇으로 백성에게 임한단 말인가?
雙峯饒氏曰 夫子謂 必也正名 是事事皆要正名 君臣父子 固是正名中之大者 然不可專指此大 凡一事才不正名 便開口有礙 說不去了 旣說不去 如何行得去 쌍봉요씨가 말하길, “공자께서 반드시 명분을 바르게 하겠다고 말씀하셨는데, 이는 일마다 전부 명분을 바르게 해야만 하는 것으로서, 군신과 부자는 명분을 바르게 하는 것 중에서 큰 것이다. 그러나 오로지 이렇게 큰 것만 가리켜서는 안 된다. 무릇 하나의 일이라도 조금만 명분이 바르지 않게 되면, 곧 입을 열어도 막힘이 있어서 말을 해나갈 수가 없게 된다. 기왕에 말을 해나갈 수 없다면, 어떻게 실행해 나갈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吳氏曰 名正言順 卽下文禮樂之本 名正禮也 言順樂也 오씨가 말하길, “명분이 바르고 말이 올바른 것은 곧 아랫 글의 예악의 근본이라는 것이니, 명분이 바르면 예이고, 말이 순조로우면 곧 악인 것이다.”라고 하였다.
事不成 則禮樂不興 禮樂不興 則刑罰不中 刑罰不中 則民無所措手足 일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예악(禮樂)이 일어나지 않고, 예악이 일어나지 않으면 형벌이 적절하지 못하고, 형벌이 적절하지 못하면 백성이 손발을 둘 곳이 없어진다.
范氏曰 事得其序之謂禮 物得其和之謂樂 事不成 則無序而不和 故禮樂不興 禮樂不興 則施之政事 皆失其道 故刑罰不中 범씨가 말하길, “일이 제 순서를 얻는 것을 일컬어 예라고 하고, 사물이 제 조화를 얻는 것을 일컬어 악이라고 한다. 일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순서도 없고 조화도 없게 된다. 그러므로 예악이 흥성하지 않는 것이다. 예악이 흥성하지 않으면 곧 정사에 베푸는 것이 모두 그 도를 잃게 되기 때문에, 그래서 형벌이 중도에 들어맞지 않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朱子曰 事不成以事言 禮樂不興以理言 蓋事不成 則事上面都無道理了 說甚禮樂 주자가 말하길, “일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일로써 말한 것이고, 예약이 흥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치로써 말한 것이다. 대개 일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일 위에 전부 도리가 없게 되는 것이니, 더 무슨 예악을 말하겠는가?”라고 하였다.
大凡事須要節之以禮 和之以樂 事若不成 則禮樂無安頓處 禮樂不興 則無序不和 如此 刑罰安得不顚倒 대체로 일은 반드시 禮로써 절제하고 樂으로써 조화시켜야 한다. 일이 만약 이루어지지 않으면, 禮樂을 안돈하는 곳이 없기 때문이다. 禮樂이 흥하지 않으면, 차례가 없고 조화롭지 않을 것이니, 이와 같다면, 형벌이 어찌 거꾸러지고 엎어지지 않을 수 있겠는가?
慶源輔氏曰 無一事無禮樂 禮只是一箇序 樂只是一箇和 事成而有序 則禮樂自興 不然則隳壞乖舛 又烏得有禮樂哉 禮樂不興 則凡施於政事者 無非私意 率皆倒行逆施 無序而不和 所謂刑罰不中而民無所措手足 亦必然之理也 경원보씨가 말하길, “일 하나라도 禮樂이 없는 것은 없다. 禮는 그저 하나의 차례일 뿐이고, 樂도 그저 하나의 조화일 따름이다. 일이 이루어지고 차례가 있다면, 禮樂은 저절로 발흥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무너지고 어그러지는 것이니, 또 어찌 예악이 있을 수 있겠는가? 예악이 발흥하지 않으면, 무릇 정사에 베풀어지는 것은 사사로운 뜻이 아님이 없다. 대개는 모두 거꾸로 거역하여 시행되는 것이니, 질서가 없고 조화롭지 못한 것이다. 이는 바로 이른바 형벌이 중도에 맞지 않고 백성은 손발을 둘 곳이 없다는 것이니, 역시 필연적인 이치다.”라고 하였다.
吳氏曰 此禮樂非玉帛鐘鼓之謂 事事物物得其理而後和之謂也 名不正言不順 則事物之間顚倒乖戾 禮樂何由而起乎 事失其理 而不和 故慶賞刑威 無一中節 獨言刑罰者 賞過 則濫利及小人 刑過 則淫禍及君子 擧其害之重者言之 刑罰所及非不善之人 則民莫知趨避之路矣 將安所置其手足乎 自名不正推而至於民無所措手足 聖人洞燭事情深遠治體 如此 오씨가 말하길, “여기서 禮樂은 옥과 비단, 그리고 종과 북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물마다 제 이치를 얻은 후에 조화롭게 된 것을 일컬어 말한 것이다. 명분이 바르지 않아서 말이 순조롭지 않으면, 사물 사이가 전도되고 어그러질 것인데, 예악이 무엇을 말미암아 일어날 것인가? 일이 그 이치를 잃고서 조화롭지 못하기 때문에, 상으로 경축하고 형벌로 위협하는 것이 하나도 절도에 들어맞는 것이 없고 오직 형벌만을 말하는 것이다. 상이 지나치면, 이로움이 넘쳐서 소인배에게까지 미치고, 형벌이 지나치면, 禍가 과하여 군자에게까지 미치는 법이다. 그 해악이 중한 것을 들어 말하자면, 형벌이 미치는 바가 선하지 않은 사람이 아니라면, 백성들은 어느 누구도 나아가거나 피할 길을 알지 못하게 될 것이니, 장차 어느 곳에 제 손과 발을 두겠는가? 명분이 바르지 않다는 것으로부터 미루어 나가서 백성이 손과 발을 둘 곳이 없다는 것에 이르렀으니, 성인께서 환하게 事情을 밝히시고 깊고 멀리 본체를 다스리심이 이와 같은 것이다.”라고 하였다.
故君子名之 必可言也 言之必可行也 君子於其言 無所苟而已矣 그러므로 군자가 명분을 세우면 반드시 말을 할 수가 있고, 말을 하게 되면 반드시 실행할 수 있으니, 군자는 그 말에 있어 구차함이 없을 뿐이다.”라고 하셨다. 程子曰 名實相須 一事苟 則其餘皆苟矣 정자가 말하길, “명분과 실제가 서로를 필요로 하는 것이니, 일 하나가 구차해지면 그 나머지도 모두 구차하게 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新安陳氏曰 名指名之言 實指可行言 謂行事之實也 一事苟 謂言之苟 其餘皆苟 謂事不成禮樂不興刑罰不中也 夫子所謂名不正以下 是反說 名之必可言 照應前面 名不正則言不順 言之必可行 照應前面 言不順則事不成 此是正說 言無所苟又反說 從名正言順來 蓋於言苟且 卽是名不正言不順 其餘必無往而不苟且矣 신안진씨가 말하길, “名은 명분을 말하는 것을 가리키고, 實은 말을 행할 수 있음을 가리키는데, 일을 행하는 실질을 말하는 것이다. 일 하나라도 구차하다는 것은 말하는 것이 구차한 것을 일컫는 것이고, 그 나머지도 모두 구차하다는 것은 일이 이루어지지 않고 예악이 흥하지 않으며 형벌이 중도에 맞지 않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공자께서 말씀하신 名不正 이하는 거꾸로 말한 것이다. 名之必可言은 앞면의 名不正則言不順에 대응한 것이고, 言之必可行은 앞면의 言不順則事不成에 대응한 것인데, 이것들은 정면으로 말한 것이다. 言無所苟는 다시 거꾸로 말한 것이니, 名正言順으로부터 돌아온 것이다. 대체로 말함에 있어 구차하면, 이는 곧 명분이 바르지 않아서 말이 순조롭지 못한 것이니, 그 나머지는 반드시 어디를 가더라도 구차하지 않음이 없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 胡氏曰 衛世子蒯聵恥其母南子之淫亂 欲殺之 不果而出奔 靈公 欲立公子郢 郢辭 公卒 夫人立之 又辭 乃立蒯聵之子輒 以拒蒯聵 夫蒯聵 欲殺母 得罪於父 而輒 據國以拒父 皆無父之人也 其不可有國也 明矣 夫子爲政 而以正名爲先 必將具其事之本末 告諸天王 請于方伯 命公子郢而立之 則人倫正 天理得 名正言順而事成矣 夫子告之之詳 如此 而子路終不喩也 故 事輒不去 卒死其難 徒知食焉不避其難之爲義 而不知食輒之食爲非義也 호씨가 말했다. “위나라 세자 괴외가 제 어미 남자의 음란함을 부끄러워하여 죽이고자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나와서 다른 나라로 도망쳤다. 위령공이 공자 영을 세자로 세우고자 하였으나 영이 사양하였다. 위령공이 죽자 위령공의 부인 남자가 영을 임금으로 세웠으나 다시 사절하였다. 마침내 괴외의 아들 첩을 위나라 임금으로 세워 이로써 괴외를 거부하였다. 저 괴외는 어미를 죽이고자 해서 아비에게 죄를 지었고, 위출공 첩은 나라를 점거하여 아비를 거부하였으니, 둘 다 모두 아비가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니 그들이 나라를 가질 수 없음은 자명한 것이었다. 공자께서 정치를 하면서 명분을 바르게 하는 것을 우선으로 하였기에, 반드시 장차 그 일의 본말을 갖추어 천자에게 고하고 여러 제후들에게 청하여, 공자 영에게 명하여 그가 위공이 되도록 한다면, 인륜이 올바르고 천리도 얻는 것이니, 명분이 바르고 말도 순조롭게 되어서 일 또한 이루어질 것이다. 공자께서 이를 상세하게 알려주기를 이와 같이 하였으나, 자로는 끝내 깨우치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위출공 첩을 섬기면서 떠나가지 않다가 끝내 그 난리에 죽고 말았으니, 여기서 녹을 받아먹으면 그 난을 피하지 않는 것이 의로움인 것만 헛되이 알았을 뿐, 위출공 첩의 녹을 받아먹는 것 자체가 의롭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였던 것이다.”라고 하였다.
左傳定公十四年 衛侯爲夫人南子(本宋女)召宋朝(宋公子) 太子蒯聵過宋野 野人歌之曰 旣定爾婁豬(求子豬也 喩南子) 盍歸吾艾豭(艾老也 豭牡豕也 喩宋朝) 太子羞之 謂戱陽速曰(太子家臣) 從我而朝少君 少君見我 我顧乃殺之 速曰諾 乃朝夫人 夫人見太子 太子三顧 速不進 夫人見其色 啼而走曰 蒯聵將殺予 公執其手以登臺 太子奔宋 盡逐其黨 춘추좌전 노정공 14년에 따르면, 위나라 제후가 부인 남자(본래 송나라 여자다)를 위하여 송조(송나라 공자다)를 불렀다. 태자 괴외는 송나라 들판을 지났는데, 들에 사는 사람이 노래를 불러 말하길, “이미 너희 암퇘지(새끼 배기를 구하는 암퇘지로서, 남자를 비유하였다)를 진정시켰다면, 어찌 우리 늙은 숫퇘지(艾는 늙었다는 뜻이고, 豭는 숫퇘지다. 송조를 비유한 것이다)를 돌려보내지 않는가?”라고 하였다. 태자가 이를 부끄럽게 여기고서, 희양속(태자의 가신이다)에게 말하길, “나를 따라서 少君에게 조회하러 가자! 소군이 나를 만날 때, 내가 돌아보면 곧바로 죽여라!”라고 하였다. 희양속은 그렇게 하겠다고 승낙하였다. 마침내 부인을 조회하였고, 부인이 태자를 만나자, 태자는 세 번 돌아보았다. 그러나 희양속이 나아가지 않았고, 부인이 그 기색을 알아보고서, 울면서 도망치며 말했다. “괴외가 장차 나를 죽이려 한다!” 위령공은 그 손을 잡아서 대에 오르게 하였다. 태자가 송나라로 도망치자, 그 잔당을 모조리 쫓아냈다.
左傳哀公二年初 衛侯遊於郊 子南僕郢御車 公曰 余無子(蒯聵奔) 將立女 對曰 郢不足以辱社稷 君其改圖 衛靈公卒 夫人曰 命公子郢爲太子 君命也 對曰 郢異於他子(言用意不同) 且君沒於吾手 若有之 郢必聞之 且亡人之子 輒在 乃立輒 晉趙鞅納衛太子于戚 좌전 애공 2년 초에 따르면, 위나라 제후가 교외에 놀러 갔는데, 자남이 시중을 들었다(영이 수레를 몰았던 것이다). 위령공이 말하길, “나는 자식이 없으니(괴외는 도망쳤다), 장차 너를 태자로 세우겠다.”라고 하였다. 자남(공자영)이 대답하여 말하길, “저 영은 부족하여 사직을 욕되게 할 것입니다. 임금께서는 의도를 바꾸십시오!”라고 하였다. 위령공이 죽자, 부인 남자가 말하길, “공자영이 태자가 되기를 명한다. 이는 임금의 명령이다.”라고 하였다. 공자영이 대하여 말하길, “저 영은 다른 아들과는 다릅니다(뜻이 다름을 말한 것이다). 또한 임금께서 제 손에서 돌아가셨으니, 만약 그런 명이 있었다면, 저 영이 반드시 들었을 것입니다. 또한 도망친 자의 아들 첩이 있습니다.”라고 하였다. 마침내 첩을 태자로 세웠다. 진나라 조앙은 위나라 태자 괴외를 척 땅에서 위나라로 들여보냈다.
問胡氏說 使孔子得政 則是出公用之 卽謀逐之 此豈近於人情 意夫子果仕衛 必以父子大倫明告出公 使自爲去就而後 立郢之事 可議也 朱子曰 此說得之 但聖人之權 亦必有非常情所可測度者 누군가 묻기를, “호씨는 만약 공자께서 정권을 얻으려면, 위출공이 그를 기용해야 하는데, 곧바로 그를 축출하려 도모한다고 말하였으니, 이것이 어찌 인정에 가까운 것이겠습니까? 생각하건대, 공자께서 과연 위나라에서 벼슬을 하였다면, 반드시 부자의 대륜을 가지고 위출공에게 밝게 알려주어서 스스로 거취를 결정하게 한 후에 공자 영을 임금으로 세우는 일을 논의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주자가 말하길, “이 말이 그것을 잘 터득한 것이다. 그러나 성인의 權衡에는 또한 반드시 인지상정으로는 헤아릴 수 있는 바가 아닌 것이 있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問胡氏只是論孔子爲政 正名合當如此 設若衛君輒用孔子 孔子旣爲之臣 則此說亦可通否 曰 聖人必不肯北面無父之人 若輒有意改過遷善 則夫子須先與斷約如此做 方與他做 若輒不能然 則夫子決不爲之臣矣 누군가 묻기를, “호씨는 그저 공자가 정치를 함에 있어 명분을 바르게 하는 것이 마땅함이 이와 같다고 말하였을 뿐입니다. 만약 위나라 임금 첩이 공자를 기용하여, 공자께서 이미 그의 신하가 되었다면, 그래도 이 말은 또한 통할 수 있는 것입니까?”라고 하였다. 말하길, “성인께서는 반드시 아비를 무시하는 사람에게 북면하려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만약 위출공 첩이 개과천선할 의사가 있다면, 공자께서는 반드시 먼저 이렇게 하기로 더불어 결단하고 약속을 해야만, 비로소 그와 더불어 일했을 것이다. 만약 위출공 첩이 그렇게 할 수 없다면, 공자께서는 결단코 그를 위해 신하노릇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子路爲人 粗於精微處 多未達 合下仕衛 便不是了 孔悝則出公之黨 他不以出公爲非 故其事悝自以爲善而爲之 而不知其非義 宜其以正名爲迂也 자로는 그 위인이 정미한 곳에서 거칠었고, 많은 것에 아직 통달하지 못하였으니, 본래 위나라에 출사한 것부터 곧 바로 잘못된 것이다. 공회는 바로 출공의 무리였지만, 그는 출공을 그르다고 여기지 않았기 때문에, 그가 공회를 섬긴 것은 스스로 선이라고 여기고서 행했을 것이지만, 그것이 義가 아님을 알지 못하였으니, 그가 명분을 바르게 하는 것이 우활한 것이라고 생각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雙峯饒氏曰 集註引胡氏說 蓋以其辭嚴義 正可爲萬世綱常作主使亂臣賊子知所警懼 故特著之 若眞欲行此 須是孔子爲衛世卿而有權力 當靈公初死輒未立之時 爲之則可 쌍봉요씨가 말하길, “집주에서 호씨의 말을 인용한 것은 아마도 그 말이 엄정하고 의로워서, 바로 萬世의 綱常을 위하여 주인으로 삼을 수 있고, 난신적자로 하여금 경계하고 두려워할 바를 알도록 할 수 있기 때문에, 특별히 이것을 기재하였을 것이다. 만약 진짜로 이를 행하고자 한다면, 반드시 공자께서 위나라의 세경이 되어 권력을 소유하고 있어야 하고, 위령공이 죽은 처음에 첩이 아직 임금으로 세워지기 전의 시기에 당해서 이를 행하였다면, 가능하였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