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용화목사 칼럼] 다락방 전도 운동의 신학에는 오류가 있는가?
다락방 전도운동(대표 류광수 목사)의 신학 사상은 10여년 전 대한예수교 장로회(개혁) 총회와 한국기독교총연합회 그리고 개신대학원대학교 등에 의하여 성경적으로 오류가 없다고 검증된 바 있다. 그런데 최근 들어 신학적으로 오류가 있다고 문제를 제기하고 있어서 이에 대하여 성경적, 신학적으로 점검해 보았다.
1. 한 번 죄 용서를 받으면 죄 용서를 더 이상 구할 필요가 없는가?
「복음편지」에 의하면, 회개함이 없이는 죄사함도 없고(p.24), 매일의 삶 속에서 죄의 문제를 회개해야 하고(p.48, 79), 천 번을 넘어져도 천 번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며 우리가 살아야 한다(「내 인생 최고의 선물」 p.86). 이렇듯, 다락방 전도운동은 표면상으로는 지속적인 회개의 필요성을 가르치고 있다.
그런데, 흔히 언급되고 있는 ‘유리창을 깬 소년에 관한 예화’에서는 한 번 용서 받은 죄는 하나님께서 찾지도, 기억하지도 않으시기 때문에(참고, 사43:25; 렘50:20; 히8:12), 더 이상 하나님께 죄 용서를 구하는 것은 불신앙이라고 가르친다. 이같은 예화는 회개를 지속적으로 할 필요가 없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다윗은 밧세바와 범한 간음죄를 회개하고서 나단 선지자를 통해서 죄 용서를 선언받았고(삼하12:23), 이로써 의롭다 함을 받고서 행복했다(시32:1; 롬4:6-8).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 앞에서 자기의 죄를 기억하고(시51:3-4)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으로(시51:17) 밤마다 눈물로 회개하며 죄 용서를 구했다(시6:6).
하나님은 다윗의 죄를 용서하셨으나, 다윗 자신은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고, 그래서 용서하지 않았다. 다윗은 자신이 태어날 때부터 항상 악하였고(시51:5), 자기 속에 죄와 악이 함께 있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참고, 롬7:20,21). 중생한 사람 안에도 여전히 죄의 부패한 잔재가 남아 있고, 또 실제로 죄를 범하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구체적으로 항상 회개해야 하는 것이다(참고,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 13장 2항).
2. 사탄 마귀를 대적하여 박살내면 죄 문제가 다 해결되는가?
범죄의 원인은 사단에게만 있는가? 창세기 3장에서 첫째 아담이 범죄하여 타락한 경우나, 마태복음 4장에서 둘째 아담이신 예수님이 시험받으시던 경우 모두 사단 마귀에 의해서였다. 사단 마귀는 죄의 조성자요 원인자이며, 죄의 실체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십자가로 사단 마귀를 박살내셨던 것이다(참고, 골2;15). 또한 성도들도 사탄 마귀를 대적하여 피 흘리기까지 싸워야 한다(약4:7; 히12:4).
가룟 유다의 경우, 마귀가 그의 마음과 생각을 움직이고(요13:2) 그를 주장했기 때문에(요13:27) 예수님을 배반하고 팔아넘겼다. 그러나, 가룟 유다는 본래 도둑이었고 정욕과
사로잡혀 돈을 훔쳐 왔었다(요12:8). 그의 탐욕 때문에 예수님을 배반했던 것이다. 그런 까닭에, 그는 자신의 악한 탐욕을 회개해야 했으나, 그렇게 하지 않고 자살의 길을 택하였다. 회개가 없으면 자멸하는 것이다. 우리는 사단 마귀를 대적할 뿐 아니라, 우리 자신의 정욕과 탐욕을 인하여 말씀과 기도로 회개해야 한다.
3. 율법주의와 율법은 어떻게 다른가?
율법주의와 율법의 용도를 구별하지 못함으로 해서, 결과적으로 무율법주의에 빠지기 쉽다. 율법주의는 율법을 행함으로 스스로의 공로에 의해 구원을 받으려 하는 사상이다. 이같은 율법주의에 의한 율법의 행위로는 구원을 받을 수가 없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롬3:24) 그리고 믿음으로(롬4:22) 즉, 믿음의 행위로(살후1:11) 구원을 받는다. 살아있는 믿음은 일을 한다. 순종하고(롬1:5) 사랑으로 행한다(갈5:6; 엡6:23). 율법대로 행한다(참고, 롬13:8,9). 율법은 하나님이 친히 제정하신 것이기 떄문에(갈3:19), 거룩하고 의로우며 선하다(롬7:12). 그래서, 율법을 올바르게 사용하면 유익하다(딤전1:8).
복음에 율법이 없으면 무율법주의가 되고, 율법에 복음이 없으면 율법주의가 되나, 복음과 율법이 함께하면 복음주의가 된다. 에컨대, 로마서 1-8장은 복음이요, 12-15장은 율법이다. 율법은 복음에 합당한 삶, 곧 회개에 합당한 삶을 살게 하려고 하나님이 주셨다(참고, 마3:8; 빌1:27).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도 1-18장은 복음과 구원을, 19-30장은 율법과 구원받은 자의 삶을 다룬 것이다. 지속적인 회개가 없는 무율법주의적인 삶은 복음을 역행하는 무서운 악이다.
4. 예수님이 ‘다 이루었다’고 하셨으므로, 예수님 안에 있으면 아무렇게나 살아도 되는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기까지 순종하여 율법의 요구를 다 이루셨을 뿐 아니라, 율법의 저주와 형벌을 다 받으셔서 구원을 이루셨기 때문에(히5:8,9), 예수님 안에 있으면 정죄, 곧 심판이 없고 성령께서 성도에게 죄의 올무에서 해방과 자유를 주신다(롬8:1,2). 그런 까닭에, 예수님은 죄의 종결자요, 죄에서의 해방자요, 우리의 구원자이시다.
예수님 안에 있으면 심판이 없고 죄에서의 해방이 보장되어 있음으로, 예수를 믿는 성도는 아무렇게나 살아도 되는가? 이에 대하여, 바울은 분명하게 대답하기를, ‘결코 그럴 수 없다. 우리가 어떻게 그대로 죄 가운데 살겠느냐?’(롬6:2)고 했다. 또한, 그리스도께서 주신 자유를 육체를 위한 기회로 삼지 말고(갈5:13) 성령을 따라 율법대로 행하며(갈5:16,23), 육체의 정욕을 십자가에 이미 못 박은 사실을 기억하라고 했다(갈5:24). 바울은 계속해서 명령하기를, ‘각 사람은 자신의 행위를 살피고, 자신을 속이지 말며, 그리스도의 십자가만 자랑하라’고 했다(갈6:4,7,14).
예수님 안에 있으면 하나님의 은혜로 심판이 없고, 복음의 진리로 참된 자유를 누리는 까닭에, 그 은혜에 감사하여 더욱더 의롭고 거룩하게 살며(살전4:3),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려 하나님의 성전 된 우리의 몸(고전6:19)을 흠 없이 보존해야 하는 것이다(살전5:22,23). 두려움과 떨림으로 자신의 구원을 힘써 이루어야 하고(빌2:12), 더욱 힘써 하나님의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하여 결코 넘어져서는 안 된다(벧후1:10).
참되고 좋은 살아있는 믿음은 그것의 열매, 곧 의롭고 거룩한 선행으로 알게 되어 있다(마7:15-20). 예수님께서 이루어 놓으신 구원을 핑계 삼아 율법을 거스려 방종한 삶을 사는 자는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가 없다(마3:10). 그같은 자는 불법을 행하는 자이기 때문에, 그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사단 마귀를 박살냈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고(마7:22,23), 지옥으로 내쫓겨 거기에서 통곡하며 이를 갈 것이다(마25:30).
출처 : 한국복음방송&한국복음신문(http://www.kgbtv.kr)